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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08.08 10:19

[2019. 08. 04]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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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경호, 임금희



녹두꽃

(요한복음 17:21-23)



201984

공동체 예배



<동경대전>과 동학순례 _ 손경호 형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지요! 오늘 이 시간 동학의 거울 앞에 서서 저희를 바라보고, 하느님과 가까움을 깨닫게 도와주셔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동경대전>은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 18241864)님의 저서이지만, 그것을 엮어서 간행한 것은 동학의 2(교주)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님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남긴 글이 없는 반면 천도교인들은 수운이 직접 쓴 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동경대전 내 포덕문1861년 수운이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 또는 용천사)에 들어가 한 암자{'은적암'(隱寂庵)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수도하면서 지은 것으로 525자의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포덕문에는 186045일 천주로부터 도를 받는 수운의 종교적 체험을 기록하였는데 한자로 기록한 이를 풀어보면,

 

不意四月 心寒身戰 疾不得執症 言不得難狀之際 有何仙語 忽入耳中

驚起探問則 曰 勿懼勿恐 世人謂我上帝 汝不知上帝耶 問其所然

曰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曰 然則西道以敎人乎

曰不然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사월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춥고 떨려왔다. 병이 든 것도 아니었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태에서 신선의 말씀에 깜짝 놀라 일어나 물었더니 불안 해 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은 나를 상제라 부르는데 너는 아직 상제를 모르느냐?’라고 했다. 내게 나타난 까닭을 물으니, ‘사람들이 하늘의 이치를 순응하지 않아서 너를 세상에 내보내 하늘의 이치를 가르치려는 것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마라.’라고 했다. ‘아니 그러면 사람들에게 서도(西道)를 가르치란 말입니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않다. 나에게 영험한 부적이 있는데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모양은 태극이다, 내게서 이 영부를 받아 세상의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구제하고, 내게서 이 주문을 받아 사람들에게 하늘을 섬기도록 가르친다면 너 또한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고 세상에 덕을 펼치게 될 것이다.”(최천석 풀이 인용) 논학문은 동학의 교리가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총 1,338자로 되어 있는데, 포덕을 위해 마련된 스물한(21)자 주문의 뜻도 (유학자와의 문답으로 해명되어 있고, 천지조화의 무궁한 운수와 천도의 무극한 이치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동경대전은 한국 근대 신종교의 최초 경전으로 유··선과 민간신앙의 요소가 통일적으로 결합되었고, 그 후 여러 신종교 사상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논학문에는 시천주, 인내천, 주문의 설명이 있는데, 논학문'에서 주문을 설명하는 부분에 동학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인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풀이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동학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바로 시천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한울님(天主)을 모셨으니() 그 사람 역시 이에 한울님(人乃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한울님이라는 우주적인 존재가 별도의 초월적인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내면에 모셔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한울님을 내면에 모시고 태어나게 되고, 결국 사람은 한울님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그대로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의 말씀과 공명됩니다.

 

역시 '논학문'에 나오는 '내 마음이 네 마음'이라는 표현도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울님의 마음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은 태어나면서부터 한울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결국 한울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한울님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동학 또는 천도교 수행의 중요한 목적이라 합니다.


'논학문'의 해당 부분을 보면, 수운은 시천주를 풀이하여 이렇게 말합니다.'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기화(氣化)가 있어 온 세상 사람들이 깨달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이 말을 풀이하면, 안으로는 신령스런 한울님의 마음을 회복하고, 밖으로는 유형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그 순간을 회복하여, 다른 마음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바로 시천주'라는 뜻입니다. <동경대전>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당연히 평등주의를 포함합니다.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각자의 내면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면,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주문(呪文)스물한자(21)를 소개하면, 강령 주문, 여덟(8), 지기금지(至氣今至), 원위대강(原爲大降),하느님 지극한 기운, 지금여기 저에게 크게 강림하시기를 원하옵니다. 본주문, 열석자(13),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 의역해 보면 하느님을 극진히 모시며,(저에게 시초부터 주신)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오니, 진리를 깨달아 알기를 오매불망 원하옵니다.(손경호 의역)

