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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인섭

70년 포로생활과 바사왕 고레스

(에스라 1:1-4)

 

 

2012년 6월 17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한인섭

 

 

이란 여행길에서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구약의 바사왕 고레스 이야기란 제목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사는 영어식으로 하면 페르샤이고, 고레스는 지금도 이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영/독어로는 사이러스, 키루스인데, 처음 이 말을 교회에서 들었을 때 ‘바사’와 ‘고레스’라는 어감이 하도 독특하여 옛 기억의 자락을 더듬느라 그냥 ‘바사왕 고레스’라고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작년 1월초에 저는 이란여행을 갔습니다. 현대 이란보다는 고대 페르샤를 좀 진하게 느껴보자는 취지였기에, 페르샤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란에는 좋은 점이 여럿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도 호기심 가득 우리를 쳐다보곤, 곧바로 말을 건넵니다. 말은 짧습니다. Hallo하고 먼저 탐색하고, 다음엔 Where you from?하면 Korea하면, Ah!. 그게 다입니다. 조금 지나면서 장난기가 생겨, 제가 Korea라고 답하지 않고 Jumong하면 완전 반색하면서 Oh, Korea라고 환하게 웃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주몽 드라마를 본적도 없는데, 그냥 Jumong하면 마치 제가 주몽의 친척이나 되는 양 반색하며 대해주니 저도 주몽의 덕을 단단히 봤습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색다른 것인데, 핸드폰과 인터넷이 여행 중 거의 되지 않습니다. 그 단절감이 진짜 현지에 몰입하게 해주고 해방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때문에 한국 소식 싹 끊고 고대 페르시아의 Persepolis니 Yazd 등을 관광하며 보며 신나게 지나다 중부도시 Isfahan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큰 도시인지라 핸드폰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김이수 형제님이 보낸 문자도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 “2월 중순께 말씀증거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증거 부탁은 1년전~6개월 전에 알려줘도 무거운 부담인데, 1개월 전에, 더욱이 완전 이국땅에서~ 뭐 어쩌란 말입니까. 답할 방법도 없고, 성경책도 없고. 신나는 기분은 사라지고 이젠 묵직해진 맘으로 여행을 계속하는데, 그동안 스쳐간 주제, 즉 “성서속의 페르샤”라는 게 계속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란의 전체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군주, 다시 말해 The Great로 꼽히는 군주가 딱 3명 있는데, 그 중 2명이 성서속의 인물입니다. Kyrus the Great, Darius the Great가 그들입니다. 그 중에서 고레스 왕은 우리식으로 하면 광개토-세종대왕이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영토를 확장해 대제국을 건설했고, 지혜와 인자함에서는 세종대왕적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세계사적으로도 그보다 위대한 군주를 찾기도 쉽지 않은 분이고, 지금도 이란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첫째 인물이지요.

 

성경에서 바사(페르샤)는 바벨론과 완전 대조됩니다. 예수살렘을 파멸시키고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간 게 바벨론이니 바벨론에 대해 어떤 종류의 좋은 감정도 있을리 없습니다. 바벨론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첫 부분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바벨론은 현실적 악이자 악의 상징 자체입니다. 그런데 바사와 관련해서는 호의적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납니다. 그 중에서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구약 전체를 통해 오직 호평만 받는 인물은 이 인물 하나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고레스가 그토록 위대하단 말인가, 그건 성경만의 표현인가, 아님 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했던가...여러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바라보며 울었노라

 

구약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예레미야> 끝부분과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모든 건물이 불태워지고, 히브리인들은 죽임당하고, 약탈당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성전의 모든 보물과 놋쇠가 벨론으로 실려갑니다. 예레미야 애가에서는, “예루살렘 도성이 적막하게 변했고, 밤새도록 서러워 통곡하니, 뺨에 눈물마를 날이 없고, 친구는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숱보다 더 검고, 살갗과 뼈가 맞붙어서 막대기처럼 말랐으니, 하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 차라리 칼에 죽은 사람이 낫겠다고 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들이 제 손으로 자식을 삶아서 먹었다고도까지 합니다.(애가 4:8-10)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하는 절망어린 안타까움으로 끝납니다.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노예들은 바벨론 성벽을 축조하고, 왕궁과 도성을 건설하는 노고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포로의 신세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은 오늘 읽은 교독문의 일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교독문은 뜻밖에도 시편 137편에 실려있습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B.C. 1천년대, 다윗과 아삽의 노래들인데, 그 시편의 뒷부분에 500년의 시차를 두고 슬그머니 삽입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봅시다.

