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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배현주 교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태복음 4:1~11)

2009.04.26

배현주 교수(부산 장신대학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마태복음 4:1~11

 

 

I. 안녕하십니까. 지난 두 달간 새길교회 성도님들이 제게 보여주신 사랑의 관심과 기도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3월 언젠가 설교 의뢰를 받았을 때 제가 과연 4월 말에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맡았던 일들을 다 취소하고 있던 중이었고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모습 그대로 와도 된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었고, 또 제 사건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해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 성도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혹시 했는데 역시 제대로 설교를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리고 제가 속한 신학교 공동체가 두 달 간 겪었던 악몽 같은 경험들,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 일들을 정리하고 소화하려면 장기간의 성찰과 기도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 부족한대로 저와 부산장신대 공동체의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고 몇 가지 신앙적 단상을 나누는 것으로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II. 새길교회 홈페이지에 제가 사건 발생 당시에 쓴 글을 게시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2월 16일에 열린 이사회에 갑자기 소환되었고 그날 밤에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임용 탈락 결정은 그 절차에 있어서나 실체적 내용에 있어서 부당한 것이었기에 저는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제 사건이 사순절 9일전에 발생했는데요, 사순절 내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부활절이 시작되는 첫 주 금요일인 4월 17일 대략 두 달만에 이사회는 사건의 발단이 된 사무처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전이사장의 사표를 수리하며, 저를 복귀시킨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저의 문제가 학교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의 일부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교원소청심사와 행정소송을 통해서 이사회와 실강이를 하다보면 보통 이년에서 십년까지 걸린다는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두 달만에 학교로 복귀하게 된 것은 저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학생들은 “학교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예배를 드리며 “(21세기) 아름다운 부산장신대학교 만들기”를 위한 결의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지난 몇 년간 학교 공동체가 경험했던 고통의 사건들과 제 사건을 신학교와 교회 개혁을 요청하는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저의 복직을 넘어서서 학교의 구조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요청하며 지금도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서울총회, 그리고 부산경남지역의 7개 노회를 방문하면서 탄원서와 호소문을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벌인 것이 뜻밖의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또한 관심을 지니신 많은 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셔서 두 달만의 복직이라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올해 저로서는 잊지 못할 사순절을 보냈습니다. 날벼락 맞은 사람치고는 멀쩡하고 씩씩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고, 사자굴에 던져졌다가 아무 상처 없이 살아나온 다니엘에 비유되는 영광도 누리고 있습니다만(단 6), 사실 저는 그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진 존재와도 같았습니다. 시편 기자의 말씀과도 같이 발 디딜 곳 없는 깊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사무처장이 작성해서 이사회에 올린 별지는 저를 부당이득을 수령하기 위해서 논문을 중복게재한 부도덕한 시정잡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저 자신이 세상의 쓰레기, 만물의 찌꺼기가 되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고전 4:13). 교계 언론에 오르내리는 제 이름을 보면 참 낯설었습니다. 사태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기사이건, 기사에 달린 악성 리플이건, 일방적으로 악의적인 기사이건 간에 왜 갑자기 나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인식의 부조화 속에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사실 저의 속사람은 혼비백산의 상태로 두 달을 살아온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때때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시 23:5). 이런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발을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다가 삐죽이 솟아난 나무 뿌리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답니다.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하고 외치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답니다. 계속 외쳐대니까 하나님께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저를 살려주시기만 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알았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뿌리를 놓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뿌리를 놓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이 분명한데 하나님이 놓으라고 하시니까 이 사람은 순간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점점 매달려 있는 손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죽으면 천당이라도 가겠구나 싶어서 “알겠습니다”하고 손에 부여 쥔 뿌리를 탁 놓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갑자기 두 팔이 날개로 변하여 공중을 훨훨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다른 변형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는 치마 입은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이 여성이 손에 부여 쥔 뿌리를 탁 놓아버리니까 웬걸 치마가 갑자기 낙하산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향해 치닫는 것 같은데 뜻밖에 자유로운 생명의 환희를 맛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사순절 기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의 진실성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요 11:25). 저를 짓밟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숨막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생명의 힘들이 저와 우리 학교 공동체를 도와주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III. 우선 말씀의 힘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이렇게 말하며 유혹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유혹의 말씀들도 다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통에 서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에, 저는 그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렘 15;16)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생명의 양식을 삼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달라”고 울부짖기도 하다가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25, 50). 저 역시 넘어질 때도 여러번 있었지만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이런 저런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시 119:105). 말씀의 힘은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자신이기도 합니다.