 

수운은동경대전』「논학문에 스물한(21)자 주문의 한 자 한 자를 모두 설명해 놓고 있으나 오직 천()에 대해서만은 어떠한 설명도 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노자에서 道可道 非常道 그리고 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고,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것은 표현할 수 없고, 체험할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담아둘 수도 없어서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경재 님도 이것은 우연적인 누락이 아니라 의도적인 제외이다. 왜냐하면 천주 곧 한울님은 개념화되거나 정의될 수 없는 생존 자체이어서 인간의 인식행위 이전의 그 인식 행위 자체를 가능케 하는 능력이며 전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김경재, “崔水雲神槪念”,한국사상12, 1974)


오래 전 천도교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그들은 강령체험을 먼저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말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경주 용담수도원에서 강의해주신 김춘성 교수님도 기도시간에 참여한 이웃종교인들도 쉽게 떨림을 체험했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경주 용담수도원 둘째 날 새벽 동학교도들과 함께 한 새벽기도식 및 수련시간에 청수봉전(맑은 물 한 그릇 모시고), 심고(한울님께 마음으로 고하고), 본주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를 운율에 맞추어 크게 천천히 3번 암송을 한 후에, 현송이라고 주문 스물한(21)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를 아주 빠르고 끊임없이 오래오래 반복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때와 비슷하게 몇 번 암송해 보겠습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저는 중간에 멈추었습니다. 그 옛날 어느 기도원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방언과 환상과 음성이 mass hypnotism 상태에서 생각, 감정, 오감이 그려낸 그림 같았습니다. 제 눈에 비친 그런 것으로는 깊은 침묵 속에 만난, 예수님의 하느님, 수운의 한울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 중에 끔찍한 상실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돈과 막막함, 절망이 깊어서 이성으로는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금강경에 나오듯 꿈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느껴 보셨는지요? 용담수도원에서 첫날 강의를 듣고, 천도교 생활에 호감을 표시했던 저는, 진흙에 빠진 왼발을 빼내었는데 다시 오른 발을 뻘 속에 넣는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요? 기독교나, 천도교 사제들이 예수님과 수운의 가르침, 우리 안에 이미 계시는, 말로서 표현하지 않은 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를 따른다는 사람들이 방언과 예언과 신비한 주문 같은 것을 통하면 그것에 진입할지 모른다는 황홀한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오늘 요한복음 본분처럼 주님의 가르침은, 그 하느님이 나비날개가 하나로 접히듯 저희와 하나로 겹쳐지고, 누구도 그것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 주님께서 만난 하느님, 해월이 만난 한울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까요? 이란 이런 거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말쟁이,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바보, 사기꾼들일까요?

 

저도 바보일까요?

제가 바보일까요?

 

마치면서, 공간새길, 수다성에서 동학을 강의하셨던 차옥숭 선생님은 수운에게 있어서 시()는 신비체험에서 얻어지는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상태의} 종교적인 각성에서 이해되나, 해월에서의 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월의 (범천론적) 시천주 사상은 하늘을 공경함에서 사람을 공경함으로, 사람을 공경함에서 모든 사물을 공경함으로까지 나아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배운 해월 말씀 중 道家에 사람이 오거든 손님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 강림하였다 이르라 하는 말씀을 품고 지내고 있습니다. 해월의 가르침대로 저희도 용담수도원장님과 맞절을 하였지요.

 

덧붙이면, 동행팀은 의료봉사 때 찾아오는 네팔 근로자들과 두 손 모으고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뜻이 내 안에 계신 신께서 그대 안에 계신 신께 문안인사 드립니다라는 뜻이랍니다.

