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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2002.01.16 23:45

[1995.05.28] "생명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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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권진관

"생명의 빵"

(성서본문: 요한복음 6장 57-59절)

 

 

1995.05.28

권진관 형제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

- 요한복음 6장 57-59절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말씀의 구성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생명의 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생명의 빵이란 주제로 말씀드리면서 빵, 먹는다, 마신다, 피, 그리고 나눈다는 상징들이 우리 공동체 교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 지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6장 55,56절에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그리고 57절에는 "나를 먹는 사람은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곧 영생할 것이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 빵이라든가(우리의 것으로는 밥이겠지요), 먹는다는 말씀은 매우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의 말씀만큼 신비와 상징이 가득한 구절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우리 기초공동체 청년들하고 같이 나누면서, 여기에 정말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양식이 되는 말씀이 있다라는 것을 보면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그 때 나눈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리고 그후의 성찰을 보태서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기에 빵이라는 것, 먹는다는 것에는 이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먹힌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희생을 상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어야 영생한다는 인자라는 상징도 원래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민족에 의해서 탄압을 받고 잡혀가고 죽어 가는데, 그런 사람들을 도대체 하나님은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의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고 모든 세상의 죄를 심판하게 할 것이다라는 것이 다니엘서의 말씀입니다. 그 인자사상이 바로 예수님을 표현한 것이라 하여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를 인자라고 했습니다. 이 인자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마다 그들은 영생할 것이다, 그들은 내 안에 살 것이다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인자사상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상, 메시아의 사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메시아나 그리스도는 모두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되는 데 그것은 고난받는 자로서 상징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빵의 상징과 인자의 상징이 연결되면서 자기 자신은 없어지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의 힘이 되어 주고, 자기 자신의 희생은 곧 다른 사람들의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빵이라는 말은 물론 정신적인 상징이 있습니다만 우리를 영생으로 죽지 않게 인도한다는 내용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빵과 양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몸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지탱하려면 역시 양식이 필요합니다. 빵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음료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우리는 공동체,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즉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빵을 먹으면서 자란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즉 공동체라는 몸의 상징과 빵의 상징, 먹는다는 상징과 그것의 의미인 자기자신의 희생이 서로 연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하나의 참여적 공동체로서 모든 신앙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며,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사제들로서 예언자적 사회적 역할을 다 감당하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왕적인 역할까지 감당하며 모든 일들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평신도의 참여적 공동체에 참여하게 하는 내용을 가진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빵이라는 것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빵을 독점할 때 그것은 생명의 원천을 독점하는 것이요 자기자신만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이 빵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경우도 하나의 빵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경제적으로 몇몇 사람들이 물질을 독점할 때 또한 빵이 독점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우리가 신앙 공동체 속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정신적인 빵이 독점 당할 때 그것은 또한 잘못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만 빵이 독점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상징적 의미라 생각합니다. 김지하씨의 시에 밥이 하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한사람이 차지할 수 없듯이 밥도 마찬가지로 한사람이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밥은 나누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김지하 시인의 밥을 나눈다는 상징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교회가 어떠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세 가지로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개신교가 어떻게 이 빵이라는 상징, 나눈다는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주교제를 중심으로 한, 또 제가 몸담고 있는 성공회와 같은 주교제를 중심으로 한 구교식 교회는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또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기초공동체는 어떠한 방식으로 빵(밥)을 나누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밥이라는 상징, 빵이라는 상징은 하나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인 생명의 원천으로 확대 해석해야 합니다.


  개신교의 경우를 보면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빵이라는 것입니다. 빵이 개인에게 집착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개인중심의 신앙 속에서 빵의 독점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몇 목사님이나 소수의 장로와 지도자들에 의해서 빵이, 즉 정신적 생명의 양식이 독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중심이 독점되는 현상이 영적인 엘리트 개신교 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동체 성원들의 대다수가 이 빵을 나누는 데서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신교 교회들의 대부분의 모습은 공동체 개념의 부재로 나타납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잘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그러한 개인주의에 의해서 횡적인 연대성이 없어진다는 것이 개신교의 나눔의 전통에서, 빵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현실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 가톨릭의 주교중심제도에 의한 교회에서는 몇몇 성직자들에 의해서 빵, 즉 영적인 양식이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서만 영적인 양식이 배출될 수 있고 그들이 나누어 줄 때만 빵이 나누어지며 나머지 사람들은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러한 가톨릭과 주교중심 교회의 예배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단상에 모여서 모든 영적인 양식을 나누고 생산해내는 사람들은 소수의 남성과 소수의 성직자들이었습니다. 남성 평신도들 그리고 100%의 여성들은 거기서 소외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적인 엘리트들에 의해서 빵이 지배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러한 것도 오늘의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풍부한 영적인 가르침을 배제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새로운 기초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기초공동체는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연결하고 상호 관계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이 기초공동체는 공동체 없이 개인을 부추기는 개신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이기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또한 가톨릭과 주교제를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적, 즉 개인이 없고 영적인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는 공동체를 기초공동체는 배제합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와 개인적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공동체를 우리 기초공동체는 지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면 그리스도께서 겸손히 빵이 되셔서 남들을 위해서 녹아 없어지듯이 우리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그러한 임무가 다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중심, 주교중심, 사제중심과 같은 영적 엘리트 중심의 교회들은 그리스도가 하신 겸손히 빵이 되는 역할을 오직 그들에게만 맡겨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기초공동체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평신도이건 또는 안수 받은 사람이건 모두가 빵이 되어서 그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그 공동체를 위한 양식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제나 주교나 목사나 장로들에게만 이러한 거룩한 일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모든 평신도들은 만인이 다 사제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공동체가 잘 안 되는 것은 공동체 성원들이 너무나 피동적인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도의 잘못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다 스스로 목사요 주교요 사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녹아지고 없어지는 빵의 역할을 감당하는 결단을 내려야 될 줄 압니다. 우리가 이런 목사 없는 기초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목사요 모든 사람들이 다 사역자라는 책임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기초공동체 운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있어야 공동체가 있고 동시에 공동체가 있어야 개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중심의 전체주의적 사고를 해서도 안되고 공동체 없이 개인주의적 사고를 해서도 안됩니다. 빵은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말씀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물질과 재물을 독점하는 것을 극복할 때, 영적인 빵을 독점하는 것을 극복할 때 새로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간단하게 보면 이렇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가 각각 다릅니다만 요한복음에 보면 특별히 어린아이로부터 다섯 덩이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을 수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다 제자들에게서 거두어들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왜 특별히 어린아이에게서 그것을 받아서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었다 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미약한 어린아이가 나누는 일에 참여했으니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참여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상징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50명씩 100명씩 따로 앉게 하고 나누어 주었다하는 내용이 각 복음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기초 공동체가 13명이 되어야 하는가, 50명이 되어야 하는가, 100명이 되어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나누는 공동체이며 나눔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공동체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을 요약해 보면 우리 전체가 나눔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나 다 목회자요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다 인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인자였듯이 우리들도 인자로서 빵이 되어서, 희생당하고 없어지는 그러한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만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전체가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새로운 기초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기 전에, 즉 기초공동체가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그것은 서로 나누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제자들마저도 이 사람들을 다 흩어지게 해서 마을로 내려가 음식을 먹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나누어보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새로운 공동체였습니다. 이기적인 개인적 집단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초공동체, 평신도 만인 사제적 공동체 운동은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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