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안진희, 박유희

"사랑의 이름으로"

(에베소서 6:4)

 

2007.11.18 여선교회 헌신예배

안진희 자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4

 

 

지난 10월, 구역 예배 때, 요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녀 교육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고, 요즘 아이들, 부모 노릇도 선생님 노릇도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날의 결정타는 김기동 자매가 전한 자매님의 딸이 한 말이었습니다.

“엄마, 교수라면 모를까 교사가 되는 건 싫어. 어휴, 요즘 애들을 내가 어떻게 가르쳐?”

네, 그렇습니다.

초등학생인 자기들이 생각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요즘 애들, 그것도 사춘기를 맞아 제일 무섭다는 중학생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저는 바로 그런 교사입니다.


제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친 곳은 전라북도 장수군 면단위 중학교였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지도책을 찾아보니 전라북도 남원, 경상남도 함양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청산별곡의 ‘머루랑 다래랑 먹고’를 노래 부르며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정작 다래는 이곳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만큼 이곳은 시골이었고 빈한한 산촌이었습니다. 쌍둥이가 있으면 입학금 때문에 둘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한 아이는 다음 해에 학교를 보내던 곳, 전교 1,2등 하는 아이인데도 수업이 없는 소풍 날 같은 때는 농사일을 돕느라 학교를 오지 못하던 곳, 여자 아이들은 오빠나 남동생에 밀려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던 곳, 그런 곳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이 곳 만큼 제게 교사로서 많은 걸 느끼게 한 곳은 없습니다. 물론 첫 직장이어서 마치 첫사랑 같은 열정을 가진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것이 음식을 만들어 내듯 당장 그 결과를 내 보이는 것이 아닌 만큼 깨달음 또한 오랜 후였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많이 전해줘야 한다는 마음에 아이들을 늦게까지 붙잡아 두고 가르쳤고, 전교 10학급의 작은 학교에서 체육대회 때 무용 전공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마스게임도 하고, 베니어판을 잘라 종이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시화전도 하며 시끌벅적 요란하고 즐거웠습니다. 전공 외에 한문과 도덕을 함께 가르치면서 도덕시간마다 정말 힘들고 난감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래도 그 학교에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열심히 배우며 따라 주었던 것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고 자녀를 맡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대학생 티도 벗지 못한 저를 선생님이라고 제 말과 행동을 신뢰해 주었던 그곳의 학부모님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3년을 보내고 열다섯, 열여섯 나이로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과 함께 저도 그곳을 떠났고, 몇 년 후 결혼을 하여 경기도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진 지 20년도 더 지난 2000년, 아이들은 황송하게도 망년회 모임에 저를 초대하였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자녀 한둘씩은 거느린 가장이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웠던 만큼 대학을 다니지 못한 이가 많은 제자들의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저와 악수를 나누는 그들의 손은 정직하게 그들의 삶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매끈한 손에서부터 손톱 밑에 까맣게 기름때가 낀 거친 손을 마주 잡으며 그들의 삶이 그대로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한 얼굴로 수줍게 웃는 한 친구의 손을 잡으며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유난히 작은 키에, 어른용 자전거 페달이 발에 닿지 않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서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 친구였습니다. 성적이 3년 내내 꼴찌에 가깝던 그 친구는 서울 변두리에서 자그마한 제과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먹고 살 만하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님’을 보여준 친구였습니다. 저렇게 공부를 못해서 어떡할꼬? 나중에 제대로 밥이나 먹고 살까? 걱정스러웠던 친구였기에 제게는 이 친구의 작은 제과점이 어느 재벌의 대기업체 못지않은 큰 성공으로 느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비록 공부는 못했지만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던 그의 성실함과 부드러운 성격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고, 그는 지금도 그 성실함과 부드러움으로 분명 맛있는 빵을 구워 내리라 생각됩니다. 제자들의 생활 모습은 그들의 성적보다는 생활태도와 성격이 더 많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정직했던 친구들, 자신의 일을 성심껏 하던 친구들, 남을 배려하고 마음 따뜻했던 친구들이 IMF 직후 어려운 시절에도 직장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학교를 떠나 대부분 시 단위의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저는 제 나름으로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생활했다고 생각합니다. 잘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제 욕심껏 신경을 쓰고 성적관리, 생활태도 지도 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제가 마음을 준 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주는 사랑과 관심이 오히려 아이들을 피곤하게 하거나 마음에 부담을 주어 관계가 어색해지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됩니다. 나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내 아이가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주지만 이것이 꼭 자녀들에게 감사와 사랑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틱낫한의 말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며 상대방이 무엇을 소망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자녀들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가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요즘 아이들 힘들다고, 아이 하나 둘 키우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고 불평하고, 자녀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과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과의 마음의 교류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들을 위한다고 생각했어도,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서로 서운하고 서로 멀어지고 심하면 대립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을 30년 쯤 반복하며 저는 아이들과의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하느님도 나를 보며 때때로 서글프고 배신감도 느끼시겠구나. 안진희,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그런데 너는 네 입장만 내세우는구나. 그래,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를 때도 있겠지. 그렇다고 그렇게 매몰차게 비판하고 등 돌리느냐. 내 말을 입으로는 시인하면서도 너의 행동은 내 말과 다를 때가 너무 많구나. 아마 하느님은 저를 보며 이런 서운한 생각을 하시고, 저를 참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실 것입니다. 마치 제가 초임 때, 제자를 보며 저 애가 커서 어찌 살꼬? 하며 걱정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의젓하게 자란 제자들을 보며 제가 흐뭇해 하듯 하느님도 제가 신앙적으로 더 성숙해지리라 기대하고, 믿고, 기다리고 계실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들을 만드시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 하셨듯이 저를 보시고 “그래, 안진희, 참 보기 좋구나.” 하실 날을 기다리시며 저를 지켜주시고, 제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바라고 계심을 압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자녀들을 믿고 기다리며,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성적은 뒤떨어졌으나 성실하고 마음 따뜻하던 친구들이 행복한 삶을 살듯이, 비록 성경적 지식은 부족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진정한 사랑의 이름으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도록 힘 주심을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새길'이 세상에 내놓을 신앙공동체 모습을 꿈꾸며"

