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07.19] 어려운 하나님, 쉬운 하나님

by 새길 posted Jul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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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천세영


어려운 하나님, 쉬운 하나님

(잠언 9:1)

 

 

2015719일 주일예배

천세영 형제(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세워서 제 집을 짓고]

- 잠언 9:1 -

 

 

 

1. 유럽의 번영과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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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잠언 91절을 오늘의 말씀으로 선택한 이유는 지극히 모자란 저의 직업적 발로입니다. 지난 한 해 저는 유럽에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움이 있다면 내가 얼마나 무식한가 하는 자각이었습니다. 무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원 중 근원이라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선현들의 격언을 들지 않아도 이렇게 제가 무지를 깨달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오만입니다. 사실은 저 스스로 제가 무얼 모르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를 알아야 당장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작은 지식을 부여잡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 가운데 저의 질문은, 도대체 유럽사람들은 왜 저리 잘 살게 되었나 하는 것이었고, 그 대답의 하나로 대학의 탄생과 성장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인들도 자신들의 대학 탄생 과정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아직 다 못하고 있는데 그 중 한가지 합의되는 설명이 잠언 91절입니다. 지혜가 스스로의 집을 일곱 기둥 위에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일곱 기둥은 교육학에서는 일곱개 필수과목 흔히 국수사과음미체로 통하기도 합니다. 참 재미있기도 하고 기묘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정말 서양인들이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의 집인 대학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저의 직업인 교육학도 하나님의 창조물인 셈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2. 교육학자의 의심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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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사실 저는 평생 교육학을 해왔습니다. 교육학이란 왜 공부를 해야하며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수있는가를 따져묻는 학문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제가 교육학자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이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따라온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오늘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편안합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교육학을 한다고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를 시작해왔지만, 아직까지도 교육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부 잘 한다고 잘 사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젋은이들의 삶이 팍팍하다고 하여 그들에게 그건 자네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했기 때문이야라고 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물론 저는 지금은 확신범이 되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잘 산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오묘한 이야기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3. 어려운 하나님, 쉬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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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분도 지금 잘 안 믿으실테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어린아이 때는 못 믿다가 어른 되어 왜 믿게 되었는지를 고백할까 합니다. 교육학적으로 말하자면, 어릴 때는 모르다가 나이 들면 알게되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증거의 제목을 어려운 하나님, 쉬운 하나님으로 붙여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지만, 또 모르면 죄를 짓는 일이니, 이는 어마어마한 모순이며 딜레마입니다. 어쨌든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에 이르지 못하니까요.

 

 

4. 기독교인의 천로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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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여러분께서도 저와 함께 그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왔는지 곰곰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나가본 것은 초등학교 때 딱 한 번이었는데, 시골 교회였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는 찬송을 목청껏 부르고 소리높여 기도하는 시골 아줌마들의 모습은 그냥 뭘까하는 막연한 궁금증이었는데, 다시 나가고 싶다는 강력한 마음도 생기진 않았던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고향을 떠나 유학을 나왔고 한 일 년인가 교회를 다녔던 기억이 나지만, 딱히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인 듯합니다. 아마도 다녔던 학교가 미션스쿨이었던 이유도 있었겠고,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은 제법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기억에 날 만한 믿음의 확신을 가졌던 것 같진 않습니다.

 

 

5. 기독교인의 두 가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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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교회를 다니고 세례도 받았으며, 모태신앙을 가진 아내와 결혼을 하였으며,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주고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기도 했으니 분명한 기독 신자가 되었습니다만, 하나님은 여전히 어려운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의구심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그 하나는 내가 죄인이고, 더욱이 죄를 짓는지도 모르고 매일매일 죄를 짓는다는데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삶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일이라는데 그건 거의 목사와 같은 직업 종교인이 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젊었던 날 새길교회에 다니고 나서부터 조금씩 하나님은 저에게 쉽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쉬운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

 

여러분 중에서 꽤 많은 분들, 사실은 대부분 자매형제님들께서도 저와 마찬가지의 경험을 가졌을 것입니다.

 

, 그러면 저는 지금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이든 저는 어떻게 그것을 얻게 되었을까요? 대답은 의외로 싱겁습니다. 철이 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게 들어 온 철이 사탄의 꾀임에 빠진 죄인지 성령의 복음인지는 아직은 모르겠고 어쩌면 죽음 직전까지도 모를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저에게 들어온 작지만 소중한 그 철이란 놈, 그 놈이 바로 신앙이요 복음이요 은혜요 구원이라 믿습니다.

