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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완상



처음처럼, 더 예수답게: 반성과 새 결단을 위하여

(누가복음 23:46-47)

 

 

2015126일 주일예배

한완상 형제(새길교회 신학위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 누가복음 23:46-47 -

 

 

 

 

1. 처음의 비전

 

198738, 정치경제적 검은 먹구름이 또 다시 군사독재의 억압적 폭풍을 몰고 올 듯할 때, 새길 공동체는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언제나 새롭게 변혁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어둠의 역사 속에서도 새 날이 밝아옴을 선포합니다.” 라는 장엄한 신앙고백을 토해내면서 대안적 신앙공동체를 출범시켰습니다.

1987년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터져 나왔던 해입니다. 이른바 87체제가 탄생했습니다. 밑으로부터의 시민혁명으로 새로운 정치질서가 태동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민저항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직전은 어둠의 권력이 우리를 몹시 떨게 했지요. 전두환 정권은 호헌조치로 민주화의 열망을 잔인하게 짓밟으려 했습니다. 광주학살 사건이 지난 지 7년 가까이 되는 1987년 초, 군사 공포정치를 줄곧 펼쳐왔던 군부독재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를 열망했던 민주시민들을 더욱 옥죄고 더욱 핍박하려 했습니다. 이런 엄혹한 역사의 현실 속에서 새길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을 재촉했던 상황적 요인에는 당시 한국교회의 타락과 복음 상실의 현실도 크게 한몫을 했습니다. 군부독재가 추진했던 성장제일주의와 힘에 의한 승리제일주의 문화가 한국 기독교의 번영신앙에 접목되었습니다. 이른바 반민주적 산업화 세력이 교회로 깊게, 넓게 침투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모두 한국에서 자랑스럽게나타났지요.

이와 같은 교회의 물량적 성장을 가능케 해준 번영신학과 신앙은 한 마디로 한국 기독교 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비전에서 나왔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 몹시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의로운 분노를 느꼈던 크리스천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수자에 불과했으나, 예수 복음을 우리의 어두운 역사 상황에서, 부끄러운 한국교회 현실에서 새롭게 깨닫고 이 복음에 충실한 실천적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거대교회의 지도자들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갈릴리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친히 겪었던 사탄의 시험에 모두 모범적으로 낙방했던 목회자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큰 교회를 세울 수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은 사탄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메가급 유혹을 용기 있게 물리친 분들이 목회하는 교회를 저는 끊임없이 목마른 사슴처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 저는 1987년 초에 새로운 신앙, 신학 공동체를 시작해 보려고 결심했습니다. 이 같은 결심의 배경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라 재직했던 서울대학교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난 아픔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픔은 19762월 말, 유신체제 권력이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저항했던 일군의 교수들을 해직시켰을 때입니다. 이때는 주로 기독교교수협의회라는 반정부 지식인 모임으로 인식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희생제물이 되었지요. 그 후 4년이 흘러 19803, 저희들은 쫓겨난 학생들과 함께 복직되었습니다. 그것은 19791026일 유신체제의 창시자가 부하의 총을 맞아 돌아가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19805, 박정희 군사정권을 이어받은 신군부는 또 다른 교묘한 형태의 군사정변(쿠데타)을 통해 더 잔인하게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강탈해 갔습니다. 광주민주항쟁이 이때 터져 나왔는데, 이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김대중 씨를 위시한 민주인사들이 신군부에 의해 일망타진 당했습니다. 이 당시에, 저는 4년 만에 복직한 지 두 달 반이 된 시점이라, 다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신혼의 단꿈을 매일 꾸는 것 같은 보람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517일 밤 1040,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연행되어 남산 지하 2층에서 두 달간 지옥 심문을 받았지요. 그 이유는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씨를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해 저희들(주로 대학교수, 성직자, 문인, 언론인들)이 국가변란을 도모했다는 죄였습니다. 마침, 권사님이셨던 제 어머님이 며칠 전 512일에 소천 하셨는데, 모친 상가에서 내란음모를 했다는 참으로 허망한 조작을 통해 신군부 검찰이 저희들을 불법으로 연행하고 심문하고 군사법정에 세웠습니다. 26월의 징역형을 받고 그해 11월 저와 민중신학자 서남동 교수는 형집행 정지로 일단 석방되었습니다.

이 때, 저는 미국에 있던 여러분들로부터 신앙적 격려를 받았습니다. 특히 두 분의 헌신적 노력으로 저는 1981년 기적같이 미국의 에모리 대학교(저의 모교)의 초빙교수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은 그 당시 에모리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레이니(James T. Laney) 박사입니다. 이 분은 해방직후 미군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저격 사건을 조사했던 미군 수사팀에서 일한 분입니다. 이 때, 그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대해 느낀 바가 매우 컸다고 합니다. 귀국하여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독교윤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밴더빌트 대학교의 신학부 교수로 있다가 곧 에모리 대학교 신학대학 학장으로 부임하셨으며, 그 후에 에모리 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했습니다. 남달리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주신 분이지요. 훗날,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한미대사로 부임했지요. 저와는 형제같이 가깝게 지냈습니다. 또 한 분은 당시 미국연합장로교본부에서 중동담당 총무로 일하셨고, 미국교회협의회에서 사회정의 분야에서 주요한 직책을 갖고 있었던 이승만 목사였습니다. 그는 1960년대 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인권 운동에 적극 참여하신 분이십니다. 후일 그는 동양인으로서 최초 미국연합장로교의 총회장이 되셨고, 미국의 NCC 회장도 역임했습니다.