(고린도전서 12:4-7)

 

2007.11.18 여선교회 헌신예배

박유희 자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전서 12:4-7

 

 

2001년 봄,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교인 투표로 남편은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뽑히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고, 우리의 마음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런 승진과 탈락을 반복하는 상황을 수용하면서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기를 기대하며 관습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갈 일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늦은 봄, 어느 상갓집을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정선자 자매 부부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면서 쌓아온 우리들의 신뢰와 양쪽 집 아버님들의 신앙적인 교류를 잘 알고 있는 바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러나 우리로서는 의미 있는 물음을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지금 서울에서 어느 교회를 다니시는가?”

“새길교회”

“!!! … ”


머릿속에서는 번갯불이 번쩍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 며칠 전에 우리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궁금해 했던 교회가 바로 새길교회였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한 우리. 그러나 정선자 자매 부부는 그리 귀담아 듣지 않은 듯 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들러보겠지..”하는 반응정도였습니다. 바로 다음 주 주일날, 우리는 새길교회에 첫 출석을 하였습니다.


“아니, 정말 왔네, 그것도 이렇게 당장.”

정선자 자매와 김이수 형제 부부가 우리 가족을 반겨주는 것이 고맙고 따뜻했습니다. 처음 찾아온 낯선 교회 같지가 않았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교회의 형제자매님들 중에 낯익은 분들이 많으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몇 단계의 시민단체 활동을 거쳐, 지금은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라는 교육시민운동단체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70년대부터 청년여성회,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사회, 여성의 전화, 여성신문… 신문창간 이전 불법간행물 시절부터 참여했으니 저에게는 사업이 아니라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새길교회에는 시민사회 운동단체를 통해서 알게 된 분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볼룬티어21의 이강현 형제님, 정교협의 최현섭 형제님, 청소년 활동 쪽의 최윤진 자매님과 최충옥 형제님 부부, 여신학자 협의회의 최만자 자매님, 교육토론회에서 가끔씩 뵙던 천세영 형제님..등

저에게 새길교회의 첫 인상은 마치 ‘시민단체협의회’와도 같았습니다.


왜 새길교회는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모여 있게 된 것일까요?

저는 곧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 예배 때마다 함께 다짐하는 ‘새길 신앙고백과 결단’에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규정해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새길 신앙고백과 결단’은

‘창조의 보전과 완성을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치는 생명운동과,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치는 인권운동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치는 평화운동과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나눔운동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신앙공동체로서의 예수따르미의 삶임을 선명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위 다섯 가지의 삶의 방식은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피조물로 살고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계신 행동 명령일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영적인 각성이 앞선 사람들이 먼저 시작하고 있는 지구촌 시민운동의 중요한 영역이자 과제이기도 합니다.


‘새길 신앙고백과 결단’에 그것이 정확하게 포함된 것은 20년 전에 우리 새길교회가 태동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간절히 원하고 계신 소망이 무엇인지 예민하게 듣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새길교회에는 형제자매들의 개개인의 삶에서 ‘새길의 신앙고백과 결단’을 담아내고 있는 분 들이 많은 것 이라고 이해합니다. 그 힘으로 2004년 대광고등학교 강의석군 사태가 우리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을 때, 새길교회의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학자연’(학교종교자유를 위한 시민연합)을 출범시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새길 신앙공동체의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한 사회, 반인권적인 관습, 허례허식, 영성이 상실된 교회,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에 저항하셨던 예수님도 선구적인 운동가셨습니다.


