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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변상욱

 

 

하나님의 날카로운 평화

(예레미야 6:13~15)

2017129일 주일예배

변상욱 형제(CBS 대기자)

 

[힘 있는 자든 힘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을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그들이 그렇게 역겨운 일들을 하고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였느냐? 천만에!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져서 시체더미를 이룰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내릴 때에, 그들이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 예레미야 613~15 -

 

 

1.

저는 이 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의 물음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20세기 초 한반도, 유학의 전통 속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왜 야소교에 매료되고 그리스도를 좇았나?’하는 것입니다. 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 핍박받는 민족의 고통과 설움 ... 구한말과 식민지 대한제국의 상황은 예수 당시의 식민지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민중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해방의 메시지, 구원의 복음이 문명 선진국 그리스를 넘어 침략국 로마를 무력을 쓰지 않고 사랑과 신념으로 정복하는 장대한 역사가 구한말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모두들 기독교 신앙 안에 민족의 자주독립, 봉건질서의 개혁을 이뤄 낼 역동적 힘과 비전이 담겨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건 그리스도가 그들의 길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한국 기독교의 무엇이 21세기의 지식인인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한국 교회의 무엇이 여러분을 모이게 하는 겁니까? 무엇이 그리스도의 제자된 여러분의 심장을 고동치게 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나를 날마다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합니다.” 라고 하면 정답이 될까요?

 

오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성경을 열어 읽어봅니다.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따르며 섬긴 기록으로 가득할까요? 아닙니다, 성서는 인간을 찾아 헤매는 하나님의 긴 여정이 기록된 책입니다. 구약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잘 섬긴 이야기는 아주 조금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초조하고 애타도록 걱정하신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인간들이 이룰 평화로운 세상, 그것을 실현할 곧고 바른 인간을 갈망하는 하나님의 간구를 성서의 기자들은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인간을 애타게 부르고 품으려는 하나님의 고뇌와 갈망이 성서의 사건마다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딴짓만 하고, 실천할 때에 망설이고 도망가고, 계시를 반복하고 야단을 치고 또 쳐야 겨우 한 걸음 따라나섭니다. 결국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

 

그리고는 민족의 정직함과 순결함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민족이 되어야만 구원과 해방을 하나님께 빌 염치가 있지 추한 죄로 가득한 위정자와 타락한 백성이 하나님께 무얼 요구할 수 있느냐고 질타합니다. 민족이 구원 받기 이전에 먼저 민족을 성결케하고 민족의 역사를 거룩한 제사로 바꾸는 것이 긴급한 사명이라 결의를 다집니다. 이런 웅장하고 서사적인 정언명령은 다른 종교, 다른 철학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움입니다.

 

어느 철학이 어느 종교가 민족과 민족사를 순결하고 정의롭게 만들어 앞에 내놓겠다 다짐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 다짐은 숱한 인간의 배신과 모멸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인간을 기다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쫓아다니면 떼를 쓰는 인간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숙명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2.

