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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요셉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이사야 61:1-3)


2019414

주일예배

박요셉 형제(뉴스앤조이 기자)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 이사야 61:1-3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독 언론사 뉴스앤조이에서 취재기자로 있는 박요셉이라고 합니다.

 

우선,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전한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아마 여러분께서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교 권고를 받았을 때 좀 주저했습니다. 자격이 될까 싶었습니다. 저는 요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신앙심도 깊지 않고 매주 교회에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남들에게 신앙적 권면이나 통찰을 전달할 만큼, 지혜롭지도 않고 경험도 부족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크게 부담 갖지 말고 그저 세월호를 취재하면서 갖게 된 생각들을 나누어 주면 좋겠다는 말씀에, 이 자리에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똑같이 세월호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시간 전하고 싶은 건, 여러분과 같은 신앙을 지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제가 목격했던 세월호, 안산과 팽목항에서 마주했던 고통, 그리고 이를 외면한 한국교회와 제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날, 팽목항에서

 

2014416. 5년 전 그날을 모든 분께서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먼저, 제가 겪은 세월호를 잠깐 나누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 저는 이틀 후 안산 지역 교회와 단원고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팽목항에 내려갔습니다. 진도에 도착했을 때, 저는 국가적인 이 재난 상황을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언론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취재했습니다. 자녀가 아직 배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한 가족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오가며 생존자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하고, 유가족 혹은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선정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인터뷰를 따기 위해 자원봉사자, 정부 관계자 심지어 유가족까지 사칭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었습니다. 팽목항 시설도 좋지 않았지만, 진도체육관 시설은 제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체육관 바닥 위에서 생활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한 가림막도 개인 보호 시설도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체육관 관중석에 앉아 가족들을 관찰하고, 이들이 정부 관계자에게 화를 내거나 울다가 지쳐 쓰러지는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사랑하는 형제가, 지금 배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는 그 불안한 상황에서, 24시간 내내 다른 이들에게 관찰당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을 겁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 행태에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체육관 관중석에 저 역시 앉아 있었고, 가족들이 울고 있을 때 저 역시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담기 바빴습니다. 가족들을 심방하고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교회 사람들을 보면, 쫓아가서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등 불편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저도 다른 기자들처럼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는 가족들을 붙들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감정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산에 올라와서도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병원에 찾아가기도 했고, 희생자 장례식장을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차마 인터뷰를 요청하지 못했지만, 이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는 20149월 재난 보도 준칙이라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언론계가 보인 무분별한 취재와 보도 행태에 반성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재난 보도 준칙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언론의 재난 보도에는 피해자와 피해 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 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수시로 국민의 알 권리를 꺼내며 취재를 강행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월호 참사을 바라보면서, 재난 상황에서 가장 보장받아야 할 권리는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존중하는 것. 그들이 말할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런 면에서 세월호 참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를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교회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건 언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부, 국회, 교육청, 보수 단체, 안산 일부 주민까지. 오늘은 그중에서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14520.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문제의 발언이 한 목회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사달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그 목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고 말입니다.

 

이 목사는 여러 교단이 모인 교계 연합 기구에 공동부회장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그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공동부회장에서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17년 같은 직책으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또 다른 발언도 있습니다. 이 발언은 2017년 말 세습으로 교계에 물의를 일으킨 한 목회자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안 된 511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월호를)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은 그래선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5.11일 설교)

 

그 다음 주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때문에 해경, 청와대, 해수부, 안전부, 방송 비판 안 하는 데가 없다. 그러면 안 된다." (518일 설교 중)

 

세월호 가족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회복을 위해 배를 침몰시켰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대강 알겠지만, 부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을 포함해 안산에 있는 많은 교회가 같은 시기 이 어린 생명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 목사의 발언은 이런 가족들의 간구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발언이었습니다.

