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2019
2019.06.13 10:54

[2019. 06. 02] “녹색은총”

(*.217.33.156) 조회 수 3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이경옥



녹색은총


 

201962

공동체 예배



숨길과 함께했던 지난 2_ 이경옥 자매

 

버려지는 것들이 어마어마하니 저까지 보태지는 말자는 생각에 물건을 사면 못쓸 때까지 쓰는 정도, 그럼에도 플라스틱 생수는 잘 사먹는 모순덩어리인데, 그런 제가 어떻게 여기에 섰냐고요? 제비뽑기를 잘못해서 숨길 팀장이 됐기 때문입니다. 퍼포먼스도 했던 작년에 비하면 이 정도의 미션은 수락해야겠기에 받긴 했는데, 그동안 여기 설 것을 생각하면 소화도 안됐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환경 전문가도 아니니 숨길 활동에서 느꼈던 얘기를 홍보의 의도도 담아서 해보겠습니다.

 

2년 전 11월 셋째 주에 숨길에서 현충원 은행나무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 주보에 실렸습니다. 걷기에 막 흥미가 생기던 무렵인지라, 또한 한 번도 안 가본 현충원도 이참에 가보고자 참여한 것이 숨길과의 인연의 시작입니다.

 

첫 참여라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된 그날의 나들이.... 때마침 유난히 높고 푸르렀던 하늘과 투명하고 상쾌한 대기아래서 현충원은 늦가을의 정취를 우아하게 드러냈습니다. 부여된 인생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은 수많은 이들을 대신하겠다는 양, 그곳의 나무들은 너나없이 화려한 삶을 운치 있게 마감하고 있었고, 제 때를 맞은 은행나무만이 절정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자기 완결의 삶을 살아가는 나무들과 전혀 그러지 못했던 묘역의 주인들....

 

이 묘한 대비에 경건과 침묵의 시간을 보낼 법도 하련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절정의 은행나무에 압도되어 은행나무만 보였던 거죠. 어찌 보면 온갖 사상과 주의 주장과 의미가 집약된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오히려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손에 손잡고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주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숨길은 셋째 주 예배 후에 가까운 산을 찾아가 걷습니다. 2년간 참여했더니 가벼운 산은 거의 다녔습니다. 많이 다녔지만 한 곳 한 곳의 산세와 풍경, 함께했던 이들이 또렷이 기억되는 건 그만큼 그 시간들이 좋았기 때문일 겁니다.

 

왜 좋냐구요! 한적한 산길을 걷노라면, 그래서 나무와 꽃과 새와 하늘에 눈길이 머물다보면 빠른 템포의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감각들이 벗겨지고 새로운 감각, 아니 잃어버렸지만 오랫동안 그곳에서 나를 기다렸을 감각이 나를 이끄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이 느낌은 경험이 더해질수록 몸 깊숙이 파고들어, 이제는 도시에서 길들여진 감각이 부차적이고, 새롭게 찾은 감각이 주인이 돼가는 걸 느낍니다.느리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감각인....

 

또한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온전히 걷는 행위만 남게 됩니다. 무념무상의 경지라고 하나요! 하나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느낌, 저는 몰입하는 느낌이 좋습니다. 어린 날에는 만화였다가 이어 소설, 영화 그리고 드라마로 옮겨간 제 몰입의 역사는 마침내 걷기와 등산, 그리고 농사의 경로를.... 덕분에 체력도 좋아져서 삶에 에너지가 샘솟고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많은 분들이 차 때문에 숨길 걷기에 동참하지 못한다 하십니다. 어느 날 일회용 밥그릇을 과감하게 치운 것처럼 매월 셋째 주는 과감하게 차를 치우고 숨길과 함께하기를 권유합니다. 일일청한 일일선(一日淸閑 一日仙). 하루라도 마음이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 동안은 신선이라.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인데 산길을 걷다보면 정말 이 마음이 돼버립니다. 아니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을 살아갈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숨길에서 열심을 내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퇴직 후 6년째 강화도에서 농사짓고 계시는 손경호 선생님의 농사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감자, 고구마 파종과 수확. 이렇게 4번 농사 나들이를 갈뿐인데 과분한 농산물을 받아오고, 매번 진수성찬을 대접받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고구마를 심으러 갔습니다. 며칠 전에 내린 비 덕분에 금방 수월하게 마치고는 진수성찬에 막걸리 한 잔 곁 드리며 놀다왔습니다. 한 두 시간 농사하고 새참 먹고, 한 두 시간 농사 후 점심 먹고, 뭐 이런 식입니다. 농사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처음엔 놀듯이 장난하듯이 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못 숙연합니다.

