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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007.08.30 14:04

[2007.08.26] 롯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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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민영진 목사

"롯의 아내"

(창세기 19:26-29)

2007.08.26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창세기 19:26-29

 

 

하느님의 천사(天使) 둘이 어느 날 저녁 때 소돔이라고 하는 도시를 방문합니다. 이라고 하는 사람이 때마침 성문께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그 낯선 외국인들 맞아들입니다. 그는 두 길손에게, 자기 집에 들러 하룻밤 편히 쉬고 가라고 청합니다. 롯이 그렇게 간청하는 바람에 그 두 남자는 롯을 따라서 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롯은 그들에게 저녁을 대접합니다.

그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인데, 소돔 시민이 몰려와서, 롯의 집을 둘러싸고, 롯에게 소리칩니다. 그날 밤 롯의 집에 든 남자들을 자기들에게 넘기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우리가) 그 남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내어라.”는 것입니다.(각주 1)

롯이 밖으로 나가 등 뒤로 문을 닫고 사정합니다. "여보시오, 제발 이런 못된 짓은 하지들 마시오. 아시다시피 나에게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딸이 둘 있소. 그 아이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내가 모신 분들에게만은 아무 짓도 말아주시오." 그러나 그들은 롯의 말을 듣지 않고 롯에게 달려들었고, 문을 부수려 합니다.

일이 이쯤 되자, 롯의 호의를 받아들였던 그 두 외국인 남자가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몰려든 사람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눈이 부셔 문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그 두 사람이 롯에게 말합니다. 식구가 이곳에 더 있는 지 묻습니다. 아들 딸 말고도 그 성에 다른 식구가 있거든 다 데리고 그 성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 백성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야훼께 사무쳐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아 그곳을 멸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롯은 곧 딸들의 약혼한 자들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말하고 어서 그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사위 될 사람들은 실없는 소리라고 웃어넘깁니다.

동 틀 무렵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롯을 재촉합니다. 소돔 도시에 벌이 내릴 때 함께 죽지 않으려거든, 아내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그 성을 빠져나가라고 재촉합니다. 그래도 롯이 망설이니까 그들은 보다 못해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냅니다.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라고, 뒤도 돌아다보지 말고 떠나라고, 소돔 도시 안에서는 아무데에서도 머물지 말라고,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합니다.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려거든 저 먼 산으로 가라고 하지 말고 소돔 가까이에 잇는 아주 작은 도시로 피하여 목숨을 건지게 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자 신의 사자들은 롯의 청을 들어줍니다. 그 작은 도시는 소알이라고 하는 도시입니다.

롯이 소알 땅을 밟자 해가 솟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십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롯은 소알에서 그 고장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두려워 두 딸을 데리고 소알에서 나와서 그 부근 산속으로 들어가 삽니다. 그는 두 딸과 함께 굴속에 들어가 삽니다. 그런데, 하루는 언니가 아우에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이 땅에는 우리가 세상의 풍속대로 시집갈 남자가 없다. 그러니 아버지께 술을 취하도록 대접한 뒤에 우리가 아버지 자리에 들어 아버지의 씨라도 받도록 하자고 합니다. 그 날 밤, 그들은 아버지께 술을 대접하고는 언니가 아버지 자리에 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통 모릅니다. 그 이튿날은 아우가 또 같이 합니다. 그리하여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큰딸은 아들을 낳고 모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모압인이고, 둘째 딸도 아기를 낳고는 벤암미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암몬인이라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1) 소돔의 남자들이 이방 남자들을 윤간(輪姦)하려고 밤에 소동을 일으킨 것이라든지, 2) 그러한 성폭행 풍습에서 외국인 길손을 보호하려고 자기의 처녀 딸 둘을 성폭행 현장에 내주겠다고 선뜻 제안하는 아버지 롯의 이야기라든지, 3) 롯의 아내가 천사의 신탁(神託)을 어겨 뒤를 돌아보다가 소알 산기슭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이야기라든지, 4) 롯이라는 남자는 사자들의 말도 잘 안 듣고 제 고집대로만 하는 사람인데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고, 오히려 자기 뜻대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라든지, 5) 굴 바깥 세상에 나가면 얼마든지 남자들이 있을 터인데 아버지를 취하게 하고 아버지에게서 씨를 받아 아들을 낳는 두 딸의 이야기라든지…


이러한 여러 이야기를 두고 여러 독자들이 여러 가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일찍이 지난 세기 초에 러시아의 여성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가 이 이야기에서 「롯의 아내」에게 주목한 바 있습니다. 지난 세기 말에 폴란드의 여성시인으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역시 롯의 아내를 주목하고 「롯의 아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러시아와 폴란드의 두 여성이 일찍이 롯의 아내에게 관심을 가지고 성서의 본문과 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 두 여성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성서의 본문에 나타난 사건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올바른 독서 과정에서 독자가 본문에 말을 거는 지극히 당연한 절차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여성 시인의 견해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이 성서본문에 성실하게 접근하여 본문과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한 것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성서 본문에 대한 이러한 독서법이 요청됩니다.


