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177.20.247) 조회 수 3275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이경숙 교수

"참 올리브 뿌리와 접붙인 야생 올리브 가지"

(성서본문: 로마서 11:17∼21)

 

1997.09.14

이경숙 교수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

- 로마서 11:17∼21



  내일 모레면 다시 추석입니다. 올해도 추석이 되면 우리들은 고향을 찾고, 집안 어른들을 찾아 뵙고 또 성묘도 하면서 각자의 가족을 그리고 뿌리를 찾아 나서게 될 것입니다.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님께 바치던 옛 농경지 문화의 유산이 거의 사라진 요즈음에도 집안 어른을 생각하고 형제 친척이 모여서 집안의 내력과 뿌리를 더듬어 보는 추석의 성격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성묘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분들이 살아오신 내력을 생각해 보는 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위치와 자리를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 즐거운 추석 명절을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저는 오늘 우리가 자주 잊고 있는 우리 기독교의 뿌리를 한 번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그 크기에 있어서나 세력에 있어서 세계에서 손꼽힐만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 교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고 또 부러움도 사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의 흐름을 주도해 주기를 바라는 큰 기대도 모으고 있습니다. 1998년 12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리(Harare)에서는 WCC 창립 50주년 제 8차 총회가 열립니다. 이 총회에 한국교계에서는 많은 목사님들이 참석하고 또 총회에 지원금도 많이 내고 해서 한국교회의 위세를 좀 과시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교회가 WCC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여태까지 WCC의 공용어로 사용되던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와 나란히 한국어도 통역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언어로 인해 한국 목사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이 약화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모든 계획과 의도가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되는 것은 혹시나 한국교회가 오만한 접붙여진 야생 올리브가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 큰 교회가 많다 해서 큰소리를 내면서 실속과 알맹이는 없는 그런 모습으로 보여질까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세계 교회라는 참 올리브나무 뿌리와 전통을 올바로 또 겸손하게 승계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WCC 총회에서 보여지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본문 로마서 11:17∼21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우리는 심각하게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야생 올리브 가지들입니다. 그런 가지는 본래의 가지들을 내려다보면서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교만하지 마십시오. 만일 교만하거나 두려움이 없이 행동한다면 본래의 가지들을 버리신 것처럼 여러분들을 버리실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7∼24의 내용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우월주의를 경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기독교인 되었고, 그 후에는 유대교를 철저히 비판하면서 기독교를 선교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터키, 그리스, 로마 쪽으로 이방 선교를 하였기 때문에 '헬라인 중의 헬라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중상의 전통을 엄하게 교육받은 히브리적 유대인임을 자주(빌 3:5, 고후 11:22, 행 22:3)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기독교 속에 이스라엘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경우 사도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것도 정통적 유대교와 구약의 깊은 열망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요즈음 바울 사상이 얼마나 깊이 유대교에 뿌리를 박고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많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또 선포하였지만 그의 사상 속에는 유대사상이 근저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희랍철학과 논리 형식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배타적 대립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포기한 것은 율법을 통한 구원이었을 뿐 유대주의 자체의 부정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며 또한 기독교인의 뿌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하거나 기독교의 우월성만을 강조하거나 나아가 유대교를 적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 심각히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히틀러가 기독교 신학자들을 동원해서 유대인 학살을 신학적으로 근거 지으려고 한 것이나 또 요즘 여성신학 일부에서 모든 여성 억압의 원인을 유대교에 돌리고 적대시하는 것이나 모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유대교나 기독교나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그 뿌리는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혼자만 뽐낼 수는 없습니다. 모두 함께 하나님의 가지임을 기쁘게 생각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부디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여성문제 등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밖에 기독교에는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또 하나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정교회 즉 동방교회라는 뿌리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관계는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일부에서는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니라고까지 가르치고 있으며, 또 동방정교회는 이단으로서 개종시켜야 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식하고 또 오만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 개신교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만, 정교회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하고 또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초기 역사는 모두 이 동방정교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고 로마에서 자유롭게 선교되기 시작한 것은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하늘의 태양 앞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았고 "이 표 안에서 정복하라"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가 되어 교회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324년 자기 이름을 따서 명명한 콘스탄티노불을 로마의 수도로 정하였고 이후 이곳을 동로마교회의 중심지로서 1054년 동·서방 교회가 완전히 분리될 때까지 기독교 교회사를 주도하였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회가 열린 후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논의되었으며 교회의 조직에 대해서도 논의되었고 또 성령에 관한 교리도 