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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길희성

"이국 땅에서 만난 그리스도"

(성서본문: 누가복음 5:12∼16)

 

1998.09.13

길희성 형제


[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

- 누가복음 5:12∼16



  얼마 전 학교 연구소에서 하는 지역문화 연구의 일환으로 네팔과 티베트를 약 2주간 다녀 올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7명이 함께 한 여행이었으나 각자의 관심은 달랐고 보고 듣는 것, 그리고 깨닫는 것도 달랐을 것입니다. 여행에서는 아는 것만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아야 아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는 것만큼 본다는 것도 옳은 이야기입니다. 나는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관심이 사람들의 신앙형태와 행위, 종교 유적지에 있었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들의 삶과 문화에 기독교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하는 데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아직도 이 여행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번 여행을 통해 보고 느낀 점을 여러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여행이란 하나의 모험입니다. 친숙한 것을 떠나 낯선 세계로의 이행이기 때문에 평소에 당연시되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마저 흔들리도록 도전을 받는 수도 있습니다. 구라파나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으로 여행을 하면 그 나름대로 새로운 것, 더 발달된 것을 보며 도전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충격과 놀라움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이며 상식과 합리성을 뛰어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팔과 티베트처럼 세계의 오지이자 가장 가난한 나라, 그러면서도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로 여행하면 단순히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낀다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충격, 문자 그대로 'culture shock'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하튼 여행이란 하나의 초월의 경험으로서, 우리 자신을 하나의 새로운 관점, 초월적 관점에서 돌아보게 하는 기회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문화충격을 경험하고 싶고 자기 인생관과 세계관이 뿌리 채 흔들리는 도전을 받고 싶으면 나는 사람들에게 인도 여행을 하라고 권하고 싶지만, 네팔도 인도문화권에 속한 나라이며 사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힌두교가 지배적인 나라입니다. 작은 인도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파수파티라는 힌두교 사원은 관광객들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곳입니다. 그 사원 아래 있는 화장터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화장은 사원 아래를 흐르고 있는 강가에서 행해지는데,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 사람들이 보건 말건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올려놓고 태워서는 그 재를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그것을 보면서 죽음을 그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생과 사를 그야말로 하나로 여기는 힌두교 신자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이란 단지 또 하나의 변신, 또 하나의 여행일 뿐, 삶의 절대적 종말과 허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후진국 여행을 하면 합리적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무력하며 부질없는 짓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고 어김없이 운영되는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와는 달리 인도, 네팔, 티베트와 같은 이른바 후진국에서는 여행자들이 우선 시간 관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알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를 즐기는 것 자체를 여행 목적의 일부로 삼아야 합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능한 한 최단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오겠다는 생각은 아예 금물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사정이고 우리들의 욕심일 뿐입니다. 바로 그러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저들은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계획이라는 것, 합리성이라는 것, 어떤 목적을 향해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 이러 것들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나 통하는 관념이지 저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으며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결코 우리가 저들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 이 점 하나만 깨닫고 와도 나는 여행의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일은 세계가 이런 목적 지향적 삶, 진보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를 숨가쁘게 뛰게 하는 삶을 저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날마다 기를 쓰고 뛰어야 하는지, 그래서 뭘 하겠다는 말인지,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얼마나 행복해진 것인지?

  우리가 이렇게 밤낮없이 뛰는 이유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퇴치하고 인생을 물질적으로 안락하고 풍요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인생의 참다운 목적이 될 수 있을까요?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모두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의미한 인생을 산 것일까요? 더군다나 전세계 인구가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려는 목적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과연 이 끝없는 성장의 경제학을 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겠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10억을 훨씬 넘는 중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처럼, 아니 우리 나라 사람들만큼이라도 생산하고 소비한다면 - 이것은 물론 머지 않아 실현될 일이지만 - 우리 나라에 미칠 환경영향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며 이 지구는 아마도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주택인지 변소간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네팔과 티베트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으면 도저히 저런 데서는 못 살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실로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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