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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경혁


새내기 소망: 60만 분의 2”

(민수기 14:30)

 

 

2015628일 주일예배

김경혁 형제

 

 

[나는 너희에게 땅을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들어갈 것이다.]

- 민수기 14:30 -

 

 

 

오늘 말씀증거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과 자매 형제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최근에 말씀증거를 하신 분들의 면면이 너무도 쟁쟁해서 평범한 제가 무슨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님 한 분 뿐이며, 그 예수님께 의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혹시 신학적인 오류나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새내기의 부족함으로 여겨 주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 자리에 자발적으로 서게 된 동기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 여러분들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셋째, 새길 교회 교인이면 누구나 말씀증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넷째, 새길 교회 교인으로 저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꼭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새내기 소망이라는 제목과 동기 및 말씀의 줄거리는 제가 출석한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자발적으로 말씀증거를 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출석하고 약 2개월이 경과되어 새길 공동체와의 데이트시간에 원래 다니던 교회에 대해서도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고 지금 새길 교회에 대해서도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거기에 걸맞는 경험을 두 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이 등록을 했는데도 정식으로 소개를 시키지 않더군요. 등록한 많은 분들을 소개하고 심지어는 처음 방문한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인사를 시키던데 왜 우리 가족은 누락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당시 예배위원장에게 자발적으로 말씀증거를 하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동체로부터 공식적인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경험하면서 이 모습이 우리의 현 주소요 공동체의 현재 수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증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 과정과 새길 공동체에서 적응하려는 저의 소망들을 비교하면서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생각해 보고 여리고성 과 아이성의 점령에 따른 교훈을 배우며, 가나안 땅의 이방 문화를 어떻게 극복하고 정착하게 되었는가 알아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 비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비전을 가슴에 안고 지금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가는 곳이기에 정탐꾼을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하여 12명을 보내게 됩니다. 40일 동안 정탐을 하고 온 후, 정탐꾼들은 민수기 1327-28절에서 그 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땅에서 난 과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한 요새처럼 되어 있고 매우 큽니다.” 라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이스라엘 백성은 네 부류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첫째는 탐지한 땅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10명의 정탐꾼입니다.

둘째는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민수기 147~9절에서 백성들을 이렇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탐지하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14:7)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14:9)

셋째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넷째는 지도자 모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을 광야에서 유랑하다가 모두 죽게 되고 딱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제에 있는 60만 분의 2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사람의 확률을 의미합니다. 새길교회의 리더들은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비교되는 새길교회에 주신 비전은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새길예수따르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새길교회에서 처음 예배드릴 때, “섬김을 받는 교회에서 섬기는 교회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닫힌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 발돋움하겠습니다.” 라고 적힌 글을 보고 무척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끊임없이 사랑의 손길을 뻗고 있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문제를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접근해 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똑같은 예수따르미인데 이천년 전 당시의 예수 공동체와 새길 공동체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3년에 불과해 새길 공동체 역사의 약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수따르미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계층도 다양해 병자, 과부, 창기, 세리등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예수 운동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존 예수, 즉 역사적 예수가 있고 없는 것이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구성원들이 어떤 예수를 바라보는가? 그 예수를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가고 있는가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저희 구역의 한 가정이 새길 교회는 인간 예수 즉 역사적 예수는 따르지만 하나님의 아들즉 신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믿지 않는 것 같다며 작년에 새길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나타난 현상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실제로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고는 있지만 공공장소 및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적 예수, 즉 인간 예수만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다(26:56, 14:50)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달아났는가?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볼 내용입니다. 그리고 새길교회도 교회이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자주 표현해야 이러한 오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새내기인 저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의 기본기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길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새길신앙고백에서도 믿는다는 말이 4회 이상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기초가 없으면 새길교회는 사회적 봉사 단체, 정치적 세력, 자선 단체 및 사교적 모임 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 및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라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믿음의 기본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은 기본기에 충실합니다. 세계 정상에 있는 프로 선수들도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기본기 훈련을 매일 매일 반복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본기가 흐트러지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96장에서 예수님은 누구인가를 잘 정의하고 있으며 각 절의 마지막에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의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 또한 편협하거나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기쁨, 생명, 평화 그리고 영광이 되시는 분이신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핵심 가치인 성령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너무 두려워서 달아났던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자의 길을 가는 예수따르미로 거듭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궁금하실 것입니다. 많은 신학적 이론이 있겠지만 부활 사건 이외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령의 역사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이것이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체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 체험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험입니다.

