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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윤여성


예수의 훌륭한 군사

(디모데후서 2:3-10)

 

 

201528일 주일예배

윤여성 형제(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사답게 고난을 함께 달게 받으십시오. 누구든지 군에 복무를 하는 사람은 자기를 군사로 모집한 상관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은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깨닫는 능력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고,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3-10 -

 

 

케이블TV에서는 이미 상영되었던 영화를 다시 보여주지요. 간혹 볼만한 영화를 하는데, 그런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습니다. 원래 영화에 문외한이라 이 영화가 유명한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이 인사이드맨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월 스트리트의 커다란 은행에 은행 강도가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은행 강도들은 일반 은행 강도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복면을 하고 똑같은 복장으로 은행에 들어온 강도들은, 인질로 잡혀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복장으로 갈아입히고 은행 밖의 경찰들과 대치하게 됩니다. 이 때 협상전문 형사로 나온 덴젤 워싱턴이 등장하여 은행 강도와 협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은행 강도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즈음, 은행 강도는 급히 탈출을 위한 수순을 밟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동할 버스를 보내면 인질을 모두 버스에 태워 살려주겠다고 협상을 합니다. 이동할 버스가 대기하자 똑같은 복장의 인질들이 버스에 타게 됩니다. 그리고 은행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행에는 많은 돈이 있었지만 돈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은행에 강도가 들었을 때 은행의 소유주는 은밀히 별도의 변호사를 불러 은행 강도와 별도의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그 내용을 협상전문 형사인 덴젤 워싱턴에게도 비밀로 하며 별도의 협상이 진행되었습니다.

 

은행에 강도가 들었는데, 은행 강도가 떠난 뒤 은행에는 돈이 그대로 있다는 이 사실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 속에 포함된 은행 강도들을 구별하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은행소유주의 요구로 모두 풀려나오는 초유의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사 덴젤 워싱턴은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합니다. 자선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은행의 소유주가 과거 나치에 협조한 인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은행에는 기록이 없는 비밀보관함이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추적하여 이 비밀보관함에 무슨 비밀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추론하기에 이릅니다. 형사가 다시 수사를 시작하여 법원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드디어 그 비밀보관함을 열었지만, 보관함은 비어 있었고 은행 강도가 남긴 흔적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는 조금 전 상황의 장면을 다시 보여줍니다. 은행 강도 중 한 명이 은행 벽을 뚫고 3일 정도 숨어 있다가 조용해진 틈을 이용하여 은행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 때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은행으로 막 들어온 형사와 현관에서 이 은행 강도는 부딪칩니다. 형사는 그가 은행 강도인 줄은 전혀 모르고 스쳐 지나갑니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허탈해진 형사, 덴젤 워싱턴이 집에서 기다리는 애인을 보려고 집으로 돌아와서 양복을 벗다가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됩니다. 형사의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떠오릅니다. ‘은행 강도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약혼자가 있고 반지만 있으면 결혼할거라는 농담을 했던 장면이 떠오르며 오늘 은행에 들어가면서 현관에서 부딪혔던 사람이 범인이고, 그가 그 때 자신의 주머니에 다이아몬드 하나를 넣었다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그러면서 덴젤 워싱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2차 대전 중 친구였던 유태인 가족이 은행소유주에게 맡긴 많은 재산을 이 은행소유주가 가로챘던 것입니다. 상당수의 유태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모든 재산은 자신의 재산이 되었고 그래서 은행의 소유주가 되어 많은 자선을 베풀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인간의 탐욕이 가득 차있었지요. 은행 강도는 사실 친구였던 유태인의 자손이었습니다. 은행에 들어가 자신의 부모가 맡겼던, 그 비밀보관함에 있던 다이아몬드 뭉치를 되찾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돈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인간을 겉모습으로는 절대 제대로 볼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것과 세상 사람들의 판단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랑 직접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이야, 세상이 어떻게 말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랑 직접 관계를 맺고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내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브리서 137절에도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느냐, 이득이 되지 않느냐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진리대로 사느냐의 기준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출세의 길에 들어가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좋은 사람이고, 이득이 되지 못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니까요. 대체로 세상에서 나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다시 보니, 참 그리스도인도 생각보다는 많았습니다. 진정한 예수 따르미는 세상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해야겠지요. 왜냐하면 세상은 이득에 의해 판단하니, 진리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 계속 우리에게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마라!, 세상의 칭찬을 받을 생각을 마라!’라고, 왜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야고보서 44절에는 심지어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까지 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다가는, 세상의 칭찬에 춤추다가는 하나님의 진리를, 공의를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이겠죠. 세상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는 무관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클 테니까요. 물론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사람을 판단할 때 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최소한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직접 보고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훌륭한 군사란 어떤 사람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인사이드맨이란 영화에서처럼 겉보기에는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는 은행소유주는 예수님의 훌륭한 군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마음이 자신을 위한 욕심, 탐욕으로 가득 차있는 자는 예수님의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없겠지요. 오늘 4절에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고 하신 뜻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저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자기만 아는 자’, ‘자신의 이득에만 얽매인 자’, ‘자신을 위한 욕심으로 가득한 자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는 결단코 예수의 훌륭한 군사가 될 수가 없겠지요. 실제로 은행의 소유주는 아마도 지난날의 잘못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자선을 베풀었겠지만, 이것으로 예수의 훌륭한 군사가 될 순 없겠지요. 고린도전서 133절에,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많은 자선을 베풀 수는 있지만, 그 중심에 내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이것을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남을 위해서 베푸는 그 기쁨을 모르는 자일 테니까요. 아무리 많은 자선을 베풀어도 이런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없겠지요. 자기 자랑에 빠져 있을 테니까요. ‘자기 자랑을 하는 자는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우리가 남을 위해 선을 베풀 때, 참으로 조심해야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왜 군인으로 비유했을까요?

