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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5.10.23 12:16

[2015.10.18] 선 곁의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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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선 곁의 악

(로마서 7:21)

 

 

20151018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로마서 7:21 -

 

 


 

악의 교활성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평범한 사람도 사유하지 않을 때 끔찍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악의 평범성을 성찰했습니다. 저는 오늘 악의 적극적 작용을 더 강조하는 의미에서 악의 교활성을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악은 교활합니다. 악은 여러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악의 그런 교활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Devil’s Advocate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제목의 매우 독특한 공포영화입니다. ‘독특한 공포영화라고 하는 것은, 이 영화는 악마가 세련되고 우아하고 심지어 지혜로운 방식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지배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활동하는 젊은 변호인 케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64번의 재판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변호하는 피고가 유죄임을 알면서도 무죄 판결을 이끌어낼 정도로 유능(?)한 변호인입니다. 그런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존 밀턴(알 파치노)--실낙원의 저자와 같은 이름--은 케빈에게 자신의 로펌으로 와 달라며 파격적 스카우트 제의를 합니다. 이를 받아들인 케빈은 아름다운 아내 메리 앤(샤를리즈 테론)과 함께 더 큰 성공을 꿈꾸며 욕망의 도시 뉴욕으로 갑니다. 이후 존 밀턴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케빈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사실 밀턴은 악마였습니다. 마침내 그 사실을 알게 된 케빈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악마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케빈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불의한 피고에 대한 변호를 포기합니다. 악마의 변호인이기를 그만 둔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거부한 양심있는 변호인! 대중을 감동시킬만한 미담 사례입니다. 이때 한 기자가 다가와 케빈을 정의로운 영웅이며 스타로 치켜세우며, Sixty Minutes에서 케빈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제안합니다. 그런 칭찬에 케빈은 겸연쩍어 하면서도 조금은 뿌듯한 얼굴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법정을 떠납니다. 바로 그 때, 케빈의 등 뒤에 서 있던 기자의 얼굴이 존 밀턴의 얼굴로 바뀌고, 밀턴은 날카로운 이를 반짝 드러내며 음흉한 미소를 짓습니다

 

하나의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악마에게 이름을 물으셨을 때, 악마는 군대라고 답합니다.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마가복음서 5:9). 수가 많은 만큼 악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악의 방식은 유혹입니다. 악마의 이름 중 하나가 유혹자(tempter)’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케빈은 부의 유혹을 이겼지만 명예의 유혹 앞에 흔들립니다. 그는 새로운 악의 유혹과의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요? 밀턴의 교활한 웃음은 케빈의 전투를 낙관할 수 없게 합니다. 악의 군대는 인간을 유혹하기 위한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 전술을 쉼 없이 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선과 악

 

Devil’s Advocate은 악이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일 때는 악이 선 가까이에 있을 때, 선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그것을 잘 드러내 줍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쓴 시기는 그가 “3차 선교여행을 마친 다음이었습니다. 바울의 동방 선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의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가에서 직접 교회를 세웠고, 안디옥,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영적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적 정통성을 갖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와 극적으로 화해하면서 사도권도 인정받았습니다. 과거의 미움 받던 교회 박해자에서 존경 받는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서방 선교를 앞둔 중요한 때에 자기의 선함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악함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과연 바울이 경험한 선 곁의 악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어거스틴의 고백록같은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으니 그의 악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이 자기 마음 안에 악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악은 마음 안에서 나온다고 가르치셨지요(마태복음서 7:20-23).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스스로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디모데전서 1:15)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겸손한 바울도 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평생 자신의 선과 악을 자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영과 육’, ‘속사람과 겉사람같은 대조적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을 표현하며 쓴 헬라어는 칼론(καλόν)’이고 을 표현하며 사용한 헬라어는 카콘(κακόν)’이라는 점입니다. 둘 다 어떤 실체가 아니라 성질을 뜻합니다. 어원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게는 καλόνκακόνλ(람다) κ(카파) 한 글자 차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집니다. 그것이 선과 악의 차이는 알파벳 하나 차이만큼 미묘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선 곁에 악이 있다는 바울의 성찰은 선과 악의 혼동을 경계하게 해줍니다. 지난 주 <화요 렉시오 디비나> 때 누가복음서의 가르침을 함께 읽었는데, 제게는 다음의 구절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11:35) 그런데,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묵상하는데, 문득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던 물음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빛이 어떻게 어두울 수 있는 거지?’ 빛이 약해지거나 꺼진다는 표현은 자연스러운데, 빛이 어두워진다는 표현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영어성서를 찾아보니, “Consider whether the light in you is not darkness.”로 적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공동번역 성서를 찾아보니, 같은 의미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라.” 우리 안의 빛이 사실은 어둠일 수도 있다는 충격적 성찰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면서, 악마의 한 이름인 루시퍼(Lucifer)’의 뜻이 빛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선 곁에 악이 있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예수는 우리의 선이 악일 수도 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선이 악에 물들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의 악

 

선을 지향하는 종교인들은 더 깨어 있어서 악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종교도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과 종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는 앤소니 드 멜로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악마와 그의 친구가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의 누군가가 길에서 무엇인가를 줍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발견한 게 뭐지?” 악마가 답했습니다. “진리의 조각이지.”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속상하지 않은가?” “속상할 것 없어. 난 저 사람이 그 조각을 종교적 신조로 삼도록 내버려 둘 작정이거든.”

