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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득훈 목사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3:15-4:1)

 

2012년 7월 29일 주일예배

박득훈 목사

(전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우리는 종종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너무 악합니다. 역사는 갈수록 더 사악한 불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어두운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것인가?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가? 내가 혹시 그 동안 허깨비를 믿어 왔단 말인가? 존재하고 계셨다면 철학자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죽으셨는가? 이런 고민에 빠지다 보면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란 무엇일까요? 그 답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시대에 일하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유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항상 똑같은 방식을 일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탐독하다 보면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에 하나의 큰 흐름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선 긴 호흡으로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긴 호흡으로 일한다는 말은 긴 시간을 두고 오래 기다리면서 일을 처리해간다는 뜻입니다. 당장에 아무 것도 안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상당히 긴 시간을 흔들림 없이 한 걸음으로 차근차근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식으로 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사무엘상 1:1-4:1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엔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이 없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긴 호흡으로 일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제대로 깨닫는다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에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 각각을 통해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끈질기게 경고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사무엘서 1-2장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악한 홉니와 비느하스를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내어버려두는지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질 않습니다. 정말 답답할 지경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엘리의 아들로 늙은 아버지를 이어서 실질적으로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소중한 사역을 감당하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사장에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일정한 부분 즉 가슴고기와 오른 쪽 넓적다리(레 7:28-36) 혹은 앞다리, 턱 그리고 위를(신 18:3) 자기 몫으로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넘어서 탐욕을 부렸습니다. 첫째,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나 종들을 시켜 자기가 선호하는 최고 부위를 콕 집어내 자기들 것으로 삼았습니다. 둘째, 삶은 고기보다 구운 고기를 선호했습니다. 셋째, 하나님 몫인 기름 부위를(레 3:16; 7:25) 태워 먼저 하나님께 드린 다음에 제사장에게 생고기를 주겠다는 백성들의 타협안마저 힘으로 누르고 기름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생고기를 강제로 챙겼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들의 식탐을 앞세운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고 음란했습니다. 하여 성막 입구에서 일을 돕고 있는 여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에서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자들을 지켜만 보고 계신 것일까요? 하나님 자신을 능욕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질문은 오늘 우리를 괴롭힐 때가 적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참으로 못된 사람들이 교회를 쥐락펴락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데 그냥 가만히 보고만 계신 것일까요? 교회재정을 사리사욕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수천억대의 헌금을 교회건물 짖는데 쏟아 부어 자기과시를 하려는 목회자는 잘만 나갑니다. 여자 교우를 유인해서 성적으로 농락해 놓고선 진정한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목회자 역시 잘만 나갑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과연 하나님은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했던 것처럼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좋게 보시는 분일까요? 아니 그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시는 분일까요?(말 2:17) 상황이 이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삼상 2:27-3:19을 보면 하나님이 아무 것도 안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끈질기게 그리고 강력하게 경고하시고 기다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엘리는 사악한 제사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들들을 신앙적으로 바로 세우는데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떠도는 소문을 듣고야 아들들이 무슨 짓을 해 왔는지 알아차립니다. 그제야 그들을 불러 책망하지만 충분히 단호하지 못했습니다. 하소연하듯이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맙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을 보내 확실하게 경고하십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음으로서 엘리 제사장 가문은 그것으로 끝장나고 새로운 제사장 가문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리십니다. 그럼에도 회개와 변화의 움직임이 없자 이번엔 어린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엘리 가문에 대한 영원한 심판이 임할 것을 다시 알리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사무엘은 들은 바를 하나도 숨기지 않고 엘리에게 전달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최후통첩인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마음은 엘리 가문을 심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고를 들은 엘리가 다시 한 번 홉니와 비느하스를 강력하게 책망하여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최후통첩을 보낸 후일지라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이미 사사시대 내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극적으로 보여준 성경책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또한 에스겔 선지자도 그런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 때문에 멸망될 수밖에 없다고 좌절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두 번에 걸쳐 보여주십니다.

 

(겔 18:21, 23) 21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 2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너희는 돌이켜라. 너희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거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왜 죽으려고 하느냐?' 하여라.

 

하지만 그들은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에 대한 최후통첩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겔 33:14-15) 14 그러나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어도, 그가 자기의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과 의를 행하여, 15 전당물을 돌려주고, 탈취한 물건을 보상하여 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규정들을 따라 살아,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짜 속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들에게 경고하시고 그들이 돌이키길 간절히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기간 언제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는데 실패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통해 최후통첩을 듣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분은 주님이시다. 그 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삼상 3:18) 자기 가문의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겸허한 신앙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간절한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진짜 속마음을 알았다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시 한 번 두 아들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 아들들아! 너희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가지 나는 금식할 것이다. 너희들이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이대로 굶어 죽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함께 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왜 죽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엘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에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같이 전사합니다. 하나님이 궤마저 빼앗깁니다. 이 슬픈 소식을 듣는 순간 엘리 역시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맙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죄인들에게 끈질기게 찾아 오셔서 강력하게 심판을 경고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리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두운 시대에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좌절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한국교회를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악인들이 돌이키기를 바라고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고 경고의 메시지를 끈질기게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도리이자 책무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도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하나님께 이렇게 자신의 심정으로 토로합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렘 15:15)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긴 호흡에 담긴 오래 참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어두운 시대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끈질기게 전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사무엘을 새로운 선지자로 불러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길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일도 안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순종하며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아들로 허락하셨습니다. 한나는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평생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성막에서 제사를 돕는 종이 됩니다. 그는 잠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막 안에서 잤습니다.