오늘 우리의 문제로 돌아가 보십시다. 무엇이 여러분의 심장을 고동치게 합니까? 아마 요즘은 이 땅의 역사를 밝힐 위대한 촛불이라 답할 사람들이 많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쪽은 촛불인데 태극기는 왜 반대편에 있는 걸까요? 모두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데 다 같이 한 곳을 향해 가지 않고 제각각 인걸 까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지만 사실 강물에도 역류가 있습니다. 강물에 역류가 있듯이 역사에는 반동이 있습니다. 가야할 올바른 역사가 저쪽인데도 이런 저런 이유와 속셈을 감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선동에 사리 분별을 실패해 깃발을 거꾸로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도 역류를 품고 흐르니 큰 강물이듯이 역사는 그런 반동까지 품고 흐르니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갈등 없고 분열 없는 잔잔한 평화는 평화가 아닐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평화는 진리와 정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한 쪽으로 물러나 조용히 사는 것이 평화입니까? 좋은 게 좋은 건데 적당히 중간쯤에서 타협하고 빨리 끝내는 것이 평화입니까? 우리의 나태함과 비겁한 변명을 칼로 잘라내고 하나님의 편이 되기 위해 싸우는 것이 평화입니까? 교회는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프게 느끼면서 그 아픔과 고통의 맨 앞에서 역사를 헤치며 갈 길을 터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모범이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인 이유입니다. 고요히 묵상하고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뛰쳐나가 저항하고 싸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 헤매고 계십니다. 누가 내 백성을 건져내고 위로하겠냐며 찾고 계십니다. 이 나라의 역사가 순결하여 만방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촛불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지켜가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 주십시오. 침착하게 잔잔한 어조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마음을 닫고 관계를 끊는 것은 자칫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악마처럼 여기는 죄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정치적 신념과 세계관이 다른 것은 죄가 아닐 수 있어도 내 이웃을 악으로 여기는 것은 죄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편이 승리해서 오는 게 아니라 반대편을 구원해야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둘째로 촛불의 시대에 광장에는 반동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때론 저울도 등장합니다. 남의 촛불을 하나씩 끄집어 올려놓고 무게를 재고 색깔을 따진 뒤 내쳐 버립니다. 개헌을 기준으로 같은 촛불이라도 내 편이 있고 네 편이 생겨버립니다. 역시 가장 심각한 건 다음 대통령으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서로의 촛불에게 색깔과 무게를 딱지붙이고 서로 갈라 버립니다. 촛불로 모인 사람들끼리 저울로 서로를 잽니다.

 

여러분, 진리는 저울이 아니라 강물입니다. “다만 너희는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마르지 않게 하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갈급히 권면합니다. 광장의 촛불은 그런 거대한 불꽃의 강으로 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꾸 저울이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바로 보십시오.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같은 이름만이 악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더욱 많은 것을 누리고 힘 센 자가 약자를 짓밟고 형제의 나라가 형제의 나라를 배신하는 잘못된 세계질서, 그로부터 시작해 우리들 안에 뿌리 내린 물신주의와 이기주의, 차별과 불평등 .... 이 거대한 모순과 탐욕이 악의 주인공이고 우리가 요즘 입에 올리는 그 이름들은 악의 조연들입니다. 어쩌면 그들도 헤어 나오지 못한 불쌍한 허수아비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무엇이 악인지 바로 보아야 하고 더 크고 웅장한 목표를 놓치지 말고 쫓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아니고 우리 이상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내셨고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간구함이 우리의 어깨에 내려와 있고 우리의 촛불은 하나님의 간절함에 이어져 있습니다.

 

촛불을 밝히십시오, 커다란 빛의 강물이 되도록. 그리고 그 빛이 흐려지지 않게 하십시오, 마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빛은 어둠을 증오해 물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엔 어둠마저 사랑해 끌어안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끌어안음으로써 지워지지도 잘라지지도 않던 어둠이 일렁이기 시작하고 그 일렁임이 커지면서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 크고 거룩한 촛불이 되십시오! 좋은 게 좋은 거에서 끝나지 마십시오. 형제를 악으로 삼아 촛불로 태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날카로운 평화가 언제나 여러분을 불안케 하고 뒤흔들어 놓도록 하십시오.

 

 

하나님 응답하소서,

많은 사람들이 비탄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

아이를 찾지 못한 부모들,

땅과 바다와 공장을 잃어버린 일하는 사람들,

어두운 미래로 낙심하는 젊은이,

지도자로부터 배신당한 시민,

형제애를 저버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이 나라 백성에 이르기까지

정의와 평등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응답하소서.

 

우리를 이대로 두지 마소서, 깨어 일어나게 하소서.

오랜 낡고 썩은 폐습과 악한 이기심으로 굳어버린

오늘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들게 하시고

두려움 없이 정의의 강물로 흐르게 하소서

 

우리 옆에 선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위로하게 하소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게 하소서

일상의 삶에서, 가족 안에서, 마을에서, 나라에서,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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