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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2002.01.16 22:18

[1997.10.05]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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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양모 신부

"주님의 기도"

(성서본문: 마태복음 6:9∼13)

 

 

1997.10.05

정양모 신부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 마태복음 6:9∼13


1. 의역


마태복음 6:9-13 누가복음 11:2-4
호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하느님 간구 1. 거룩하신 이름을 드러내시고 거룩하신 이름을 드러내시고
2.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며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소서.
3.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뜻을 이루소서
우리 간구 4. 일용할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고
5. 우리에게 죄지은 이들을 용서했사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죄지은 이를 모두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시고
6.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7. 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소서





2. 풀이

  주님의 기도문은 마태복음서 6: 9∼13절과 누가복음서 11: 2∼4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이 기도문을 어록에서 베껴 쓰면서 제각기 손질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실린 짧은 기도문이 어록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는 데 비해서, 마태복음서에 실린 기도문은 마태가 상당히 가필한 것입니다(아버지 호칭 수식어, 간구 3:7).


  어쨌거나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서의 긴 형태에 따라 주님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문에는 긴 호칭에 이어 7가지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에 관한 간구(약칭 하느님 간구) 3가지가 나오고, 나중에 우리에 관한 간구(약칭 우리 간구) 4가지가 나옵니다. 7가지 간구에서 행동하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고 하느님이십니다. 곧, 우리의 처신을 거론하기보다는 아무래도 하느님의 처사를 두고 비는 기도문입니다. 이제 호칭과 7가지 간구를 차례차례 살펴보고자 합니다.

* 호칭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마가 14:36). 그 영향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갈라 4:6; 로마 8:15). 아람어 아빠는 본디 아가가 아버지를 부르는 아가말(小兒語)이었습니다. 아가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하는 수가 있었는데, 아마도 정감이 듬뿍 담긴 호칭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나 이제나 절대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누가의 "아버지"는 아빠를 점잖게 옮겨 쓴 것이고, 마태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유대인들의 하느님 호칭을 따른 것입니다.

* 간구 1. "거룩하신 이름을 드러내시고"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인데, 직역은 다음 두 가지 사유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첫째, 지존을 2인칭 "당신"이라고 일컫는 것은 무례합니다. 또한 우리말에서는 흔히 2인칭 대명사를 생략합니다. 둘째, 직역하면 마치 하느님의 이름이, 곧 하느님이 속된 것처럼 들립니다. 마치 속된 하느님이 도를 닦아서 거룩하게 탈바꿈하기를 비는 것처럼 들립니다. 첫째 간구의 뜻을 새기면, 하느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온 누리에 드러나기를 빕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이 비록 지금은 꼭꼭 숨어 계시지만 오래지 않아 종말이 닥쳐 환히 드러나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 간구 2.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며"
  직역하면 "당신의 왕정(王政)이 오소서"입니다. 하느님이 임금으로서 오시어 다스리실 신정(神政)이 도래하기를 빕니다. 그런데 신정이 마치 발이라도 달린 양 온다고 하는 것은, 신정의 역동성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독창적 표현이기는 하나, 아무래도 우리말 어감에는 거슬립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며"라 의역했습니다. 이 간구의 뜻인즉, 비정한 인간들의 폭정은 끝장나고, 대신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이 어서 오시어 선정을 펴 주십사고 비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종말 신정의 도래를 기원하셨으나,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나날이 우리의 삶과 역사를 주관하십사고 빌어 마땅하겠습니다. 종말 미래의 신정을 역사 현재의 신정으로 바꾸어 기도하는게 묵시문학적 독소를 제거하는 첩경이라 생각됩니다.

* 간구 3.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뜻을 이루소서"
  직역하면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셋째 간구는 마태의 가필입니다.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뜻"을 살펴보면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하고자 하시는 구원 의지를 가리키기도 하고(18:14), 우리의 회개를 요구하시는 윤리 의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7:21; 12:50; 21, 28, 31). 앞 문맥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며"를 고려하여 셋째 간구를 풀이하면, 하느님께서 오시어 선정을 펴심으로써, 우리를 구하시려는 구원 의지를 이루소서. 굳이 "하느님의 뜻"이 지닌 두 가지 의미를 다 고려해서 풀이한다면, 셋째 간구에 나오는 "하느님의 뜻"은 일차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려는 구원 의지요, 부차적으로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시는 윤리 의지라 하겠습니다.

* 간구 4. "일용할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
  1) 그리스어 '에삐우시오스'(epiousios)를 여기선 '일용할'이라고 번역했으나 달리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에삐우시오스'는 그리스어 문헌 중 여기에만 나오는 까닭에 그 뜻이 자못 불분명해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① "나날의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옛 라틴 역문에서 에삐우시오스를 '나날의' 빵이라고 번역했습니다.
② "생존에 필요한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오리게네스 교부는 '생존에 필요한 빵'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시리아어 공용성서 폐쉬타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빵이라 번역했으니 오리게네스와 가깝습니다.
③ "내일의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히에로니무스 교부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의 복음서, 일명 나자렛인들의 복음서에서는 '내일의' 빵이라고 하였습니다.
④ "종말 미래의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히브리인들의 복음서에 나오는 '내일의'는 오늘과 모레 사이의 하루를 뜻하기보다는 큰 미래를, 곧 종말 미래를 뜻한다고 풀이하는 설이 있습니다.
⑤ "일용할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이 번역에서는 '나날의 빵' (①)과 '생존에 필요한 빵' (②)를 합쳐 '일용한 빵'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 가톨릭, 개신교에서 다같이 따르는 역어입니다.