 

저의 첫 번째 소망은 우리 공동체의 비전인 예수따르미와 새길이 잘못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앙의 기본기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핵심 가치에 더욱 충실한 예수따르미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여리고 성의 꽉 닫힌 문과 성벽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텃세라고 유추해 보면 너무 큰 비약일까요? 국어사전에서 텃세의 뜻을 찾았더니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 또는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몇 가지 텃세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식당에서 아무 자리에 앉았다가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지정된 자리에서 식사를 했던 모양인데 새내기여서 그 사실을 몰라 당황했습니다. 최근 새길살림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밥상 공동체에서 여러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앞에 있는 형제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내 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뒤에 있던 분과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왕따로서 심각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이 가족과 같은 우애를 갖는 것은 좋지만 수많은 자매 형제들이 이 이유로 인해 공동체를 떠났다면 우리 스스로가 좀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 증거에 대한 문턱입니다. 사회 저명인사이거나, 신학을 공부한 사람 또는 누구의 추천을 받은 사람, 교회 리더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 또는 새길 교회의 오래된 교우만이 말씀 증거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말씀 증거의 자리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것을 순진하게 믿었던 제가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모양의 기득권, 끼리끼리 모임, 문턱 등과 같은 텃세는 새 가족들의 공동체 적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높은 성벽과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방법은 이성적,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고 믿음의 방법이었습니다. 미련하고 비상식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새 가족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만나는 텃세나 세상의 고난도 자신이 직접 부딪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혜로운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계란이 되어 바위에 던지면 깨지고 상처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도록 자리를 비켜 드리는 믿음의 방법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를 드리며 믿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러면 어느 사이 여리고 문은 열려 있고 성벽은 무너져 내려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이 성 점령을 위해 전진하다가 패전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교만과 아간이라는 사람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겸손과 순종의 모습입니다. 겸손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을 상기하지만 빌립보서 26-8절에서 읽어 보듯이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했습니다.” 라고 겸손의 극치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태어나신 그 겸손을 어찌 본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순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신 대표적인 율법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겉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기성 교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느라 이웃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 하고 새길 공동체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느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은 마음의 중심, 즉 내면의 문제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7절을 통해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율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텃세를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자신의 교만을 물리치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생활과 예배를 통해서 실천하는 것을 소망해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데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물리적인 정복과 함께 가나안 백성들의 우상 및 문화를 넘어서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지켜 나가야만 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던 형제가 작년에 새길 공동체가 주장하는 진리가 참 진리라면 많은 젊은이가 모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며 진심어린 기도를 하고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꾸짖으시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23:13) 만약 누군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위선자라고 한다면 부정할 뿐만 아니라 분노를 느끼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벅찬 가슴을 안고 새길 공동체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감격은 사라지고 냉정한 눈을 가지고 공동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맞습니다. 새 가족 여러분, 같은 울타리에서 2~3년 생활을 하다보면 제가 앞서 언급한 텃세와 여러 위선의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인데 이것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공동체에서 적응하는 과정에 경험하는 아픈 상처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우리도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성가대에서 처음 광고를 하면서 말미에 한 주간도 승리하며 삽시다!”라고 했더니 모든 성가대원들이 하하하하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성가대원들이 웃는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날마다 죽고(고전15:31) 내가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킨다.(고전9:27)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새길 교회 창립 당시의 처음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새길의 자매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꾸중하신 것처럼 지금 저와 여러분을 나무라고 계십니다.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4).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절박한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요한계시록 315-16절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갈렙이 바로 이러한 결단을 한 사람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 중에서 저는 갈렙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모세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지만 갈렙은 성경을 통해서 서너 차례 등장하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평범한 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기 때문입니다(14:9).

갈렙이 60만 분의 2라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과 같이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새길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저의 세 번째 소망입니다.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 만나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병 고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어린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으며, 세관장 삭개오를 보고 친히 집에 머무시면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걸림돌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장벽이 있었으며, 예수님과 어린이들의 만남에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또한 삭개오는 자신의 직업과 육체의 약점이라는 걸림돌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새길 교회를 찾은 새 가족 및 교우 여러분!

어느 공동체나 걸림돌은 존재합니다. 이 새길교회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연약함, 고통과 외로움이 엄습해 오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반드시 만나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내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의 걸림돌이 아니었는가? 깊이 반성해 봅시다. 우리에게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지붕을 뚫고 침대를 내려놓고자 말없이 침상의 한 모퉁이들 담당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 디딤돌이 된 사람들입니다. 비록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지식인이나 부자도 아니고, 공동체의 주역으로 나설 만한 신분도 아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새길 공동체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침대의 한 모서리를 들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저의 간절하고도 조그만 소망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길은 외롭고 쓸쓸한 길입니다. 새길,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려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 충만함을 주셔서 기쁨과 평안 속에서 그 길을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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