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06.07] 생태적 관심과 감수성, 그리고…

by 새길 posted Jun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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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현섭


생태적 관심과 감수성, 그리고

(창세기 1:27-28)

 

 

201567일 환경주일 예배

최현섭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이사장)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하셨다.]

- 창세기 1:27-28 -

 

 

 

 

 

안녕하세요?

아시다시피, 오늘은 우리 공동체가 처음으로 환경주일 예배를 구분하여 드리는 날입니다. 원래 환경주일은 1972년 유엔이 6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하자, 기독교계가 6월 첫째 주를 환경주일로 지키기로 화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1984년에 처음으로 6월 첫째 주를 환경주일로 제정 선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1992년에 참여하면서 확산되었고, 오늘날에는 환경주일 공동자료집을 제작·배포하기도 하고, 연합예배를 드리는 등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말씀증거를 준비하면서, 저는 내가 무슨 환경주일 말씀 증거를 해?’ 하는 자격지심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생태환경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이제 겨우 5년 남짓 한 그야말로 생 초짜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 끝에, ‘말씀 증거가 아니라, ‘반성문 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혹 반성문이라도 제대로 쓰면, 또 다른 은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저의 반성문을 측은한 마음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반성문이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께도 귀한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도와 화답으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저의 반성문 쓰기는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크기변환_민영.JPG



이 사진 어떻습니까? 참 귀엽고 예쁘지요? 누군지 아시겠어요? 신필식 형제와 정지연 자매 가정의 귀염둥이 신민영 어린이입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페이스북에 천사라고 썼습니다. 지난 53일 숲 예배를 마치고, 감동을 되새기며 나오는데, “나무야 잘 있어! 초대해주어 고마워! 새들도 잘 있어!” 하는 음성을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과 마음, 천사가 맞지요?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돌멩이 하나와도 영적 교감과 감사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감성을 지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의 음성은 저의 생태적 감수성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돌이켜 보게 하는 아주 귀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생태적 감수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강화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생태환경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감동적으로 느끼고, 생태환경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면, 생태환경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게 민영이는, 생태적 감수성은 생태 세계와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특별하고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생태세계의 모든 존재들과 영적인 소통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생태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들을 존귀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자연환경의 난개발과 파괴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으며, 안타까움이나 공분이 생기겠습니까? 생태 세계와 민감하게 소통하고 감사를 나눌 수 없다면, 자연환경의 소망과 아픔이 귀에 들릴 리가 없고, 에너지와 자원의 남획과 남용을 막아내려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민영이가 그걸 제게 깨우쳐 준 것입니다. 어찌 천사라 아니할 수 있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민영 천사 고마워요!!!”

 

그런데 이렇게 반성문을 쓰다가, 생태적 감수성은 천지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누리며 완성해가는 첩경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걸 잠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조금 전, 추응식 형제께서 읽은 창세기 127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는 인간만을 사랑하시고, 인간에게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주신 것처럼 이해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베푸시며, 생육하고 반성하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신 말씀을 그렇게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급기야 자연환경의 무분별한 개발과 남획도 하나님의 뜻처럼 여기는 신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갑질도 신앙인 것처럼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1장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그것은 결코 창조의 본질도, 하나님의 뜻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에게도 생육하고 반성하라는 복을 베푸시었습니다. 또한 창공, 해와 달, 바다와 육지, 동물과 식물 등 모든 피조물에게 빛과 어둠, 생육과 번성의 터전, 먹거리 제공 등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와 역할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된 것을, ‘보시기에 좋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보시기에 좋다는 말씀은 창조세계에 볼거리, 관광거리라는 가치와 역할을 부여했다고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생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태세계는 숲과 얼음, 사람과 동물, 심지어 미생물과 흙먼지조차도, 아주 길고 복잡한 연합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세계의 먹이관계도 사람이 정점에 있는 일방적 사슬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생육과 번성의 밑거름이 되는 그물망 관계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공기와 물의 도움과, 동물과 식물을 먹이로 하여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뭍 생명의 생육과 번성의 터전이 됨으로써, 길고 먼 생명순환의 영속화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아마존의 밀림이나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 사람의 생존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고 경고합니다. 내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은 다른 생물의 생존과 무생물의 존재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세계적인 환경인권 전문가 캐스파 핸더슨은, 인간이 자신 이외의 존재를 인식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가장 숭고한 성찰이며 인간적인 일이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것이 없으며, 어느 하나에 의해 일방적으로 먹히고 지배당하는 갑과 을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헌신하는 상생과 감사의 관계이며, 하나가 신음하거나 파멸되면, 다른 것도 신음하고 파멸되는 고도의 유기적 복합체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 감수성은 바로 그러한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고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일이고, 누리며 완성해가는 첩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은 모르 체 하면서, 자연환경만 돌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가장 먼저 챙기고, 강한자의 갑질을 바르게 하려는 주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으니, 저는 생태환경 생 초짜이기 전에, “신앙의 생 초짜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 불쌍하지요?