이승만 목사께서 19811, 한국에 출장을 와서 저의 초라한 모습을 보시고 말없이 저를 껴안고 우셨습니다. 이 때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면, 레이니 총장과 의논하여 어떻게 한든 저를 에모리 대학교로 초청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마웠으나, 김대중 사건의 공동피고였던 저를 미국에 가게 하는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했기에, 속으로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목사와 레이니 총장의 공동 노력으로 정말 기적같이 저는 198110월 초에 29년 만에 모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나자, 뉴욕의 신앙동지들이 제가 미국에 계속 체류하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여권과 비자가 모두 만기가 되었지만,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저는 뉴욕으로 갔지요. 미국연합장로교가 직영하는 수양관(Stony Point Center)에서 사회정의 자문위원 자격으로 체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주화, 평화, 통일, 사회정의와 같은 주제로 강연, 강의, 설교, 간증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1983년 초에 이승만 목사께서 저에게 심각한 제의를 해왔습니다. 얼마동안 미국에서 망명객처럼 지내게 될지 모르지만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M.Div 학위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지요. Ph.D 학위는 오래 전에 취득했으니, 이제 목회자 신학과정을 밟으며 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때 저는 망설이다가 그 제의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1954, 전쟁의 상흔으로 우리 민족이 앓고 있던 때, 모친께서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저에게 신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어머님의 소망을 저는 떠올렸습니다. 정말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신학교에서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여러 번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 복음으로 사회와 역사를 변혁시키려는 신학적 동력이 충만했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은총이었지요. 그런데, 한 학기만 하면 목회자 과정이 끝날 즈음, 저는 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1984814, 뉴욕 총영사였던 김세진 박사가 전화로 내일 날짜(815)로 제가 복권·복직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께서 목회자가 될 자격은 저에겐 없지만, 해방신학의 동력은 제가 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셨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귀국을 서둘렀지요.

9월 초에 저는 정말 3년의 망명생활을 접고 그리운 조국에 돌아왔고, 정말 그리웠던 모교의 연구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조그마한 해방이요, 광복이요, 희년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조국 강토에는 참된 해방과 광복의 기쁨이 오지 않았기에 귀국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지요. 마침, 바로 저의 아파트 앞에는 현대교회가 있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그 교회 평신도지도자들이 제게 말씀증거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화여대로부터 해직된 서광선 박사가 그 교회에서 정식 목회자로 몇 년간 일하셨는데, 이대로 복직되셨기에 교회를 사임했다고 했습니다. 듣자니, 제가 뉴욕에서 신학교에서 공부도 했다고 하기에 서울대에서 새 일로 바쁘시겠지만, 매주 설교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때, 저는 속으로 옳거니,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위해 망명 중에 신학공부를 시키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 남짓 현대교회에서 정말 신나게 말씀증거를 했습니다. 제 일생에 참으로 뜻 깊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2년이 지나는 동안, 저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과장도 해야 했고, 사회학회 일에도 참여해야 했고, 무엇보다 당시 선명야당을 세우려고 애썼던 정치지도자들을 여러 모양으로 도우는 일에도 참여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나, 주일 설교만은 신나게 힘써 준비했습니다. 2년 쯤 지난 어느 날, 저는 교회가 속한 노회에서 평신도가 계속 설교하는 문제를 놓고 불편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즉각 현대교회의 설교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때, 저는 심각한 실존적 선택의 아픔에 직면했습니다. 어느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딱히 나가고 싶은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다니던 교회는 이미 분란 조짐이 있었습니다. 며칠간 고심하다가, 정말 새로운 대안 신앙공동체를 시작해 보기로 결단했지요. 그런데, 그 당시 제가 주중에 할 일이 워낙 많았기에, 저는 이 모험에 함께 뛰어들 신앙동지를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대교회에 다닐 때, 제가 요청하여 이틀간 역사적 예수 특강을 해주신 한신대학교 김창락 교수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때, 독일의 성서신학자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의 역사적 예수 탐구를 들었는데, 저에게는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연구실에서 길희성 교수를 만났습니다. 마침, 서울대학교를 떠나 서강대학교로 옮긴 때였습니다. 그도 제도교회에 소망을 갖고 있지 않을 듯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가끔 현대교회에 왔지요. 또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독일에서 사회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숭실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이삼열 박사였습니다. 그는 강원용 박사의 크리스천아카데미 간사로 일했고, 사회변혁과 정치변화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대학 후배였지요. 이러한 분들에게 전화로 내가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시작할 텐데, 도와 달라고 했지요. 모두 흔쾌히 동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구상을 그 분들에게 대충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신앙고백문을 우리 식으로 만들고, 또 창립취지문을 만들어 보자고 했지요. 그리고 말씀증거는 돌아가면서 맡자고 했지요. 모두 찬성했습니다. 이 때, 저는 하기 힘든 말인데, 설교에 대가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모두 재능기부, 은혜기부로 설교를 맡아하기로 했습니다. , 성가대는 창립주일 전에 고()이남수 교수께서 조직해 주셨는데, 장윤성 형제를 지휘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교회의 직제를 답습하지 않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을 아예 없는 것으로 하고, 모두 서로 자매형제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예수따르미라는 칭호는 새길이 출범한 뒤 5~6년이 지난 뒤에 제가 그렇게 부르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예수따르미로 서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 처음의 모습

 

처음에는 참신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창립취지문에서 엄숙하게 선언했듯이, 선명한 대안적 신앙공동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이것은 제도교회에 대한 창조적 대안의 모습을 선명히 부각시킨 것이지요.

 

우리는 섬김 받는 교회에서 섬기는 교회로, 교역자 중심의 교회에서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제도와 율법주의에 매인 교회에서 은총과 자유의 교회로, 닫힌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쌓아올리는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교회로 발돋움하고자 합니다.”