 

그런 던 어느 날 밤, 성막에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새벽녘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아직 사무엘은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몰랐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엘리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 갔습니다. 네 번째에야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가문의 범죄 사실과 그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아직 어린 사무엘에겐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운 나머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차마 엘리에게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가 사무엘에게 엄하게 요구하자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선지자로서 첫 사명을 이행한 것입니다.

 

그 후 사무엘이 자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성막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하여 하나님은 그의 말이 한 마디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영적 권위가 축적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최북단인 단에서 최남단인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들이 사무엘을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로 알아보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이 다 사라져 버려 칠흑처럼 어두워진 시대에 하나님은 이렇게 새 역사를 차근차근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듣고 한 생명을 탄생시키십니다. 아직 어린 사무엘을 불러 선지자로 세우십니다. 그에게 영적 권위가 축적되게 하셔서 그를 통해 자신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십니다. 한 사람이 탄생하여 선지자로 자라가는 과정은 수십 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최근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참 귀한 시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는 과정도 이렇게 지난한데 하물며 아름다운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한 사람이 이렇게 흔들리며 젖는 과정을 통해 빛나는 모습, 따뜻한 모습으로 자랄 때까지 긴 호흡으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람과 더불어 일하길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프로스트와 알렌 허쉬가 공저한 <새로운 교회가 온다>에 이런 대목들이 나옵니다.

 

헤겔은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자서전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쓴 하나님의 전기다. 하나님은 문자를 제공하시고 사람들은 문장을 쓴다. … 하나님께 드려지고 그분의 창조 세계에 헌신한 개인들의 삶으로부터 구속의 씨앗 하나가 세상에 떨어지고, 추수는 하나님이 하신다! (212-213 쪽)

 

탈무드에는 이런 수수께끼가 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빵으로 살게 하셨다면 왜 빵 나무를 만들지 않으셨을까?” 그 대답은 이렇다. 하나님은 바삭바삭한 빵덩이를 내는 나무를 만드실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곡식을 주기로 하셨고, 땅을 사서 씨를 심게 하셨다는 것이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창조에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290-291 쪽)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일하십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나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동안 긴 호흡으로 함께 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류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인간이 조급한 마음에 긴 호흡을 잃어버리고 짧은 시간에 혁명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표면적으로 천하기 뒤집히는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종종 피로 물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폭력이라도 폭력은 반드시 다시 폭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새천년 9·11 비행기테러와 미국의 대 아랍 침략전쟁이 그 비극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내기 위해 하나님도 때로 전쟁에 참여하여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나 진의가 아니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역사는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더 완성된 형태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도들과 제자들을 부르셨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과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들은 큰 능력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역사가 누가는 이렇게 멋지게 표현합니다.

 

(행 19:20)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은과 금도 없이, 검과 창도 없이 그저 맨손으로 온 천하를 뒤집는 진정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성경은 개인만 변하면 세상은 저절로 변한다는 순진한 관점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개인의 회심은 매우 철저하고 총체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죄 뿐 아니라 자신이 동참해온 사회적 제도적 죄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거기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한 개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인과 사회의 죄에 도전하고 진정한 변화를 촉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긴 호흡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어디선가 사무엘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을 주시고 영적 권위를 축적하게 하십니다. 그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하십니다. 그 말씀의 힘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그 말씀의 힘으로 세상을 변혁시켜나가십니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이 세우시고 계시는 오늘의 사무엘에 주목하고 경청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영적 권위를 알아보고 그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듯이 우리도 그들의 권위를 알아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홉니와 비느하스를 추종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개혁을 가로막는 무서운 장벽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의 눈과 귀가 열려 참선지자를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듯 나 자신을 부르실 때, 사무엘처럼 응답해야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사무엘 한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이 말씀을 듣기 시작했을 때, 꺼져가던 이스라엘의 등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직 성전의 등불 즉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기 전 사무엘을 부르신 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여기에 우리 교회와 민족 아니 세계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주님의 말씀은 진지하게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왜 침묵만 하십니까?’ 묻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세계를 뒤집는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맺음말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에 보면 ‘시간 밖에서 살고 싶다’는 글이 있습니다. 어느 해 7월 산중에 머무르면서 건전지가 다 소모되어 시계도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었을 때 시간에 대해 깨달은 점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한 대목을 소개해드립니다.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시계 바늘에 의존하지 않으면, 순간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초초해하지도 말고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돌리면 그 어떤 시간에건 여유를 지니고 의젓해 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긴 호흡으로 일함의 의미를 잘 담아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일하십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입니다(벧후 3:8). 죄인들에 경고하시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시되 긴 호흡으로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무엘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전할 사람을 탄생시키고 부르시고 키우시고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 이 하나님과 함께 긴 호흡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동역자가 될 수 있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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