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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2.11.15 18:40

[2012.11.11] 너의 담을 허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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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이상익

너의 담을 허물라

(에베소서 2:14)

 

2012년 11월 11일 주일예배

이상익 형제

 

 

1

 

명예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자에겐 치명적이다. 잃은 명예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명예를 잃어버려도 이것을 제자리 돌려놓는 것은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언론에 한번 나면 나중에 무죄 받고 진실이 밝혀져도 그건 이미 모든 이에게 손가락질의 낙인을 찍힌 후이고, 모든 이들은 담을 높이 쌓고 그를 맞이하지 않는다.

 

본인 죄로 명예를 잃든지 억울한 누명으로 명예를 잃든지 간에 결과적 차이는 별 다름없는 것 같다. 또한 그 불명예가 어느 친일파 할아버지의 묘를 손자가 파서 강에 던져버린 것을 보면 후손까지 그 불명예가 대물림 되어서 붙어 다니는 것 같다.

 

그런데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명예의 멍에를 지고 산다면 그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할까?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만나는 사건이 있다. 앗수르와 유대인의 혼혈로 생긴 민족이 사마리아인인데 유대인들은 이들 혼혈아를 잡종 취급을 했다. 그러다가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바벨론의 포로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다. 이들이 성전 재건하려하는데 사마리아인이 성전 재건을 방해한다. 이 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민족의 반역자로 보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보다 사마리아인을 더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500년 간 서로 상종도 아니 한다. 상종이 싫어서 유대에서 갈릴리 갈 때도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빙 둘러 요단동편으로 우회해서 가는 새 길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만약,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지내면 노예로 팔아버려도 사회가 허용했는데 이것은 두꺼운 담장 속에 완전 가둬 버리는 것이고 무서운 낙인을 찍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사마리아인 인식이었고, 유대인들은 깊은 담을 쳐 놓고 저들을 상종도 하지 아니했다.

 

유대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담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여자에게 덧씌워진 차별이란 담이다. 예를 들어 유대남자들은 하루 3번 기도문을 반복하는데 마지막 기도문의 감사기도에 “하나님 내가 이방인과 노예와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저주인 것이다. 여자는 숫자에도 넣지 않았다(오병이어 5000명 남자만 계산). 남자와 여자간의 엄청난 장벽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여자가 남편과 동등하다고 말하면 노예가 주인과 동등하다고 말 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하였다.

 

19세기까지도 백인들은 기독교를 독점하고 흑인들에게 교회 담장을 쳐 놓고 출입을 막고 복음전파를 막았다. “감히 깜둥이가 어딜 교회 나오느냐” 하고 했던 것 이다.

 

우리역사에도 아픔이 있다.

 

조선당국은 원나라에 바치던 공녀는 귀한 귀족의 여자들만 골라 바쳤다. 공녀모집이 저조하자 13-16세 여아들은 국가허락 없이 결혼을 못하게 조치를 취한 후 공녀로 보냈다. 그 후에도 청나라에 수많은 부녀자들이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그리운 고국을 피투성이 되어 돌아 왔건만 고향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어데 감히 더러운 몸으로 발을 들여 놓느냐는 것 이었다.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 했다는 게 이유 중 하나다. 아니 이게 이 여자들의 죄인가? 서러워 울고 하늘 무너져 자살이 속출했다. 이들을 두고 뭐라 하는가? “환향녀” 이다. 나는 어릴 때 “저런 화냥 년, 더러운 년”소리를 들었는데 성장하여 그게 환향녀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았다. 아무런 죄 없는 조선의 어린 여자들을 사회는 받아주지 않고 이마에 낙인을 찍었고, 그 담은 너무 높아 무너지지 않았다. 이 여자들의 명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한 많은 여인들의 역사와 비슷한 산물로 담장 저쪽에 갇혀서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있는 한 여인, 남편 6명과 살았어도 고독과 소외의 외로운 담장에 갇혀있는 사마리아 출신인 한 여인 앞에 예수가 섰다. 이스라엘은 일찍 일을 하다가 정오 때부터는 모두 그늘에서 쉰다. 왜냐하면 너무 더워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은 아무도 오지 않는 무더위가 최고조인 그 시간을 일부러 선택하여 눈을 피해 우물가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다. 예수께서 그 몹쓸 쓰레기 취급 받는 여인과 대화를 하신다. 과히 인종차별, 남녀차별의 두 장벽을 이렇게 허물고 인간해방과 자유를 공포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우리는 아직도 그 누군가와 벽을 쌓고 있다.