 

어쩌면 대형 교회 목사들의 이러한 발언은 어떻게 그런 망언을 할 수 있느냐며 한 번 욕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원래 저랬어. 매번 수만 명의 교인들이 자신을 따르고 순종하니까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거겠지. 교인 개개인의 삶의 애환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저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가족들을 정말 아프게 했던 건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했던 목사님, 친한 동료 교인들의 섣부른 진단과 위로였습니다. 그것은 한 유가족의 말씀처럼 매일매일 날카로운 비수로 심장을 찔려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참사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평범한 일상을 하루아침에 뒤바꿨습니다. 부모님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참사 당시 팽목항에서 알게 된 한 유가족이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4반 임요한 군의 어머님 김금자 씨와 아버님 임온유 목사님입니다. 이분들은 보수적인 성향의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특히, 임온유 목사님은 여러 교회를 돌며 은사 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이기도 합니다. 참사 당시 팽목항으로 달려갔던 다른 부모님들과 달리, 임 목사님은 기존에 약속되어 있었던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요한이 어머님은 155cm정도의 작은 체구를 이끌며 가족들과 거리에서 투쟁하였습니다.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하고, 피켓을 들고, 경찰들과 몸싸움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목사 사모님이었던 분께서 하루아침에 투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들. 저들은 왜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농성을 하고 피켓을 들며 사람들에게 호소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외면하고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께서 속한 교회 공동체는 가족들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파하고 슬퍼했지만, 어머님, 아버님들이 거리로 나와 진상 규명을 위해 싸우는 것은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난해 11월 새길교회 예배에서 말씀을 나눠 주신 창현 어머님을 기억하실 겁니다.

 

창현 어머님은 20154월 세월호 가족 60여 분과 함께 당시 정부가 입법 예고한 세월호 시행령 폐지를 요구하며 단체 삭발에 동참하셨습니다. 머리를 모두 미셨죠. 그리고 주일날. 주일학교 교사였던 창현 어머님은 여느 때처럼 교회에 갔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그러한 창현 어머님을 보고 뭐라고 하셨을까요. 창현 어머님이 부장 선생님을 통해서 들은 말입니다.

 

비구니처럼 아이들 앞에 어떻게 서려고 그러느냐. 그래, 교회에서도 세월호 설교 할 거냐.”고 말입니다. 이 말은 창현 어머님에게 교회 나가라.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3주 정도 버티다가 결국 교회를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동료 교인들의 서툰 위로도 가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단원고 2학년 9반 아라 아버님 김응대 씨는 수십 년을 안산에 있는 한 교회에 다녔습니다. 아버님은 시내버스를 운전하셨습니다.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도 버스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당시 자신이 어떻게 버스를 차고지까지 갖다 놓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라는 여느 자식이 그렇겠지만 자랑스럽고 소중한 딸이었습니다. 형편상 특별히 좋은 학원이나 과외를 해 주지 못했지만, 아라는 학교에서 공부를 무척 잘했습니다. 혼자 알아서 잘 커 주는 아이, 아빠의 목에 힘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기특한 딸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참사 이후에도 교회에 꾸준히 나가셨습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 장로님께서 아버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김 집사, 이제 잊어버려. 아이는 천국에 갔으니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잘 살아야지.’ 아버님은 지금도 딸을 생각하면 속이 문드러지고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데, 같이 울어 줄 줄 알았던 교인들이 오히려 하루빨리 잊으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세월호 가족들이 교회를 떠나 다시 모인 곳은,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안산 합동분향소 기독교 예배실입니다. 부모님들은 매주 주일 오후, 목요일 저녁에 예배와 기도회를 드렸습니다. 새길교회를 포함해 전국에 있는 많은 교회가 가족들 곁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돌아가며 예배를 주관하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음료를 나누고 가족들과 교제했습니다. 안산뿐 아니라 광화문, 청운동주민센터, 국회, 팽목항, 동거차도, 목포신항에서도 많은 기독교인이 가족들과 함께했습니다. 이것은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기독교 예배실은 없어졌지만, 가족들은 지난해 5월부터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예배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직접 순서를 계획하고 예배를 준비합니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가족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적게는 40~50, 많게는 70~80명의 기독교인들이 매달 참석합니다.

 

예배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예배 시작과 함께 희생자들을 초대하는 시간입니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씩 부릅니다.