 

세월이 28년 지나고 보니, 이와 같은 대안적 특성이 대체로 존중되어 온 것 같습니다만, 부족한 점이 한 둘이 아닌 듯합니다. 과연 우리가 서로 섬기려는 신앙 열정으로 지금도 신나게 일하고 있는지, 평신도 중심의 교회의 겉모습은 지키고 있으나, 평신도 중심이 갖는 복음의 헌신이 실제로 있는지, 이를테면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위선적 삶을 살았지만, 평신도 사마리아인은 참으로 헌신적 자기비움을 실천했는데, 과연 새길 공동체의 주인인 평신도는 사마리아인의 복음적 급진성과 전복성(radicality and subversiveness)의 신앙을 갖추고 실천하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부끄러워집니다. 율법과 제도에 매인 교회 신자들보다 우리가 새길 공동체에서 시간과 물질을 더 성실하게, 더 알차게 바치는가를 물으면 정말 부끄러워지지요. 우리가 주는 교회와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려면, 줄 것과 나누어줄 것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이 일에도 우리가 게으른 평신도로 남아있지 않았는지 자문해 보면, 스스로를 꾸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안적 특징 가운데 한 가지만은 거침없이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데, 이 열림의 핵심은 공동체의 힘을 나누어갖는 empowerment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권력은 어디서나 말씀증거 강대상의 독점에서 잘 나타납니다. 제도교회 교역자들은 강대상을 부목사나 장로들에게 열어놓지 않습니다. 평신도들에게는 강대상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나 젊은이들에게는 주일 낮 말씀증거를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 교역자들에게나, 특히 교단, 교파가 다른 목회자에게 강대상은 더 닫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대상에 서서 말씀증거를 할 기회와 기쁨이 평신도에게 활짝 열어야 진정 열린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새길 공동체에서 첫 6~7년은 네 사람의 말씀증거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설교권을 행사했습니다만, 지금은 상당히 더 열려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평신도 공동체가 되려면, 모든 평신도들이 말씀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열린 교회에서는 평신도가 제비 새끼처럼 어미가 물어오는 음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먹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예수를 따르는 실천적 삶을 살면서 말씀증거의 소재를 스스로 찾고, 만나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하기야,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평신도 말씀증거자요, 말씀실천자였습니다.

지금은 강대상이 상당히 열려있지만, 그 열림의 수준이 계속 높아질 수 있게 하려면, 평신도의 신앙적, 신학적 삶도 그만큼 풍부해져야 합니다. 이 점에서, 새길 공동체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저는 여러 자매형제들의 말씀증거를 듣고 크게 힘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학과 신앙의 성찰에서 예수의 복음적 급진성과 전복성이 빛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28년이 되었으니, 더 많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나라가 갖는 공공성, 감동성, 그리고 변혁성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육화 시키면서 거기에서 말씀증거의 동력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아직도 멀었다면, 그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은 새길을 연 제 자신에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복음의 공공성과 감동성, 그리고 변혁성은 그의 하나님나라 펼침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바로 이 하나님나라 운동에 대해 새길 공동체가 지난 28년간 체계적으로 서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책임의 태반이 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길이 열린지 몇 년이 되지 않아 몇 가지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교육 문제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문제를 평신도 교회에서 제대로 다루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대우를 하면서 전문 교역자를 모시기도 했지만, 교육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실존적 문제를 교회가 목회차원에서 제대로 다루고 해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병들고 아프고, 실패하고 괴로울 때, 공동체가 그들을 제대로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데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동고(同苦)하면서,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아파하며 뛸 수 있어야 하는데, 즉 동고주(同苦走)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을 집중적으로 맡을 일꾼을 공동체 안에서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전담자가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지금도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몇 년 간은 누가 아파서 입원하면, 평신도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심방을 했지요. 교우들 중에 죽음 앞에서 온 몸으로 외로워하고 괴로워 할 때마다 저는 평신도 공동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교회 밖에서 할 일들이 날로 많아지고 심각해질 때는 평신도 교회를 시작했던 저로서는 더 큰 부담감으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 돌봄의 문제가 지적 소통의 차원에서 쉽게 다룰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런데, 공동체에서는 때때로 전인격적 소통과 공감을 해야 풀릴 수 있는 실존적 아픔과 역사적 아픔이 계속 생기게 마련입니다. 특히 새길처럼 복음의 공공성과 감동성으로 구조와 역사를 변혁시켜 하나님의 평화와 샬롬의 기운을 교회 안팎으로 확산시키려면 더욱 더 감동적인 돌봄의 목회가 필요하다고 절감했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는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을 절감할 때마다 저는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과연 이대로 가면, 새길 공동체가 10, 20년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를 이제 걱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위원회가 생긴 줄 압니다. 정말 이 지속성의 문제는 새길의 정체성과 함께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하며 다루어 나갈 공동체의 주요 문제입니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셨으나,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열성을 뛰어넘는 더 큰 열성을 보이라고 촉구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제도교회에 대한 복음적 대안 공동체임을 감동적으로 증거 하려면, 제도교회의 제도화된 열성을 뛰어넘는 제도 내외적 성실성과 열성이 더욱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열린 평신도 교회에 다니면서 너무 안일한, 너무 나태해진, 너무 무책임한 신자들이 되어버리지 아니했나를 진지하게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28년이 지난 지금, 정말 우리 공동체에게 예수다움은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새길 공동체를 더 예수다운 복음 공동체로 뻗어나가기 위해 예수다움의 신학적 함의를 새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예수다움은 무엇인가?