나마스테 새길로고.jpg

 

 

청수 _ 임금희 자매

 

용담수도원에 다녀온 다음날 새벽에 일기를 썼습니다. 그 일기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2016, 제 나이 49살에 직장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면서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파트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즉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업무적으로 만난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그녀는, 방언기도를 하는 교회 집사였습니다. 그런 그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제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20여년 보수 기독교에서 열정적으로 살던 제가 이렇게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과 삶이 불일치된 저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한거지?’ ‘제대로 예수님 믿은거야? 어떻게 믿는 것이 참 믿음이란 말인가?’ 신앙의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와는 다르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만나보자라며 찾아온 새길교회. 그래서 알게된 심도학사와 길희성 선생님.

 

파트너를 만난지 1년 후, 20176월 저는 퇴직을 결심하고 심도학사에 가서 천도교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는 내 모습에 또 한번 놀랬습니다.

 

내적 관계성을 가지는 유기적 패턴과 일체성을 가지고 있는 통전적 실재로 본다.”

버트란드 러셀과 함께 그리스, 중세, 근세 그리고 칸트에게까지 이어지는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된 수학과 신학의 결합.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단순 반복 지속하는 신앙 생활 했던 사람이라는 핑계를 대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공부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저를 펑펑 울게 했습니다.

 

천도교 강의중, 수운 선생님의 오심즉여심 :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들어왔습니다만. 이 말이 품고 있는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1984, 퇴직 한지 2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새길교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배운 렉시오디비나1년 넘게 하며 오심즉여심을 이성과 몸과 영으로 배워나가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종교 천도교를 방문한다는 말에, 그들은 어떻게 수도를 하는지 직접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청수(淸水)’입니다. 천도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인 청수(淸水)'. 깊은 산속의 계곡에서 흐르는, 맛도 좋고 시원한 물. 용담정 바로 옆에 검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데 작은 폭포 같았습니다. 어찌나 시원한지 놋으로 만든 뚜껑 있는 밥그릇에 담아온 청수는 놋그릇 표면에 송글송글 차가운 물방울이 맺히고 그것들이 모아져서 차가운 물이 주르륵 주르륵 흐릅니다. 그 청수(淸水)에 담겨져 있는 한울님을 향해 제가 들어왔습니다.’라는 심고를 한 후, 주문을 외우며 나와 한울님이 하나임을 깨달아 알게 하는 수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물을 보는데 하얀 대접에 정안수를 떠놓고 두 손으로 빌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라며 기도했던 옛날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문득, 저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원피스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7살 정도였던 1975년 즈음, 그 해 설날이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시던 어머니는 언니들의 못 입게 돼버린 옷들을 하나하나 자르고 실밥을 풀고 거친 무명실로 띄엄띄엄 시침질을 해서 멜빵이 있는 원피스를 만든 후 깨끗하게 빨아 네모반듯하게 접어 제 머리위에 놓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이런 정성과 귀한 마음으로 6남매를 키우셨구나가 느껴지니 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음날 경주 대릉원과 천마총을 구경한 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께 드릴 경주빵을 하나 샀습니다. 자식들이 나갔다 들어오면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 눈길을 주시는 우리 어머니.그것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 절차 같은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는 노모.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중, 어머니가 설빔으로 준비해주신 멜빵원피스를 이야기해드렸습니다.

 

"그럼, 그런 마음으로 너희들을 키웠지. 그 가난 속에도 말이야."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우리 세대. 그러나 어디가나 마음하나 풀어놓을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늘 허기가 집니다.

 

천지신명께 두손을 모아 비는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조각보를 이어 딸에게 예쁜 옷을 만드는 눈물짓는 정성이 어디로 갔는가?’

가난했지만 세상에게 지지않고 결국은 넉넉한 마음으로 인생을 완성해가는 양천주의 정신을 갖고 계셨던 우리 엄마의 기개는 나에게 유전되었는가?’

      

잃어버린 그 마음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장마가 그치더니 매미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 생명과 제가 하나라는 것을 느끼려고 자주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멀어진 사람과 다시 연결되지 않는 저의 마음을 또한 봅니다. 일상에서 청수(淸水)를 뜨러 제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 하나의 방법은 렉시오디비나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수련을 하게 해주신 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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