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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5.12.30 13:30

[2015.12.27] 다양성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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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이수



 

다양성과 통합

(고린도전서 12:21-27)

 

 

20151227일 주일예배

김이수 형제(헌법재판소 재판관)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 고린도전서 1221-27 -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달,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한 정치인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기억되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학생, 시민단체, 노동조합, 종교계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에 힘입었습니다. 2009년에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과 김대중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해에 예수님이 흘린 눈물을 소재로 말씀증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다양한 대립과 갈등의 문제를 겪어 왔습니다. 계층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 이른바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극단적인 이념갈등, 또 최근 급부상하는 세대갈등 등입니다. 세대갈등은 한국정치의 오랜 갈등구조인 지역갈등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전망입니다. 장래에는 다문화사회의 진전에 따른 갈등문제도 생기리라 예측됩니다.

 

가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미움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의사소통이 일방통행이 됩니다. 요즈음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외형상으로는 노선의 차이, 당의 혁신 방법의 차이로 분열로 치닫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시의 그리스도 공동체에 보낸 서신중의 일부입니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번성하였던 도시입니다. 유명한 코린트 건축양식은 이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146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면서 그 중심에 있는 고린도를 폐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남자들은 죽이고, 남은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폐허가 된 고린도를 항구도시로서 다시 재건한 사람은 줄리어스 시저였습니다. 기원전 44, 집정관이었던 시저는 로마의 퇴역군인과 하층민들을 이주시켜 지배층과 시민층을 구성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고린도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로마원로원의 직할시가 되며, 도시는 빠른 속도의 변화를 겪습니다. 헬라 원주민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집트, 유대 등 여러 지역에서 이주민들이 유입되고, 여러 문화가 섞이게 됩니다. 당시 고린도의 유대인 인구는 2만 명(전체인구 8)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16개월을 머물며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며 유대사람과 그리스사람에게 전도사역을 했습니다. 고린도공동체는 초기에는 가정교회, 혹은 상점교회로 시작한 작은 그리스도 공동체였습니다. 당시 유대계 디아스포라 회당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비유대인들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크리스천 유대교로 개종시키는 활동을 하였는데, 이방인 선교에 그 중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사역을 마치고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이 고린도공동체의 분열과 도덕적 타락에 대해 듣고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공동체는 바울이 서신을 보낸 여러 공동체중 가장 골치가 아픈 공동체였습니다. 고린도는 다양한 인종의 혼합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꽃피었지만,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습니다. 여러 종족들 간에 반목도 많았는데 그 반목의 내면을 보면 종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팍스 로마나 선언이후 제국의 정복전쟁이 줄어들자 노예공급이 줄어들면서 노예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 몰락한 귀족들은 노예를 팔거나 방출하고 해방된 노예와, 신분은 아직 노예이지만 주인이 없는 노예가 늘어났습니다. 계층 갈등이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면서 분열과 반목, 갈등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공동체(교회)에도 여러 갈등이 나타납니다. 그 중에, 세 가지를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공동체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주도권 갈등이 있었습니다. 112절에서 보듯이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등 분파로 나뉘어, 자기 지도자가 더 권위가 있다면서 시기하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분파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세례를 누구로부터 받았느냐 등 요즘 말로는 인맥의 형성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학문이 많고 성서에 능한 자로서(사도행전 24) 바울이 어눌한데 비하여 아주 말을 잘하였다고 합니다. 브리스길라는 여성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가르쳤습니다(사도행전 1425-26).

둘째로, 고린도공동체는 지식, 권력, 가문, 부 등 세속적인 위계질서와 불평등이 공동체 내에 여전히 작용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6절을 보면, 지혜 있고 권력이 있고 가문이 훌륭한 소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곧바로 어리석은 자와 약한 자, 비천한 자와 멸시받는 자를 이에 대비하고 있습니다(127-28). 고린도공동체는 주의 만찬 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주의 만찬 자리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신도들은 가난한 신도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네끼리만 먼저 풍족하게 먹고 마셨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은 제대로 먹지 못해 배고팠고, 굴욕감을 느꼈습니다(고린도전서 1121-22). 이는 주의 만찬의 근본정신을 몰각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여성의 공적인 활동으로 인한 남녀갈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5절을 보면 머리에 베일(너울)쓰기를 말할 뿐 여성이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전서 1434-35절은 여자는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 보라고 합니다. 고린도공동체 내 여성 예언그룹에 대한 남성 예언그룹의 억압이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반여성주의적 태도로서 반동적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주인, 남자나 여자도 하나임을 천명한 갈라디아서 328절이나, 남녀의 관계는 주종이나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임을 말한 고린도전서 1111-12, 앞에서 말씀드린 바울의 동역자 여성 브리스길라의 역할 등과 크게 어긋납니다. 이 단락의 해석에 대해서는 바울의 순수한 권고로 이해하는 권고설, 후대의 삽입으로 보는 삽입설, 바울이 1436-39절에서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34-35절은 남성예언그룹의 말을 인용했다는 반박설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에, 서중석 교수는 반박설을 지지하면서 특히 1436절에서 바울이 반박하는 대상은 고린도 남성 예언그룹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남성 예언그룹은 그들끼리는 갈등했지만 여성그룹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들은 여성예언그룹과의 지도력 분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였을까요?

