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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이재정 신부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마가복음 6:53-56, 마태복음 17:14-20)

 

 

201589일 평화통일주일 예배

이재정 신부(대한성공회 사제, 경기도 교육감)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가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상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 마가복음 6:53-56 -

 

[그들이 무리에게 오니,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주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병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 빠지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다. 그러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아이는 그 순간에 나았다. 그 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 마태복음 17:14-20 -

 

 

 

얼마 전, 저는 안성에 있는 한겨레 고등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원불교에서 세워서 북한에서 넘어 온 학생들에게 정규학교로 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징검다리 학교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네 명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저 편한 질문으로 앞으로 뭐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한 학생은 건축과에 가서 건축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북을 떠날 때 3살짜리 동생을 두고 왔는데 그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직접 짓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학생은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북에 두고 온 할머니를 위해서 물리치료를 배워 할머니의 건강을 돌보아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4명 모두 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곳에 와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남북 분단의 그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45815일 일본 왕의 항복 선언과 함께 우리 선조들은 태극기를 들고 방방곡곡에서 해방의 기쁨을 외쳤습니다. 그날 그 시각에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있는 국기게양대에서는 일장기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게양대에 올라 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미국의 성조기였습니다. 해방을 전후하여 북은 소련군이 남은 미군이 점령하여 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38선이 남북을 가르는 새로운 경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방은 광복이 아니라 분단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군정은 해방과 함께 새로운 건국을 준비하던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의 발을 묶었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자유로운 어떤 행동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북은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고 분단은 굳어져 갔습니다. 그 후, 한국전쟁은 더욱 우리를 비극적인 분단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분단의 역사는 지난 70년간 이렇게 우리를 여러 모양으로 가두어 버렸습니다. 분단이 우리 사회와 의식까지도 지배하는 견고한 시대의 문맥이 되었습니다.

 

70년의 분단의 과정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함께 만들어 낸 빛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만들어 낸 ‘6.15남북공동선언이었습니다. 이것은 1945년 이래 분단체제의 논리를 뛰어넘었고, 정전협정이 지배하고 있는 정전체제도 극복하였으며, 처음으로 남북이 주체적으로 평화와 통일의 이정표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꿈과 미래를 열어준 역사적인 결실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으로 이룩한 개성공업지구의 개발입니다. 개성공업지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1950년 전쟁 중에 끊어졌던 경의선의 철도와 도로를 다시 잇는 것이었습니다. 지뢰를 제거하고 군사분계선에 남북을 가로막았던 장벽을 열었습니다. 개성공업지구는 북한의 법령에 의하여 북한 땅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북한의 포병연대를 개성 송악산 북쪽으로 밀어올리고 그 자리에 남북이 함께 창조한 산업평화공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800만 평의 산업단지 계획 중 지금 100만평의 기반공사를 완성했고 현제는 그 가운데 40만평에 123개 기업이 북한의 53천여 근로자를 고용하여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협력의 결실이 아니라 남북의 군사적인 대결 구도를 종식시키고 평화적인 교류협력의 교두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남북의 평화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후퇴하고 긴장은 고조되었습니다. 통일의 정책과 이야기는 무성한데 평화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광복 70년의 환희가 아니라 분단 70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내일을 확신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라 전체가 병들고 아픕니다. 곳곳에 시민들이 모두 고달프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민주주의 정신과 질서가 곳곳에서 무시당하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픕니다. 이런 아픔의 근원적인 원인은 고질병인 분단체제에서 비롯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큰 아픔은 내일이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그 사회의 병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병자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을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어디든지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에 데려다 놓고예수 오시기만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병명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짐작하건대 역병 또는 오늘날 표현으로 감염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병명이 없으니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슨 병이었는지 모르지만 병이 번져나가는데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병자들의 이야기를 마가가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 현상을 좀 더 사회적 현상으로 살펴본다면, 어둠의 세력 앞에 무너지고 고통 당하는 세대라고 할 수는 없을까요? 그들의 역량으로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장터에 나서는 것 장터에 모여 예수를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광화문으로 나가는 것, 그 곳에서 때로 촛불을 드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오직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병에서 낫는다는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 다시 새로운 세계를 향한 그들의 단호한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떨쳐 일어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이와 다른 현상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마태복음 1714절 이하에서는 마귀에 사로잡힌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청년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이 청년을 고치려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예수는 이 세대가 왜 이런가라고 힐책을 합니다. 좀 납득이 잘 가지 않지 않습니까? 왜 예수는 세대를 언급했을까요. 그리고 예수는 그 청년을 데려오게 하고 그 청년에게서 마귀가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나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왜 우리는 마귀를 내쫓을 수가 없었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의 대응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마태복음 17:19)

 

그 마귀 들린 청년이 누구이며 그 마귀의 행위가 무엇이며 왜 그 당시의 사람들과 그 세대는 이것을 방관만 한 것일까요? 마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폭력으로 일관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인 마귀의 권력자를 청년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세대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단호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믿음, 그것은 아주 작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둠의 세력에 무릎 꿇지 않는 믿음 바로 그것을 예수는 그 세대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입니다.

 

위에서 우리는 마태와 마가가 전하고 있는 내용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당하고 있던 고난과 아픔의 현상에서 예수께서 병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을 전하고 있다면, 마태복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하고 있는 마귀의 세력에 대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에 대하여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사회가 앓고 있던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를 두 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의 오늘의 이야기는 믿음을 행동 그 자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은 머리로 하거나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아무리 겨자씨 같은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산을 옮기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개인의 개인적인 고백이나 소원이 아닙니다. 믿음은 나를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이룩하시려는 예수의 사랑과 소망을 이어가는 행위입니다.

 

예수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였습니다. 마지막 말씀도 평화로 완결됩니다. 그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할 하느님의 나라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 평화는 정의와 사랑이 넘치고 진실과 양심이 만들어 가는 세계입니다.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분단체제는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강요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병자로 만들었습니다. 남북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갈등과 대립, 분열과 비방을 일삼게 만들었습니다. 과거 역사를 왜곡하거나 거짓 평화를 요구하였습니다. 정권에 따라 정치적인 관점에서 남북관계는 비틀리고 뒤틀렸습니다. 그래도 그런 가운데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두 차례의 정상회담도 있었습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이어졌습니다. 이런 모든 활동의 목표는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는 권력자에 의하여 힘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자는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거짓 평화를 이용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전하신 것처럼 평화는 우리가 서로에게 전하면서 거대한 평화의 연대(net)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옷에 손을 대는 것도, 예수의 믿음의 선언도 모두 평화의 연대를 위한 요구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체제의 구현이나 통일의 새 역사나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굳건한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연대의식이 마을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어느 곳에서 넘쳐 나는 병자들을 고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청년에게서 마귀를 축출하는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연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연대만이 모든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마귀를 제어하며, 산을 옮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러한 연대가 남북을 넘나들며 세계를 변화시킬 때 우리의 통일과 평화는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결코 없습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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