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07.05]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

by 새길 posted Jul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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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형선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

(출애굽기 15:26, 요한복음 9:2-3)

 

 

201575일 주일예배

정형선 형제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 출애굽기 15:26 -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 요한복음 9:2-3 -

 

 

 

몇 주 전에 말씀 증거 의뢰가 왔습니다. 최대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메르스이니, 저에게 지난 달 반 우리 사회를 초토화시킨 메르스 사태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는 예방의학이나 감염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의사도 아닙니다. 사회보장제도 특히 의료보장제도를 주된 연구 분야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직업상 일반인들보다는 의료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까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질병이 하느님이 내린 징벌의 의미로 해석이 된 것 같습니다. 아까 읽은 성경구절 출애굽기 15:26은 결국 나의 말을 잘 안 들으면 질병을 내리리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 구절이지만 이는 사실 구약시대의 질병관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징벌적 질병관은 성경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민수기에는 전염병에 대해서도 징벌적 시각에서 다루는 얘기가 나옵니다.

신약시대에도 그러한 시각은 계속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9:2-3에서 예수께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그 부모입니까?” 이는 소경된 자나 그 부모에게 무언가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소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전제 하의 질문입니다. 당시에는 질병이나 불구가 잘못에 대한 징벌임을 당연시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관점을 일거에 바꾸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어떻습니까? 바로 오늘 말씀증거의 제목이 여기 나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는 답변. 대단한 반전이 아닙니까?

 