 

우리가 바벨론 강변 곳곳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아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자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보라고 하는구나.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원치 않는 상황에서 노래를 강요당한다는 것, 자신이 노리개가 되어 원수의 흥을 돋구어야 한다는 것, 그것처럼 치욕스런 일이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된 뒤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술 마시며 여자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라고 시키는 것을 생각해보면 되겠지요. 그러나 안부를 수도 없는 일. 그 요구에 맞추어 장단을 맞추고 노래를 불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어찌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는 탄식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 마음 깊이 또 다짐합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버려라.

 

이는 자신의 내면을 향한 처절한 자기다짐입니다. 자신들의 본향은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거지요.

실로 기억의 보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은 너무나 절실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포로생활은 70년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나라 잃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일제시대가 있습니다. 그 역사적 경험이 35년인데, 유대인들은 그 2배에 해당하는 길이의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2배가 아닙니다. 35년의 기간은 이민족 지배 이전의 기억을 간직한 세대가 독립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70년이라면 예루살렘에서 끌려온 이들이 거의 죽고 난 뒤, 바벨론에서 태어난 세대가 순전히 조부모-부모의 기억을 전승받아 예루살렘 귀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니 쉬울 리 없습니다. 훨씬 장기적 호흡과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 무슨 무장저항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고, 뜻밖의 주문을 합니다.

 

너희는 그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여라. 과수원도 만들고 그 열매도 따먹어라. 장가를 들어 아들딸을 낳고, 너희 아들들도 장가보내고 딸들도 시집보내어, 그들도 아들딸을 낳도록 하여라. 너희가 그 곳에서 번성하여, 줄어들지 않게 하라. 너희가 사는 그 성읍이 평안을 누리도록 노력하고, 그 성읍이 번영하도록 나 주에게 기도하여라. 그 성읍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예레미야 29:5-7)

 

이국 땅일지언정, 거기서 아이낳고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어쩌면 투항주의적 적응의 길은 아무나 제시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몽고나 일본,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포로들에게 이러한 지침을 내릴 수 있는 벼슬아치는 아무도 없었을 것과 비교하자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포로생활은 언제나 가혹하고 공포스런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고난의 그 한 예이겠습니다. 다니엘이 아니라 벨드사살이란 이국적 이름으로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고, 예루살렘 편을 향해 기도한 죄로 사자굴에 던지우는 형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실상 모든 노예들은 사자의 우리 속에 들어있고, 풀무불 위에 서있는 그런 신세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맘 속으로 복수의 이를 갈았습니다.

 

멸망할 바벨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오늘 교독문은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이 구절을 포함할 것인가에 대해 예배 준비팀에서 이견이 있었습니다. 신성한 예배의 첫머리에 넣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그러나 그냥 순화시킨다고 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은 차마 넣을 수 없었습니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 포로노예들의 솔직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 노예들이 포악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짓은 바벨론 병사들이 예루살렘에서 했던 바로 그 짓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되갚기”(복수)해달라는 것이니, 그리 지나칠 리도 없을지 모르지요. 이런 끔찍한 복수극에의 기대는 예레미야서에서 거듭 반복되고 있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의 나쁜 심성을 보여주는 구절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이 자연스레 나오도록 한 그 참상이 어떠했던가로 읽혀질 수 있겠습니다.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불어넣기

 

예레미야는 끌려간 포로들에게 70년뒤의 해방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포로의 현실은 모두가 산산이 흩어진 몸입니다. 또한 하늘에 사무친 조상의 죄악이 있는데 후손들이 어떻게 속량함을 얻을 수 있으랴 하는 의문에 부딪칩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내려집니다.

 

골짜기에 흩어진 바짝 마른 뼈들에 주님이 생기를 불어넣으니 뼈에 살이 붙고, 힘줄이 뻗치고,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한 환상을 보여주면서, 사방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모두가 되살아나고, “무덤 속에서 이끌어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서게 하겠다”(에스겔 37:12)고 약속합니다.

