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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인백


“Follow Up 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13-16, 30-32)

 

 

201582일 주일예배

전인백 형제(전 새길교회 운영위원장)

 

 

[마침 그 날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 누가복음 24:13-16, 30-32 -

 

 

 

금년도 이제 절반이 훌쩍 지나 8월이 되었네요. 지난봄 부활절을 마지하기 이전에 예배위원장님으로부터 금년 상반기 중에 말씀증거를 하도록 권유를 받고부터 저는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부활예수에 대한 제목을 설정해 놓고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결국 한번은 연기 신청을 한 후에 오늘에야 이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평신도로서 이 강단에서 성경에 의거한 말씀을 증거 한다는 일은 그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지금 이 순간에도 2년 전에 말씀 증거 할 때보다 더 저를 두렵고 떨리게 함을 부인할 수 없군요.

 

사실 오늘 말씀증거의 제목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또는 신학적인 표현으로 현현하신 예수님이라고 하여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나타나심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공생애 시절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을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한글 단어를 찾지 못하여 ‘Follow Up’ 이라는 영어로 표기하게 된 점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Follow따르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Follower는 우리교회에서 많이 쓰고 있는 따르미가 되겠지요. 그런데 Follow Up이라고 하여 ‘Up’이라는 부사를 붙이면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비상사태에 처했었는데 철저하게 추적하고 조사하다라는 말에도 쓰였던 것 같고, 일반적으로는 어떤 일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다내지는 사후관리를 철저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새길의 교우가 된 후에 가장 많이 듣고 또 쓰는 표현은 아마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예수 따르미가 되자는 다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해 있었던 신앙과 제도를 어떻게 조화롭게 영위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기 계신 여러 교우님들이 같이 경험하시고 또 소화하고 있는 과제라고 보겠습니다.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케리그마(선포, 신앙)의 그리스도를 놓고 많은 논의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세미나의 대표적 성서학자인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는 이를 다시 부활절 이전의 예수부활절 이후의 예수로 칭하여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기독교 전통과 신앙의 그리스도를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그에 의하면, 부활절은 예수님 개인에게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고, 예수님은 물론이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살았고 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이요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같은 예수 세미나의 리더 중 하나인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엠마오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엠마오는 항상 일어난다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일천한 지식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는 부활이전과 부활이후를 구분하여 논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교가 교부들에 의하여 정립이 되어가기 이전에, 역사적 예수가 부활 후 여러 사람들에게 단지 살아나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Show Up(나타나신)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과업을 Follow Up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감동적인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평신도들의 믿음과 예수 따르미로서의 다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925절 이후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역사적 예수로서의 마지막 순간 십자가상에서 모친 마리아,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인들 사이에 제자들 중 유일하게 자리를 같이 하였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잘 Follow Up 하여 Care 해주기를 부탁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흘 후, 예수님의 시신을 Follow Up 하여 수습하려고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사실을 역사적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의미 있는 연결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성경의 본문으로 돌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 앞에 직접 나타나신 사실에 주목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만 알고 낙심해 있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예수님이 어떻게 Follow Up 하셨는지 그 과정을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짚어보도록 하지요.

 

첫째, 예수님은 낙심한 두 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 해야 하는 첫 걸음은 다가가기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다가가지 않고는 서로가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을 등지고 지금까지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낙심한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나 또 신앙의 공동체에서 얼마나 다가가고 있나요? 주일날 교회 공동체에서 낯이 익지 않은 교우에게 먼저 인사하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문을 겸손하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동행함은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게 합니다. 설사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신 것이지요. 우리들은 새길 공동체에서 같이 동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함으로써 대화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당신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글로바가 대답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

 

어떤 연구에 의하면 글로바라는 이름이 성경에 두 번 나오는데, 앞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계실 때 어머니 마리아, 이모 다음에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동생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집안의 원로로 보이기도 하는데, 글로바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다윗왕가의 영광을 되살려주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나이 많은 제자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다음의 대화를 보면 이해가 될 법한 연구라고 생각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글로바가 다시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 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분들이군요.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나중에 이 두 제자는 이 순간에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었다고 고백하지요.)

성경말씀이 진정한 깨달음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가슴이 뜨거워짐을 오늘날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같이 공부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동행자의 권유에 적극적으로 응하시며 같이 음식을 대하시면서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이전의 삶 속에서 언제나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초대하는 사람이 바리새인이거나 세리장이거나 여인의 집이거나 가리지 않고 찾아가 그들과 함께 식탁을 같이 하셨습니다. 요즘 새길 살림에서 많이 애를 쓰셔서 밥상공동체의 시간이 평소에 잘 알지 못하였던 여러 교우들과의 친교의 시간을 더 많이 허락할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그 순간에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십니다.