 

 

6. 여러가지 예배 형식, 여러가지 공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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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처음에 여러분들에게 그런 철이 드는 여러가지 방법을 보여드렸습니다. , 몇 개의 예배 혹은 기도 형식을 보여드렸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3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불교의 예배양식입니다. 다만 기독교와 관련하여서는 신교와 구교를 구분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원형인 유대교의 예배 양식도 보여드렸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물론 순복음교회의 예배와 미국의 복음성회가 다른 예배 형식들에 비해서는 보다 익숙한 방식일겁니다. 그러나 이 여러가지 예배 형식들은 딱 한 가지 일치된 목적을 갖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 하나님, 혹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인데, 대체로 그 기도의 내용은 그분께서 가르쳐준 말씀을 입으로, 가능한 그것도 큰 소리로 되뇌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린 아이적 글을 배울 때 처럼 그 이야기의 내용은 도무지 알아듣기도 어렵고 잘 외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유대인처럼 손뼉을 쳐가면서 욉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조용히 생각하며 천천히 읖조리기도 합니다. 무슬림들처럼 매일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며 큰 소리로 음율을 붙여 욉니다. 불교의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손뼉을 치고 외다가 맨 나중에는 복음성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암송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과 이제 한몸이 되었다는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7. 좀 더 쉬운 하나님은 안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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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서로 다른 예배형식이 지향하는 곳은 하나입니다. 서로 다른 예배형식을 교육학자적 관점에서 보자면 철없는 어린 아이를 철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까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도 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고 저 역시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감히 만용을 부려 이슬람과 코란의 이야기를 빌려 오려고 합니다.

 

 

8. 코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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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멧을 이슬람교의 창시자라고 합니다. 마호멧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고 삼촌을 따라 아라비아 상인이 되었습니다. 스물 다섯이 되던 해, 열 다섯이나 연상인 부자 과부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어느 날 아라비아 사막에 잠이 들었다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고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석판에 쓰여진 십계명을 받듯이 코란을 받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석판이 아니고 종이이며, 불로 하나님께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문맹이었던 마호멧에게 역사하여 직접 받아쓰게 합니다. 물론 처음에 마호멧은 알라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 recite 했지만 코란과 이슬람의 기적은 십계명이나 모세오경과는 다르게 종이 위에쓰여졌습니다. 이 종이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실크로드를 누비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왔던 것입니다. 종이에 자기들의 말, 곧 아라비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었습니다. 마호멧이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젠 모든 사람들이 종이 위에 쓰여진 채로 마호멧처럼 큰 소리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암송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무슬림들의 기도로 들립니다.

 

 

9. 말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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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대성당의 대문을 많이 대하게 됩니다. 대개는 대문의 화려한 조각들을 스쳐 지나갑니다. 성당 안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하면 화려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부조 조각들입니다. 그것들이 성경의 이야기를 조각해 놓은 것임을 알기란 눈썰미 좋은 기독교인이 아니고서는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이슬람 사원들의 대문은 대성당과의 그것과는 다른 복잡하고 오묘한 문양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그것은 코란의 구절들이지요.

 

마호멧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말씀은 당시 교회에서 들려지는 많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거짓 증거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십계명 제1조의 우상숭배금지를 어기고 온갖 신상과 그림을 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오로지 말씀만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에게 말씀은 여전히 만져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져지고 보여지는 말씀이 종이 위에 쓰여진 코란이며 모스크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코란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은 마르틴 루터에 의해서 7백년이 지나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라틴어 성경이 아닌 독일어 성경을 구텐베르크 인쇄술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손에 성경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뜻을 새기며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러한 종교개혁을 새길교회에서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게 그전보다는 쉽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10.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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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하나님보다는 쉬운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입니다. 새길교회가 어려운 한자어투의 개역성경을 쓰지 않고 새번역성경을 쓰는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하나님을 보다 쉽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구텐베르그 인쇄술 발명지인 독일의 마인쯔라는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제가 우연히도 새길교회 가까이 살았던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쉽게 만나려면 한 줄이라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이왕이면 좀더 많이 깨달은 자매형제들로부터 도움 말씀을 청해야합니다. 말씀을 꼭 책으로만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책과 글자의 모양을 띤 성경을 읽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으로도 부르고 눈으로도 읽기도 하고 소리 내어 입으로도 읽기도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어려워서 오늘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요즘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쉬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봅니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인터넷 공간에는 정말 하나님이 쉬운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는 하나님의 말씀 양식도 사진과 동영상과 말소리와 글자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길교회 교우 여러분 성경말씀을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모양으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우리는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까요? 우리는 게으르고 악하여 거의 못 읽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자주 대하지 않을수록 당신은 자꾸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새길교회에 다닌 이유는 새길교회에서는 다른교회에서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설명해주는 말씀증거자들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호멧이 당신의 말씀을 종이에 적어 주었듯이,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해 주었듯이, 헨델이 할렐루야합창곡으로 들려 주듯이,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의 비밀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렸 듯이, 새길교회에서 이제까지보다 훨씬 쉬운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새길로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