 

때론 부부이면서, 때론 이웃 간에 간에, 때론 어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때론 진보니 보수니, 종북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우리에게 둘려 쳐진 장벽이 사방 곳곳에 놓여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전라도는 전라도일 뿐 이고, 경상도는 경상도일 뿐 이고,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 이고, 기업주는 기업주일 뿐이다. 어디 감히 여자가… 여자는 여자일 뿐이다. (세계135개국 중 성차별 지수 통계를 보면 한국은 108위이다.)

낙인찍히면 끝이다. 사마리아인으로, 화냥년으로 상징되는 낙인을 찍기 위해 우리는 쇠도장을 가슴속과 손아귀에 감추고 있지는 아니한가?

 

우리는 완고한 담을 쌓고, 나와 다른 사람과, 나와 다른 생각과, 나와 다른 출신에 대해 철옹성 같은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대선에 정말 모두를 아우르고 우리사회에 깊고 공고하게 둘러쳐 진 장벽을 허물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우린 기도해야 한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철천지원수 지간의 남북의 장벽도, 평행선인 기업가와 노동자간의 장벽도, 종북이니 반북이니, 친미 반미니 이분법의 색깔로 이 사회를 절단 내려고 하는 바로 그 장벽도, 그래서 그 모든 것들에 덧씌워서 천하보다 귀중한 인간존엄을 말살시키려는 장벽들을 허물어야 한다. 예수님이 짐승 취급받는 한 여인을 사람으로 대접했던 것처럼…

 

전라도 출신이라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경상도 출신이라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동남아에서 시집왔다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일일노동자라 것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그 사실 때문에, 뭐 뭐 뭐 때문에 이마에 낙인을 찍고 명예를 빼앗긴 채 지금도 저 높은 담장에 갇혀서 사마리아여인으로 환향녀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나 우리 자매형제님, 우리는 어떠한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이 땅에 놓여있는 저 완고한 담들을 허물어야한다.

 

특히 우리 민족과 이 사회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 그 동안 이 분단의 장벽을 악용하여 무고한 이들을 쫓아내고, 재산 뺏고, 감옥 보내고, 죽이기까지 한 저 남북분단을 악용하고 정치에 이용해 먹는 악마 같은 담장을 허물고 사마리아 여인 앞에 선 예수가 되어야 한다.

 

영화 광해가 1100만 명 넘고, 대종상 15개 부분을 휩쓸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실제 왕과 외모가 너무 닮아 잠시 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광대인 가짜 왕 광해는 세금제도를 개혁하고, 명나라 파병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보잘것없는 궁녀의 아픔까지도 보살피고, 가난한 백성을 위한 ‘진짜 왕 다운’모습을 보여줬고, 끝내는 다시 천민으로 되돌아갔다. 영화 광해를 보면서 누구나 상상했을 것이다. 진정 백성을 생각하는 진짜 왕, 천민 하선 같은 자가 진짜 왕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번 대선에서 진짜배기 광해가 뽑혀서 국민들에게 드리워진 담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인을 만나 대화했다는 것은 모든 담을 허물겠다는 의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준 사건이고 우리 예수따르미들로 하여금 이 사회 곳곳에 쌓여있는 거짓과 위선과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저 담장을 허물라는 명령을 몸으로 보여 주시면서 실천을 촉구하는 메시지라고 믿는다.

 

십자가의 능력을 확신하는 우리 예수따르미들이 가는 곳마다 거짓의 담장이 무너져 내리는 일들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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