 

예수 복음과 예수 운동의 본질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포와 그 실천에서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로마 황제 지배체제에 흡수되고 제도화 되면서 보편교회의 신조가 기독교 지배이념으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릴리 예수, 곧 역사의 예수는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까지 내려온 사도신경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이 신조에는 역사의 예수가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동정녀 마리에서 태어나신 예수는 바로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처형당한 것으로 부각됩니다. 그러니까 성육신 사건(incarnation)과 십자가 죽으심의 사건 사이에는 완전한 빈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성육신 신학과 속죄(atonement) 간의 빈자리에는 마땅히 네 복음서가 증언한 예수의 말씀, 예수의 삶, 특히 그의 급진적 실천의 삶 속에서의 고난과 죽음의 감동적 사건의 증언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몽땅 무시된 셈이지요. 하나의 거대한 제국(로마 교황지배)과 하나의 거대한 보편교회(Catholic Church)의 유지를 위해서는 탈역사화된 초월적 그리스도로 충분하다고 지배세력이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역사적 예수의 전복적인 급진성의 하나님나라 메시지는 매우 불편하기에 필요 없었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성육신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십자가의 속죄 신학과 신앙만으로 카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지배가 충분하다고 본 듯합니다.

여기에는 20세기 초, 세계적 성서신학자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의 영향도 크게 한몫을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예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이 아니며, 그의 행적도 객관적 역사 서술이 아닙니다. 불트만 학파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 신앙에 불탔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신앙고백이지요. 이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합니다. 초대교회가 당면했던 위기 상황에서 교회공동체가 실존적으로 대응한 고백이기에, 역사적 예수를 실증주의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요, 또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가 해석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의 해석은 신화적인 옷을 입고 있기에, 이것을 실존적 관점에서 비신화화 시켜서 해석해야 한다고 했지요. 이와 같은 불트만 학파의 영향이 한동안 압도적이었기에, 20세기 전반부 약 50년간 역사적 예수 탐구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사람의 세계적 성서신학자였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그의 유명한 역사적 탐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연구의 의욕을 떨어지게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역사의 예수를 철저한 유대종말 신앙의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갈릴리 예수는 곧 종말이 다가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그와 제자들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것을 확신했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런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는 초조해졌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을 촉진시키기 위해 그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게 될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종말론 신앙에 불탔던 역사의 예수는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이방인처럼 여겨진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예수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접었습니다. 대신, 그의 위대한 종말론적 사랑실천을 위해 신학교 교수직을 버리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의사가 되어 서구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했던 구미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기위해서라도 아프리카 현지에 몸소 가서 제국주의적 수탈과 억압 대신 예수의 사랑실천으로 예수 복음을 증거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탐구 의욕은 꺾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 탐구가 중단된 그 기간에 히틀러와 같은 괴수가 나타났을 때, 서구교회는 그 괴수의 악행 앞에서 참으로 무력했습니다. 특히, 불트만 학파의 영향 아래 있었던 학문적으로 진보적인 신학자들도 히틀러의 잔인한 야수의 횡포에 대체로 침묵했지요. 제도교회도 대체로 그러했지요. 1950년대에 와서야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Ernst Käsemann)은 자기의 스승인 불트만이 결과적으로 가현설적 예수 이해(Docetism)에 함몰되어 역사의 예수가 추구했던 하나님나라 운동이 갖고 있던 복음의 실천적 동력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히틀러의 극우 전체주의 앞에 맥을 추지 못했던 진보적 성서 신학은 실존주의적 성서 해석에 머물고 말았지요. 예수의 전복적 대안질서 세우기 운동에 공헌하지 못했기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같이 악의 세력에 맞서는 예수따르미들을 길러내지 못했지요. 그래서 1950년에 와서야 역사 예수 탐구가 불트만의 제자들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 예수 탐구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신학적 탐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악의 지배를 극복해 내려는 실천적 예수를 새삼 주목하게 합니다. 그래서 새길 공동체 첫 설교도 <하나님나라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답게><더 예수답게>를 새삼 더 강조하는 까닭은, 역사 예수의 하나님나라 구현이 오늘 여기서 우리를 부당하게 옥죄는 악의 지배를 예수의 대응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불완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이 역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과 공의의 새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 복음이 갖는 공공성과 감동성을 오늘 우리는 되살려 잘못된 기존의 구조와 역사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의 기존세력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는지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일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악의 권세에 대한 예수의 복음적 대응

 

우선 예수께서 악의 세력에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를 복음서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이야기부터 악과의 대결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의 성육신 사건은 바로 역사적 악의 지배와의 대결이라는 상황에서 보다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마태복음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왕의 악마적 권력욕을 부각시킵니다. 누가복음은 로마의 효율적 식민지 수탈, 곧 세금징수의 배경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풀어갑니다. 당시 로마제국과 그 제국의 하수인 노릇을 한 헤롯권력의 비정한 상황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그 권력의 한낱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거짓 평화와 거짓 안정에 대한 진정한 대안으로 아기 예수를 평화의 왕으로 부각시켰습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거짓 평화와 예수의 진정한 평화 간의 긴장은 탄생 사건에서부터 십자가 사건까지 줄곧 계속됩니다. 그런데 두 평화 간의 긴장은 탄생과 처형 사이에서 펼쳐진 다양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특히,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참신하고 감동적인 대안제시와 변혁적인 대안실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네 복음서는 모두 이 같은 예수 대안실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산 위의 말씀을 이 각도에서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운동은 무엇보다 예수의 무상의 치료행위에서 그 특징이 뚜렷해집니다. 단순한 육체의 아픔을 제거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질병을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저주했던 유대지배문화 자체를 거부하고 변혁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예수께서 죄로 인해 중한 질병에 걸렸다고 믿었던 환자를 치유하시면서, 죄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였습니다. 육체의 아픔뿐만 아니라, 육체의 아픔을 근원적으로 유발시키고 지속시킨 종교이데올로기의 횡포로부터 환자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곧, 총체적 치유였습니다. 도전적 치유였습니다. 게다가 치유의 효험을 낫게 된 환자가 계속 지속시킬 수 있도록, 환자의 자주적 능력을 고양시켰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말 온전한 나음을 통해 병든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한 돌보심의 사랑을 느끼게 했지요. 개인적 나음과 구조적 치유 모두 아울러 베푸신 것이지요. 이 같은 온전한 치유의 과정에서 하나님나라가 누룩처럼 번지게 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특히 사탄의 권세에 눌려있던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지배가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하셨지요. 사탄이 번개 떨어지듯 쫓겨날 때, 하나님의 사랑지배가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무덤가에서 자기 몸을 잔인하게 찢는 귀신 들린 자는 잔인한 로마 군단의 본성과 이름을 가진 귀신이었음을 예수님은 드러내 보이셨지요. 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예수 운동이 얼마나 감동적인 대안행위였으며, 얼마나 급진적이고 전복적 처방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수 운동의 본보기는 그의 열린 밥상공동체 실천이었습니다. 계급과 성, 인종과 종파의 장벽을 뛰어넘는 식탁공동체를 펼쳤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식탁은 대체로 계급적, 인종적 장벽의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고대사회나 전통사회에서는 식탁 둘레가 바로 계급 분리선의 구실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사의 예수는 이 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귀족이나 천민이나, 심지어 민족 반역행위를 했던 세리도 참여하게 하는 식탁공동체를 펼쳤습니다. 이 식탁에 둘러앉게 되면,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 또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됨을 깨닫게 했습니다. 바로 이 식탁에서 기존의 억압적 지배구조와 차별적 권력구조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나라가 이 식탁에 둘러앉은 자매형제들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새로운 대안공동체였지요.