 

종교적 신조를 절대화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악마의 계략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활한 악은 종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하고 이용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한 악마는 심지어 성서를 인용하기도 합니다(마태복음서 4:6). 지난 해 성서로도 때리지 마라!” 는 제목으로 종교문화아카데미 강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도전적 제목을 택했던 이유는 성서의 문자와 종교적 신조에 집착해 타자를 해치는 그리스도교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는 마녀사냥, 종교재판, 노예제와 인종차별, 식민주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류의 역사적 악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떤가요? 일부 호전적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종북몰이로 이념적 증오를 부추기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조롱하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혐오하고, 이웃종교를 적대합니다. 그런 태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신앙이 뜨거운이들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IS의 검은 깃발에는 무함마드의 인장과 함께 아랍어로 샤하다(shahada)’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슬람의 종교적 신조인 샤하다의 내용은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무함마드는 하느님의 사도이다입니다. 알카에다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자랑하며 살인을 유희처럼 즐기는 IS가 그들의 악행을 종교적 신조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의 악을 목격하면서 파스칼이 팡세에서 인간은 종교적 확신을 가질 때 가장 철저하고 즐겁게 악을 행한다고 한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존 레넌은 Imagine에서 종교 없는 세계의 꿈을 노래했던 것이겠지요.

 

 

역사 속의 악

 

악의 승리는 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악으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악의 승리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목격해왔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히틀러나 아이히만 같은 악인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악은 죽지 않고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에게 스며들어 오늘 팔레스타인 민중을 억압하고 학살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악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정의로웠던 이들이 불의와 타협하고 협력합니다. 그럴수록 역사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할까, 답답한 마음에 최초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시도되었던 1973년 신문기사를 찾아 보았습니다.

유신 체제가 시작한 다음해인 1973, 박정희 유신 정권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 해 625, 동아일보는 이에 대한 각계 의견을 게재하는데, 그 중 역사학자 김정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나는 국사가 획일적으로 되는 것에 반대한다.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국사 연구의 중요성이 사건의 단순한 기술보다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반대했지만, 유신 정권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기어이 실행했고, 불과 ‘9개월만에 집필한 국사 교과서를 1974년 각급 학교에 배포합니다.

 

유신 정권이 국정 국사 교과서를 만든 표면적 명분은 주체적 민족사관정립이었지만, 실제 의도는 무력으로 강행한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1974227일자 동아일보의 한 기사에서 새 국정 국사 교과서의 주요 문제 중 하나로 제기된 것은 최근 십여 년을 지나치게 중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5.16 군부 쿠데타와 유신체제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내용이 교과서에 반영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유신정권 말기에는 초중고교 도덕, 사회, 국사, 국어한문, 국민윤리, 미술 교과서 18개 책 23개 단원에 유신이념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태는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맙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후 겨우 5년이 지난 19791212,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바로 그날, 문교부는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유신이념 내용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런 문교부 발표가 있은 며칠 뒤, 김정배 교수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사람의 정치인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자마자 많은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 동안 이 나라의 교육에 잘못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비판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6년이 지난 오늘,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바로 그 김정배 교수가 박근혜 정권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맡아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화만큼이나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과연 후대의 역사는 오늘의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술하게 될까요?

 

이처럼 역사 속의 악은 점점 더 교묘한 방식으로 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악에게 달려들어 힘으로 제압하면 될까요? 역사는 악과 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악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바울은 악을 이기는 방법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로마서 12:21) 악과 싸우는 가장 좋은 길은 선이 되는 것입니다. 한완상 형제님이 발악(發惡)’발선(發善)’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악에 대한 침묵이나 방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도 간디도 마틴 루터 킹도 악에 대한 고발과 비폭력 저항을 통해 선을 발했습니다. 바울도 종교와 율법의 이름으로 약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이들을 개들악한들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비판했습니다(빌립보서 3:2). 위대한 영적 스승들이 이처럼 단호히 악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선 곁에 있는 악을 깨어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늘 깨어 선한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 안의 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악을 알아차릴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선 곁에 도사리고 있는 악을 늘 깨어 알아차릴 때, 우리의 선은 길을 잃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시대의 어둠이 깊습니다. 너무 어두워 빛과 어둠을, 선과 악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늘 깨어 우리의 어둠과 악을 알아차리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악의 평범성선의 평범성으로, ‘악의 교활함선의 지혜로움으로 전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늘 깨어 있는 삶을 공동체 자매형제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마음이 덜 두렵습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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