 

제겐 첫 농사였던 작년의 감자심기에서 느낀바 컸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 심었는데, 진흙땅인 걸 유념하지 않고 마구 밟아댄 것이 그 땅을 시멘트처럼 굳게 했습니다. 수확하러 갈 때 20킬로짜리 박스를 두개나 준비해서 의기양양하게 갔건만....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캐는데 계속 메추리 알만한 감자만 나왔습니다. 아닐 거야 하면서 계속 캤지만 어쩌다 겨우 계란만한 감자만 보일뿐.... 그 비를 맞아가며 질척거리는 진흙탕에서 힘겹게 심었는데.... 농사에 흥미가 확 떨어졌는데 다행히 다음 고구마 수확이 확실하게 보상을 해줘서 흥미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저희 잘못이 보였습니다. 생명체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우리 형편 우리 스케줄이 우선이었던 태도가요. 올해는 땅과 식물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배려하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습니다. 일 년 만에 모두들 의식이 일취월장한 셈이지요. 아마도 주인장은 우리들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신 듯합니다.

 

고구마 심을 날이 다가오는데 비가 안와서 땅이 메말랐습니다. 물을 줘가며 심어야 할 상황이었고, 이는 두세 배의 노동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 상황을 묵묵히 수긍했습니다. 메마른 땅에서 힘들어할 여린 고구마 순에 마음이 간 것이지요. 하지만 다행히 단비가 내렸고, 심고 이틀 후에는 꿀 비가 내렸습니다. 이처럼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비 때문에 벅차보기는 생전 처음입니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은 살아있음의 징표이고, 관념이 아닌 실제요,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감성일겁니다.

 

고구마 순을 심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간혹 살랑이는 바람에 풀냄새와 꽃내음이 실려와 코끝을 간질입니다.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여 심습니다. 그렇게 심다보면 내가 고구마를 심는 것인지 고구마가 나를 심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 옵니다. 농사는 한편 번잡한 생각을 땅에 묻는 행위 같습니다. 이것이 힘이 되어 또다시 번잡한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게 합니다.

 

새길에 와서야 생태영성이라는 단어를 접했고 숨길에서 관련된 책을 읽고 나눈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이나 말씀을 통해서 보다는 숨길활동을 통해 관념이 아닌 경험으로, 이 단어의 의미를 체득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곧 영성이라는 깨달음을요.

 

산길, 숲길을 걷노라면, 하늘의 이치인 공생과 조화의 의미가 들어오고 제안의 모든 벽도 허물어짐을 느낍니다. 자족과 소박함에서 길어 올려도, 자신에게 부여된 힘을 믿고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도, 자리한 그 자리에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 생명의 신비를 목도하고 그에 고무되는 삶은 헛헛함이 기웃거릴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를 메워가는 것은 경외와 감사입니다새길로고.jpg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1105 2019 [2019. 11. 03] "하늘의 시민권" file 2019.11.08 김용덕
1104 2019 [2019. 10. 27] “일상의 삶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file 2019.11.01 김석환
1103 2019 [2019. 09. 15] “관상기도: 하나님 품에 안기는 신비의 여정” file 2019.09.19 이진권
1102 2019 [2019. 09. 08] “홈 커밍” file 2019.09.10 권진관
1101 2019 [2019. 08. 18] “율법의 끝마침과 완성” file 2019.08.21 김이수
1100 2019 [2019. 08. 11] “1945년 여름, 2019년 8월” file 2019.08.14 서광선
1099 2019 [2019. 08. 04] "녹두꽃" file 2019.08.08 손경호, 임금희
1098 2019 [2019. 07. 28] “딛고 선 현실, 향하는 시선” file 2019.07.31 김성수
1097 2019 [2019. 07. 21] “도반(道伴) - 순례자(巡禮者)” file 2019.07.26 김용덕
1096 2019 [2019. 07. 07] "여행" file 2019.07.23 신영환, 우신영, 정선자
1095 2019 [2019. 06. 30] “침묵하는 하나님, 아파하는 마음” file 2019.07.12 김희국
1094 2019 [2019. 06. 16] “창틀에 걸터앉은 청년” file 2019.06.19 남기평
1093 2019 [2019. 06. 09] “소통하도록 이끌며 희망과, 능력 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file 2019.06.13 최만자
» 2019 [2019. 06. 02] “녹색은총” file 2019.06.13 이경옥
1091 2019 [2019. 05. 26] “칼과 귀, 치유와 평화 : 평화신학과 신앙을 위하여” file 2019.05.31 한완상
1090 2019 [2019. 05. 12]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file 2019.05.15 김상봉
1089 2019 [2019. 05. 05] “가족” file 2019.05.14 윤소정
1088 2019 [2019. 04. 28] “거룩한 수고자들” file 2019.05.03 송진순
1087 2019 [2019. 04. 21]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file 2019.04.26 박민수
1086 2019 [2019. 04. 14]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file 2019.04.16 박요셉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6 Nex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