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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만자



기억의 힘: 역사의 구원

(민수기 27:4, 사사기 11:40)

 

 

2015111<공동체추모주일> 예배

최만자 자매(새길교회 신학위원)

 

 

[그러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

- 민수기 27:4 -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것이다.]

- 사사기 11:40 -

 

 

 

가을이 스산한 바람과 함께 깊어지는 이 때, 우리 공동체의 추모예배는 슬프기도 하지만 따뜻한 아름다움을 갖게도 하는 듯합니다. 오래 뵙지 못한 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혹시라도 준비과정에 실수로 빠지신 분이 계시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추모예배를 통해 새길의 일원은 아니지만 자신의 부모님, 형제자매, 친지 등과 이별의 아픔을 겪은 분들도 많으실 줄 압니다. 개인적으로 이시간 자신의 마음속에서 추모하고 싶은 분들을 기억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모의 시간은 언제고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일까? 세상 떠나신 분들을 기억하며 의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의 같은 생각들 입니다. 예일대 철학 교수 셸리 케이건은 죽음에 대한 물음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이 귀한 기회라는 것과 그래서 지금 우리 삶을 다시 고려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하면서 생각의 방점을 죽음으로부터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로 옮겨 놓습니다. 결국 지금 도덕적으로 더 많은 정의를 작동시키도록 기여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진보적 세상을 이루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의 입장이 물리주의적 관점에 서 있긴 하지만, 이 생각에 많은 부분을 동의 하면서, 저는 예수 안에서 하늘의 소망을 가지며 오늘의 삶을 정의롭게 사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 앞에 선 우리의 자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추모의 시간에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한다면, 이별의 아픔과 슬픔에서 치유 받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욕심이 내려지고 무력한 존재인식에서 지극히 겸손해질 수 있는 자성의 자리가 이 곳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개인적이거나 공동체 범위에서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는 일은 짙은 그리움으로 우리를 감싸는 추억이라 하겠습니다. 추억은 기억의 한 방법이요, 추억하는 분이 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결코 잊히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통로인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가신 자매형제를 그리워하여 추억하는 것은 그분들의 옛 시간이 오늘 우리들 안에서 현재화되고, 그분들과 우리들의 관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형성 되게 하며, 우리 모두를 함께 미래로 이어주는 공동체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추모예배를 갖는 것은 과거 관계의 현재화, 새로운 관계맺음의 방식 찾기, 그리고 과거의 새길과 미래의 새길로 이어지는 힘의 형성으로 참 의미있는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화학자 엄기호 선생은 사회적 영성이란 책에서 추억과 기억을 정리하여 설명하는데, 추억은 서로 얼굴을 안다든가 그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안다든가 하는 개인적 혹은 공동체의 범위 안에서 기억되고 그리워하는 것이고, 그런 추억이 사건화 되어 회자된다면 그것이 사건으로서의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사회적 차원을 갖게 되는데, 개인과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 비록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죽음이라도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기록들은 바로 이 사건으로서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건의 기억을 전승시킴으로 하나님의 뜻과 삶의 진리를 온 세상에 펼친 역사의 특성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국어책 첫 페이지에 우리조상은 이집트의 노예였다라는 글이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국어책은 영이 바둑, 순이 철수였습니다. 요즘은 나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되어있는 줄 압니다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탈출시킨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적, 공동체적, 민족적 의식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약성서 곳곳에서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탈출시킨 하나님이다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기억하고 동족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거듭 말합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예루살렘을 벗어나 헤르즐 산에 위치한 야드바쉠(기념물과 이름, 이사야 56:5), 곧 유대인 수난의 절정인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곳에 갔습니다. 제가 충격 받은 것은 나찌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영상과 자료는 물론이었지만, 기념관 오른쪽에 있는 이름들의 방가운데 있던 어린이들의 방 때문이었습니다. 유리로 된 방 거울에 수천 개의 촛불이 비치고 희생된 어린이들의 이름이 하루종일 반복해서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그 방의 밖 정원에는 학살 위협에서 유대인 1200명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의 이름을 비롯한, 구원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건의 기억, 기억의 사건화였습니다. “망각은 과거의 치욕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기억은 구원에 이르는 비결이다라고 기념관에 이런 글귀가 써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과거의 고통,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미래의 역사를 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추억들이 어떻게 기억되어 사건화 되는 것일까요?