 

"말도 잘하고 마음도 따뜻해 어머니가 많이 의지했던 아들, ..."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에 웃음이 예뻐서 성격 미인, 부모님과는 신앙으로 소통했던 효녀. . . .“

부드럽고 친절한 성품으로 약한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배려의 아이콘. ..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의 이름도 부릅니다.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말하며 망설임 없이 4층으로 뛰어 내려간 최혜정.“

"290여 명의 실종자를 수습했지만, 정부에 버림을 받고 동료 죽음까지 책임져야 했던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

 

5월에는 5반 아이들, 6월에는 6반 아이들, 11월에는 선생님들 12월에는 일반인 희생자들이렇게 희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그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지난 5주기 예배에서는 304명의 희생자를 모두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이 행위는 어떤 의식보다 의미 있고 강력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어떤 추상적인 재난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던 304개의 삶이 상실됐다는 참사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세계라고 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304개의 펼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가끔 부활이란,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0년 전 한 사내의 죽음을, 그리스도인들이 전승과 기록으로 계속해서 기억하여 그의 삶과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던 것처럼, 304명의 희생자들은 이 예배에서 우리의 호명과 기억을 통해 부활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인지 한 어머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다 보면 가끔 아이들이 함께하는 것 같고, 끝나고 나면 평안과 위로를 얻는다는 말씀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드리는 예배는 소박합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십자가와 노란 리본을 올려 놓고, 풀밭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빈 들판을 바라보며 예배합니다. 그곳에는 1년 내내 변하지 않는 억새풀이 제 키만큼 자라 있습니다.

 

화려한 음향 시설도, 조명도, 뛰어난 반주팀도 없지만, 마치 광야에서 드리는 이 소박한 예배 공간이. 한 어머니의 표현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예배당같을 때가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넓은 들판을 마주하면서 가끔 불어오는 바람과 새 소리, 지나가는 주민들의 수다 소리까지 어울리면, 예배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다가옵니다.

 

예배를 드리면 저는 이 안에서, 지난해 11월 정경일 원장님께서 창현 어머님을 소개하며 말씀하셨던 것처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엿봅니다.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서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기도하며 교회를 이루었던 것처럼, 세월호 예배도 비슷합니다.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하고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남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매달 세월호 예배에 참석하면 저는 교회의 본질이란, 어쩌면 서로 용납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신앙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월호 공동체가 좇는 교회의 모습은, 지난해 9월 예배에서 드렸던 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교회가 힘을 숭배하는 신앙에 중독되어, 욕망을 부추기고 두려움을 조장하며 신앙의 이름으로 어리석음을 가르쳐 왔습니다. 성공을 지향하는 대교회주의,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타계주의, 지성을 잃은 교리주의가 우리 안에 차고 넘쳤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추구하는 힘의 능력'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나라를 향해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상처 받은 이웃의 아픔을 진실되게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고통을 나눈다는 것

 

저는 가끔 세월호 예배를 보며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이 정돈된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은폐하려고 했던 정권이 바뀌었고, 기성 교회를 떠난 가족들은 세월호 예배에서 참된 교회와 신앙을 찾고 있고,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비록 세월호 참사가 가족들에게 정말 큰 고통을 남겼지만, 그 고통을 통해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다면 이것으로 고통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구조하지 않은 이유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책임자들이 적법한 처벌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CCTV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은 지금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아버님 유경근 씨는 지난해 세월호 성탄 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304명이 희생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희생자 304명의 유가족들이 각각 겪은 304개의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그래야 비로소 진상 규명의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304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의미합니다. 모든 유가족이 각각 왜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우리 형제가 우리 자매가 그렇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참사는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족을 잃은 고통은 평생을 따라다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겪어 보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영역이지요. 2년 전, 인터뷰했던 한 어머님은 이사를 했는데도 딸이 쓰던 방을 그대로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책장에 있는 책부터 게시판에 붙어 있는 메모지, 심지어 딸이 쓰던 휴지통마저 비우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딸의 방을 청소하다가 머리카락 여섯 올을 발견하고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좀 치우라고 잔소리했던 머리카락이었지만, 마치 딸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카락 여섯 올을 유리병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특히 자식을 잃은 슬픔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에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한 것은 2014416일 이후 계속되어 온 고통을 일단락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소원은 단 하나입니다. 고통이 끝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이들이 말하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는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만으로는 고통을 나누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그 고통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고통받는 이들이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까지 함께 외치고 동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5년 전, 수없이 외쳤던 함께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사야 611~3절을 정한 것도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아직 가족들에게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현재 가족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세월호 전담 수사팀 설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국민 서명과 청원도 받고 있습니다. 올해 말에는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 일들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동참해 주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주님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찾아오길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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