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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이수

 

 

율법의 끝마침과 완성

(로마서 10:4, 마태복음 5:17)

 

2019818

주일예배

김이수 형제(전남대 석좌교수, 전 헌법재판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해주시려고 율법에 끝마침이 되셨습니다.]

- 로마서 10:4 -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 마태복음 5:17 -

 

 

율법의 끝마침과 완성

 

명성교회 세습에 관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의 재판이 지난 85일 있었습니다. 장로회 통합 총회 교단 헌법에 따르면 해당교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위임목사 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위임(담임)목사 세습 금지 규정(286)을 두고 있습니다. 총회재판국의 재판 결과는 후임목사 청빙결의가 세습금지규정에 위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목사 은퇴 후 2년간 후임자를 뽑지 않고 있다가 아들 목사를 후임으로 청빙한 사례였습니다. 아버지 목사의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은퇴에도 불구하고 청빙 시까지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은퇴 후 2년 후에 청빙하였으니 은퇴하는해당하지 않아 세습이 아니라는 교회 측 주장에 대해서는 율법주의적 태도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교회법에 따른 교단 내 재판이지만 특히 대형교회 세습이라는 이슈는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을 들여 한 단어 한 단어를 마음속에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신약성서 중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서간문 가운데 마지막 저작입니다. 바울은 로마에는 가보지 못한 채 고린도교회에서 3개월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로마제국 동반부의 주요 거점을 네트워크로 확보하였고, 로마를 새로운 거점으로 하여 스페인에 전도여행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당시 로마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마인 등)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지파 사람으로 율법으로는 바리새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할례를 받았고, 율법의 준수로 얻어지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이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일어난 일을 알리려고 자신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의 전통적인 거점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대신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묵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 체험이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를 알기 전 자랑거리로 알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해로운 것이고 쓰레기로까지 여겨졌습니다(빌립보서 37-8).

 

당시 할례와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수용하는 것이 이방인의 이스라엘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공동체(교회)에 들어오려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등 강제적으로 유대 화 하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정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체험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기독교가 민족종교에서 보편종교(세계종교)로 발전하려는 길목에서 이방인 선교의 소명을 맡은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율법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충분하며 율법과 할례는 필요 없다고 강력하게 밝힙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유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율법에 대해서 구원의 능력을 전적으로 부정하였습니다(216, 311).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셨다고 합니다(갈라디아서 313). 또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합니다(갈라디아서 54).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믿음이 나타나기까지 한시적으로 유효하다(319, 25)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언명이 율법의 폐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예루살렘 교회는 격렬한 비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흔들리지 않고 로마서에서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여 율법의 구원 능력을 부정하였습니다(로마서 117). 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 곧 의인들은 율법의 속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합니다(로마서 614).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더 이상 율법조문의 옛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다(로마서 76). 그리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04).


바울은 그리스도를 율법의 끝마침으로 못 박음으로써 그리스도가 구시대와 새 시대를 가르는 역사적 전환점임을 천명하였습니다.

 

바울이 위에서 언급한 율법은 모세율법, 토라를 말합니다. 모세율법은 법과 종교를 구분하지 않은 고대사회의 법이었습니다. 모세율법은 하나님이 모세와 언약을 맺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려준 것입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되고, 이스라엘은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고 하나님의 보물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율법은 하나님의 말씀 형태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준수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출애굽기 243). 이렇게 모세율법은 이스라엘 광야공동체의 백성이 지켜야할 법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7년마다 초막절에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 등에게 율법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다왕국이 멸망당한 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2만 명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성전 중심의 경건한 여호와 신앙을 가진 유대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유다지파마저 민족 아이덴티티를 상실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끊어지고 말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절감하였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모세율법을 문헌으로 전환하여야겠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은 바빌론을 제압한 페르샤 황제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대부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율법학자요 제사장(종교지도자)으로서, 느헤미야는 페르샤의 총독(정치지도자)으로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대 공동체의 재구성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모세율법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에스라는 그 책을 들고 나와 광장에서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읽어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느헤미아서 8).


모세율법은 613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함무라비법전은 282개 조문임). 그 내용을 분류해보면 십계명, 할례법, 음식법, 안식일법, 특수절기법, 제의법, 정결법(레위기 13-15), 민사법(계약, 불법행위, 친족상속, 이혼, 결혼), 형사법, 소송법 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모세율법은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크게 분류되기도 합니다. 십계명은 대표적인 도덕법입니다.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있던 때를 기억하여 함께 사는 외국인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고 본토인처럼 여기고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외국인 나그네 보호법(출애굽기 2221, 239, 레위기 1933-34) 곡식을 수확하거나 포도를 딸 때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이나 열매를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버려두라는 낙수낙과법(레위기 199-10) 청각장애자를 저주하지 말고, 시각장애자 앞에 장애물을 놓아 두서는 안 된다는 장애인보호법(레위기 1914)도 도덕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할례법, 음식법, 안식일법, 특수절기법, 제의법, 정결법(레위기 13-15) 등은 의식법에 속합니다. 민사법(계약, 불법행위, 친족상속, 이혼, 결혼), 형사법, 소송법은 시민법에 속합니다. 이자금지법(출애굽기 2225, 레위기 2535-38, 신명기 2319-20)은 가난한 자나 거류민에게 돈을 빌려주되 이자는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품삯을 당일에 지급하라는 법도 있습니다(레위기 1913, 신명기 2415).