발전시켰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에 있었던 기독교 교리의 논쟁을 이해하고 정리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 즉 신론, 기독론, 성령론 삼위일체론 등을 올바로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서로마교회는 라틴어 권의 문화로 교황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법적인 사고를 함으로써 헬라어 문화권이며 공의회를 주장하고 사색적 신비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동로마교회와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필리오케('성자로부터')의 삽입을 계기로 동·서방교회는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분리도 신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내용의 분리가 아니고 정치적인 권력 싸움적 요소가 더 짙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하고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는가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교황권의 문제와 필리오케의 문제가 늘 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결별은 1054년 곤스탄티노불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성찬예배가 거행되려고 할 때 서로마교회 사절단이 성당 지성소로 행렬하여 제단 위에 파문책서를 놓고 간 것이 계기가 되어 동·서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그 뒤 동방교회는 그리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그리고 서방교회는 로마, 영국, 불, 독, 스페인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 나아갔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생겨난 이래 기독교의 분열은 그치지 않았고, 소위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세계 여러 곳에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이에 20세기 초에 기독교의 일치운동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즉 WCC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창설되었습니다. 이제 1998년이 되면 50주년 즉 희년을 맞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크게 축제를 벌이고 세계기독교교계에 교회일치운동에 동참하도록 초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48년 WCC가 창립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준비 단계가 있었습니다. 동·서의 양쪽 교회는 분열하면서도 교회의 책임을 다하려면 하나의 교회여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달랐던 것뿐입니다. 1274년 리용에서는 일시적 합의가 이루어진 적도 있었고 또한 1938∼9년에 페라라와 피렌체에서 화해가 이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리면서 교회의 분열은 교회 상호협력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화해의 복음의 진리를 불투명하게 만든다는 확신에서 교회연합운동이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 교회는 "만약 온 세계의 기독교계가 교리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백성의 하나됨,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세상에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구세주이신 주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라고 선언을 하고 WCC를 창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WCC의 기본 정신은 존재하는 불일치는 그대로 두고 근본적인 일치점을 찾고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교회의 화해와 연합은 교회 본질 자체에 그 근거가 있으며 거기에서 본질적인 생명력을 얻는다는 확신에서 출발합니다. WCC에는 정교회와 개신교가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는 가톨릭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WCC 정신이 온 세계 교회에 퍼져 각 교단 교파간의 싸움이 기독교를 일그러지지 않게 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는데 공헌하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분쟁, 동구라파에서의 정교회와 가톨릭의 관계 정립, 러시아에서의 한국 개신교 선교가들과 정교회의 분쟁 문제 등이 아름답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추석을 맞이해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가족의 정체성을 되살리듯이 한국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리와 정체성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가 우리의 형제이고 누가 우리의 뿌리입니까? 누가 우리와 같은 뿌리에서 난 가지들이며 왜 우리는 다른 가지들과 화목하지 못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같은 형제들끼리 권력 싸움을 하면서 그 싸움의 근거를 신학적 이론에서 찾아 부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중의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체로서의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파의 교단을 초월해서 우리는 모두 뿌리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가지임을 깨닫고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새길교회는 이미 이러한 교회 일치운동에 모범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회로 알고 있고 또한 저는 이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연합예배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덧붙여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정교회 신부님도 한 번 초대해서 기독교의 큰 줄기들을 일치시키는 시도를 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추석을 맞이해서 그리고 WCC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 일치운동,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여 큰 화합의 선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48 1997 [1997.12.07] 육신이 되신 말씀의 아픔 2002.01.16 한완상
47 1997 [1997.11.30]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2002.01.16 이경숙 교수
46 1997 [1997.11.23] 세상을 구할 자 2002.01.16 길희성
45 1997 [1997.11.16] 고난과 성령 2002.01.16 권진관
44 1997 [1997.11.09] 새로운 삶으로의 부름 2002.01.16 강남순 교수
43 1997 [1997.11.02]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2002.01.16 박동현 목사
42 1997 [1997.10.26] 추수의 보람과 나눔의 기쁨 2002.01.16 이재정 신부
41 1997 [1997.10.19] 오직 생명으로만 2002.01.16 최만자
40 1997 [1997.10.12] 열린 예수, 열린 교회 2002.01.16 한완상
39 1997 [1997.10.05] 주님의 기도 2002.01.16 정양모 신부
38 1997 [1997.09.28] 하나님을 아는 길 2002.01.16 길희성
37 1997 [1997.09.21] 바이블 코드 2002.01.16 민영진 목사
» 1997 [1997.09.14] 참 올리브 뿌리와 접붙인 야생 올리브 가지 2002.01.16 이경숙 교수
35 1997 [1997.09.07] 생명의 주 - 현실주의를 뛰어넘어 믿음의 결단으로 2002.01.16 권진관
34 1997 [1997.08.31] 예수 없는 교회와 신앙고백 2002.01.16 한완상
33 1997 [1997.08.17] 그리스도 안의 통일 2002.01.16 박동현 목사
32 1997 [1997.08.10] 땅 위의 나그네 2002.01.16 길희성
31 1997 [1997.08.03] 성령의 사귐속에 있는 삶 2002.01.16 채수일 목사
30 1997 [1997.07.27] 창조와 안식 2002.01.16 서창원 목사
29 1997 [1997.07.20] 경계를 넘나드는 교회 2002.01.16 김상근 목사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