이 두 여성 시인들은 소돔 남자들의 동성상간(同性相姦)이나, 아버지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近親相姦)이나,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두 여성 시인들은, 떠나온 마을, 두고 온 집을 뒤돌아보다가 선 채로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한 여성, 롯의 아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안나 아흐마또바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여인의 상실감이 그녀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했다고 하면서, 드디어 순간의 시선에 자신의 삶을 바쳐버린 그녀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구구한 이유들을 다 열거합니다. 하느님에게만 잘 보이려고 아내인 자기를 늘 소홀하게 대했을 자기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에 불타는 성읍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소돔을 심판하려한 결심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불타는 성읍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아니면 자기가 살짝 뒤돌아서서 소돔의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는 정도는, 비록 금지된 몸짓이긴 해도 양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에서 불타는 성읍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잠시 살았어도 그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서 불타는 성읍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소돔을 두고 내리는 신의 심판이나 거기에 관련된 세 남자들의 민첩한 행동에 대한 반항심에서 금지된 명령을 어기고 불타는 성읍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라고, 온갖 호기심, 온갖 인간적인 감정, 여성적인 관심사 등을 열거하면서, 이 시인은, 이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서 취한 이러한 행위가 한 여인에게서 목숨을 빼앗을 만큼 큰 죄는 아니었다는 것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는 그런 종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들 여성의 뒤를 이어 롯의 아내에 대한 동정적인 이해심을 가져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집을 버리고 황급하게 떠나는 이 여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남편에 대한 감정입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남편이 비록 하느님을 향한 그의 신앙은 좋을는지는 몰라도, 지금이라도 자기 아내가 사자(使者)의 말 어기고서, 뛰쳐나온 그 파멸되는 도시를 뒤돌아보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가 어디 눈 하나 깜짝할 남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여자가 신탁 알기를 우습게 여겼으니 죽어도 싸다, 빈정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남편에게 섭섭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소돔 주민들 몰려와 낯선 방문객 내놓으라고 할 때, 숫처녀 딸 둘 다 내어줄 터이니 데려다가 마음대로 하고, 집에 든 이 남자 손님들만은 해치지 말아 달라고, 선뜻 간청한 이 남자가 과연 딸들을 둔 아비가 맞긴 맞는지 의심이 갑니다.


추격자가 따라오는 소리가 멀어졌을 때 롯의 아내가 떠나온 곳을 뒤돌아 본 것은 인간이 지닌 자연적인 본능적 행위일 수도 있고, 자기가 살아온 동네가 망하는 판국에 그 동네에 대해 표시할 수 있는 마지막 애도일 수도 있는데, 한 여인에게는 이러한 본능적 욕구마저, 이 최소한의 예의마저 터부가 되느냐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남편은 신의 사자가 시키는 말을 거절해도, 그것도 두 번씩이나(각주 2) 주저하거나 거절했어도 멀쩡한데, 그보다 나쁘지 않은 일을 한 그의 아내는 왜 그 일에 목숨을 담보로 잡혀야 하느냐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소돔을 심판하시는 것만 두고 봐도 이해 못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인간 세상이란 것이 원래 아담의 가계(家系)(창 5:1-32)와 가인의 가계(창 4:17-26)가 서로 가족이 되어 생육하고 번성하던 곳입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다산(多産), 집과 탑, 골목과 대로, 시장과 광장, 주정뱅이와 색정광, 성도착과 성폭행, 음악과 무용, 미술과 문학, 과학과 종교 등이 함께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서로 얽히어 피워낸 도시문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해야 한다면 서울, 도쿄, 방콕, 뉴욕 등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선한 도시이기 때문에 그런 심판을 받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야 한다면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은 그 여인보다 믿음이 더 좋아서 지금 저렇게 활기차게 살고 있는 것입니까?