 

그런데 반성문을 쓰면서 제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진 몇 장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JPG


앞의 두 사진 기억나시지요? 땅콩회항 사건과 성 아무개 씨의 자살 사건 이후에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상품의 사진입니다. 인터넷 사진을 좀 수정했는데 무슨 상품인지 아시겠지요?

 

다음 두 사진은 지난 4월에 있은 어느 지역의 보궐 선거 현수막을 찍은 것입니다. 내용 한번 볼까요? 앞쪽은 길이 뚫린다, 물길이 열린다, 땅값이 오른다, 지역을 부자로 만들겠습니다.’ 로 되어 있습니다. 뒤의 것은 서민 지갑, 쓰레기 매립지 종료, 신도시 조기 착공을 꼭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대비가 되지요? 유권자는 어디에 끌렸을까요?

 

답답하고 슬프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이나 가치를 민감하고 최우선적으로 인식하거나 판단의 기준으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관심과 흥미, 못 말리는 이해관계와 패거리적 선호, 또는 기발한 구호와 광고 등에 더 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질과 가치를 짚어주는 사람이 오히려 공격을 받기도 하고, 사회 정의나 부패 스캔들이 선거의 이슈를 삼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기업인가를 살찌우게 하고, 특정 권력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생태적 감수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카톡이나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잡소리들, 멋지게 보이거나 부자 되기 등과 같은 일상적인 욕구에 의해서 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권력자나 정부의 고집이나 잔꾀에 앞자리를 내줄 수도 있습니다. 녹색경제다, 개혁이다, 하는 멋진 구호나 정책도, 왕왕 권력형 난개발과 환경 파괴 그리고 개발 이권 나누어 먹기에 점령당한다는 것, 익히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바로 이걸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태적 감수성은 현실적 경쟁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감수성의 현실적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것은 다음 자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JPG


자료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전력 소비량은 2005년부터 세계에서 최고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의 전체 소비량도 세계 10위권 이내이며, GDP 1천 달라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역시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별 세계 최고도 많지요? 뿐만 아니라 각종 폐기물이나 음식물 쓰레기 1인당 발생량도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 다음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의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4.JPG  


