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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1.06.02 11:19

[2011.05.29]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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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강경희

고 통

(이사야 53:3-7, 로마서 5:3-8)

2011년 5월 29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강경희 자매

 

고통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막연히 저의 말씀증거의 순서가 수난절 기간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십자가 고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고난주간을 보냈고, 또 부활주일도 맞이했으며, 오늘은 아름다운 5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다시 고통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고통” 참으로 불편하고, 피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형제, 자매님들도 사랑, 축복, 감사, 영원한 생명, 구원, 평화, 승리 등의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아마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제 자신이 “고통”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통”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고통”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 때문일 것입니다. 혹은 과거에 경험했던 고통으로 상처가 남아있기에 되도록 이것이 회상되어지는 경험을 피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나누려 하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마주하기에 크게 고통스럽지 않도록 제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와 세계 150여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30여 가지의 의학적 진단을 추측하면서 그토록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후기 인상파 화가 반 고흐에 대해, 그의 고통스러웠던 삶, 영성, 예술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 3월 초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의 소용돌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기아, 전쟁, 질병, 각종 자연재해의 엄청난 고통들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더욱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정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가까운 친구가 암 진단을 받기도 하고, 소중한 가족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있기에 어떤 말씀이 다가 올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있습니다.

 

2010년 수를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사람들이 매몰된 아이티의 지진이 있은 후에, 젊은 신지니 간사님이 “너의 고통 앞에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증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이사야 53장을 인용하여, 예수가 종의 모습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아 고통당했던 그 이유가 우리들 죄 때문이며, 이웃의 고통이 나의 죄 때문이라고, 그 고통이 우리 때문이기에 우리가 그 고통을 나누어 저야 한다고 했던 새길교회에서의 말씀증거 내용이 기억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 역시, 우리가 예수따르미 라면 예수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 되어야 하고 그 고통 중에 예수를, 또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의 고통 안에 계시는 예수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고통(suffering), 통증(pain)은 신체적, 정신적 이유로 이해해야합니다. 객관적으로 질병, 특수한 상황, 상태, 장애 등에 따라 고통, 통증이 있습니다. 신체적 통증인 경우 ”0“에서 ”10“까지 통증의 단계(scale)를 말해 보라고 종종 의사들은 묻곤 하지만, 아시다시피 통증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만성통증 환자들과 의사들은 늘 대립과 마찰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성통증 환자들의 경우 의학적 진단과 검사에서 판단되는 그 이상의 강한 진통제를 요구하는 분들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겪는 주관적인 통증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상식적인 결론이겠지만, 최근 ”너의 통증이 나의 통증이 될 수 있을까요?“ 라는 미국의 한 논문에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와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뇌 영상을 찍어 보았더니 공통적으로 자극 되는 뇌의 부분들이 두 그룹에 모두 다 반응 했지만, 결국 통증을 직접 경험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더 광범위한 뇌 부분에 반응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증은 주관적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도 그러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영성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은 고통스러운 연단, 절제, 금욕을 통해 신(神)에게로 가까워지는 경험을 추구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고려파 장로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을 부산에서 지냈는데 사라호 태풍이 부는 아침에도 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교회로 달려가는 어린이였습니다. 참으로 영성이 풍부한 그 시절 어느 날, 저는 하나님께 일생을 바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되고 그 약속의 증표로 실에 먹물을 묻혀 바늘로 팔에 상처를 내는 고통을 자행했던 경험을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어야 맹세가 성립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후에 미국에 건너가서 그냥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삶 속에서 저는 하나님과의 맹세를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남편 이일영 형제가 1994년에 저를 미국에 홀로 남겨두고 한국에 돌아갔고 제가 한국에 돌아 온 후에도 그는 계속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 대신 이일영 형제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있어 이일영 형제나 하나님께 불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정도의 순교자적인 이유도 있겠고, 또한 정의 실현을 위해 자해를 넘어 자살까지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칼이나 담뱃불을 이용하여 손목과 몸에 상처를 내는 데 그들은 이러한 행동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소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 윤여성 형제의 말씀증거에도 언급되었지만 고통의 순간에 나오는 엔돌핀에 의한 현상일수도 있겠습니다. 반면 자해를 함으로써 겪는 통증은 무감각해져버린 마비 상태에서 감정(emotion)을 일깨워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자해와 자살 행동은 정신질환과 같은 이유로 복잡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혹은 자기 안으로 분노, 수치, 절망, 죄의식 같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도움을 청하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제가 일 하는 이곳 미군 병원에서는 특별히 전쟁터를 다녀온 후 발병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지난 5월 7일 우연히 TV를 보는데 KBS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다큐방송을 방영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입니다. 방송에서는 연평도 포격, 천안함 침몰, 쌍용차 해고, 대구 지하철 참사, 소방 공무원,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5․18 광주항쟁 때 고문당한 이들 중 48%의 사람들이 이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최근 보고도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미국에서 이미 1차, 2차 세계대전,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남태평양 전쟁 등을 경험한 사람들이 일생을 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 때, 치료에 함께 했었습니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걸프 전쟁에서 돌아온 환자들과도 같이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특별히 전쟁포로로 있었던 사람들은 이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치료를 통해 경험한 이 증후군은 전쟁 경험 뿐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여러 가지의 외상들, 자연재해, 사고, 화재, 물리적 폭행, 성적인 폭행 및 강간 등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으로 다양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촉진시켜 뇌의 어느 부분에 장애를 일으키면서 발병합니다. 절박했던 상황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게 되며 불안, 불면, 악몽, 신체적 변화(두통, 기억력 감퇴 등), 적대감 표출, 비슷한 상황을 피해 다니는 증상 등을 나타내는 데, 거의 1/3 정도의 사람들은 증상이 만성적으로 진행하는 경로를 밟으며 일생을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밤에도 소리를 지르며 부들부들 떨며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들도 떠나고 술과 마약으로 이 고통을 잊으려 합니다. 이들의 자살률은 상당히 높아 미국에서는 계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 중에 계신 예수, 하나님께로 향한 영성, 용서하고 용서받는 경험,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치유(healing)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아니지만 반 고흐는 일생을 여러 가지 정신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게 됩니다.