가장 오래된 전염병은 결핵이고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고 합니다.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 일명 흑사명은 유럽 인구를 3분의 1로 줄게 만들 정도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에서는 항구에 도착한 배를 40일간 강제 정박시켜 페스트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입항시켰다고 합니다. 이는 이들이 역병의 잠복기를 경험적으로 알았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잠복기정도의 개념은 알고 계시지요? 이미 우리 국민은 역학 지식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병의 원인을 정확히 몰랐고, 따라서 불시에 찾아오는 질병이 역귀의 작동에 의한 것이나 징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 걸린 사람들도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책감을 가졌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를 볼 때 의학이 발달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미생물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17세기에 들어와서고, 파스퇴르가 미생물을 통해 병이 전염되는 것을 알아내고 미생물을 이용해서 백신을 만든 것도 19세기에 와서입니다. Fleming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도 20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바이러스와 세균의 전달경로가 확인되면서 이러한 징벌적 질병관은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미 그러한 징벌적 질병관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메르스 감염자나 그 부모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에 대한 징벌로 감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음미하면서 저는 이번의 사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중동에 다녀온 68세의 남성이 4군데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메르스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병원에서 바로 확진이 되고 당국에 신고 되어 골든타임 안에 격리 조치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메르스 확산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한국의 공공의료체계의 한계점이 부각되었습니다. 의료쇼핑이나 가족간병이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있던 국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문제에 대해서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의료쇼핑의 문제입니다. 이는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표현한 것일 뿐이고, 정확히는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입니다. 의료전달체계란 가벼운 질환은 동네의 작은 의원이나 병원을 이용하고 보다 전문적이고 정밀한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큰 병원으로 의뢰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건강보험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경로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동네병원의 진료의뢰서 없이 바로 3차병원에 가면 원칙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3차병원의 응급실이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거나 우회하는 루트가 되어버렸습니다.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거부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응급실은 밀려드는 환자로 북새통이 되고 통제가 어려워져서 금번 사태를 가속화시키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족 간병의 문제입니다. ‘병문안문화라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듣기 좋으라고 잘못된 문화이지, 사실 잘못된 것은 제도입니다.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5년을 살았는데, 며칠 입원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루 중 면회 시간이 정해져서 제 식구도 그 시간에만 잠시 다녀갔었습니다. 우리처럼 병실에 환자 수보다 가족, 친지의 수가 더 많아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상상을 못합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이 간병을 할까요? 왜 병실에서 환자도 아니고 병원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을까요? 환자가 입원을 하면 그 때부터 환자의 모든 생활은 병원의 책임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병원에서는 가족들이 나서서 병원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이 상주하기 어려우면 환자나 가족이 자비로 간병인을 고용해서 그 역할을 맡깁니다. 결국 환자와 가족이 돈 부담을 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환자가 내는 돈은 많은데 병원이 직접 받는 입원료는 많지 않은 것이지요. 그 차이가 생기는 것은 바로 간병비 때문입니다. 가족 간병이나 간병인 고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의 문제인 것입니다. 문화 탓으로 돌리면서 그 부담을 건강보험이 지지 않고 병원이 지지 않고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해결해보고자 소위 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이를 처음으로 시도했던 병원이 역설적이게도 이번에 문제가 되었고 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입니다. 1993년 삼성의료원이 건축 중일 때 공사 현장을 찾은 이건희 회장이 환자 중심의 제대로 된 병원을 만들 것을 강조하면서, 대기시간과 촌지와 보호자가 필요 없는 이른바 ‘3무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어느 샌가 보호자가 상주하는 일반적인 병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더 나아가 점점 더 상업화된 병원이 되어버렸습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은 잠깐의 전시행위였을 뿐, 많은 부분을 외주와 용역에 맡기면서 환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지녔다고 큰소리치지나 않았으면 덜 창피했을 것입니다. 고급 로봇 기계 다루는 법이나 일부의 하이테크 기술을 배워 와서 환자에게 높은 비용을 부담시키고 중증 환자에게 약간의 연명을 도모하는 것이 최고의 자랑은 아닐 것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의 모습은 사적 이익에 맡겨진 의료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정부도 가족간병의 문제에 대응하고자 포괄간호서비스제도라는 것을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중심이 되고 병동마다 도우미를 배치해서 간병 업무까지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범사업 수준에서 확대하고 전면적 시행은 차기 정부에 미루는 것이 현 정부의 로드맵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이러한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다행인데 제대로 진행될지 의심스럽던 참이었습니다. 금번 메르스 사태로 가족간병의 심각성이 부각되었으니 보다 빠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잘못된 것인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안이 복잡하고 장단점이 섞여 있는 경우 그러기 쉽습니다. 고쳐야 할 사항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도 많아서 고쳐야 할 것이 고쳐지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도 고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고치기 위해서는 인력과 돈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 대부분인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사안 간에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합니다. 메르스 사태가 나자 사후약방문 격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그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수없이 논의되던 사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토건사업에 밀렸고 박근혜정부에 들어서서도 산업 활성화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중동 의료수출만 크게 외치고 있었지요. 이번의 메르스 사태는 그간 우리 사회가 사안의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셋째, 고치긴 고쳐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고쳐야 할지에 대해 방법론이 합치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번의 메르스 사태는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공공병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공공병원입니다. 돈 되는 치료에만 치중하고 다른 민간 의료기관과 경쟁해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서 억대 연봉을 지불해 가면서 전문의들을 지방으로 데려오는 것은 공공의료기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민간 의료기관이 나서서 하지 않는 음압병실을 운영하고 적자가 나는 응급실을 운영하는 것이 공공의료기관이 할 일입니다. 이럴 때 생기는 적자가 착한 적자, 이를 위해서라면 공공병상을 유지할 비용을 국가나 공공이 지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돋보인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의료원, 수원의료원의 역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소경된 자가 누구 때문에 그리 된 것이냐는 시험적 질문에 대해서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라고 답하신 예수님. 당시까지의 관념을 깨고 소경된 자를 불필요한 죄의식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불행한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계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금번 메르스 사태, 이 엄청난 충격의 사건을 통해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을 경외의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공공의료의 문제, 의료전달체계의 문제, 간병비의 문제는 대중과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기 힘들었습니다. 반드시 고쳐져야 할 사안임에도 도대체 꿈쩍 않는 바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는 이러한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위생과 방역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크게 높였습니다. 보건의료분야가 사적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공성 높은 분야임을 국민들이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의 문제점과 가족간병의 문제점이 공론화되었습니다. 그 덕에 개선 과제의 우선순위가 조금 앞당겨질 것 같습니다.

메르스가 국민의 건강을 해한 정도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이에 비해서 금번 사태가 제도 개선에 줄 긍정적 기여도는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 보건의료제도의 고질적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려지게 된 것만 해도 큰 다행입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새길로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