이런 하나님나라의 맛을 예수님과 더불어 직접 체험했던 제자들이 안타깝게도 예수 운동의 진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평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평화, 곧 예수의 평화의 소중함을 더 설득력 있게 깨우치게 하기 위해 주님은 때로는 경구(aphorism),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이야기(narratives)를 만들어 들려주셨습니다. 이를테면, 산 위의 말씀에는 팔복의 선포가 있습니다. 여러 복들 중에 가장 중요한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임을 선포했습니다. 다른 축복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복들임을 은근히 깨닫게 했지요.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바로 평화만드미(peace-maker)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9). 그런데 이 메시지의 뜻을 제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더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해 청중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전통적 가르침과 대조시켜서 이렇게 대안적 처방을 내렸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5:45)

 

아마도 이 비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큰 축복을 받으려면, 원수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보다 잘 깨닫게 되지요. 그런데 제자들이 이것을 깨달았다 해도, 심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보다 설득력 있게 제자들을 깨우쳐 실천하게 하기 위해 비유의 이야기(story)를 적절하게 창안해 낸 것 같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부당하게 테러당해 죽어가는 동족을 돌보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원수로 차별받았던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원수인 유대인이 억울하게 죽어갈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고, 자기계획을 지우기까지 하면서 혼신의 힘으로 바로 보살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원수를 선제적으로 사랑했던 사마리아인이야말로 하나님나라를 펼쳐 보인 복음실천자임을 깨우치신 것이지요. 정말 실천을 촉구한 대단한 신학적 발상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사마리아인의 실천에서는 복음의 공공성, 감동성, 그리고 변혁성이 모두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예수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억압적인 외세와 내세를 모두 쫓아내고 세속적 메시아가 된다면, 그때 가서 세속적 권력 하에서 높은 자리 하나라도 맡아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의 고집스러운 우둔함과 끈질긴 탐욕을 확인할 때마다 속으로 스산한 실망과 고독의 찬바람을 뼈 속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예수 운동의 핵심은 세속적 집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자들에 의해 오히려 우아하게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때 드러날 것임을 비로소 털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지 말고 메시아 왕으로 등극해야 한다고 촉구한 수제자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시며 이렇게 단호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마태복음 16:24)

 

여기서 주님은 모든 예수따르미에게 우아한 사즉생(死卽生)의 진리를 선포했지요. 당당하고 우아하게 죽음으로써 참 승리에 이를 수 있다는 십자가의 진리, 그 역설적 진리를 선포하셨지요. 그런데도 아직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왕의 다스림은 세속적 왕, 이를테면 헤롯이나 로마 황제의 강압적 다스림과는 전혀 다른 다스림임을 강력하게 시사했습니다.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능멸 받고, 피 흘리며 자기가 매달릴 그 무거운 사형 틀의 십자가를 자기 어깨로 짊어지고 가면서도, 원수사랑을 실천하는 고난의 종의 모습에서 하나님 왕국이 펼쳐진다는 놀라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시고, 당신이 그 비전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Kingdom of God이 아니라, 비움과 지움의 Lovedom of God입니다. 여기의 사랑실천은 황금율적 사랑계율이 아니며, 종교명상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처절하게 감동적인 자기비움의 실천이었습니다. 자기지움과 자기내려놓음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감동적 실천에 로마 권력이 드디어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역설입니다. 예수 사형집행관이었던 로마 중대장이 처형당하는 처참한 갈릴리 예수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렇게 탄성을 쏟아냈습니다.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마태복음 27:54)

 

