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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017.01.25 10:24

[2017.01.15] 모래와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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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모래와 소금

2017년 1월 15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습니까?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입니다.” (마태복음서 5장 13절)


오늘은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기총회가 있는 날입니다. 제게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원이 제 일터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문화원을 통해 새길교회 자매형제님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봄에 새길기독사회문화원 간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새길교회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저를 ‘간사’로 부르시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그럴 때면 미안해하시는데, 저는 그 호칭이 정겹게 느껴져 더 좋습니다.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그때 새길의 자매형제들은 교회 일과 문화원 일을 가리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사실, 문화원 간사로 일을 시작할 때는 교회 활동보다는 문화원 활동을 주로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곧 새길교회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구분할 수는 있지만 분리할 수는 없는 관계임을 알았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새길교회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의 ‘샘’이고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새길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개울’과 같습니다. 그런 새길교회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의 관계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오늘, 우리가 왜 새길교회를 세우고 문화원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교회와 문화원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켜갈 것인지를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만다라의 지혜와 자비

2005년 여름, 새길에서의 간사 생활, 교우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저 자신의 종교적, 신학적 관점을 진보적 혹은 급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웃종교에 대해 열린 태도였습니다. 종교신학이나 비교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에 대한 연구와 수행 프로그램이 정규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었고, 종교 간 만남과 대화도 활발했습니다. 특히 가난, 인종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교인의 대화와 협력이 돋보였습니다. 유니온에 있으면서 이웃종교인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깊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도전이며 기쁨이었습니다.

한 번은 티벳불교 스님 세 분이 학교에 오셨습니다. 며칠 동안 유니온의 제임스 메모리얼 채플에서 만다라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의 만다라는 불교적 우주관, 진리관, 인생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만다라를 만드는 것은 티벳불교의 중요한 명상 수행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신학교의 예배당에서 불자들이 불교의 영적 상징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유니온은 종교적으로 열려 있는 학교입니다.

며칠 동안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채플에 가서 스님들의 만다라 제작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스님들은 붉은 색, 노란 색, 초록색, 파란색, 흰색, 검정색 등 채색모래를 속이 비어 있는 길쭉한 작은 통에 넣고, 그 통을 살살 치거나 긁어서 모래가 조금씩 나오게 했습니다. 그렇게 새어 나오는 모래를 붓 삼아 큰 탁자 위에 만다라를 그려 갔습니다. 세 스님이 집중해서 만다라를 만드는 모습이 경건한 기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한 편에서 작은 불안이 일어났습니다. 스님들은 깊은 평정 속에 자연스럽게 만다라를 만들어갔지만, 지켜보는 저는 행여나 실수나 사고가 있어 만다라가 망쳐지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만다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색이 분명해지며 형체가 완성되어가는 만다라는 너무 아름다웠으니까요.

그런데 만다라의 완성은 역설적이게도 만다라의 해체입니다. 스님들이 며칠 동안 혹은 몇 달 동안 혼신을 다해 만다라를 만들고 나면, 지혜와 수행이 깊은 스님이 그 만다라를 도르제(금강저, 金剛杵)로 쓱쓱 긁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손이나 붓으로 모래를 휘저어 하나로 섞어 버립니다. 순식간에 만다라의 찬란한 색과 모양이 해체되는 것입니다. 이 의식의 의미는 아무리 수고한 행위라 해도, 아무리 화려한 아름다움이라 해도, 아무리 고귀한 진리라 해도, 그 무엇에도 결코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다라의 완성은 해체 과정을 하나 더 거칩니다. 하나로 섞은 만다라의 모래를 강으로 들고 가 흐르는 물에 부어 넣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다라의 모래 큰 복을 입은 것이기에, 그 복을 가깝고 먼 곳의 중생에게 나눠주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만다라 수행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와 애써 이룬 것을 아낌없이 뭇 생명과 나누는 자비를 배우게 해 줍니다.

유니온에 온 스님들은 새벽마다 우리 신학생들과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마침내 만다라가 완성되는 마지막 날, 명상 후 아침식사를 하며 스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그동안 수 없이 많은 만다라를 만드시고 또 없애셨잖아요.”
“그렇지요.”
“여러 날 동안 공들여 만든 만다라를 없앨 때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나요?”
“전혀요.”
“그렇게 아름다운데요?”
“없앨 걸 알고 만들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영원한 것은 없지요.”


Dismantling_Mandala_Kyeongil.jpg
<제임스 메모리얼 채플,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2007>


예정대로, 그날 오후, 스님들은 며칠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든 만다라를 해체했습니다. 그 해체의 과정에서 정말 모래 한 알 만큼의 미련이나 주저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색과 형태가 사라진 곳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만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색, 지혜와 자비의 한 색으로 돌아간 모래를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며 허드슨 강에 뿌렸습니다.

