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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07.23 16:46

[2019. 07. 07]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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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신영환, 우신영, 정선자

 


여행

(시편 37:23-24, 119:105, 18:36)


201977

공동체 예배



히말라야 길 위에서 _ 신영환 형제

 

안녕하십니까. 경기도 이천에 살고 있는 신영환입니다.

 

정경일 원장께서 히말라야 다녀 온 얘기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5분이랍니다. 대략난감! 어떻게 5분 안에 히말라야 얘기를 할 수 있나? 축소, 생략, 요약해서 말씀드리려고 준비는 했습니다만, 요령부득이라 잘 되지 않았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서로 기회가 되는대로 나누기로 하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당부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다녀오셔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저의 말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드리는 소견이란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럽 알프스는 오스트리아, 이태리북부,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 동부까지의 해발고도 3-4,000m 산맥이지요. 여러 군데, 케이블카나 등산 열차로 정상이나 전망대까지 바로 올라갈 수가 있지요. 전망대에 딱 내리면 머리가 어지럽거나 속이 메스꺼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더러 있을 겁니다. 고산증세이지요. 그래도, 알프스 연봉들을 360도 둘러보며 멋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는 급이 다릅니다. 중국 쓰찬성 서부 끝에서 시작해서 부탄, 시킴, 네팔, 티벳, 인도와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와 타지키스탄에 걸쳐서, 6,000 ~ 8,000m 연봉의 산맥이 이어져 있습니다. 알프스는 아래에서 정상을 쉬 볼 수 있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은 전문 산악인들이 등반을 시작하는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그런데, 그 베이스켐프가, 산마다 다르지만, 4,500 ~ 5,500m 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량이 갈 수 있는 입구까지 간 다음,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짧은 코스는 4~5, 보통은 일주일이나 열흘, 해발 5,300m에 있는 EBC2주간, 무스탕이나 돌포 같은 4 ~ 5,000m 고원지대 트레킹은 2~3주간의 일정으로 트레킹을 합니다.

 

저는 처음에 ABC와 그 산맥 뒤쪽에 있는 묵티낫이란 곳을 다녀오는 3주간의 트레킹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25여 년 전까지 네팔왕국 안에서 감춰져 있던 ‘The Last Forbidden Kingdom 마지막 금단의 왕국으로 불렸던 Mustang의 도성, 해발 4,500m에 있는 Lo Manthang을 다녀오는 3주간의 트레킹을 하였고, 세 번째는 인도 북부에 있는 히마찰 프라데시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처음에 간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후회입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심신이 아주 고달팠을 때 문득 전에 잡지에서 본 히말라야 트레킹이 떠올라서, 내 인생도 한번 뒤돌아보고 다운된 마음도 다스려 봐야지 하고, 배낭 꾸려서 혼자 떠났습니다. 첫날, 버스에서 내리니 거기가 해발 800m라고 합니다. 나이 어린 포터 한사람 구해가지고, 그 친구가 20kg, 제가 10kg 짐을 나누어지고 해발 2,000m에 있는 첫 번째 마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시간을 지그재그로 급경사 구간을 수직 상승하는데 숨도 제대로 쉬어 지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출발 전에 먹은 점심, 현지 음식이 제 몸에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속이 부글부글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가다가 숲속으로 가서 실례하고, 또 조금 가다가 실례하고. 기진맥진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후회 엄청 많이 했습니다. ‘준비 좀 하고 올 걸’. 그리고 짐은 가볍게’. 읽으려고 가지고 책들과 밤에 밝히려고 가지고 간 랜턴과 배트리들, 그 무거운 짐들, 결국, 제 인생의 짐은 제가 감당해야 되니까 말입니다.