  2) 원전의 '일용할 빵'을 '일용할 떡' 또는 '일용할 밥'이라고 번역하는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불필요하게 문제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 떡을 먹는 사람도 어쩌다 있는지 모르겠으되, 아무래도 떡은 별식이니만큼 '일용할 떡'은 어불성설입니다. '일용할 밥'은 좀 낫기는 하지만 역시 문제입니다. 밥이라 하면 무의식중에 쌀밥을 생각하게 되는데, 예수시대 이스라엘에는 쌀 한 톨 나지 않았고 따라서 성서에는 쌀이라는 낱말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스어 원전의 '일용할 빵'은 빵 한 가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식 전부를 뜻합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가리키는 히브리적 제유법인 것입니다(提喩法). 우리말 역문에서는 일용할 '빵'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확대 번역했습니다.

* 간구 5. "우리에게 죄지은 이들을 용서했사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시고"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했듯이 우리에게도 우리 빚들을 용서하소서"입니다. 여기서 빚은 죄를 가리키는 상징어입니다. 예수 친히 사용하신 아람어의 '호바'는 빚과 죄 두 가지 뜻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남의 죄를 용서해야만 자신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예수님은 거듭 역설하셨습니다(마태 5:23∼24; 6:14∼15 = 마가 11:25). 그렇지만 좀 더 깊이 천착해보면, 먼저 하느님의 지극한 용서를 체험해야만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도량이 생기는 법입니다(마태 18:23∼35). 그럼 남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남이 잘못을 뉘우칠 때 기꺼이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누가 17:3∼4 = 마태 18:15, 21∼22).

* 간구 6.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고많은 유혹들 가운데서 어떤 유혹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①주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예수께 배워 나날이 바친 기도라는 사실에 유념합시다. 그러니 여섯째 간구의 유혹은 제자됨을 저버리려는 유혹이겠습니다. 곧, 추종을 포기하려는 유혹입니다. ②하느님 간구 1∼3과 관련하여 풀이한다면, 하느님 없이 살려는 자족자만의 유혹이겠습니다. ③넷째 간구와 관련하여, 혼자 먹으려는 독식의 유혹, 잔뜩 쌓아 놓고 먹으려는 식탐의 유혹이라 해도 좋습니다. ④아울러 다섯째 간구와 관련하여 이해한다면, 하느님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를 거부하는 불목의 유혹이기도 합니다.

* 간구 7. "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소서"
  일곱째 간구는 마태의 가필입니다. 일곱째 간구에 나오는 명사를 남성으로 보면 "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소서"가 됩니다. 이 경우 '악한 자'는 사탄을 가리킵니다(13:19, 38). 그러나 중성으로 보면 '악에서 구하소서'가 됩니다. 간구의 '유혹'은 '악한 자', 곧 사탄이 사주하는 것입니다.

 


3. 한 뜻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뜻을 두고 비는 삼중 '하느님 간구'에 이어서, 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우리가 사탄에게서 받는 유혹을 두고 비는 사중 '우리 간구'가 나옵니다. 이 기본 골격만 눈여겨봐도 기도문의 기본 취지가 잘 드러납니다. 대자 대비하신 하느님의 돌보심 아래서 우리의 삶을 꾸려가도록 해 주십사 비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당시 묵시문학적 시대사조의 영향을 받아서, 하느님의 나라가 곧 도래하리라고 믿고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 기도의 사상적 배경은 종말 임박 신앙이었습니다. 저들이 지녔던 종말 임박 신앙이, 말세를 외치는 광신자들 사이에 요즘도 재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묵시문학적 발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합니다. 앞으로도 역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므로 모름지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묵시문학적 독소를 제거하면서 이 기도문을 바치는 게 도리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까요? 하느님은 자애로우신 아빠시오 우리는 그 품에 안겨 사는 아가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빠께서 당신 이름과 나라와 뜻을 펴십사고 우선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간구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우선 먹을거리를 청하고 나서, 용서받고 용서하고 또 다시 용서받음으로써 아빠와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고 말씀드립니다. 이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추종을 포기하라는 악마의 유혹, 하느님 없이 살라는 악마의 유혹, 먹을거리를 독식, 과식하라고 들쑤시는 악마의 유혹, 불목하라고 부추기는 악마의 유혹을 이기는 힘을 주십사고 빕니다.


  예수 설교의 요지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인간의 회개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의 회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실로 대짜배기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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