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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지석

눈물 방울 (Tear Drop)”

(시편 39:12, 누가복음 19:40~42)

 

2009.06.28

정지석 형제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 시편 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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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누가복음 19:40~42

 

 

오늘은 아시아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아시아에 있는 기독 교회들은 매년 6월의 한 주일을 아시아 주일로 삼아 예배 드립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란 신앙을 함께 고백하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엄하고 거룩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예배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으로서는 6월 마지막 주간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주간입니다. 남북한의 분단 현실 속에서 전쟁의 위협은 오늘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로서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며, 평화 통일의 선교 사명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동시에 아시아의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과 폭력의 희생을 당하고 있는 많은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영적으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예배는 민족의 평화를 기도하면서 국경과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영적인 소통과 사랑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아 교회협의회는 이번 해 아시아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히 내란의 고통과 비극속에 살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해 기도와 관심을 요청했습니다. 스리랑카의 상황을 아시아의 눈물로 상징화하여 예배의 주제를 눈물방울’(Tear Drop)로 정했습니다. 인도 대륙 아래쪽에 인도양에 위치한 스리랑카의 생긴 모습이 눈물방울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인종간 분쟁(74%의 싱할리스와 18%의 타밀족간의 분쟁)으로 수십년동안 내전을 겪으며 젊은 병사들뿐 아니라 많은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이 희생을 겪고 있고, 오랫동안 전쟁의 와중에 있었기 때문에 스리랑카 사람들의 생활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습니다. 고통밖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누가복음 19:41-42,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시며,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합니다. 예수님은 눈물이 많으셨던 분입니다. 요한복음서(11:45)에서도 죽은 나사로를 위해 눈물흘리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평화의 길을 모르는 예루살렘 도시를 내려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창조 섭리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다고 하심은 곧 창조세계의 선함, 평화로움을 증거합니다. 이 창조질서에 따라 살게될 때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녀된 우리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것은 욕망에 따라 살려는 인간입니다. 그 결과가 자연과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초래한 것입니다. 성서는 이것을 죄라 합니다. 평화를 알지 못한 채 고통과 비극속에 살아가는 예루살렘을 보시며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죄로인해 다가오는 심판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용서와 희망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연민과 용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고 가실 십자가위에서의 고난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독생자 아들의 고통을 바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눈물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눈물은 고통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를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희망하게 되는 신앙의 역설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편 39:12절은 이런 희망의 신앙을 잘 증언합니다. 오 주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내 울부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소서: 나의 눈물에서 당신의 평화를 거두지 마옵소서. 시편기자는 자신의 삶에서 눈물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보시고 당신의 평화를 거두시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굳센 믿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간절한 눈물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무리 죄에 물들어 악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은 눈물 입니다. 워낭소리에 나오는 짐승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우리 인간의 죄를 정화시켜 줍니다. 이 늙은 짐승의 눈물에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데까지 우리 신앙의 눈이, 마음의 눈이 떠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아시아 주일 에배에서 우리는 비록 바다건너 멀리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스리랑카의 오랜 전쟁속에서 고통당하며 눈물흘리는 그 사람들을 통해, 이 땅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느끼는 데까지 우리 믿음이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이 거기까지 넓혀져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삶의 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나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기쁨이며, 잃는 것이면서 얻는 것을 상징합니다. 십자가 신앙에서 우리는 인간 삶의 실패와 성취, 과거와 미래, 슬픔과 기쁨을 맛봅니다. 십자가 신앙의 빛에서 눈물방울은 실패속에서 성취를, 슬픔속에서 기쁨을 약속합니다.

 

2009년 아시아 주일 예배는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깨닫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스리랑카의 눈물을 통해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고난받는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이 세상이 고해의 바다이며 괴로움을 어쩔수 없는 운명적인 것처럼 수용하는 종교도 있지만, 예수의 사랑의 종교는 다릅니다. 고통속에 빠져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지극히 적은 자에게 베푼 사랑이 곧 자신에게 베푼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의 악에 의해 짓눌려 신음하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임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시어 당신의 일을 계승케 하셨고, 이 땅에 사랑의 복음의 실천 전진기지로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땅의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증거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할 때에 비로서 교회가 됩니다.

 

세상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 때문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고방식이 지배하여, 강자들이 약자들을 희생시켜 만족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어느새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살아 갑니다.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 가난한 자나 힘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비극과 고통을 운명적인 것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이런 세상 논리를 과감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내가 세상에 칼을 주고, 불지르러 왔다 하신 과격한 말씀은 바로 이런 세상의 거짓 논리와 풍조에 물들어 살지 말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삶의 방식, 사고방식에 매여 산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불질러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평화로운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아시아 주일 예배는 아시아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고난받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삶을 살도록 교회가 함께 관심갖고 기도하며 일하자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도록 힘을 모아 일하자는 다짐의 예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사랑의 실천으로 증거될 때입니다. 복음은 말로 증거될 뿐만 아니라 직접 물질로, 기도로, 다양하게 돕는 손길에서, 사랑을 행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움직이는 곳에서, 복음의 생명력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 계시(드러남)되는 것입니다.