그 막강했던 로마 황제의 지배를 지탱했던 폭력의 기둥을, 폭력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힘이 바로 예수의 이와 같은 철저한 자기비움의 실천에서 터져 나온 것이지요. 사실, 예수가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은 한 마디로, 그의 즉위식과 재관식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시면서 새로운 사랑지배, 공의지배, 그리고 샬롬지배의 문을 활짝 여신 것이지요. 이것보다 더 급진적, 더 진보적, 더 감동적, 더 변혁적, 더 공공적 대안을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파에서, 어느 종단, 종파에서, 어느 체제와 문화에서 이 같은 감동적 역설의 창조적 동력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역설이 영광스럽게 현실화된 것이 바로 사흘 후에 터져 나온 부활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이때에 가서야 스승의 하나님나라의 본질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는 예수 복음에서 십자가와 하나님 왕국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진리에 새삼 주목해야 합니다. 끔찍스러운 십자가 처형과 영광스러운 왕관 쓰기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역사적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하는 것은 성육신 신앙과 신학(incarnation)이 역사적 예수의 비움신학과 신앙(kenosis)과 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1700여 년간 성육신과 십자가신학(또는 속죄론적 신학) 사이에 예수의 역사적 비움의 사건들은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최근 복음주의 신학자로, 21세기의 바르트로 인정받는 톰 라이트(N. T. Wright)는 최근 저서 하나님은 어떻게 왕이 되셨나(How God Became King: The Forgotten Story of the Gospels)(2013)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여튼,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예수가 사랑지배 질서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예수는 세속의 왕이나 황제처럼, 또는 사이비 종교 창시자들처럼 영광의 대접을 받으며 장수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작년 5, 예언자적 바른 소리로 인해 불교 권력에 의해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 충북 제천 근처의 한 암자에 은둔해 있는 명진(明盡) 스님을 위로 차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와 오찬을 함께 하며, 그의 초라한 암자에서 두 시간 가량 열린 소통을 했지요. 제가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몇 살까지 사셨느냐고 하니, 70~80년 사셨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악의 세력이 있었다면 그 옛날 80세까지 사신 것은 정말 이례적이라고 했더니, 부처님은 궁중에서 태어났기에 권력 작동방식에 대해 잘 알고 계셨을 것이고 그 권력과 맞부딪치는 일은 지혜롭게 삼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기야 깊이 명상하는 종교수행자들을 벌거벗은 악독한 권력이 잔인하게 쳐죽이지는 않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명진도 미소 지으며 제 이야기를 경청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씀과 실천 사이의 격차는 어느 시대, 어느 지도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격차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낮은 수준은 말씀은 많이 하면서 실천은 아주 작게 하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왈왈(曰曰)은 많으나 실천, 그것도 감동적 실천은 적은 경우, 종교는 위선의 극치로 인식되지요. 착한 사마리아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자들이 그러합니다. 두 번째 수준은 말씀과 실천이 같지 않은 현실을 항상 반성하고 그것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때 나타나는 보다 성숙한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종교수련에 열중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불교에서 하안거, 동안거를 통해 말없이 자기의 위선적 삶을 성찰하는 일이 바로 이 수준의 모습이지요. 불교는 이런 점에서 다른 종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말씀과 실천을 끊임없이 합일시키려는 성숙한 종교라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현실적으로 기독교보다 더 성숙한 종교 같다고 했지요. 마지막 가장 높은 수준은 말씀, 곧 왈왈은 적게 하고 실천은 가열 차게 해내는 수준이라 했지요. 이 같은 격차는 아름다운 격차요, 감동적이고 변혁적 동력으로 작동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픈 것이 있다면, 말씀은 적게 하고 실천이 뜨겁고 강한 경우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명진 스님께 예수가 서른 중턱도 넘지 못하고 처참하게 십자가 극형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러나 처형자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권력을 감동적으로 해체시키면서 우아하게 처형당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역사의 예수가 80세까지 사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그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명진을 쳐다보며,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진은 이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 같은 분입니다. 미가, 아모스 같은 구약의 예언자 같은 분이시지요. 비록 명진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의 영감을 갖고 부정하고 억압적인 악의 권력을 질타하는 참된 예언자요, 스님이시지요.”

 

그는 저의 이 같은 칭찬에, 다소 쑥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보다 두 배 이상의 긴 인생 삶을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치열하게 사시면서 말씀은 되도록 적게 하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에 진정 온 몸과 마음을 바쳤다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하고 반성합니다. 명진 스님은 저보다 젊기에 더 용기 있게 비우는 실천에 앞서고 있기에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서로 아쉬워하며, 그는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고 하며 저와 함께 암자를 떠났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오늘 한국 기독교의 타락을 더욱 아프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조용한 암자 방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미가와 아모스의 분노하는 영성을 느끼며 예수다움의 따뜻한 공기를 마신 듯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즐거웠지요. 작년 5월 초에 있었던 즐거웠던 에피소드였습니다.

 

 

4. 새길 공동체를 더 예수다운 공동체로 나아가게 하려면

 