예수를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인은 훈련된 자입니다. 훈련된 자란 고난과 고통을, 교육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란 이렇게 훈련되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란 뜻이겠지요.

 

진짜 사나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연예인들이 실제 군대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지요. 그런데, 훈련하면 생각나는 것이 군사교육 중 분대전투입니다. 이 훈련은 7~9명의 분대원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고지를 점령하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을 하면서 배운 점은 한 개인의 특출한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7~9명 분대 전원의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적의 저지선을 뚫고 한 명이 고지를 점령하더라도 그것은 점령한 것이 아니라고 판정합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 출발선에서 그 분대는 다시 시작을 해야 합니다. 전체 대원이 비슷하게 고지를 점령해야 실제로 점령한 것으로 판정을 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 전투에서 한 두 명만 고지로 들어오고 나머지 대원은 뒤처져 있으면 모두 전멸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사훈련은 개인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 대원의 능력이 함께 향상되어야만 실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고 훈련을 받게 합니다.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는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영적 교훈 같지 않으십니까? 공동체 전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 혼자 고지에 도달해보아야 점령은커녕 죽기 십상이라는 뜻이지요. 이 생각이 들면서 떠오르는 책 제목이 있습니다. 전우익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입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저는 제 인생 중에 여러 번 독특한 체험을 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장교훈련 중에, 특히 유격훈련에서의 체험이었습니다. 유격훈련은 일부러 어렵고 힘든 과정을 만들어 그 극한 상황에 대처하고 그 과정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사실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훈련받는 각 개인은 상당히 이기적인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화장실에서 혼자 빵을 먹었다는 이야기, 모자를 분실하여 훔쳤다는 이야기 등등, 군대생활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셨고 경험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마도 어쩌면 세상살이보다도 더 이기적이 되는 집단이 훈련병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장교훈련 도중 2주씩 훈련병 중에서 중대장, 소대장, 향도 등 임무를 부여하여 실제 군대의 편제대로 역할 분담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제가 유격훈련기간인 그 주에 중대장후보생이 되었습니다. 유격훈련은 가장 힘든 군사훈련이기에 모든 훈련병이 최고로 이기적이 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제가 중대장후보생이 된 것입니다.

 