 

스리랑카의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가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권을 위해 일하던 목사가 구속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연행되어 염려가 많았는데, 스리랑카 교회와 아시아 및 세계 교회들이 신속하게 움직여서 세계 여론을 만들어 그의 생명의 안전은 그나마 보장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기도는 이렇게 한 생명을 구체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없는 민중들은 그나마 이런 보호와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아시아에서 할 일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안의 의식과 태도부터 변화시켜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민족의 경계를 넘는 세계의식, 만민 평등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한 아시아 사람을 업신여기는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켜 가는 일입니다. 이 일은 기독교 휴머니즘에 바탕한 삶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를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하고 또 회개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은 세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기에 신앙본질상 세계적이고 만민평등의식을 갖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공동 예배주일을 정해 예배드리는 것은 세계 온 민족이 형제 자매됨, 세계인은 모두 한가족이다라는 에큐메니칼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민평등주의 정신과 세계 인도주의 정신은 이 믿음에 근거합니다. 인종과 국적과 전통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를 공동으로 체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믿음을 공동기반으로 삼고있음을 상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는 믿음으로 진보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세계적 신앙을 다시 확인하는 예배주일입니다.

   

둘째, 아시아인을 향한 우리의 잘못된 편견과 사고방식을 바꿔가는데 우리 교회가 할 일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잘 사는 나라에 속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되었는데 의식면은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아시아에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현지인들을 깔보고 업신여겨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잘사는 서구 나라들에 여행가면 매우 겸손하고 조심스러워지면서, 다만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여행가면 180도 태도가 바뀌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이고 태도입니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과 태도를 하루빨리 씻어내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는 아시아의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하는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일도 우리 교회가 나서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기독교 휴머니즘을 삶의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인종과 국적 빈부의 차이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간평등의식이 예수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독교 휴머니즘을 어릴 때부터 싱앙교육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의식과 삶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때문입니다. 올바른 기독교 신앙교육을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과 가난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도록 본을 보이고 가르쳐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만인 평등의 사랑의 휴머니즘을 사는 것임을 우리 교회가 증거해야 합니다. 기독교 휴머니즘은 약자와 고통받는 자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와 관심과 지지를 해 주는 휴머니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로부터 받음으로 나보다 어렵고 낮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향해 내려부어주는 사랑을 살아야 합니다. 한국인의 열패감,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는 무례한 삶의 태도를 바꾸어 평등과 사랑의 휴머니즘의 삶의 문화로 나아가는데 한국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기여할 바가 있습니다. 아시아 주일 예배에 우리가 한편으로는 회개하고 다른한편으로는 사명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선교초기부터 일본의 억압으로부터 민족 독립을 위해 기도해 온 민족주의적 신앙 전통을 간직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민족을 위해 많이 기도합니다. 이런 신앙 유산은 개인주의 신앙을 초월한 매우 값진 신앙 전통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신앙을 더 진보시켜야 합니다. 민족주의 신앙에서 세계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고백하는데까지 우리 신앙을 더 진보시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아시아 주일 예배를 드리는 참된 의미라 하겠습니다. 특별히 역사속에서 억압과 가난의 고통을 체험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체험한 민족 신앙이기에 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희생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영적인 풍요로움이 우리의 신앙 유산 안에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점이 아시아에서는 가장 활발한 교회로 성장해 있는 한국교회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섭리적 사명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인도와 필리핀, 홍콩과 대만등지에 교회가 있고, 다른 나라들에도 소수로 존재합니다. 한국 교회가 아시아 교회들 가운데 제일 활발하고 숫적으로도 큰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아시아에서 기여하고 봉사해야 할 몫이 큽니다. 이 점이 오늘 아시아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많이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연합하여 일하는 기독교회의 전통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유럽연합(EU)라든지 국제연합(UN)등 국제주의 전통은 온 세계를 하나님의 집으로 여기고 협력하여 일하는 에큐메니칼 기독교 정신이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카토릭 교회와는 조금 다르지만 세계 개신교회들은 일치 연합운동의 본부로서 세계교회협의회를 조직하여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아시아에도 아시아 교회들의 연합 기구인 아시아 기독교협의회가 태국 치앙마이에 사무실을 두고 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협력하여 증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데는 협력하여 일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교회들은 한국교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며 또 한국교회의 물적 정신적 신앙적 기여를 기대합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과 국경의 테두리를 넘어서 연합하여 일하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해외선교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고 있지만 거의가 개교회 중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복이 많고, 현지 주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연합하여 일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정신을 한국교회는 배워서 아시아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심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우리 내적 삶이나, 우리 가정, 우리 교회에만 연관시키는 것은 매우 쉽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은 훨씬 더 크십니다. 우리가 속한 세계가 절망에 빠져있는데 안락한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생각과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정의의 빛으로서 어두움에 직면하고, 상처받은 자들을 사랑으로 치유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서부터, 멀리 눈에 보이지는 않치만 우리의 기도를 절실히 요청하는 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까지 우리의 기도를 넓혀 나가야 합니다.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추상적인 것 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될 것 입니다.

   

주여, 여기 이 교회에 모인 우리들에게, 그리고 아시아 전 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또한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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