 

그럼 조상이 지은 죄는? 이스라엘 속담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는 게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속담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잘못을 하면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주님의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18:21). 이러한 약속을 통해, 한때 범죄한 이스라엘 족속들의 자손에게 귀환의 희망을 선사합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으로 고레스를 감동시키다

 

히브리 노예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해방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요. 바벨론 성읍은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예루살렘 공략에도 1년6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바벨론 공략은 아마도 3년 이상 해도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한 성벽이 있고, 충분한 무장이 있건만, 바벨론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북방에서 강한 군대를 끌고 온 고레스는 바벨론을 단숨에 함락합니다. 역사에서는 두어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고레스의 선봉장격인 다리우스가 유프라테스 강에 둑을 쌓아 강물의 방향을 돌리곤, 얕은 강바닥을 따라 진군하여 곧바로 입성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바벨론 군주가 인심을 잃고 다른 신을 숭배하는 고로, 백성들이 성문을 열어 고레스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고레스가 어떤 무력충돌도 없이 무혈입성했다는 점입니다.

 

그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해”에 그 유명한 고레스 칙령을 반포합니다. 여기서 첫 해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페르샤 제국의 기원을 연 원년으로 해석합니다. 바벨론을 정복하고 제국의 첫발을 내디딘 그 시점에, 전 유대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칙령을 내렸다는 것인데, 유대인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그가 어떻게 그런 결정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실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구절은 없는 만큼,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찾은 실마리는 다니엘서의 한 구절입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일년까지 왕궁에 머물러 있었다”(다니엘서 1:21). 이 때 다니엘의 나이는 80이 넘었습니다. 고레스는 입성하여 원로대신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 중에는 현자이자 명재상으로 유명했던 다니엘을 접견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바벨론이 바사의 대왕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고, 히브리 민족들이 70년만에 그 대왕의 은덕에 힘입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며, 이 모든 일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신 바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신을 이렇게 대망하고 있었다는 그런 소식을 말입니다. 다니엘은 아마도 예레미야서를 직접 보여주면서 설득했을 것입니다. 고레스는 거기에 형언할수 없는 “감동”을 받았고, 탁월한 행정가로서 유태인의 귀환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칙령으로 반포하지 않았을까 상상합니다.

 

놀랍고 반가워라! 고레스 칙령

 

고레스 칙령은 유대인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서입니다. 그러기에 같은 내용이 역대지하 36장, 에스라기 1장, 에스라 6장에서 되풀이되고 있으며, 다리오 대왕은 고레스 칙령에 더 부가하여 칙령을 내리고 있을 지경입니다. 비유하자면, 폴란드와 동유럽인들에게 민족자결에 기초한 독립의 기쁨을 안겨준 베르사이유조약만큼의 효력이 있는 문서인 셈이지요.

칙령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 하셨다

-잡혀온 하나님 백성 중 원하는 자는 모두 귀국하게 하라

-귀국할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이웃사람은 그를 도와주라, 성전에 바칠 자원예물도 들러 보내도록 하여라.

-느부갓네살이 약탈해온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여러 그릇(제기)를 빠짐없이 돌려주라.

 

이 고레스칙령은 인류사에서 최초의 인권선언이자 민족해방선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각 민족이 믿는 신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고대 민족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 그 나라의 신을 격하시키고, 자신들이 믿는 신을 피정복민의 신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합니다. 바사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고, 그 신은 아후라마즈다입니다. 바벨론은 진흙으로부터 생명과 도시를 만들어낸 마르둑신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바벨론인들에게는 마르둑신이 바벨론 입성을 허용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모든 나라를 다스를 권능을 허락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귀환할 때 느부갓네살이 약탈해온 성전의 여러 그릇들을 빠짐없이 돌려주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히브리인들의 신앙심의 핵심까지 존중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고대에서 이러한 종교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관용주의 노선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고, 페르샤의 포용적 세계지배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바벨론과 대비하여, 유대인에게 고레스의 정책은 곧바로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이사야 45:1)라는 존칭까지 부여하게 될 정도입니다.