 

둘째. 여섯 시간인가 걸려서 도착한 첫 번째 롯지에서, 신발만 벗고 침낭 속에 기어 들어갔습니다. 젖은 빨래가 줄에 쳐진 느낌으로 잤습니다.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바깥에서 함성이 들렸습니다. , 우 와...무슨 일인가 하고 바깥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바깥은 해가 뜨지 않아서 아직 어두운데, 사람들이 웅성대며 손으로 가리키는 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 설산 봉우리들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저 멀리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니, 첩첩산중 속 마을은 아직 어둡지만, 저 높은 봉우리들에 햇빛이 비쳐서 빛이 나는 것이었지요. 여명에 엘도라도를 본 것입니다. 안나푸르나 연봉들과 예쁜 마차푸차레 봉우리랍니다. 저기를 보려면, 4,300m에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야 되는데, 그저 4일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저 걸 내가 꼭 가서 봐야지. 피로가 가시고 의욕이 쏟아 올랐습니다. ‘목표가 보이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셋째. 거기를 가려면 800m 에서 4,300m 그냥 죽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800 -1,900- 2,600 2,200 3,000 2,600 3,500 해서 4,300m 베이스 켐프로 갑니다. 그런데 3,000m 이상의 고산에서는 올라 갈수록 산소가 희박해 지기 때문에 천천히 가야 됩니다. 빨리 가면 고산병으로 쓰러집니다. 약도 없고요. 그저 내려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듯이 말해 줍니다. No Hurry! No Competition! No Race! 그렇습니다. 산속에 무슨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1등도 꼴등도 없습니다. 다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요. 각자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 ‘과정은 거쳐야 된다’. ‘낙하산은 안된다’.

 

넷째. ‘되돌아 봄’. 트레킹을 계속할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삼일이 지나면,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들도 제법 익숙해지고, 심장과 폐도 고산에 적응이 되고, 체중도 많이 빠집니다. 호흡도 좀 여유로워 집니다. 여유가 생기니 무료해 져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생각나는 노래들을 다 불러 보았습니다. 친구들, 사회에서 만났던 사람들, 평소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하나 불려 나와서, 제 인생의 재판대 앞에 섰습니다. 제가 검사가 되어서 제가 묻고, 제가 답하였습니다. 부끄러움도 당당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걸었습니다. 힘들면 쉬고, 물 한잔 마시고, 먼 산도 둘러보고, 또 걷고. 일생 처음 맛보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섯째. ‘포기’. 걷다가 문득 옆을 보니 천 길 절벽이었습니다. 아차 실족하면,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사 누군가가 구해 줘서 내려가려고 해도, 올라온 만큼 오르락내리락 내려가야 되니, 여기까지 온 만큼 시간이 걸립니다. 사흘 왔으면 사흘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어쩌나? 두고 온 부모, , 자식들, 회사와 직원들. 그런데, 뭐 전화도 안 되니 연락할 방법도 없고. 그래, 걱정 해봐도 소용이 없구나. 지금 여기서 나나 잘하고 나머지는 잊기로 하자, 하고 포기합니다. 그 순간에, 가슴이 시원해 졌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여섯째. ‘질문’. 그러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원하고도 끝없는 질문. 우주의 시작이라 믿어지는 빅뱅도 창조주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된 이후로는, 인간은 누구라도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의미는 개개인이 살아가면서 알아 가는 것, 또는 만들어 가는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길을 가며 빛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저의 히말라야 트레킹 후일담을 말씀드렸습니다. 요약해 보면, 비록 험한 곳이라도 누구나 뚜벅뚜벅 가면 갈 수 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조금 더 볼 수 있었으며, 이 세상에 와서 살고 있는 그 의미도 묵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혼자만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9105절에서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어둠 속에서 나와서 빛 속에서 걷다가 어둠 속으로 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등불 아래에서, 그 빛을 받아서 세상에 되비추는 그런 도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새길로고.jpg

 

 

여행 _ 우신영 형제

 

저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렘을 줍니다. 많은 곳을 여행하진 않았지만, 여행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이 많기 때문이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낯선 곳들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겁니다. 그 여행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을 짧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20131, 새로운 해가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저는 이스라엘에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알바와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침 저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목사님의 권유로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했고, 주위에서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셔서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성서의 이야기들이 펼쳐졌던 장소에 직접 가보다니! 목회자를 꿈꾸던 저에게 이스라엘은 무척이나 설레는 곳이었습니다.

 

9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착륙을 준비하는 비행기 창밖으로 텔아비브의 야경이 펼쳐졌습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사실 뭐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지만 내가 이스라엘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이 나서 가슴이 막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지인의 집을 거점으로 저는 5주 정도 여행을 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스라엘은, 성지순례는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곳 어딘가에서 2000년 전에 예수가 걸어 다니고, 호흡하시고, 말씀을 전하셨다는 사실에 길을 걷다가도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습니다. 저는 특히 예루살렘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요, 여행을 마치며 따지고 보니 예루살렘만 3주 정도를 돌아다녔더라고요. 패키지로 왔으면 하루면 끝날 예루살렘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관련된 성서 내용도 찾아보고 묵상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장소에서 읽은 누가복음 이었습니다.