우선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세상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개독교로 욕먹게 된 까닭을 새길 공동체는 최근 한국의 역사 현실에서 찾아보며 그것을 거울삼아 우리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 일을 우리 공동체가 앞장서야 합니다. 지난 70년간의 분단 상황에서 남북 사이의 증오와 갈등을 불러 일으켜 그것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냉전 대결을 부추기면서, 정치경제 민주화를 훼손시키는 주도세력이 친일 냉전세력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력 중심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속적 냉전 이데올로기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과 교합하게 되면 무서운 독선적 권력 횡포가 터져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냉전 근본주의 기독교 문화가 분단된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심각하게 훼손시켜 왔습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의 복음을 왜곡시켜 왔음을 매주일 우리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들은 복음의 공공성보다는 사사로운 개인의 출세와 육체의 건강에 더 관심이 있고, 예수 복음의 변혁적 동력보다 교회의 양적성장과 세속적 번영에 더 관심을 쏟습니다. 참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세속적 권력과 번영에 그토록 탐닉하면서도 신앙은 지극히 초월적이고 이원론적 개인 영성을 강조합니다. 세속적 권력 앞에서 짐짓 초탈한 신앙입장을 취합니다. 이들은 성육신 신앙을 개인의 속죄신앙으로 직결시키면서 역사 예수의 하나님나라 세우기에는 무관심합니다. 값싼 이신칭의 신앙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부패한 삶을 살아도 주일에 교회 와서 십자가의 속량으로 은혜 받아 주기적으로 세탁하듯 한번 씻어내면 또 가뿐한 느낌으로 한 주일 더 죄 지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반()예수적 삶이 우리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매주일 우리는 자성해야 합니다. 예수답지 못한 우리의 부족한 모습, 못난 모습을 항상 공동체적으로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에 앞서, 아니 그런 기도와 함께 우리 자신의 나태와 교만을 항상 성찰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더 예수답게 되기 위해 몇 가지 대안적 프로그램을 적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전복적 발상을 오늘 우리 상황에서 어떻게 번역하여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공동체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 위의 말씀에서 <옛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라고 하시면서 대안적 삶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예시해 주셨습니다. 이를테면 이는 이, 눈은 눈으로 갚으라 하는 말을 들었으나, 너희는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대라고 새로운 지침을 주셨는데, 이 대안적 대응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갖는 급진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권고는 폭력에 무저항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폭력에 대해 철저히 비폭력으로 대응하되, 보다 당당하고 여유 있게, 그리고 용기 있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뜻입니다. 폭력자들은 약자를 능멸하면서 교묘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약자를 굴종시키는데, 여기에 비폭력적 방법으로 맞서려면, 용기 있게 왼뺨을 들이대며 당당히 맞으라는 뜻입니다. 폭행자를 부끄럽게 만들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예수의 깊은 뜻은 악행자에 맞대응하면서 가해자의 악한 방법을 활용하여 보복을 하지 말라는 데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갈릴리 예수의 첫 설교를 신학자들은 나사렛 선언(Nazareth manifesto)이라고 명명하기도 하는데, 이 선언의 감추어진 주요 메시지는 신의 보복행위를 예수께서 짐짓 텍스트에서 빠뜨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앙갚음의 신의 보복적 지배가 아닙니다. 이 점은 최근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잘 부각시키며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에는 보복적인 것(retributive justice)도 있지만,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도 있음을 크로산은 지적하면서 역사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는 나눔의 정의, 곧 비움과 지움의 정의실천이 규범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How to Read the Bible and Still Be a Christian: Struggling with Divine Violence from Genesis Through Revelation)(2015)라는 최근의 책에서 장엄하고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예수의 말씀과 삶,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모든 메시지에는 상호모순적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성서해석의 규범은 역사의 예수라고 하면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크리스천 경전의 규범과 기준은 성서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성서의 그리스도의 규범과 기준은 역사적 예수이다.”

 

이 점을 간과하고서 예수다운 공동체, 나아가 더 예수다운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 예수의 전복적 발상법을 우리 공동체에서 더 깊이 공부하고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역사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으나 예수와 면대면 소통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천 여년 후를 살고 있는 저희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흔히 역사 예수에 무관심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로마서 1220절을 보면 예수의 원수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더 설득력 있게 촉구합니다. 그의 편지 글귀에서 저는 갈릴리 예수의 목소리를 더 실감나게 듣게 됩니다. 원수가 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주라는 권고로, 바울은 원수들 간의 발악적 악순환을 발선(發善)의 선순환으로 대체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그래야만 악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로마서 12:21). 이것은 한국교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온갖 발악적 갈등을 원천적으로 잠재우는 동력을 제공해주는 예수의 당부이기도 합니다. 이 당부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도 작동시킬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현실을 보면 아뿔싸, 열 한명의 대통령 중에 교회 장로가 대통령이 된 경우가 세 번 있었습니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교회 장로였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이 세 장로님이 대통령 재임 시에 남북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남북 간의 발악적 악순환은 더 격심했습니다. 도대체 역사 예수의 발선 동력은 이 분들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어디로 증발해 버렸을까요?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신앙에는 예수의 평화, 하나님의 발선적 평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영향력 있는 큰 교회의 장로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또 하나, 새길 공동체에서 제가 권하고 싶은 예수다운 실천과 예전은 예수님의 발 씻어주기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실현하는 일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다운 재관식을 치르시기 전,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주시면서, 참다운 지도력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새길교회에서도 성찬예식과 더불어 예수님의 섬기며 고난당하는 메시아 체험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분이 힘 없고 약한 분, 특히 부당하게 아파하는 자매형제를 골라 공동체와 함께 약자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이 필요할 듯합니다. 힘의 관계를 떠나서, 자매형제를 아프게 했다고 여기는 분이 솔선하여 아파하는 분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끈기 있게 주기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예배 속에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다른 것 하나만 더 예수다운 프로그램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시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사회과학적 통찰력을 지닌 지식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다움의 감동을 우리가 <벤허>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으로 느낍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벤허가 십자가 처형 광경을 보고 감동했던 모친과 누이의 병 나음을 확인한 직후 비 맞으며 모친과 오누이를 껴안는 순간, 그의 가슴 깊이 응고되어 있던 복수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쁨의 감동을 눈물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예수의 비참한 듯한 재관식이 주는 역설적 승리의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의 지식인들이 모여 과연 처형된 갈릴리 예수를 보고 진실로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 없는 의로운 분이라고 고백했던 로마 장교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를 물으면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사형집행관의 그 후의 행적을 추적해보는 지적 모험, 영적 모험을 해보는 것도 새길 공동체다운 작업이 아니겠습니까? 이 뿐이겠습니까? 예수께서 상상력으로 단숨에 착한 사마리아 드라마 각본을 만들었는데, 여기 쌍놈인 사마리아인의 온전한 돋봄을 받고 온전한 사람이 된 유대인은 그 후에 어떻게 변했을까를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요, 의미 있는 일이지요. 사마리아인은 돌아올 때 갚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돌아와서 어떻게 그가 더 예수답게 변했는지도, 신앙적인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봄 직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 예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제자 도마가 직접 예수의 십자가 상흔을 손으로 만져 보았는데도, 도마복음이 그의 작품이라면 왜 도마복음에는 고난 이야기(passion narrative)가 없고 예수의 왈왈(sayings)만 있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어느 제자들보다 더 실감나게 예수의 십자가 상처를 손으로 직접 만져 보았기에, 그는 베드로보다 최후를 더 고통스럽게, 그러나 더 의미 있게 겪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학적 상상력으로 도마의 삶을 재구성해 볼 수는 없을까요? 이런 지적이고 영적인 협력을 통해 새길 공동체가 더욱 예수다운 공동체로 성숙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5. 맺는 말