 

둘째, 고레스는 히브리인들을 포로나 노예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유인의 일원으로 대우하였습니다. 이집트나 바벨론은 거대한 노예제국이었고, 그것은 대규모 토목사업(피라밋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페르샤인들은 신속한 도로건설(호라산 하이웨이) 등에 노력을 투입하였고, 방어용 도성을 축조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거대한 규모의 노예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무엇보다 히브리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언하고, 그들 중 원하는 백성들은 모두 귀국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귀국길은 거의 5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웃사람들이 그들을 돕도록 했습니다. 뒤에 에스라, 느헤미야의 귀국길에는 많은 재화를 전달하여 귀국길의 노자로 쓰고, 귀국길이 안전하게 보증하였습니다. 이사야는 “내가 그(고레스)를 의의 도구로 일으켰으니, 그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겠다. 그가 나의 도성을 재건하고, 포로된 나의 백성을 대가도 없이, 보상도 받지 않고, 놓아줄 것이다”(이사야 45:13)고 한 예언대로인 것이지요.

 

해방의 그날처럼 설레인 날이 달리 있겠습니까. 일제하에서 심 훈은 <그날이 오면>이란 시에서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오면~”이라고 그 바램을 노래했습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이사야 49:13)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이사야 52:7, 9)

 

고레스 칙령에 의거하여, 히브리인들은 단계적으로 귀국을 준비합니다. 제1진은 B.C. 537년에 스룹바벨 인도로, 제2진은 B.C. 458년에 에스라의 인도로, 제3진은 B.C.445년 느헤미야 총독의 인도로 귀환합니다. 고레스 칙령이 내린 시기는 B.C.539년이었다고 하니, 제1진은 칙령이 공포된 직후에 출발한 셈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축조와 관련하여 현지인들의 방해와 모략이 있었고, 그 때문에 지체됨이 많았지만, 놀라운 것은 거의 1세기간 진행된 예루살렘 귀환작업이 일체의 정책적 변경없이 지속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애매할 때는 다시 고레스칙령을 재확인하면서, 그에 의거하여 귀환작업이 지속된 것으로 볼 때, 이 칙령은 유대인에게는 일개 국왕의 조칙의 차원을 넘어서 고레스를 도구로 하여 이루어진 주님의 구원사역이라 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시편의 염원으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바벨론 백성들은 그들의 악행을 그대로 되갚음당하고, 어린아이들이 바위에 메어침을 당했나요? 다행히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레스의 바벨론 입성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레스의 정치가 바벨론의 정치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시편의 복수기도는 하나님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극도로 수난받는 민족의 결사적인 부르짖음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도성 니느웨에 대해서도 요나를 보내 회개를 촉구하고, 일단 회개하는 백성들에게는 징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바벨론에서 고레스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평화의 수호자이자 희망의 실현자로 임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어떤 유혈이 있었다면 그건 피압박민족인 히브리노예들이 일차적인 희생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복수의 대행자가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한 백성들에게는 평화의 길을 열어주는 분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두 막대기가 하나되는 환상

 

끝으로 70년의 포로생활은 순전히 징벌과 고난의 기간이기만 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사울-다윗-솔로몬 시기의 통일왕국에 이어, 솔로몬 사후 남/북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북은 이스라엘이고, 남은 유다인데 그러한 분열의 결과 이민족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북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은 바벨론에게 망해서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에스겔서는 두 막대기가 하나로 되는 환상을 보여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와 모아다가 “그들을 한 백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다스리게 하며,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을 것”(에스겔 37:22)을 언약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이전에는 남/북 분단과 상호 상쟁하는 사이였으나, 포로생활의 연단을 거친 후 통일왕국이 되어 다시는 분단의 고통을 없이하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분단 70년에 접근하는 우리의 처지가 떠올라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70년에 이르는 긴 세월동안 포로생활을 한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마침내 고향으로 귀환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주님, 그 민족의 처지와 우리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민족의 지배 35년, 남/북 분열 67년의 긴 세월동안 여러 고난이 있었습니다.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고,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에, 여러 선지자들과 정치가들이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역사를 읽었습니다. 저희들도 이러한 작업에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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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2012.06.17] 70년 포로생활과 바사왕 고레스 2012.06.19 한인섭
18 2012 [2012.06.10] '말고' 이야기 2012.06.14 백소영 교수
17 2012 [2012.05.20] 자라나는 믿음, 의연한 삶 2012.05.24 오강남 교수
16 2012 [2012.05.13] 주님의 사명 2012.05.17 육근해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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