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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수복 형제(사회학자/작가)


원칙의 사람, 원만한 사람

(마태복음 7:13-14)

 

 

2015104일 주일예배

정수복 형제(사회학자/작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 길을 찾는 사람이 적다.]

- 마태복음 7:13-14 -

 

 

 

상처와 고통

 

고문 체험이 무서운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였던 로버트 올리버는 이승만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리승만 박사전을 남겼다. 올리버는 이 책에서 전기를 쓰기 위해 이승만을 인터뷰할 때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그가 이승만이 젊은 시절 독립협회 운동의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잡혀가 고문을 당했던 경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때 이승만은 갑자기 편안하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제발!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물어보지 말아주게!”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고문 체험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떠올리기에도 벅찬 과거의 힘겨운 상처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시시때때로 출몰하여 우리들을 정신적 고통에 빠지게 한다. 잊어버리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어떤 기회에 다시 생각나면 그 때마다 괴로워진다. 그 상처를 다독여보려고 만지면 만질수록 덧이 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망각의 늪에 고이 묻어버리고 싶어한다.

 

나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대학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의 경험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의 원천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의 나는 별 욕심 없이 읽고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쓰고싶은 책을 자유롭게 쓰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로서는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를 가지고 사회 생활을 한다. 그런데 과거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대학 밖에서 삶을 꾸려가는 나를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했는데 교수가 못된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아직도 대학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놓고 벌인 생존 경쟁에서 밀린 패자라는 낙인을 지워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가족주의적 가치가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직업으로 대표되는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어느새 자식자랑, 부모자랑, 친구자랑 등에서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각자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만든다. 아버지가, 남편이, 아들이, 사위가, 딸이, 며느리가 무엇을 하느냐는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 설정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의 부모, 장인, 장모, 아내와 아들이 외국에서 힘들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는데 결국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아들, 사위, 남편,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불편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쯧쯧, 박사학위만 했으면 뭐해, 교수가 되어야지!” 이런 말 앞에서 그들은 할 말을 잃고 기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가족들이 자기들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나를 원망하게 된다. 나는 가문의 영광을 실현하지 못한 불효자가 되고 안쓰러운 사위가 되었다. 오랫동안 내 귀에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박사 실업자가 되다니!” 라는 한탄과 원망, 조롱과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누구누구의 아들이나 딸로 인식되고 사람들은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공부하는 것만 보고 살았고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자기 아버지가 대학 교수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때 나는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에게 아버지는 대학에서 가르치지만 교수는 아니라고 사실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교수와 강사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말해주었으리라. 그 때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있었는데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서 자기 엄마에게 그 때 자기 아버지가 교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항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행성이 항성의 위치가 바뀌었으니 한참 동안 궤도이탈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어떤 사람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사이의 불일치를 지위 불일치’status inconsistency라고 부르는데 나의 상황도 그런 경우도 해당한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늘 심리적 긴장을 경험하게 된다.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나는 2001년까지 대학강사, 시민운동가, 방송진행자 등으로 활동했다. 그후 2002년 초에 다시 파리로 가서 거의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자발적망명 생활을 하다가 2011년 말에 돌아왔다. 귀국 이후 제일 힘든 일은 과거에 알던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는 일이었다. 나는 달라졌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처음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요즘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질문의 뜻을 잘 몰라서 어디 사느냐?”로 듣고 답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질문으로 나의 취직 여부를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잠원동 삽니다라고 대답하다가 그냥 조용히 지낸다고 답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그런 대답을 듣고나서 나를 아직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안다. 그들이 나의 생활을 걱정하고 있으며 나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그러나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어색함을 느낀다. 그 시선 밑에 전제되어 있는 고정관념, 다시 말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대학 교수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대학에 안정된 교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막막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다수의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다. 그들은 대학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다. 대학 교수가 될 때까지는 어떤 모욕과 수치심과 자존심 상실도 다 받아넘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대학 교수가 될 것이다. 둘째는 차선의 선택이다. 대학 교수 자리 얻기가 힘들다고 생각되면 정부 산하 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또는 기업체 소속 연구소에 취직하는 일이다. 이 경우에는 대학 교수보다 사회적 지위는 못하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장을 차지해서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살 수 있게 된다. 셋째는 대학이건 연구소건 어느 쪽에도 안정된 직장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 강사 생활을 계속하면서 갖가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단기 계약직 연구교수를 계속하는 일이다. 이 길은 언제나 불안과 불만에 찬 삶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취직하지 못했냐?”라는 타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견디다 못해 학계를 떠나 다른 업종으로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것이다. 집안의 사업을 물려 받아 운영을 한다거나 정계에 투신하는 일이다. 그렇게 업종을 바꾸어 성공하기는 어렵다. 솔잎 먹던 송충이가 다른 데 가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다섯째는 대학 밖으로 제 발로 걸어나와 독자적인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작가, 방송인, 시민운동가, 대안운동가 등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힘든 길이지만 본인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두고 어렵게 박사학위까지 했는데 대학 교수가 못되고 딴 짓을 하는 걸로 생각한다. 사회적 지위 쟁탈전에서 패배하여 밀려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수난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