유격훈련이 시작되는 날, 우리 중대는 야간에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하여 유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벽이 되어서 영천 근처 화산유격장이라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산의 정상은 보이지 않고 바로 위에서 올라가는 전우의 엉덩이만 보일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디쯤 올라가는 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자욱하여서 더욱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하간 그 산에 올라가 아침을 먹고 머무를 막사를 배정받아 각자의 군장을 정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유격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유격대장이라는 사람이 연병장에 우리 중대원을 모아 놓고 한차례 훈시를 한 뒤, 일종의 환영식을 했습니다. 환영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군기가 빠졌다고 중대원 전원에게 연병장을 뛰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선착순으로 해서 먼저 온 몇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은 다시 뛰도록 했습니다. 몇 번 쯤 연병장을 도는데, 제 눈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뛰는 훈련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그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생각을 잘 못하는데, 그때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아마도 중대장후보생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누가 툭 치면서 보낸 것처럼 맨 뒤에 처진 그 훈련병 뒤에서 천천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뛰는 시늉만 했지요. 이 모습을 본 우리 중대의 소대장후보생들이 저와 같이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유격대장은 길길이 뛰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연병장 도는 것은 멈춰지고 저와 소대장후보생 3명은 단상 앞으로 끌려가 얼차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유격대장은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일장 훈시를 하고는 그 날의 연병장사건은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우리 중대는 중대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열심히 유격훈련을 받았고, 서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낙오자가 한 사람도 없이 무사히 유격훈련을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대 훈육대장은 상당히 기뻐서 유격훈련을 마치고 유격장을 떠나기 2시간쯤 남았을 때, 중대 전원에게 예외적으로 회식을 허용했습니다. 유격장에서의 회식이래야 고작 각자 1~2천 원씩 걷어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오고 오락을 하는 거지요. 오락을 시작한 지 15분 만에 회식은 끝났습니다. 그 이유는 감찰반이 유격훈련을 잘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격장에 왔다가 우리 막사에 불시에 들르는 바람에 끝이 났습니다. 아마도 우리 훈육대장은 감찰반 장군에게 혼이 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유격장을 떠나기 전, 훈육대장은 다시 나타나 얼굴이 상기된 채, 우리 중대가 아무 사고 없이, 낙오자 없이 모두 유격훈련을 잘 받았다고 격려하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군대이야기는 하는 사람은 자신의 체험이기에 재미있지만, 듣는 사람은 지루한 이야기지요. 남자들에게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미 데이트는 끝장난 것이라고 여자 분들은 말합니다. 저는 군대이야기는 했지만 축구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하간 저는 군대훈련소라는 가장 이기적인 인간의 집단에서도 동기만 부여된다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장교훈련에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입니다. 실제 이런 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한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생활 중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군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예수를 따르는 자를 군인으로 비유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으뜸 이유가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사회에서 그 누구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고, 손해 보려고 하지 않을 때,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희생하며 그 일을 하는 자,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하는 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세상 삶의 방식을 등지고,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 이런 분들이 예수의 훌륭한 군사요, 예수 따르미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분들이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세상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게 되어 있으며, 왕따를 당하게 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겠지요. 세상의 이득, 즉 탐욕을 막는 일이 공의가 아닌가요? 어쨌든 우리가 예수 따르미라면 이런 일에 결단하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해야겠지요.

 

그런데 이런 일에 나서려면 단순히 생각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잘못된 일을 보고, 또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로 끝나면 안 됩니다. 생각이 들었다면 그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합니다. 이런 상황들, 어려운 고난들을 계속 만나면서 훈련을 받아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세상 살면서 말로 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이 보지를 못했습니다.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가는 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하는 사람들은 무섭지가 않습니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성경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히브리서 1136절에서 38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훌륭한 군사요, 예수 따르미가 아니겠습니까?

 

작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황청에서 ‘15가지 질병을 앓고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의 훌륭한 군사가 되려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몇 가지 살펴보면,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뒤에서 말하는 험담은 사탄들이나 하는 짓이다.’, ‘전체보다는 이너서클 즉, 파벌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암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자기비판과 자기 갱신, 자기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들로, 믿는 자라는 우리도 정신차려야할 사항들입니다. 특히 신과의 만남을 잊는 영적 치매 상태라는 말씀은 예수의 훌륭한 군사가 되려는 우리 자신에게 곰곰이 되물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예수의 훌륭한 군사는 반드시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를 따르는 자는 편히 살지 못하고 고난이 반드시 뒤따를까요. 이 해답은 히브리서 12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 즉, 교육과 훈련을 시키시는 이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신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후에 이로 인하여 연단된 자는, 즉 훈련을 받은 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고 세세히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걷게 하고, 고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는 자가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처럼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기쁨을 누리는 예수의 훌륭한 군사인 예수 따르미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욕심들을 털어내시려고,

우리를 흔드시고 훈련받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되어 훈련을 잘 받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예수의 훌륭한 군사가 되게 도와주소서.

 

진정 예수 따르미로서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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