소알의 한 동굴 속으로 피한 아버지와 딸들, 만취한 아버지는 딸들 몸 빌려 두 아들 얻고도 자기 종교에서는 의인목록(義人目錄)에 올라 있고, 타종교 경전에도 의로운 남자로 등록되어 있는데(각주 3), 딸들의 어머니는, 금지된 작별의 몸짓 한 번 했다고 소알 산기슭에서 소금기둥 되고, 낯선 종교의 경전에서는 방정맞은 여자로 기억되고 있는데(각주 4), 이런 종교를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이런 종교에 한번쯤은 실망을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실망이 여러분에게 퍽 생소할 것 같습니까? 바로 여러분의 교회가, 이 교회가, 20여 년 전에 한국교회에 실망했던 이들이 모여서 그 대안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새길교회가 보이지 않게 우리나라에서 교회 갱신의 씨를 심었고, 이 교회를 지나간 이들이 여러 교회로 흩어져서 이 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권주의에 도전하고,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의 참여 폭을 넓혀가는 일에 공헌할 수 있도록 자극제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여기 머물러 계시는 분들은 오고 오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 교회의 창립 정신을 전승시키고 훈련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 교회의 정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전통적인 종교에 실망할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유대교에 실망하셨습니다.(각주 5) 그것이 새로운 종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본문 이해에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오심이 이미 기존 본문을 재해석하도록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옛 계약서인 구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이미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구약]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신약]. …”(각주 6)


저는 성서학도로서, 여러분이 성서의 진술 내용에 대해서도 실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성서를 성실하게 읽는 일입니다. 성서 본문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입니다. 성서가 우리를 변하게 하고,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도록 하는 일을 우리 자신이 허용하는 일입니다. 상상력을 가지고 성서의 본문에 접근하면 본문과 독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가능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킵니다. 이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서, 그것을 증언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그리고 실천도 바뀔 것입니다.


1) TEV: "The men of Sodom wanted to have sex with them."

2) “15 동 틀 무렵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였다. ‘이 성에 벌이 내릴 때 함께 죽지 않으려거든, 네 아내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어서 떠나거라.’ 16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 못해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내었다. 야훼께서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창 19:15-16). “17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데도 머물지 마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 하고 재촉하였다. 18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19 저같이 하잘것없는 사람에게 이렇듯 큰 호의를 베풀어 목숨을 건져주시니 고마운 말씀 이루 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저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20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도시라면 가까워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지만 거기에라도 가서 목숨을 건지게 해주십시오.’ 21 그러자 그는 청을 들어주겠다고 하며 롯에게 말하였다. ‘저 도시는 멸하지 않을 터이니 22 빨리 그곳으로 달아나거라. 네가 그곳에 이르기까지 나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 도시를 소알이라고 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창 19:17-22). 소알: 이 이름은 히브리어 벌음이 “작다”와 유사하다(v. 20).

3) “1 맨 먼저 조성된 인류의 아버지가 홀로 창조되었을 때에 그를 보호해 준 것이 지혜였으며 그가 죄를 지었을 때에 그를 구해 준 것이 또한 지혜였다. 2 지혜는 그에게 만물을 지배할 힘을 주었다. 3 그러나 악인이 미쳐서 자기 동생을 죽였을 때에 그는 지혜를 떠나, 자기 분을 참지 못하여 멸망하고 말았다. 4 그의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이 홍수에 휩쓸렸을 때에 지혜는 한 의인을 보잘것없는 나뭇조각 위에 실어서 또 한 번 세상을 구해 주었다. 5 다시 악이 창궐하여 여러 민족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에 지혜는 한 의인을 가려내어 하느님의 책망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었으며 자기 자식에 대한 정마저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복돋아주었다. 6 하늘의 불이 그 악명 높은 다섯 도시를 쳐서 악인들이 멸망할 때에 지혜는 그 의인을 피하게 하여 위험에서 지켜주었다.”(공역 지혜 10:1-6) “7 그러나 방종에 빠진 무도한 자들에게 시달리던 착한 롯은 구해 내셨습니다.8 착한 롯은 그들 사이에서 살면서 날마다 그들의 무도한 행실을 보고 듣게 되어 착한 마음에 큰 괴로움을 당했던 것입니다.”(벧후 2:7-8)

4) “28 또한 롯 시대와 같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짓고 하다가 29 롯이 소돔을 떠난 바로 그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자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31 “그 날 지붕에 올라가 있던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마라. 밭에 있던 사람도 그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32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아라!”(눅 17:31-32)

5)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 “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시던 참에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보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하셨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막 11:12-14)

6) 마태 5:21-22, 27-28, 31-32, 33-34, 38-39,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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