 

그 뒤 한 시간쯤 지나서 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은 분명히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오. 이 사람도 갈릴래아 사람이 아니오?" 하며 몰아세웠다. 베드로는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며 끝내 부인하였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다.


그 때에 주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성서의 말씀이 생생하게 제 눈앞에 펼쳐졌고, 특히 예수께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는 말에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시험받으셨다는 광야, 성전, 여리고의 시험산을 직접 가 보고 얼마나 힘든 시험이었을지 느꼈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를 걸으며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왜 바다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하는지 눈으로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게 정말 목숨을 건 고백이었다는 걸 고백했다는 장소에 가서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매일 감동의 시간을 보내던 중에 생각지도 못한 낯선 풍경들이 하나, 둘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여행을 준비하며 찾아 읽는 책들은 그저 성지순례 가이드북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이 나라는 한쪽은 유대인들이 살고, 다른 한쪽은 아랍인들이 살며, 가자지구는 위험하대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 지금 여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거닐던, 2000년 전에 머물러 있던 나의 이스라엘은 그렇게 갑자기 낯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여행자들은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삼엄한 검문소도 가볍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베들레헴 밖으로 나오기 위해 들어가기 위해서 매일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습니다. 9m 콘크리트 장벽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몇 해 전 서점에서 베들레헴 이야기가 궁금해서 베들레헴은 지금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베들레헴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이었는데요, 그 안에서의 비참한 생활에 속이 너무 불편하고 두통이 생겨 아직까지도 그 책은 다시 꺼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무덤, 막벨라가 있는 헤브론도 상황이 나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브론은 패키지 팀과 함께 다녀왔는데요, 저희 팀이 도착하기 며칠 전 군인들에게 장난치던 어린아이가 총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무덤을 빌미로 아랍인들의 구역인 헤브론에 정착촌을 만들고, 그 정착촌에 사는 사람들은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군인들이 투입되었습니다. 헤브론은 H1, H2로 구역이 나뉘어 관리되어 아랍인들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랍인들의 식료품 차량을 검문한다는 이유로 며칠씩 세워둬서 음식을 다 썩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 운전기사가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검문소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이 버스에 올타가 사람들의 여권과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랍지역에서 먹는 것에 유대인들은 두배 내지 세배까지 비싸게 팔았습니다. 근데 바가지는 아랍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랍꼬마들에게 빵을 사서 집에 가져갔더니, 지인은 뭐 이렇게 비싸게 줬냐며 배를 잡고 깔깔대서 얼마나 분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장소가 아주 정확히 기억납니다.

 

성지순례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이 생각지도 못한 전개를 맞은 상태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스라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서점을 들를 때면 이스라엘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 중에 기 들릴이라는 만화가의 굿모닝 예루살렘이라는 책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생활한 1년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제가 보고 느낀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늘의 모습에 관심을 갖다보니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역사가 궁금했고, 흘러 흘러 자연스럽게 예수시대 역사와 문화까지도 생각이 뻗어나갔습니다. 복학 후엔 관련된 수업을 찾아 들었고, 성서의 여백을 채워가는 공부에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나중에는 역사와 문화에서 예수의 눈빛과 손짓까지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시기가 목회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엄청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누가복음의 삭개오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이 시기에 읽은 삭개오 이야기는 제가 한참 고민하던 신앙과 목회에 대한 고민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냥 삭개오를 만난 예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삭개오와의 대화에 빠져있는 그 예수의 눈빛과 손짓 그리고 말투, 이런 것들을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그런 구체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뭐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지 6년이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제 생각이, 제 삶의 모습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좀 더 성숙해진건지, 아니면 아직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게는 참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내년 이맘때쯤 저는 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바라기는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길로고.jpg

 

 