 

2002년 이후, 나는 서울을 떠나 파리에서 거의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발적 망명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해직 교수가 되어 망명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학 교수도 못된 상태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정치적 이유로 망명 생활을 했다면 정치망명객이라는 도덕적 명분이라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무 내세울 것도 없이 그저 정신적 망명자로 생활했다. 누구에게 내세울 아무런 공적 대의명분도 없이 그저 구석과 그늘에서 조용히 살다 돌아왔다. 다시 만난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를 물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대학에 교수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회학자로서 내 처지를 사회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교수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한 학문적 능력과 연구 업적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 자리잡지 못한 이유를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내가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늦게 생긴 연대 사회학과 출신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로는 프랑스 박사가 갖는 불리함이다. 네 번째로 이념적 성향이다. 1990년대 초, 대학 교수 충원 과정에도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판단이 암암리에 작용했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 대립 상황에서 보수적 입장의 교수들로부터도 불신을 당하고 진보적 입장의 교수들에게도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섯 번째 설명 요인으로 개인적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본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여섯 번째로 내가 사회학과 학부를 나오지 않고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다음에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과로 전과한 전과자轉科者라는 사실이다. 일곱째로 나의 개인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성향도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내가 정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만한 사람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 밖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학자/작가백의종군하는 삶

 

이제 나는 대학 밖에서 사회학자/작가라는 이중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과거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마치 나이든 미혼 남녀에게 언제 결혼할 것인가를 묻듣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학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넌지시 표명한다. 내가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래도 그렇지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학이라는 제도가 보장하는 안정된 삶의 울타리를 저만치 벗어나 있고, 대학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내 삶을 재단할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그래도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당연한 세상물론의 규칙을 내미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나는 여전히 백의종군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나의 처지가 혼자 지낼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소속과 직함없이 사회생활을 하기는 불편하다. 평소에 알던 사람들을 만날 때는 괜찮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언제나 당혹감을 면치 못한다. 내가 겪는 불편한 상황들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 개인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사람들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왔으면 대학교수가 되어야지 뭐하고 있는거냐는 완강한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나 굳건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체면이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버젓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조선 시대 이후로 남이 정의해주는 자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체면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미취업 박사는 아직 완전한 사회구성원이 아니다. 소속 기관의 이름과 그 곳에서의 직책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정체성 구성의 최고 요소이다. 그러기에 소속과 직함이 없이 사회 생활을 하는 일은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과 마찬가지다.

 

내가 사회학자/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사회학자와 작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오정희는 작가를 아래와 같이 정의했는데 그 정의는 내가 생각하는 작가와 큰 차이가 없다. 오정희에 따르면 작가는 언제나 자신의 시대와 환경을 위기로 인식하는 사람이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 머무르는 사람이고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며 미아이고 고아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자신의 자리를 둔 사람이다. () 빛보다는 그늘에, 영광보다는 상처에, 승리보다는 패배에, 기쁨보다는 고통 쪽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삶의 심연과 우리를 억압하고 훼손하는 것들의 정체를 드러내며 무심하고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것들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게 하여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를 일깨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깨움우연히 던져진 존재라고도 하는 우리들의 인생에는 단지 생존하는 것 이상의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고 보다 가치 있고 존엄한 삶을 꿈꾸게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한 자격증을 갖춘 작가가 아니라 위에서 오정희가 말하는 진정한 뜻에서 작가가 되었다. 남이 인정해서 작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고 그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회학자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사회학자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가족 그리고 가족을 넘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에서 겪는 억압과 고통, 고민과 고뇌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져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개인적 차원의 문제와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연결시키는 사람이다. 사회학자의 존재 이유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규정짓는 사회적 조건들을 더 잘 파악하게 함으로써 억압과 불평등을 강요하는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지적 자원을 제공하는 데 있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 삶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라 비인간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적 조건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사회적 주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회학은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주관하며 사회적 주체로 형성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식을 창조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의롭고 자유롭고 서로 돕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행위자로 살아가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나에게 사회학자와 작가는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된 두 개의 역할이다. 작가가 비인간적인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적인 존엄성을 각성시키는 존재라면 사회학자는 그 이상한 세계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훼손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아무리 사회학자/작가라고 주장해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의아한 눈빛이다. 나는 그런 시선들과 마주칠 때마다 흔들리는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다.

