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90.156.150) 조회 수 29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정경일



기다리시는 하나님, 되어가는 인간

(에베소서 4:13)

 

 

20151213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 에베소서 413 -

 

 

 

오늘의 말씀증거는 두 가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림절기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묵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주일 새길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한 데 이어 오늘은 새길의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앞의 목적이 기다림에 대한 것이라면, 뒤의 목적은 되어감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증거가 두 배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기다림과 되어감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새길의 미래를 세계와 한국의 사회적, 종교적 시대 현실에 비추어 내다보고, 다음으로 기다림과 되어감의 영적 의미를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공감의 종교, 무감/반감의 종교

 

지난달 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미국종교학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름만 미국종교학회지 사실 참가자와 주제의 다양성에서 보면 세계종교학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국제학회입니다. 해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온 13천여 명의 종교 연구자들이 5일 동안 당대의 온갖 종교적 이슈를 다룹니다. 따라서 미국종교학회의 주제들을 잘 살펴보면 세계종교의 동향과 전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학회에 참가한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국제학회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종교들이 보인 태도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에서 내부를 보게 함으로써 내부의 변화를 자극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실천적 목적의 토론회에서 불교, 가톨릭, 개신교 학자들이 세월호 이후 각 종교 공동체의 태도와 반응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토론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의 발표 주제를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각자의 논지를 전개할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일 서로의 발표를 들으면서 우리는 무척 놀랐습니다.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 전통 안에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공감과 반감이 대립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토론회가 드러낸 것은 세월호 이후 두 개의 불교, 두 개의 가톨릭, 두 개의 개신교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각 종교 안의 공감과 반감 두 입장 사이의 차이는 종교들 사이의 차이보다 더 컸습니다.

 

제 발표는 세월호 이후 희생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가 공감에서 무감으로, 심지어 반감으로 빠르게 바뀐 이유를 정치적 반공과 경제적 탐욕에서 찾아 본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교회가 아닌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주차장의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매 주일 오후 5시에 따로 모여 예배드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 희생자의 부모 중 76명이 그리스도인인데, 그 중 약 80프로가 다니던 교회를 떠났습니다. 대부분 목사와 교인들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붙들고 씨름한 물음은 왜 세월호 유가족에게 가장 의지되고 위로와 안식의 공동체가 되어 주었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그들에게 배제되고 냉대 받는 느낌을 갖게 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유가족 중 한 분은 참사 1주기를 맞으며 삭발한 것 때문에 교회로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그만 두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달 새길 자매형제들과 함께 예배드리러 갔을 때도 지역 목사님 한 분이, 안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직접 다니던 교회가 37개가 있는데, 그 중 유가족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인도하러 와 준 교회는 딱 한 교회뿐이었다고 하셔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회에서 경제논리가 생명논리를 압도하고 정치적 편 가르기가 작동하면서 유가족에 대한 공감에서 반감으로 급변한 것은 안타깝기는 해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직보다도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를 감싸고 돌봐 주어야 할 교회가 사회에서와 똑같이 정치적으로 양분되어 유가족에 대한 무감과 반감마저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교회의 존재이유와 방식에 대한 결정적 물음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적 희생자를 위한 공감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무감과 반감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 물음에 대한 새길의 응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을 찾는 것이 새길에서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길이 창립 후 지금껏 추구해 온 것은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한완상 형제님이 역설하신 것도 고통 받는 이를 위해 살고 죽으신 예수를 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이후 새길이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고통 받는 이웃의 이 되자고 다짐하며 작은 행동을 지속해 온 것도 그 예수따르미 정신을 실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길의 미래를 함께 꿈꾸려고 합니다. 그 꿈을 나눌 때 겸손하면서도 진지하게 한 가지 물음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고통 받는 이의 곁에 다가가는 공감의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고통에 눈감는 무감과 반감의 교회가 될 것인가? 그 물음을 가지고 오늘의 대화마당에서 새길의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벽 없는 종교

 