 

무엇보다 먼저 28년 전, 새길 공동체를 시작했던 저로서는 새길의 30주년을 앞두고 저의 불찰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분단의 조국 현실에서 세워보기 위해 예수의 대안적 비전으로 대안 공동체를 세우려 했으나, 그 대안적 모습이 오늘에 와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다는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그 부진의 태반은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릴리 예수의 운동을 한국의 분단현실과 한국의 타락된 자본주의 시장 상황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의 맛을 이미 잃어버려 어둠의 부끄러운 스캔들로 비난받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예수의 공공적, 감동적, 변혁적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끈질기게 함께 노력하지 못했던 저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28년이 되었는데도 때론 정체성의 논란에 빠지게 된 것에 대해서 저는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예수 이름으로 우리의 갈망을 기도하는지 모르는 자매형제가 있었다는 것을 보고 저는 한없이 저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교회 밖의 저의 삶이 일종의 험악했던 파란만장의 삶이긴 했지만, 새로운 대안 공동체를 시작해놓고 그 대안적 예수 비전을 새길 공동체 안에서 육화시키는 일에 게을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회한을 가슴에 안고 몇 가지 우리 공동체가 더 알차게 예수다워지기 위해 명심해야 할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제도교회의 온갖 비리와 부정에 식상하고 절망한 신자들이 가나안 신자로 변하고 있는 우리교회의 현실에서 저는 예수의 비움을 통한 채움의 선교, 지움을 통한 세움의 운동, 고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의 동력 체험이 더욱 절박하게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지기 실천, 선제적 원수사랑으로 발선을 실천하는 일이 너무 힘들기에, 두 가지 가짜 대안이 앞으로 한국교회에서 더욱 극성을 떨 것으로 염려합니다. 하나는 더욱 더 천박한 값싼 은혜와 축복을 바라는 교회가 늘 것 같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를 버리고 떠나면서 역사의 예수도 함께 버리고 떠나는 경향을 저는 염려합니다. 대체로 지식수준이 높은 이들에게는 가현설적 예수(인간 예수를 무시하는 신앙)나 신플라톤적 신앙과 영지주의적 신학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괴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가 도래하는 경우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고 무력화되기 쉽지요. 역사의 고난 과정 속에서 육화된 비움과 지움의 용단, 악을 근원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십자가 결단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런 길은 지적으로 매력적일지 모르나, 예수의 새길이 아니라, 안일한 샛길이 되기 쉽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처절한 민족현실과 국가현실, 헬조선이라고 인식되는 갑질하는 이 땅의 국가 엘리트, 시장 엘리트, 문화사회 엘리트가 사나운 이리 떼처럼 날뛰며 약자를 더욱 약하게 하고 을들을 더욱 괴롭히는 현실에서, 십자가 고난을 통한 사랑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벅찬 일입니다. 이런 때에, 예수 복음을 요청하는 공공적이고 변혁적 헌신을 처음부터 아예 피하고 싶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비폭력 적극 저항은 실제로 투쟁적 폭력 저항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폭력적 대응으로 빠져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기독교를 아편으로 힐난하며, 세속적 급진주의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다. 오늘의 이슬람 국가나 알카에다나 또는 엉뚱하게 KKK가 취하는 선택으로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최근 상황을 보면, TrumpLePen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신나치즘의 발호를 보는 듯합니다. 우리 상황에서도 비정상적 극우의 흐름이 엿보입니다. 그러기에, 역사 예수의 선택이 더욱 우리에게 절박하게 요청됩니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 대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의 십자가 비움을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유혹입니다. 저는 이것을 예수 복음에 대한 치매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의 사즉생(死卽生)의 선택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자신도 자기가 십자가 처형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보면, 고난과 죽음의 잔을 마시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도 인간이기에, 십자가지기를 주저했겠지요. 예수의 인간적 측면을 보면 십자가에 비참하게 달려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으면서 메시아가 되고 싶진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가 평생 모았던 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어 그의 메시아됨을 확인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됨은 치욕스럽게 죽어야 된다는 것을 이 여인은 남성 제자들과 달리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저했을 예수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소중한 옥합을 깬 것 같습니다. 주저하는 예수에게 죽음의 장례식이 참 영광의 재관식임을 상기시켜 주었지요. 그것을 잊고 싶었던 예수에게 아프게 상기시켰지요.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은 다시금 그의 십자가지기를 결심하고, 이 여인의 십자가 신앙을 높이 칭찬하시며 이 여인의 높은 실천적 신앙행위를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재관식은 결단코 망각되어야 할 비참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로 작용하는 사건입니다. 비움과 지움을 통한 사랑의 승리를 보장하는 영광의 사건입니다. 이 여인의 일을 기억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저에게는 우리가 십자가 사랑을 망각하는 치매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들립니다. 교회는 그래서 변혁적 기억공동체입니다. 예수의 그 공공적, 감동적, 변혁적 십자가 복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어둠의 역사 현실에서 더욱 그것을 기억하며, 분단 70년을 맞는 이 비극의 땅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공의의 새 질서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의 새길입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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