 

 

패자로 사는 법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안정된 직업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패자'로 분류된다. 그들을 백수, 잉여라는 별칭을 달고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다 승자로 살아갈 수 없다면 패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정해진 길, 당연한 길, 다른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니면 길은 없는 것일까? 뒤처진 상태에서 운동장의 트랙을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일까? 운동장 밖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운동장 밖에는 정말 지옥같은 삶 말고 다른 삶은 없는 것일까? 이미 끝난 경기에서 한 번 패자가 된 사람은 영원히 패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패자가 다른 방식으로 부활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미 많은 사람이 걸어가서 편안하지만 지루한 길이 아니라 위험하지만 가슴 설레게 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미 끝난 경기에서 패자가 된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위에서 나는 내가 겪은 수난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고 거기에는 내 책임도 있지만, 잘못된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잘못된 사회는 고쳐야 한다. 그런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건 당장 즉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러러면 지난 일을 한탄하며 사회를 비판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오늘을 내일을 그리고 모래를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지난 일을 책장을 넘기듯 넘겨야 한다.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다. 사회학자로서 운명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는 그런 태도를 방법론적 운명론이라고 부르고 싶다. ‘방법론적 운명론은 자기의 현 상태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는 운명론이 아니라 현상태를 깨고 새로운 단계,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운명론이다. 사회학자/작가의 길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한 삶의 방식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패자이지만 세속의 판단을 넘어서는 다른 기준으로 새로운 길을 걷는 희망의 등불을 켜는 패자, ‘패자 아닌 패자로 살아가는 일은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가 되었다.

 

 

패자가 받는 축복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에게는 위안과 격려가 필요하다. 체코의 극작가이자 반체제 지식인으로 훗날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의 글은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던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거짓된 삶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리 안에 사는 삶living in the truth은 그 자체로서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위협이다. 그것이야말로 힘없는 자의 힘이다. 그것은 세속적 힘이 아니라 도덕적 힘이다. 체제 안의 타성적인 삶, 거짓된 삶을 극복하려는 노력, 위선적인 삶을 넘어서려는 비순응적이고 비타협적인 저항의 삶이야말로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지식인으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다 투옥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회학자 한완상은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는 시대 진짜 이기는 힘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우아한 패배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국 노동운동의 지도자였던 박노해(2010: 132)비폭력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 끝까지 저항의 길을 주장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삶을 위한 반대를 하는 것

비록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게 하는 것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면서

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가는 것

 

어려운 조건에서 해외 난민 봉사를 계속하고 있는 송강호는 박노해와 같은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단 한 번 혹은 몇 번의 패배로 물러나는 미완성의 패배가 아니라 어떤 시련과 절망과 좌절도 끝내 거부하고 끝없이 패배하는 삶을 한 없이 긍정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이 우리의 운명이 되어야 한다.”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서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산책을 하다가 소르본느 대학 앞에 있는 콩파니라는 서점을 들르곤 했는데 어느날 그 서점에서 주관하는 저자 초청 대화 모임에서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지식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1970년대에 사회변혁을 꿈꾸는 사상문화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성서의 욥기를 읽으며 고통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다. 혁명의 열기는 사그라들었고 그는 독방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좌절과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그에게 저항의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오래 전인 1982-83년경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4년째 감옥생활 중이었다. 그 때 나는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정치적 이유로 장시간 고도의 감시를 받는 감옥에 있었고, 어떻게 그곳을 벗어날지 헤매고 있었다. 나는 고통에 대한 분석 속에서 저항의 수단을 찾았다. 나는 누구나 자신을 절대 권력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일찍이 극복했는데, 결국 그 문제는 감옥의 고통과 비참함 속에서 지성적으로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 어떻게 해방의 길을 걷기 위해 욥의 길을 따라 갈 것인가?”

 

미국 뉴욕에 있는 어느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혀 있는 한 편의 시는 세상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던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고 그것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욥의 모습을 보여준다.

 

난 부탁했다.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축복받은 자

그 사람 바로 나로다.

 

 

패자만의 즐거움

 

상식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현실 너머 초월적 세계에 연결시킴으로써 자신의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종교는 우리의 삶을 초월적 세계와 이어서 해석하게 만든다. 나는 비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연세대학교라는 기독교 대학을 다녔고,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여성과 결혼했고, YMCA, 크리스찬아카데미 등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일하면서 기독교에 반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어려운 시절 나는 청파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박정오 목사의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옳은 게 좋은 거다라는 설교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교회의 강단 전면에는 언제 어디서나 크리스찬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박정오 목사의 뒤를 이은 김기석 목사는 2013년 부활절 예배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절망을 끌어안을 때, 희망은 새벽처럼 찾아옵니다.(...) 패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끝없이 패배한다 해도 그 삶을 긍정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참으로 장엄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의를 위해 싸우다가 나는 패배해도 하나님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 바로 이것이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삶입니다.”