저만이 아니라 부산장신대 공동체는 학교에서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성서를 통하여 해석하며 각자에게 촉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처음에 난공불락 같은 이사진과 냉담한 교계의 반응 앞에서 아무 힘도 없다는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끼며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을 성서에 비추어 해석하는 이들은 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아무리 강퍅해도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는 결국 승리한다는 이야기, 어린 다윗이 골리앗 장군과 오직 돌맹이 하나로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행동한 에스더의 이야기, 각종 예언서들의 외침, 강도만난 자를 도와 살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수난을 통과해서 부활에 이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등 성서의 많은 말씀과 이야기들이 우리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자되면서 힘있게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서는 “오늘도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한 학생의 표현) 체험하게 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읽혀지고 있고,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많은 신앙인들의 생명의 양식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도의 힘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기도란 우리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그 관점대로 삶을 살아내는 힘을 키우는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간접적으로 들려왔던 협박이었습니다. 제가 안 물러나면 언론플레이를 해서 사회에서 매장시킨다는 협박이나 자신이 물러나게 되면 그냥 물러나지 않고 만신창을 만들겠다는 협박 등을 들을 때 제 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협박의 일부가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악의에 가득찬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다는 느낌은 우주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과도 같아서 저는 가끔씩 탈진하여 누워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사건 초반의 몇 주간은 아침이 무서웠습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틸까 하는 나약함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저의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벧후 3:8)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네들이나 저나 “아침에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르는 풀”(시 90:6)과도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마 10:28). 어느 학생이 마더 데레사의 “자유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을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오 사랑의 주님! 존경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로워지려는 욕망으로부터, 찬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선택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모멸받는 두려움으로부터, 경멸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질책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비난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오류를 범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의심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소서.” 모든 욕망과 집착과 두려움으로부터 마음을 비우기 시작할 때 참된 기도가 시작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지금 거의 기도원이 되어버렸습니다. 금식기도회, 철야기도회, 촛불기도회, 릴레이 기도회, 동아리 기도회, 교수 기도회, 산기도, 개인기도 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신학교 개혁과 교회 개혁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점차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계란으로도 바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계란으로 안 되면 빗물로 바위를 가를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빗물 되어 거대한 바위는 깨어지고 말 것이라고 담대하게 예언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신학교를 개혁하시고, 그럼으로써 방향감각 상실과 타락으로 인해 때로 “개독교”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한국 기독교를 새롭게 하시고자 한다는 확신을 지니고 일하고 있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모여 있는 우리 학교에서 연일 눈시울이 붉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생들, 특히 학생비상대책위원회에 속한 학생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밤을 새며 일해 왔습니다. 이 땅에서 목회지도 없이 떠돌고 싶으냐는 터무니없는 협박을 들으면서도 소신을 지니고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 12년만에 처음 이혼하자는 제의를 받은 학생도 있고,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을 붙들고 남편 걱정에 잠 못 이루어 뱃속 아기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울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고 묻는 아내에게 “모른다”라고 대답하며 가슴으로 울었던 학생도 있습니다. 다행히 태명이 “뱃속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의 약어)”인 그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아서 우리 모두 한시름 놓았습니다. 얼마 안되는 전도사 월급이지만 전부를 비상대책위원회에 기부하겠다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딸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갈 수가 없었기에 부산장신대학을 들어오면서 남다른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기쁨으로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이제 대학 졸업장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학교는 바로 세워야 한다며 단체 행동에 참여하는 집사님도 있습니다. 엄마 등록금 대느라 월급을 다 털어서 보내준 아들과 며느리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랑스러운 아내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 기꺼이 빛나는 졸업장을 내려놓겠다는 권사님도 계십니다. 물이 100% 나오는 기적을 보려면 물이 나올 때까지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하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성서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살전5:17, 19), 학생들은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힘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공동체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건이 난 첫 주부터 달려와서 함께 기도하고 제 곁에 있어준 여성목회자들, 제자들, 교수님들, 목사님들로 인해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저는 겨자씨 같이 작은 사랑을 주었을 뿐인데, 30배 60배 100배의 사랑으로 되돌려주는 학생들에게 막대한 사랑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수업이 폐강공고가 난 봄학기 첫 주부터 교수님들은 점심 금식을 하면서 기도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금식하며 강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모릅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월급지불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월급날인 20일에는 제 통장으로 일정한 월급이 들어왔습니다. 교수님들과 여성목회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서 저에게 월급을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바로 평소에 자주 외치던 성서적 “대안경제”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에큐메니칼 공동체, 기독여성 공동체, 그리고 지역의 뜻있는 대학교수님들에게서도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 부산장신대학교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학교 정상화를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졸업생들과 동문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표명하며 참여하시는 학부모님들도 생겨났습니다. 