오늘은 여전도회의 헌신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생명, 존엄, 정의, 평화, 나눔, 헌신, 회복… 모두 전통적인 여성성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입니다. 그것은 예수따르미로서의 삶에 구체적인 지침을 주는 동사 즉 명령어로 보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예수따르미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여성성을 부여하는 이미지에 동의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고, 믿음의 공동체답기 위해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함께 붙들고 가야할 끈이 여성성임을 이번 말씀을 준비하며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믿음의 공동체-새길 공동체다운 삶의 세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각자의 영역에서 각각 일구어내는 삶의 모습을 새길의 이름으로 모아보면 어떤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요?


새길교회 안에서 만나는 자매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어 보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자매님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이며, 예전의 나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나일 수도 있는 모습들입니다. 한 분 한 분의 개성이 확연히 다른 모두 다 소중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개성이 모두 달라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진 무지개 같지만 ‘새길’이라는 공동 브랜드 안에서 서로 닮아가는 우리가 만들어 낼 공동체의 모습을 꿈꾸어 봅니다. 그것은 새길의 향기로 우리가 함께 디자인하여 세상 속에 애드벌룬처럼 띄워낼 새로운 터전일 수도 있고, 우리끼리 구순하게 오손 도손 평안하게 사는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주년을 맞았던 2007년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우리가 함께 새롭게 피워낼 그 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 도 문 -


주님, 20년 전에 예수 따르미의 삶을 갈구하는 심령 불러보아, 이 땅에 작은 샘물 하나 마련하시고 사람들 눈에 띄는 푯대 하나 꽂아 놓으셨습니다.


이곳에 한국교회에서 상처 받고 저항하는 갈급한 심령들 푯대를 향하여 깃들게 하셔서 치유 받게 하시고, 성장시키시며 교회사회에 도전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뜻,

지금의 저희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라고 일어나 응답할 수 있는지요?

우리가 함께 가고 있는 새길은 지금쯤에도 아직 새길인지요?


지난 20년을 보내고, 새 세대를 맞는 오늘,

없던 길 찾아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믿음의 선배들... 그 심령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 연약한 육신을 강건케 회복시켜 주시오며,

깊은 지혜의 샘물 길어 올려 새길 위에 적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믿음의 새 소망을 품고 왕성한 기운으로 새길에 동참하는 심령들의 눈을 밝히 뜨게 하옵소서.

새 세대를 향하여 주께서 소망하시는 새길의 비전을 형제자매들이 품게 하시고,

화합하여 선을 이루는 하늘나라의 모습 일구어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47 2007 [2007.10.14] 겉 사람과 속 사람 2012.02.01 차옥숭
46 2007 [2007.12.30] 내 속에 수도원을 : 참 平和를 위하여 2007.12.30 한완상
45 2007 [2007.12.16]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2) 2007.12.18 추응식
44 2007 [2007.12.09] 주의 길을 예비하십시오 2007.12.11 왕대일 목사
43 2007 [2007.12.02]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2007.12.04 김기동
42 2007 [2007.11.25] 산 자를 위한 죽음 2007.11.30 홍순택
» 2007 [2007.11.18.여선교회헌신예배] 사랑의 이름으로 / '새길'이 세상에 내놓을 신앙공동체 모습을 꿈꾸며 2007.11.21 안진희, 박유희
40 2007 [2007.11.11] 예수의 두 얼굴 2007.11.13 박명철 목사
39 2007 [2007.11.04] 나라가 임하옵시며 2007.11.08 길희성
38 2007 [2007.10.21]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2007.10.23 김경재 목사
37 2007 [2007.09.16 남선교회헌신예배] 새길과 나 2007.10.16 이헌영
36 2007 [2007.10.07 봉사부헌신예배]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 2007.10.16 명정옥
35 2007 [2007.09.23]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2007.09.28 김기동
34 2007 [2007.09.09] 돌아오지 않는 탕자 2007.09.14 이우근 변호사
33 2007 [2007.09.02] 대리냐 대표냐 : 속죄론에 대하여 2007.09.06 권진관
32 2007 [2007.08.26] 롯의 아내 - 부록 2007.08.30 민영진 목사
31 2007 [2007.08.26] 롯의 아내 2007.08.30 민영진 목사
30 2007 [2007.08.12] 이 선교를 어찌할꼬 2007.08.28 한완상
29 2007 [2007.08.05] 근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2007.08.28 최만자
28 2007 [2007.07.29] 세상 바라보기 2007.07.31 윤여성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