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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진관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

(마태복음 6:31-33)

 

 

20151129일 주일예배

권진관 형제(새길교회 신학위원,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631-33 -

 

 

 

 

우리 새길 공동체 대부분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일어났던 일들은 제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아내가 세상을 뜬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아내가 다리 대퇴부분이 아팠던 것이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라 그에게 이미 번지고 있던 암에 의해서 생긴 고통이었다는 것을 전연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에 들어가 딸들을 방문하면서 잘 지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살던 곳에서 떠나서 서대문의 인왕산 자락 홍제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인왕산 자락 아래에서 오늘의 설교를 쓰고 있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앞날은 예측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기야 제가 신학자, 종교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이 된 것도 당시에는 예측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일이 잘 일어나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저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예측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도 대부분은 관계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큰 정치적인 사건이나 전쟁, 갑작스러운 질병이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면 좀 엉뚱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관계론적으로 살펴보면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운명도 바뀌어 왔고, 선후배, 친구,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운명이 바뀌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새길 공동체가 저의 삶을 형성하는 관계의 망과 얽힘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저의 아내의 죽음을 거치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일은 혼자 시작하지만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끝납니다.


관계론을 펼친 사람은 저희 학교 신영복 선생입니다. 선생은 지금 말기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아무 약속도 없이 현대아산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가서 카운터에서 이름을 대면 병실을 알려주시리라 생각해서 그냥 갔는데, 병원 측에서는 환자 안정 등의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렵사리 사모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사모님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수업 제목이 스토리와 담론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이라는 최근의 책을 저의 수업 스토리와 담론에서 주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담론이라는 책에는 70대 중반의 노년의 나이에 이른 원숙한 사상가가 펼치는 재미있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분을 선택한 것은 이 분은 이야기를 할 줄 알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잘 연결시켜서 그것으로부터 의미와 지혜를 추출해 내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글쓰기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원숙한 상태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는 것이지 늙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특히나 인문학이나 신학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선생의 담론은 훌륭한 민중신학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신학적인 표현은 없지만, 스토리와 담론을 잘 엮어낸 세속적인 민중신학의 아이디얼한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신 선생의 글은 민중도 읽을 수 있고, 지식인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와 담론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문학을 통해서 민중과 지식인의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신 선생의 글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는 민중이 항상 고난을 당합니다. 민중이 스스로 일어서지만 백전백패하고 맙니다. 민중은 이야기를 합니다. 담론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담론을 할 줄 아는 다른 세력 특히 상아탑의 세력과 공중과 지식인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중의 이야기는 들려지지 않으며, 민중은 고립되고, 결국 패배하고 맙니다. 이야기와 담론은 서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몸의 언어, 삶의 언어, 민중의 언어라고 한다면, 담론은 머리의 언어, 지식인의 언어입니다. 이것, 즉 이야기와 담론은 우리가 하는 인문학과 신학에서 만나야 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는 이야기와 담론이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글들을 신 선생은 70대 중반에 써냈다는 말씀입니다. 신학이나 인문학은 나이 70부터 시작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원숙함은 그때부터이겠다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는 이 말씀을 저는 오늘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하는 질문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찾고자 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크게 바뀌었을 때, 저는 이제 나는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말은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것, 이전에는 같이 있었는데 이젠 집에 혼자 있게 되었고, 혼자 잠을 자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말 삶이 바뀌었고,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 속에서 그리고 인생의 이 나이에 나는 이제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왜 고난이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고난의 인물인 욥을 지난 몇 달 동안 내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욥기에서는 대화상대자들로서 욥과 욥의 세 친구들이 나오고 마지막에 젊은 사람 엘리후가 나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은 욥의 잘못에서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은 떳떳하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험한 고난을 당할 만큼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신은 의롭게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의로운 하나님이 벌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욥을 반박하고 꾸짖은 사람은 젊은 사람 엘리후였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을 대변하려고 하였습니다마는 그러나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욥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과 하나님은 전능하지만, 정의로운 분이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는 정도였지 그리 설득력 있는 담론은 아니었습니다.

욥기 마지막 부분에서 드디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잘못을 들추어서 벌을 받을만하니 받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코믹합니다. 욥과 대적하는 하나님은 욥에게 한쪽 눈을 찡끗하면서 서로 잘 해 보자고 눈신호를 주는 형국처럼 보일 정도로 하나님은 엘리후가 말하는 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매우 인간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태도는, 욥에게 죄를 억지로 뒤집어씌우는 태도가 아니라, 욥이 모르고 있는 것을 들이대면서 욥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작전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들사슴이 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 본 일이 있느냐?” 그리고 최후로는 네가 리바이단을 낚을 수 있느냐?” 입니다. 여기에 욥이 항복하고, 하나님은 이러한 욥을 용서할 뿐 아니라, 욥에게 많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욥과의 게임에서 욥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는 척하니 얼른 욥을 받아들입니다. 욥기는 하나님의 코미디, Divine Comedy로 보입니다.