신학생인 아들이 자기 이익을 구하며 학교 정상화를 위한 학생들의 희생에 참여하지 않을까봐 “너 왜 신학하냐?”며 질책하는 아버지 목사님의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지역 교회의 미래 지도자들을 위해서 신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확신하는 목사님들은 부산 경남 “7개 노회 연합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학교의 정상화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활동하시고자 노력 중입니다. 부산장신대가 정상화될 때까지 학교 지원금을 중지하도록 결정한 교회들과 노회들도 있습니다. 또한 부산지역 기독시민사회단체들은(부산NCC, 부산교회개혁실천연대, 부산교회개혁 실천모임, 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예수살기, 부산YMCA, 부산YWCA, 사회참여를 위한 성서한국부산연대) “부산장신대 사태는 한국교회 고질적인 부패현상이며 교권주의에 만연된 반사회적 현상의 하나라고 보면서 더 이상 지역의 신학교가 몰지각한 교단정치꾼에 망가져 가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 . . . 학교개혁을 위하여 의연한 행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적극 지지하면서 시민단체로서 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서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이 성명서를 이사회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저나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이나 아픔과 고난의 터널을 걸어왔지만 과분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힘으로 너끈히 이겨온 셈입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 같아서 가끔 쓰러지기도 하였던 지난 두 달 동안 톨스토이 단편의 제목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질문이 저를 떠나지 않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사는가”하는 것이지요. 작년 12월 새길교회에서 “이 땅의 그루터기”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우리가 양이 아니라 질로 삶의 관심을 바꾼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강자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약자들에게도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지난 두 달간 권력과 맘몬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힘, 기도의 힘, 사랑의 힘이야말로 사람을 살게 하고 공동체을 살리는 창조적인 힘, 질적인 힘임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IV. 이번 기회에 교수들은 “부산장신대학교 신앙교육선언”이라는 문서를 만들었습니다(조직신학 교수인 천병석 교수님이 작성하시고 교수협의회의 교수들이 회람하며 검토하였습니다). 이 문서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009년 3월 부산장신대학교는 적지 않은 위기에 부딪히면서 본교가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신학적 숙고를 요청받게 되었다. 이에 본교 교수들은 지금까지의 지침과 내용들을 검토하는 동시에 미래의 지표를 살펴, 본교 교육의 방향을 전반적으로 재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태를 통해 무엇보다 가르치는 일로 부름받은 교수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자각하며, 이를 바르멘 선언의 모범을 따라 신앙고백으로 선언함으로써, 부산경남지역에 설립된 총회직영신학대학으로서의 복음적 교육적 선교적 소임을 다하려는 결의를 밝힌다.” 이 짧은 문서는 “1. 은혜와 진리,” “2. 섬김의 정체성,” “3. 공동체적 사귐,” “4. 피조물의 해방,” “5. 하나님 나라의 선포,” “6. 아름다운 일상생활”이라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바라지 않고, 사적인 영광에 탐닉하여, 하나님의 학교를 개인적 영욕달성의 수단으로 삼거나 집단적 세력다툼의 각축장으로 만들려는 모든 위장된 생각들과 시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책동으로 알고 차단하며 지속적으로 경계한다.” 교수들은 학생들과 더불어 예배시간에 이 신앙교육선언문을 엄숙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예배 이후 저는 비상대책위원으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한 학생을 교정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이 교육선언문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교수님, 이제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하며 만면에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가슴 한가득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 신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이러한 종류의 신학적 지침을 요청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만에 하나 70년대 80년대와 같이 투옥 등 최악의 경우를 초래한다 하더라도 이 일이 단순한 학교 사랑의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한 일이었기에 그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신앙적 책임감으로 처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했었던 학생이었습니다. 경상남도가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고 매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지역이지만, 저희 교수들과 학생들은 힘을 함께 모아 지역의 교회들이 교회중심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는 신앙공동체로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새 길을 열어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V. 새길교회 여러분들도 교회 이름에 반영되어 있듯이 각자 서 있는 삶의 장에서, 그것이 직장이건 가정이건 어떠한 사회적 영역이건 간에, 보다 좋은 세계를 꿈꾸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에 의지하여 새 길을 내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시라 믿습니다. 서울에서건 부산경남 지역에서건 지역은 달라도 우리 모두를 그 지체로 삼으시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속해있다는 확대된 신앙공동체 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그리스도 안에서 노력하는 신앙인들은 어느 지역교회에 속해있건 우주적 교회의 일원입니다. 우주적 교회론을 전개하고 있는 에베소서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엡 3:10). 즉 교회에는 세상의 권세자들과 지배자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할 교육적 과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 속에서 새 길을 내는 과제를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스스로 새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개개 신앙인들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롬 12:2), 매일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할 것입니다(고후 4:16). 부산장신대학교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예수 믿는 행복을 더욱 깊이 느끼며 감사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길교회에도 같은 행복과 감사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구원의 하나님,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희 모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삶의 모든 도전과 곤고함 속에서도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는 확신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저희들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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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09 [2009.03.15] 교회여, 너는 자신을 무엇이라 말하는가? 2009.03.21 정지석
27 2009 [2009.03.22] 우리와 비슷한 사람은 누구인가? 2009.04.13 추응식
26 2009 [2009.04.05] ‘지혜’로운 사람들의 例話 2009.04.13 김용덕
25 2009 [2009.04.16] 예수님은 손뼉을 치시고... 2009.04.27 한완상
» 2009 [2009.04.2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9.05.14 배현주 교수
23 2009 [2009.05.03] 유혹을 이기는 힘 2009.05.14 길희성
22 2009 [2009.04.19] 생명의 떡 2009.05.20 정지석
21 2009 [2009.05.10] 희생의 값어치 2009.05.20 고명진
20 2009 [2009.05.17] 또 다른 부활 2009.05.25 오강남 교수
19 2009 [2009.05.31] 어린이 영성의 선각자들 2009.06.04 정양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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