교회세상의 소금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래를 바라보는데 문득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소금'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습니까?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소금은 짠 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소금의 목적이 음식을 짜게 만드는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을 사용하는 이유는 음식을 짜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풍미를 더하려는 것입니다. 처음 어머니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울 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한 음식에 설탕과 소금을 같이 넣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단팥죽에 소금을 넣는 거죠. 아니, 단 맛이면 단 맛이고 짠 맛이면 짠 맛이지, 단 맛과 짠 맛을 왜 섞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의문은 음식의 맛을 보면서 풀렸습니다. 설탕을 친 후 소금을 조금 뿌리면 단 맛이 더 진해진다는 것을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금을 ‘조금’ 넣는다는 것입니다. 음식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짠 맛이 다른 맛을 압도해버리면 그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짠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은 적은 양으로도 음식의 감칠맛을 낼 수 있듯이, 제 맛을, 제 역할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은 적은 수로도 세상을 더 나은 곳,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을까요?

지난해 12월 19일, 통계청에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 종교 관련 통계가 종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05년 조사 후 10년 만에 한국의 최대 종교가 큰 차이로 불교에서 개신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 1058만 명 교세로 최대 종교였던 불교가 2015년에는 761만 명으로 약 300만 명 감소했고, 가톨릭도 예상과 달리 501만 명에서 389만 명으로 약 110만 명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만 유일하게 844만 명에서 967만 명으로 약 120만 명 증가했습니다. 개신교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최대 종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조사 결과는 그동안 개신교 교단들과 연합단체들이 체감해 온 교세 약화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의 원인을 ‘가나안 성도’ 현상이나 사이비 교파의 성장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고, 더 심층적인 분석도 필요하지만, 아무튼 개신교 교세가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를 개신교의 역사적 승리로 자축하는 개신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축하할 일일까요? 이런 물음을 갖는 것은 교회와 사회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개신교인이 그렇게 많이 늘어났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나아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헬-조선’이라는 비통한 표현이 자연스럽게 회자될 정도로 더 나빠졌습니다. 물론 개신교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졌다고 보는 것은 부당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시대에 개신교가 ‘세상의 소금’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아직도 개신교인 수가 모자라는 것일까요? 인구의 19.7퍼센트가 아니라 50퍼센트, 80퍼센트, 아니 100퍼센트가 개신교인이 되어야 교회는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될까요? 역사는 소금의 사명에서 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개신교인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16인이 개신교인이었습니다. 이름만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불붙은 시위에 종교인들 가운데 가장 많이 참여하고 가장 많이 체포된 사람들은 개신교인들이었습니다. 오산학교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은 3.1운동 전에 이미 〈105인 사건〉으로 4년 2개월 동안 호된 옥고를 치른 바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 참여를 주저하던 동료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만 천당에서 내려다보면서 앉아 있을 수가 있느냐?” 이승훈 선생은 3.1운동으로 다시 3년여의 수감 생활을 했고, 당시 체포된 33인 중 가장 늦게 석방되었습니다. 이처럼 고통의 시대에 개신교는 적은 양으로도 맛을 내는 소금처럼 적은 수로도 세상의 희망이었습니다. 개신교가 세상의 희망이 아니라 세상을 실망시키기 시작한 때는 오히려 수적으로 교세가 급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오늘의 개신교가 한국의 최대 종교라는 사실이 개신교가 최선의 종교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는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아무리 교세가 크더라도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을 변혁하는 능력을 상실한 교회는 아무데도 쓸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개신교의 최대 성공은 개신교의 최대 위기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늘의 말씀증거를 불교의 만다라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다라의 모래와 비슷한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소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다라의 모래와 복음서의 소금은 근원에서 서로 뜻이 통합니다. 둘 다 자신을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완성합니다. 자신의 색과 형태를 버리고 세상으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자비를 실천하는 만다라의 모래처럼 소금도 하얀 결정체로서의 자신을 녹여 없앰으로써 맛을 내고 부패를 막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시는 것은 자기정체성을 버리고 세상으로 녹아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버리고 비우고 변화시켜야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길은 가치 중심적, 실천 지향적 운동입니다. 그러니 교회와 문화원 모두 하려는 일이 많습니다. 지난주일 교회 공동의회를 통해, 오늘 문화원 정기총회를 통해, 그리고 다가오는 새길교회 창립 30주년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활동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 해야 할 일이 많을 수록 우리는 소금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곳,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이름과 빛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녹지 않는, 짠 맛을 낼 수 없는, 그래서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소금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 땅의 지옥을 부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름은 잊히고 빛은 사라져도 좋습니다, 아니, 우리의 이름과 빛이 없어져야 우리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대개 말씀증거 후 ‘응답찬송’은 말씀증거 주제와 관련된 것을 고르지요. 오늘은 새길에서 평소 잘 부르지 않는, 좀 ‘올드’한 찬송을 부르려고 합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입니다. 저는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전라도 어느 시골교회에서 할머니 곁에 앉아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곡조는 시골 할머니처럼 ‘올드’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사에 담긴 정신은 소박하고 진실하고, 그래서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모래처럼, 소금처럼, 자신을 해체하고 자신을 녹이며, 이름도 빛도 없이 감사하고 섬기며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 새길의 삶의 방식이며, 교회와 문화원의 목적입니다. 그 두렵지만 기쁜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가슴이 뜁니다. 고맙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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