첫 번째, 파벌갈등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35-11절에서 아볼로와 나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대로 일하였을 뿐이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다(5-7). 나와 아볼로 둘 다 하나님의 동역자다(9). 내가 기초를 놓으면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는다(10). 집의 주춧돌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외에 어떤 존재도 주춧돌이 될 수 없다(11)”고 하십니다. 그리고 321절에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기하고 싸우는 것은 육에 속하는 행위라고 비판합니다(34).

 

두 번째, 계층갈등에 대해서 바울은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세속의 우열이나 위계질서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127-29). 바울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인이든지 그리스인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213, 갈라디아서 328). 보그와 크로산은 하나 되었다는 의미를 일체성 보다는 평등성의 의미로 봅니다. 각 지체들은 서로 돕는 유기체적 지체이지 서로 분열되어 우열을 구분하는 분리된 지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도 합당하고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1224). 그리하여 몸에서 분열이 없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1225).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226). 이는 타자를 배제하거나 깎아 내려야만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독교인의 윤리입니다.

한편, 바울은 고린도공동체에 성만찬에 대한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빵을 떼고 식사를 하고 그 후 포도주를 마시는 원래의 주의 만찬 방식에서 식사를 분리시켰습니다(1134). 그리고 메뉴를 떡과 포도주로 한정하여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누구나 주의 만찬을 준비하고 주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1124-25). 주의 만찬은 온 회중이 함께 하나의 떡을 먹고 하나의 잔으로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상징세계를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찬의 동질, 동량, 동시, 공동성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세 번째, 남녀 예언자들의 갈등에 대해서 바울은 약자인 여성예언그룹의 권익을 옹호하고 강자인 남성그룹에 그 권익을 인정할 것을 권고합니다. 자신의 권고를 인정하지 않으면 남성예언그룹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충고합니다(1436-38).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는 약자인 이방인 크리스천을 끌어 올리고(314, 56), 강자인 유대인 크리스천을 끌어 내립니다(54). 로마서에서는 반대로 약자인 유대인 크리스천을 격려하고(29-10), 강자인 이방인 크리스천을 비판하고 있습니다(1118). 일관되게 약자를 변호하고 강자를 비판하는 목적은 반성과 배려의 정신을 통해 평등, 공존을 모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328, 로마서 330).

 

이상 고린도공동체의 세 가지 갈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한편, 고린도공동체는 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크고 좋은 은사인가를 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사는 주로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의 분별, 방언, 방언의 해석(128-10) 등 다양했습니다.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였을 뿐 고린도공동체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특정 은사의 우월성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음악을 이루는 것처럼, 다양한 은사들이 조화를 이룰 때 공동체 전체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바울은, 이 모든 은사가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예언은 울리는 징과 같고 방언은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마 신약성서 중 예수님의 산상수훈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사랑에 관한 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적어갑니다. ,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제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공동체 안에서 실천해야 할 삶의 황금율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로 눈을 넓혀봅니다. 여러 통계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돌봄, 연대, 포용을 통한 사회통합이 아쉽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통합을 어렵게 하는 중요 요인으로 소통이 부재하거나 소통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 갈등이 전제하고 있는 각각 다른 주장, 이익, 관점, 근거, 전망 등을 갈등의 당사자들이 억압을 받지 않고 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소통의 핵심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못지않게 상대방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주장을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쟁점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셋째, 정치지도자들이 예컨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과 같은 소통의 구조를 세워 상이한 이익과 의견을 타협 조정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의 범위를 넘어 국민 전체에 대하여 봉사한다는 정치지도자들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치는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배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여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손상되지 않게끔 통합하는 것입니다. 배제와 차별의 정치는 특정 계층에게 불이익을 주게 됩니다. 그런 계층은 대개는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을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회를 통합시키고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합은 정치지도자들의 일방적인 독선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반드시 국민의 동의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은 사회에 또 하나의 갈등요인으로 등장합니다. 만일 국민의 동의와 합의 없이 일부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합의 목표가 설정되어 추진된다면 집단주의가 득세하게 될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권위주의나 전체주의가 정당화 될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의 구성세력을 하나의 사회공동체로 정치적으로 통합시키는 근원은 무엇일까요? 사회통합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 인간 연대, 안전, 행복, 민주공화국 등이 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법은 사회공동체가 정치적인 통일체로 통합되어 가기 위한 공감대적 가치규범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중첩되는 합의영역이라고 볼 수 있어서 사회의 갈 길을 밝혀주는 탐조등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찾기 어렵고 서로를 겨누는 거친 언사들이 난무하는 우리의 삭막한 현실에서 바울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편지를 우리에게 보냈을까요? 우리 또한 다른 형태의 고린도공동체가 아닐까요? 분열로 인한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지고, 진정한 의미의 사회의 통합과 인간의 화해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주는 고린도서신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주님, 다양성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발전의 계기가 될지언정 서로를 미워하고 겨누는 칼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우리 새길 공동체의 기초,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합니다. 저희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로 새길 또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다양한 역할이 있습니다. 우열을 가리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오직 그 자리에 감사만 남게 하소서. 마음을 다하여 낮은 자리에 임하며 다른 지체를 귀히 여기며 소통할 때, 새길은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을 믿습니다. 갈등과 미움이 쌓여가는 이 사회에서 부족한 저희들, 사랑과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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