 

그들은 서로 말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 엠마오 도상의 말씀은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상승작용을 하여 뜨거운 감동 속에 행동하게 되는 결과가 도출된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과 성장은 이러한 부활 이후의 예수님, 즉 그리스도의 Follow Up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Follow Up은 그 후 여러 제자들과 인척과 당대의 지식인에게 이어졌습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제가 유형별로 성경 상에 나타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예를 간단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엠마오에서 홀연히 사라지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Follow Up 하십니다. 누가복음 2436-49절에 보면 뜨거워진 마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엠마오 두 제자가,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을 증거 하고 있는 그때 그 장소에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24절에서 29절까지 기록된 대로 도마가 다른 열 제자들과 같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드레 뒤에 다시 Follow Up 하셔서 도마와 제자들이 같이 있는 곳에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을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도마로 하여금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도마는 회의와 의심이 사라지고 진정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신약 27권의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말씀을 주로 기록한 외경 도마복음을 집필하였고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요한복음 21장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제자들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시몬 베드로를 끝까지 Follow Up 하셔서 세 차례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며 당신에 대한 사랑을 묻고 그리스도의 양들을 돌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고 “Follow Me(나를 따르라).” 라고 하시며 새로운 삶을 허락하셨습니다. 진정한 예수 따르미가 되도록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7절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후 육신의 동생 야고보를 개인적으로 만나셨습니다. 장자였던 나사렛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집을 떠난 이후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떠안았을지 모를 야고보는 원래 형에 대하여 비판적인 유대주의자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를 Follow Up 하여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이 야고보를 변하게 하여 예수님에게 적극적으로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제자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 나갔습니다. 그는 나중에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지요.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여 진정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야 하는 예수 따르미로서의 사명을 야고보서를 통하여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Follow Up은 사도행전 94절에 나타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부르는 대목에서 절정에 다다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사도에 대하여서는 제가 더 이상 풀이가 필요 없는 장면이지요.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낙심한 사람 글로바 부자, 의심이 많았던 제자 도마,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스데반을 비롯한 예수 따르미들을 핍박하던 당대의 지식인 사울 등을 Follow Up 하여 만나시고 감동을 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뜨거움 속에 예수 따르미의 길을 가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새길교회가 강조하는 예수 따르미에 대한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하는데, 여러 해 전에 본 교회에서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신 바 있는 조혜자 자매님이 말씀증거 하셨던 내용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새길 공동체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예수 따르미의 삶을 집단적으로 체험하는 실험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하나님의 가족을 중시하셨는데 자기를 중심에 두고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주장하기 보다는, 주의의 초점을 다른 사람에게 두고 서로 배려하는 훈련을 하는 곳, 그런 곳이 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 교회의 강력한 힘은 말이나 이론을 통해서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예수 따르미 로서의 삶을 통해 서로에게 하나님 나라의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누가복음 1721절에 기술된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새길교회, 새길 공동체는 그러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 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 말이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그들의 마음속에 남겨두고 가신 것이지요. 뜨거움, 꺼지지 않는 불을 그들의 마음에 남겨두셨기에, 예수님의 떠나심이 떠나심이 아닌 계속하여 머묾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뜨거움은 능력이고, 헌신이고, 배려이고, 격려이고, 사랑입니다. 그 뜨거움이 공동체를 사랑하게 하고, 그 뜨거움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에 대한 계산을 멈추게 하고, 내 마음을 열어젖히게 합니다.

새길 공동체 여러분, 다시 뜨거움을 회복하십시다. 예수님의 Follow Up 속에서.

 

이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엠마오에서는 개인의 회복과 공동체의 회복이 함께 일어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이야기처럼 엠마오는 항상 일어난다고 한 말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일상을 떠나 엠마오의 도상에 서서 예수님과의 일치를 향하여 집중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고 이제까지의 무너진 삶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새길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동행하는 마음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예배와 밥상공동체의 식사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잃어버렸던 인간관계에 대한 회복과 공동체성의 회복을 느끼게 된다면, 엠마오 도상에서 Follow Up 하시던 예수님을 통하여 형성된 공동체성이 우리 새길 공동체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의 구역과 소모임을 활성화하게 되고, 교회 안의 작은 교회가 되어 교회를 갱신하고, 교회학교가 활기를 찾으며, 새롭게 변화되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오늘날 함께 살아가지만 공동체의 삶은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공동체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어 개인적인 상처와 고통들을 치유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Follow Up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Follow Up은 어떤 과정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고, 변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변화를 하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Remind 시키고 그들이 서로 돕게 만들며, 결국에는 우리의 노력이 형제자매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의 회의를 불식시키고 같이 변화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Follow Up은 우리 스스로가 발전해 나가는 것이 지속적인 과정임을 반증합니다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Follow Up 없이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랄 수 없다고 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 우리 새길 공동체에서 부활신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냉철한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들을 사랑하고 격려하여 한 사람도 실족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를 항상 Follow Up 해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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