물 속 여 행 _ 정선자 자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얼굴엔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없는 그 무엇을 보고 온 사람에게선 비밀스러운 생기가 느껴지지요.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를 보면, 참 부럽고 두근거렸는데요, 그런데 그 감흥들은 점점 옅어져갑니다. 젊음이 사라져가니 여행의 불편함을 먼저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제 전 멀리 나가는 건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걸 찾아봅니다. 여러분들에겐 실망을 드릴까봐 두렵지만, 근래 일상에서 제가 발견한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태 전부터 저는 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계기는 수영을 배운 것입니다. 제 손가락과 발에 생긴 통증을 의사는 명쾌하게 진단했습니다. 퇴행성관절염!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고, 그리고 수영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내키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물에서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 그때 난 수영을 할 줄 알았는데도, 그 사고는 순전히 내 실수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던 탓이었습니다. 30대 때 4개월 배우고 수구까지도 해보았던 내가 공포감이 생기니 물에 머리 집어넣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숨 쉴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갈 때 몸은 경직됩니다.

 

이제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서 저는 기초부터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차근차근.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만드시고 그 속에서 물고기들을 살게 하셨죠. 인간에게는 물고기를 먹게 하셨지만 물속에서 살 수는 없게 하셨습니다.

 

세상 사는데 몹시 힘들고, 절망적일 때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허우적거린다’, ‘발버둥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라는 표현은 우리 몸이 물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극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인간들은 그 물의 압도하는 힘을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기적을 베푸셨을 것입니다.

 

사실은 발버둥 치거나 허우적거리는 것은 살기 위한 안간 힘이며,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야말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발버둥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할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만일 우리가 물을 잘 알 수 있다면, 물에게 나를 맞추고, 내 몸이 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수영, 즉 물 속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물속 여행을 하기 위해선 몸만 있으면 됩니다.

 

손으로는 칼로 베듯 물을 베어 보기도 하고 농구공이라도 잡듯 물을 잡습니다. 물을 뒤로 보내면 몸은 앞으로 가고, 아래로 누르면 몸이 올라옵니다.

 

또 뜨고 가라앉는 법을 배웁니다. 뜨는 것보다 물에 가라앉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됩니다. 폐에 공기가 있는 한 부력이 더욱 작용하며 깊이 들어갈수록 물이 압력으로 우리 몸을 밀어올리기 때문입니다. 뜨려고 하면 가라앉고 가라앉으려면 휙 떠버리는 아이러니! 저는 가라앉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포가 사라지는 자리엔 새로운 재미가 생깁니다. 물과 내가 어울린다는 것은 경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둥둥 떠다니며우아하게 발버둥 치면서 물과 놀고 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에서도 이럴 진데, 세상에서도 나의 적당한 위치와 무게를 느끼면서 나를 사용하는 법을 잘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 생존수영이 의무화되었지요. 수영장에서 강습하는 걸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은 키가 넘는 곳에서 물로 뛰어들기를 합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뛰던 아이들이 거듭 연습을 통해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바뀌어갑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왠지 눈물겹습니다. 전 끄덕입니다. “그래, 너희는 우리의 미래야. 우리 모두의 불안과 부담을 안고 물에 뛰어들지. 하지만 거뜬하게 웃으며 올라올 거야. 우리 모두 잘해보려고 애쓰고 있구나.”

 

자신감은 어떻게 오는 걸까요. 하고 나면 이렇게 쉬운 것을……. 이 과정이 축적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겁먹고 울먹거리기도 하지만 구명조끼를 믿고, 옆에서 도와주는 가이드, 선생님을 믿기 때문에 해 낼 수 있습니다.

 

내 실력만을 믿는 건 위험합니다. 트라우마는 쉽게 낫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전 키가 넘는 곳에선 수영하지 못 할 거예요. 하지만 용기를 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며, 나를 알아가는 것은 은혜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제가 꿈꾸는 어떤 궁극적인 것,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들과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 아닌가, 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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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0 2019 [2019. 05. 12]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file 2019.05.15 김상봉
1089 2019 [2019. 05. 05] “가족” file 2019.05.14 윤소정
1088 2019 [2019. 04. 28] “거룩한 수고자들” file 2019.05.03 송진순
1087 2019 [2019. 04. 21]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file 2019.04.26 박민수
1086 2019 [2019. 04. 14]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file 2019.04.16 박요셉
1085 2019 [2019. 04. 07] "봄" file 2019.04.12 임동숙, 이상길, 최서희, 김문음
1084 2019 [2019. 03. 10] “백년의 기다림” 2019.03.22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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