 

대학 안에 안정된 정규직 교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대학 밖에서 사회학자/작가로 살아가는 일에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자유와 즐거움이 있다. 우선 매일 하루 24시간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 거기에는 상투적인 삶의 방식을 벗어나 남과 다른 삶의 경로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틀에 박힌 인생길에서 해방되었기에 규격화된 행로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건 자유와 자율의 삶이고 발견과 창조의 삶을 살 수 있다.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중심부 세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스스로 변두리를 향하여 걸어나가는 즐거운 산책자로서 당연한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이방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를 가로지르며 관습의 세계를 흔들고 상식의 세계를 흔들어볼 수 있다. 주변부에서 서식하는 삶은 정상正常이라는 꼭 막힌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제 안의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요 박탈의 경험이라고 생각될 것이지만, ‘비정상非正常이라는 스티그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체제 밖 사람들에게 삶은 무한한 자유의 시간이며 새로운 도전과 창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영원한 망명 지식인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렇게 썼다. “망명은 당신이 언제나 주변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신은 정해진 길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스스로 해야한다. 당신이 그러한 운명을 박탈이나 통곡할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와 당신의 방식대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양한 관심이 당신의 주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이 스스로에게 명령한 특별한 목표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고유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법

 

대학 밖에서 사회학자/작가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사막을 걷는 낙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45백만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난 낙타는 수천만 년 동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별 문제없이 잘 살았다. 하지만 아메리카 들소 등 거센 동물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순한 낙타는 거친 동물들에게 눌리고 쫓겨나 점점 더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내몰렸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사막이다. 낙타는 오랜 세월 동안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다. 견디기 어렵게 뜨거운 태양이 내리쪼이고, 눈을 뜨고 앞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을 묵묵히 걷는 낙타의 의연한 모습은 생존에 대한 경외감을 일으킨다. 사막의 낙타는 아무런 불평도 말하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않고, 곁눈질도 하지 않고, 그냥 앞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간다. 오아시스를 기다리지도 않고 뛰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그저 터벅터벅 앞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삶을 살면서 낙타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등에는 물을 보관하는 혹이 생겼고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긴 눈썹이 생겼다. 사막의 뜨거운 지열을 피하기 위해 다리가 길어졌고 모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는 두터운 각질이 발달했다.

 

한 문학평론가는 낙타의 삶을 이렇게 찬양했다. [이어령, 이어령 문학선, 지성채집(나남: 1986), 38.]

 

낙타는 어째서 눈썹이 긴가? 낙타는 사막을 건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모래바람이 분다. 불타는 사자의 눈이라 해도 혹은 그것이 아름다운 사슴의 눈이라 해도 사막의 지평을 바라볼 수는 없다. 모래 언덕에서 뜨거운 모래바람이 앞을 가릴 때 오직 갈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낙타뿐이다.

 

낙타는 어째서 등에 커다란 혹을 짊어지고 다니는가? 낙타는 사막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목이 타는 모래밭이다. 한 포기 풀도 없고 한 뼘의 그늘도 없다. 땅을 파도 물 한 방울 솟지 않는 죽음의 땅, 이 갈증의 길을 가려면 자신의 육신 속에 물을 저장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표범은 날쌔지만 갈증을 이길 수 없고, 침팬지는 영리하지만 그 뙤약볕을 이겨내지 못한다.

 

낙타는 가끔 운다. 낙타는 왜 슬퍼 보이는가? 사막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표지판도 방향도 없는 모래 한 복판에서 낙타는 긴 목을 빼고 가야 할 먼 지평의 구름을 본다. 모래 바람이 부는 목 타는 길이다. 쉬어갈 녹지는 너무나도 멀다. 그러나 선인장 가시 같은 의지가 길을 인도한다. 해도 달도 믿을 것은 못된다.

낙타 같은 언어를 갖고 싶다. 사자의 눈이나 사치한 사슴의 뿔 같은 언어보다도 사막을 건너가는 그런 낙타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 지평을 바라볼 수 있는 기다란 목으로, 바람 속에서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긴 눈썹으로 그리고 혀를 말리는 갈증을 제 몸으로 스스로 적셔가는 등 위의 혹으로 내 생의 길을 걷고 싶다.

 

시는 푸른 초원에서만 살 수 있는 양떼가 아니다. 시는 맑은 호수에서 살 수 있는 백조는 아니다. 더더구나 늪에서 뒹굴며 사는 하마는 아니다.

 

시인의 언어는 낙타이다. 멀고 푸른 녹지를 향해서, 오늘의 모래길을 걷는 낙타이다. 목 타는 생의 모래밭, 우물이 없어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그늘이 없어도 제 몸으로 목을 적시며 살아가는 낙타이다.

 

낙타여! 시인의 언어여! 다시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일어나라. 아무리 지평이 멀어도, 너는 갈 수가 있다. 갈등을 이기고 모래바람을 막으며 너는 저 생명의 녹지를 향해 갈 수가 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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