1912년부터 2008년까지 100년 동안 세계 평균기온은 0.74상승하였는데, 우리나라의 6대도시는 무려 1.7나 상승했다고 합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 피해액의 증가 추이도 세계 평균의 세배 가량 높습니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대비한 안정성과 적응력 평가 결과는 OECD 회원국 중 식량 안보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20위권 밖에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서울에서만 금년 2015년에는 95명 정도일 것이고, 2050년에는 최고 3750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분석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생태감수성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이며,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정도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와 후손들의 생존까지도 위협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메르스 때문에 공포감이 커지지요? 생태학자들은 오늘날의 새로운 질병도 결국은 인간의 갑질에 대한 생태계의 반란일 수 있으며, 앞으로 그러한 반란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드시지요? 그러나 두려워하는 것 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태학자들은 충고합니다. 순간순간 만나는 비본질적이고 반생태적인 인식과 습성, 그리고 온갖 유혹과 무분별한 권력을 분별해내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누리고 완성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고군분투라 할 정도로 고도의 긴장과 인내와 집요함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조금만 작동시켜 보십시오. 그러면 긴장하고 인내하며 집요해야만 할 일들이, 겁이 덜컥 날 정도로 많이 보일 것입니다. 아끼고 나누어 쓰며 바꾸어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나, BMW라고 부르는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걸어야 하는 것 정도는 보통입니다. 장바구니 사용, 물과 전기 아끼기,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폐기물 분리수거 하기 등도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더 심기, 친환경 기업 가려내기, 환경 친화 상품 사주기, 공정무역 동참하기, 친환경 건축물 짓기, 원전하나 줄이기 등 적당히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정말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미 달인이 되어서 그 대부분을 편안하고 능숙하게 실천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잼 빈병을 재활용하겠다는 봉사부가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저 같은 생태환경 생 초짜에게는 그것들은 부담이 너무 크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반성문을 마무리하면서 갖는 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유체이탈식으로 반성문만 쓰고 말 수도 없고, 무엇인가 내 얘기와 삶으로 만들어야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긴장, 인내, 집요함은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고도 있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공동체는 이번 환경주일 예배를 계기로 주보 없는 예배, 종이컵 안쓰기, 잔반 없는 공동식사, 종이 없는 운영위원회를 실천하겠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그것을 열심히 하겠다면서 반성문을 끝낼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생태환경 생 초짜로서는, 그것만 제대로 따라 해도, 잘하는 일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기회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만 따로 실천해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많은 것 다 따라하다가 지쳐서 그만두는 것보다는 두 가지만이라도 끝까지 하는 게 경쟁력이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혹 그것조차 포기할지도 몰라 공개적으로 밝힐까 합니다. 저도 저를 잘 못 믿거든요.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1회용 종이컵 사용 줄이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은 연간 8천억원이고, 경제적 손실로 보면, 연간 20조원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종이컵도 연간 15천억원이나 되는 116억 개를 소비하고 있으며, 1톤의 종이컵을 만들려면 20년생 나무를 무려 20그루 베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10%만 줄이면 대략 연 2조원이 절약되고, 그것은 두 정권이 10년 동안 막 퍼주었다고 하는 북한 지원액과 맞먹습니다. 참 답답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연습을 해보니까, 교회에서의 잔반 없는 공동 식사는 무리 없이 달성할 것 같고, 집에서도 현모양처의 도움으로 음식물 쓰레기 감량도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식당은 내놓은 것을 다 먹을 수도 없고, 남기자니 마음에 걸리고 해서,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food sharing을 한번 시작해 볼까 합니다. 공개된 거리에 무인 냉장고를 놓아두어 남은 음식을 갖다 넣게 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방식 말입니다. 잔잔한 일거리는 많겠지만, 잘만하면 성과는 크지 않겠습니까?

 

텀블러 사용도, 가방만 들고 다니면 가능해보였습니다. 가방을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지만, 텀블러를 사용하면 100원 정도 깎아 주기도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걸 50번만 더하면, 북한에 나무 한그루를, 심고 가꾸는 비용이 되니, 따로 모아두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요즈음에 북한에 자활형 산림농업 시범 단지 조성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중이거든요.

 

다른 하나는 친환경 상품 사주기와 친환경 지도자 골라 뽑기 운동입니다. 에너지와 탄소 절감 실적 등을 상품 구매의 기준으로 하자는 소비자 운동과 친환경적인 삶과 정책을 투표의 최우선 기준으로 하자는 유권자 운동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사실 긴장과 인내와 집요함이 더 많이 요구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무섭고, 표가 절실해서라도, 기업과 지도자들이 생태 환경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 두 집단만 바르고 정케 되면 환경 문제건 사회문제건 다 잘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큰 맘 먹고 한번 시도해볼까 합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창조의 보전과 완성 그리고 고통 받는 모든 생명의 이웃이 되겠다는 매주의 다짐을 이행하는 도전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혹 저와 비슷한 생태환경 초짜가 계시면, 뭉쳐서 함께 도전해보았으면 합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에게 따뜻한 피가 흐르게 해준, ‘모임이 도와주면 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곁 모임 여러분, 도와주실 거지요?

 

요즈음 말씀과 기도 모임에서 잠언(4:12)을 읽고 있는데, ‘혼자서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쓰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확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고 둘만 모여도 시작해보려 합니다. 혼자라면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오늘 순서를 맡은 노선희 자매와 추응식 형제를 강제 차출해서라도, 셋이서 시작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두 분! 그냥 자발적으로 하실 거지요?


내년 환경주일 예배 때에는 그 활동 내용과 결과를 신나고 힘차게 보고하는 은혜의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일은 신나고 힘차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미 있는 일도 재미있게 하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재미까지 넘치는 내년의 보고를 기대하면서, 두루 두루 생초짜의 반성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새길로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