미국종교학회에서 세월호와 한국종교에 대해 발표한 후, 다른 여러 세션에도 참석했습니다. 제 연구 분야가 종교신학, 종교간 대화,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이다 보니, 주로 관련 주제의 세션들에 들어갔습니다. 올해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다뤄졌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종교적 혼종성, 여러 종교전통에 속하기, 벽 없는 신학 등이었습니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학자, 연구자가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오늘의 세계 종교와 그리스도교가 경계를 넘는 종교성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변화입니다. 그 변화의 상징도 이제는 뿌리’(root)가 아닌 ’(route)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적 정체성은 길 위에서 만나는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 이웃과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따라서 오늘의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길 위의 인간(homo viator)’입니다. ‘새길의 의미와도 근본적으로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통적 종교성, 뿌리로서의 종교성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로서의 새로운 종교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이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길이신 예수입니다. 벽 없는 신학의 가능성에 대한 세션에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불교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어느 학자의 성찰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제대로 따르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웃종교의 지혜와 영성으로부터 배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교도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입니다. 스승 예수를 따르기 위해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오히려 누구에게서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종교학회에서 새로운 종교성에 대한 논의들을 들으면서, 문득 백년 뒤 22세기의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도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같은 종교들이 존재할까요? 더 깊은 의식 상태로 성숙해 있을 인간은 오늘의 종교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그런 물음은 새길의 미래가 그리스도교의 미래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제도적 그리스도교의 마지막을 두려움 속에 고수하는 과거지향적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시작을 용기 있게 시작하는 미래지향적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새 길을 찾고 만들고 걷는 영적 모험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험을 위한 나침반으로 한국의 평신도 영적 모험가 함석헌이 60여 년 전에 남긴 대선언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습니다.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미움은 무서움을 신으로, 무서움은 허깨비를 낳느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으리라.

 

우리도 이런 결기로 근원적 자기해체와 자기비움을 단행할 수 있을까요? 벽 없이 예수 따르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그런 물음이 오늘 우리의 대화 마당의 두 번째 화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되어가는 인간

 

이제 끝으로 대림절의 의미를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찾아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대림절은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묵상하면, 대림절의 또 다른, 더 깊은 영적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을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다리는 존재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충만해지기를,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한완상 형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답게살아가기를 애타게,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대림절은 하나님께는 기다리는 시간이고 우리에게는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신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앞으로 우리가 되어갈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새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고통받는 이웃의 곁이 되고, 낯선 이를 벽 없이 환대하며 만들어갈, 아니 우리가 되어갈 새길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선물입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그 선물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새길의 미래에 대한 꿈을 나누는 우리의 대화마당이 하나님께 드릴 선물꾸러미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까, 우리가 어떤 선물이 될까, 가슴 설레게 기도하며 성찰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새길로고.JPG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45 2015 [2015.12.27] 다양성과 통합 file 2015.12.30 김이수
44 2015 [2015.11.29]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으로 살까 file 2015.12.23 권진관
43 2015 [2015.12.20] 나의 크리스마스 file 2015.12.23 강보미, 조성희
» 2015 [2015.12.13] 기다리시는 하나님, 되어가는 인간 file 2015.12.18 정경일
41 2015 [2015.12.06] 처음처럼, 더 예수답게: 반성과 새 결단을 위하여 file 2015.12.15 한완상
40 2015 [2015.11.15] 하나님 나라와 마치 아닌 듯한 태도 file 2015.11.20 전현식 교수
39 2015 [2015.11.08] 이웃 생명들과 함께 하기 file 2015.11.11 차옥숭
38 2015 [2015.11.01] 기억의 힘: 역사의 구원 file 2015.11.04 최만자
37 2015 [2015.10.18] 선 곁의 악 file 2015.10.23 정경일
36 2015 [2015.10.04] 원칙의 사람, 원만한 사람 file 2015.10.20 정수복 형제(사회학자/작가)
35 2015 [2015.10.11] 겉사람, 속사람 / 상호 의존하는 관계성 file 2015.10.16 강기철 / 류홍렬
34 2015 [2015.09.20]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file 2015.10.06 정원진 목사
33 2015 [2015.09.13] 이 매임에서 풀어주라 file 2015.09.23 구미정 교수
32 2015 [2015.09.06] 거위의 꿈 file 2015.09.11 장윤재 교수
31 2015 [2015.08.30] 바쁜 삶과 활동적인 삶 file 2015.09.03 정경일
30 2015 [2015.08.16] 예수 그리스도, 자유케 하사 섬기게 하신다 file 2015.08.26 변상욱 기자
29 2015 [2015.07.12] 다음 30년의 상상 Part 2: 연약함이 길이다 2015.08.20 정경일
28 2015 [2015.04.26] 다음 30년의 상상 Part 1: 처음마음 2015.08.20 정경일
27 2015 [2015.08.09]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file 2015.08.11 이재정 신부
26 2015 [2015.08.02] Follow Up 하시는 예수님 file 2015.08.06 전인백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