저는 제 아내가 병상에 있을 때 줄곧 욥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아내 최진희는 좋은 인간이었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우리 진희를 살리고 싶은데 진희를 죽이려고 하는 다른 힘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는 다른 힘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른 힘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힘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소위 죽음의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하는 분이시고 아파서 죽어가는 우리들을 안타깝게 껴안는 분이시지,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몰고 가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욥기의 메시지는 하나님은 결국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의로운 분이시며, 의를 사랑하고, 의가 이기기를 바라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고난의 과정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만약 우리가 그러한 죽음의 갈고리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면,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고난에 대한 성찰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다는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내 최진희를 위한 임종예배에서도 확인되었고, 그 이후 장례 예배에서도 거듭거듭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사랑은 영원하며, 그리고 모든 관계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바울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강하고 지식이 많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힘이며, 행위이며, 움직임이라는 사실입니다.

 

혼자되다 보니까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관계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중요하게 되었고, 교회공동체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내 최진희의 병환을 제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너무 바빴습니다. 수업도 계속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바쁜 가운데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하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딸들이 미국에 있었고, 저와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이 병이 점점 더 깊어 지면서, 나는 모든 일들을 홀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간병인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외로울 때 친구들, 교인들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응급실에 갈 때, 119 구조대원이 도왔습니다. 장례식을 교인들이, 그리고 친구들이 도와주었고, 제자들이 안내를 맡아주었고, 운구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사 가는데 딸이 도와주었고, 딸이 인테리어를 위한 모든 계획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면, 인테리어집 아줌마와 남편 사장이 인테리어 작업을 주도해 주었습니다. 모든 일을 제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홀로 있는 것처럼 느낄 때 그때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해 주고 있었고, 내 짐을 덜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평생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신학과 인문학의 작업의 저의 평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과제는 나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웃들과 동료들과 함께 해나가야 하는 공동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나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선하게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있으므로 내가 성장하겠다 싶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최선의 것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힘없는 사람들, 어린 사람들, 특히 딸들과도 잘 지낼 뿐 만 아니라, 이들이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제 나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곁이 되어주는 일이 나에게 필요한 일이며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겠고 건강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나는 그 관계를 사랑으로 살려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사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필요한 좋은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지식이 학생들의 삶과 무관한 것이 된다면, 그래서 지식과 삶이 따로 논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수업을 하는데 그날 수업의 주제는 해외에서 보는 민중신학이었습니다. 유명한 C.S. Song 교수의 글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헬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은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는 지옥과 같은 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대학생들 모두에게 헬 조선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0대 젊은이들은 지금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대학생 시절에는 소수의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고 나와서는 다시 감시 받는 헬 조선에서 희망 없이 살았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일과 무관하게 모든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헬조선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해외 학자가 보는 1970년대의 민중신학이 어떤가를 살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지는 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옛날의 민중신학을 외면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오늘의 세태에서 과거의 민중신학을 강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새로운 민중신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가르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변했으니 교수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의 파도를 내가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장이셨던 변선환 박사는 삶은 살만한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졌고, 민중신학을 태동시켰던 서남동 목사는 삶은 비극인가하는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삶을 정말 비극적으로 마치셨습니다. 그의 태어나신 날을 우리가 기다리는 강림의 계절에 저는 예수의 죽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는 30세에 아직 할 일을 많이 남겨놓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의 미완성의 삶은 정말 삶은 비극이고 살만한 것인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긍정적인 것으로 말들어 놓습니다.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먼저라는 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의 삶이 바로 그런 먼저의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삶이라면, 예수처럼 일찍 죽는다고 하더라도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삶이 그러하다면, 비록 그것이 충분히 길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주었습니다. 뒤에 남은 사람은 예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하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라라고 하는 은유를 쓰시면서 우리의 사랑이 결코 개인적인, 사적인 사랑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정의는 통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공생애의 첫 마디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씀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러한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우리들의 남은 생애에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빠, personal하게 부르기도 했지만, 그 분을 나라와 연결해서 부르셨습니다. 그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 나라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십자가는 예수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투쟁과 연결된 죽음이며, 그의 부활은 개인의 육신의 부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의 회복과 승리라는 것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주권, 즉 나라가 회복되고 승리하는 일에 그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함께 이루는 일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함께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이러한 모든 일에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0대 중반에 진입하는 이 시기에 저는 다시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하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제 가방 옆구리에서 오랫동안 빨지 않은 양말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모든 일들이 마쳐지고 홀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매우 바쁘게 지내기 때문에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어떤 희망으로 어떤 삶을 살까 침잠해야 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대답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다짐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위해 살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삶 속에서 살려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제껏 도와주신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들의 삶을 이끌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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