모세율법은 유대공동체가 지향하는 신앙과 삶의 표준이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의로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수하면서 언약 안에서 축복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은 반드시 규정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시편 119편은 그 전체가 모세율법(토라)에 대한 묵상입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1).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 도다(3). 주의 규례들은 선하다(39).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다(142). 주의 계명들은 진리이다(151)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로 공포된 율법,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치의 표준이 되어 온 율법, 선하고 의롭고 진리라고 묵상해 온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율법에 대해서 날이 선 비판을 하면서 단호하게 그리스도가 율법을 끝마침하였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끝마침은 헬라어로 텔로스(telos)라고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입니까? 회심 후 바울이 말한 율법의 끝마침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율법은 전면적으로 폐지(효력 상실)되었다는 것입니까? 율법의 일정한 역할(기능)이 끝났다는 의미입니까?

 

끝마쳤다종결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종결자라는 용어를 일상에서 사용합니다. 민낯종결자, 소두종결자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해당 분야에서 그 이상의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 그 이상으로 율법으로 할 것이 없게 만듦으로써 율법을 끝매듭 지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매듭 지었다성취하였다’, ‘완성하였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완성하면서 끝매듭을 지었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율법이 완성됨으로써 율법의 역할은 끝나 효력을 상실하고 폐지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엄수를 주장하는 유대인 그리스도 진영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율법(구질서)을 폐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지 폐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언약의 표징인 할례는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율법이 효력을 상실하고 폐지되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적 행위의 기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에서는 그 기준을 그리스도의 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62).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의 윤리적 가르침(교훈)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진 새 시대의 원리, 메시아 토라, 예수가 성취한 율법, 사랑 등등으로 이해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속박의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은 자발적으로 할 때의 행위 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에는 벌이 없고 상급만 있습니다.


그리스도법의 후보로 오를 수 있는 것은 모두 예수가 직접 언급하거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율법이거나, 모세율법을 검토, 대조하면서 제시한 새 계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시하면 먼저 마태복음 가운데 산상수훈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21-44, 마태 6, 7장에 있는 윤리적 교훈들입니다. 그 중 가장 큰 계명은 이웃사랑의 계명입니다.

 

예수는 마태복음 521절부터 44절에서 율법 중 살인하지 말라(출애굽기 2013, 신명기 517), 간음하지 말라(출애굽기 2014, 신명기 518), 맹세하지 말라(레위기 1912, 민수기 302, 신명기 2321),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출애굽기 2124, 레위기 2420, 신명기 19:21) 이웃을 사랑하라(레위기 1918)라는 모세율법의 내용을 검토하면서 그 율법을 내면화 하고, 강화하고, 철저 화하고, 확장하고 때로는 넘어 새로운 계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살인을 일으키는 분 냄과 모욕적 언사를 금지하고 있고(522).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율법에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말이 옳다, 아니다 하라 하고 있습니다(33-37).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탈리오법에 대해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고 있습니다(38-39). 이웃사랑의 계명을 확대하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43-44).

 

그리고 예수가 위선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십일조보다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정의, 자비, 신실함에 관한 율법이 있을 것입니다(마태복음 2323). 앞에서 말씀드린 외국인 나그네 보호법, 장애인보호법 등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종교개혁자 칼빈은 모세율법은 폐지되었지만 십계명과 같은 구약의 도덕법은 구원의 길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 계속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맞추어져 있는 할례, 음식법, 특별절기법 등을 포함한 의식법은 폐지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이 소속하는 국가의 시민법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모세율법 중 시민법도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모세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해방과 부활을 통해 십계명과 그 이외의 약간의 윤리원칙만을 남겨야 된다고 여겼습니다. 동시에 교회 안에 존재하는 고유한 규율규범은 그리스도와 사도로부터 전해 받은 전통으로서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방인 구원에서 율법의 준수행위가 필요 없다면,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무엇인가? 바울은 믿음을 그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pistis)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로 인해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 의롭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의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실함입니다(갈라디아서 313, 2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피스티스도 예수의 복음을 수용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실함을 함의합니다. 우리의 신실함은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갈라디아서 56절 참조).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222).

우리들은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지만 종말론적인 최후의 심판정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한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로마서 216).


새길공동체는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보전과 완성을 위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삶을 바치겠다는 결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비우고 고통 받는 모든 생명의 이웃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짐과 결단이 마라톤의 결승선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 다짐대로 행동하며 달려갑시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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