엄기호 선생은 우리의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 추억의 이야기들에서 혹은 그 죽음의 이야기에서, 그 고통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상실되었는가를 자각하는가, 자각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추억과 기억이 나뉘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실이 사회 전체에 절절해 질 때, 그 기억은 사건화 된다는 것입니다. 너의 삶의 상실로 인하여 우리 모두 역시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너의 고통과 만나게 되고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말을 되새기면서 저는 죽은 이가 살아 있었다면 가졌을 그의 삶의 어떤 것들이 상실되었을까를 나의 일로 자각하는 그 기억으로 인하여 다음의 우리 삶에 전환을 가져오게 될 때, 그것은 바로 기억의 힘이 되는 것이며, 그 기억의 힘이 역사를 과거의 수렁에서 구원해내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과거의 불의와 왜곡과 고통과 치욕과 억압으로 인해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이 상실된 것을 망각할 때, 우리의 역사는 수렁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본문들은 이전에 제가 한 두 차례 말씀증거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라 본문의 상세한 이야기들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서는 기억을 강조하고 기억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것을 예언자들이나 율법서를 통해 강조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들의 독특함은 여성들의 기억에 의해서 가부장제 문화와 고대악습의 종교의식을 끝나게 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게 했던 특별한 사건들의 기록이라는 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민수기의 슬로보핫의 딸들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죽은 후 공동체 안에 그 이름이 기억되어야 하는데, 다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땅이 상속되지 않고 동시에 그 이름이 공동체에서 사라지게 되는 개인적 차원의 슬픔을 딸들이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딸들은 이 사실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딸들에게도 상속권을 주어야 한다는 강력한 투쟁을 모세에게 벌여 딸들이 상속권을 획득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공동체 안에 남기는 새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또 매우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이때 모세의 편을 들지 않고 이 딸들이 옳다고 하며 딸들의 편을 들어 그들의 요구를 받아주어야 한다고 모세에게 명령했다고 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행간에서 성서의 위대함을 찾습니다. 사실 가부장사회에서 이 딸들의 행동은 남성들 눈에 저 드센 여자들 또 말썽이군, 제발 입 다물어!” 뭐 이런 반응일 것이 뻔하지요? 신문을 보니까 경상북도 남자와 사는 여성은 하루 65분 노동을 더 한답니다. 저는 한 35분 정도는 더 하는 것 같아요. 지독한 남성중심 가부장 문화와 관습 앞에 굴복 않고 이 딸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공동체 안에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엄청난 상실임을 자각하여 관습을 바꾸어 내었습니다.

 

사사기 입다의 딸 이야기는 번제물로 죽은 그 딸의 억울한 죽음을 단지 슬픔으로만 끝내지 않고 이스라엘 처녀들이 해마다 산에 올라가 입다의 딸 이야기를 소리쳐 반복함으로 이스라엘을 고대 인신제의를 종식케 만들고 이스라엘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처녀들도 얼마나 억척입니까? 억척스럽지 않으면 여성역사 바꾸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불가능이지요. 대부분 고대사회에서 인신 희생제물은 처녀들로 바쳐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처녀들은 입다의 딸을 단순히 기억의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종교 제의의 이전의 악습을 끊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도록 바꾸는 전환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추억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새로운 역사의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의 힘은 역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사건 이전의 악습들을 모두 끊어내는 힘이 기억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 중심의 추모예배를 드리지만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추억을 넘어 기억을 해야 하는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사건으로 기억해야 될 많은 죽음의 이야기들이 매일처럼 들려집니다. 빨간 티셔츠에 파란 반바지를 입고 보드룸 해안 모래바닥에 엎드려졌던 시리아 쿠르드족 난민 세살박이 아일란 쿠르디, 내전 중에 미사일 파편에 맞아 나를 땅에 묻지 말아주세요라며 애원하다 죽은 예멘의 소년 파리드 샤키, 결코 잊을 수 없고 꼭 기억해야만 하는 세월호의 아이들, 이들은 어른들의 탐욕과 제국의 패권주의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 때문에 발생한, 전쟁과 자본주의적 탐욕과 부정부패와 독재와 남성우월주의 등에 의해 희생된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나, 그리고 우리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기억함으로써 제국주의자들은 그 패권주의와 국익적 탐욕을 끊어야 하고, 자본주의는 그 욕망의 늪에서 나와야 하며, 종교는 극단적 근본주의와 권력주의와 지배욕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015626일 미국 인종차별주의에 희생된 흑인교회 장례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새 찬송가 305) 찬송은 노예선 선장으로 수많은 노예를 실어 날랐던 존 뉴턴이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이 노래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이 노래가 미국 교회 곳곳에서 불려지고 있어도 인종차별은 종식되지 않고 있는 이 역사를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노예선의 큰 고통 안에 있는 그 엄청난 상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한푸리 집념으로 개인의 추억을 국가화시켜 유신으로 회귀시키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망령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요? 유신의 역사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의 그 깊은 삶의 상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고 그 기억의 힘으로 우리 역사를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를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추모예배에서 또 다시 예수의 이야기를 기억하여 이어가고, 또 새길의 먼저 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어감으로서 새길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사회와 교회와 그리고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구원해 나가는 새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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