저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의 정신적 문제과 그로인한 고통과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영성의 추구가 그의 그림 예술세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그를 연구한 많은 정신과 정신 분석학자들의 분석 자료를 참고하여, 오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개혁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제본업자의 딸이었던 어머니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그가 태어나기 바로 1년 전 같은 날 죽은 아기로 태어났던 형의 이름을 물려받습니다.

젊은 시절 잠시 화상으로 일하다 해고 된 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헌신하리라 맹세하며 종교적 소명을 갖고 신학교에 입학을 시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됩니다.

25살에 프랑스 국경부근의 탄광촌에 들어가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방문하고 광부들에게 성서를 읽어주며 그들의 열악한 생존 조건을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아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도우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층은 고흐가 고통 받는 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에 대해 성직자들의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비난했고 그를 교회에서 파문합니다.

극심한 고통, 굶주림에 허덕이다 그곳을 떠나 헤이그로 돌아오게 되고 가족들의 계속되는 반대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1882년 헤이그에서 알코올중독자 창녀였던 Sien과 살림을 차려 그녀의 딸과 아버지도 모른 채 태어났던 그녀의 아들과 살았지만 파경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고흐의 경제적 무능력 때문에 수입이 없었고, 때문에 그녀는 다시 사창가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유였으리라 추측합니다.

그 당시부터 그의 일생을 뒷바라지한 동생 Theo의 도움으로 고흐가 그린 그림들에는 늘 풍경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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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감자를 먹는 사람들]

 

네덜란드 시절 대표작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그는 확신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자신이 그려낸 존재에 대해 연대감을 지니고 있음이 잘 보여 집니다. 그 당시 전통적인 기독교를 멀리한 고흐는, “새롭고 유일한 종교는 예술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뇌넨과 안트웨르펜에서 연상의 여인과 관계가 있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어서 어머니의 병 간호, 아버지의 사망을 경험했던 그의 어두운 그림들은 빛을 보지 못했고, 가난한 생활은 계속되어만 갑니다. 이때쯤부터 간질(측두엽)증세를 유발시켰다고 하는 압생트-술(Absinthe, 향쑥-artemisia absinthium-으로 만든 독한 술)을 그가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886년에 파리로 와서 고갱, 베르나르 등의 화가들을 만나고 동생, Theo와 함께 사는 동안 사회 주변인 초상화, 인물, 풍경, 정물화 등의 작품들을 그립니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내 안의 가장 선하고 심오한 것을 끄집어 내 준다.”고 했습니다. 이때의 대표작인 <탕기 영감의 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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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탕기 영감의 초상]

 

탕기 영감은 파리에서 화상으로 화가들을 뒷바라지 하며 사회주의 이상을 갖고 있는 분으로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미 그의 파리시절부터 그의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고 같이 지내던 동생 Theo도 고흐의 심한 감정기복과 발작 증세로 고생하게 됩니다. 여러 예술가와도 마찰이 많았던 고흐는 드디어 1888년 불란서 남부 아를에 동생의 도움으로 정착해 색체의 폭발적인 그림들을 남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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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노란집]

 

이 그림을 통해, 이 시절 <노란집>을 그리며 화가들에게 모임의 중심이 되는 곳을 만들고 싶어 했던 고흐의 꿈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꿈과는 멀게도 그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외면을 당합니다. 외롭게 지내던 고흐의 정신적 불안은 압생트-술을 마시면서 더욱 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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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Starry night over the R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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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파이프가 놓인 빈센트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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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책과 양초가 놓인 고갱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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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

 

이즈음 동생 Theo가 고갱의 빚을 갚아주면서 까지 고갱에게 고흐와 함께 해주기를 간절히 설득하게 되는데, 결국 고흐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2개월 만인, 1888년 크리스마스 전날 고갱은 고흐를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고흐는 고갱의 얼굴에 술을 쏟은 후, 떠나는 고갱을 면도칼을 들고 따라 갑니다. 훗날 고갱은 고흐가 면도칼로 자기를 위협했다고 증언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그 칼로 자기의 왼쪽 귀를 잘라 종이에 싸서 좋아했던 매춘부 Rachel에게 그 뭉치를 주고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도착했을 때 고흐는 정신이상 상태로 입원을 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흐가 귀를 자른 상황을 측두엽 간질 증상의 후유증으로 오는 환청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고갱을 해 하라는 목소리에 대항한 자기에 대한 처벌이라고 보기도합니다. 혹은 고통의 차단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른 귀를 매춘부에게 선물처럼 준 행동은, 투우사들이 황소와의 싸움 끝에 황소의 귀를 자르게 되면 승리하는 것이고 그 귀를 투우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증정한 서구의 전례에 비추어, 비록 고흐가 정신이상 상태였기는 했으나 의미 있는 행동으로 흥미롭게 보는 정신 분석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아를을 떠나 생-레미의 요양소로 가게 되며 2년 동안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게 됩니다. 그의 편지 속에는 “이런 생활에서 배워야 하는 유일한 교훈은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라고 씁니다.

 

생-레미와 오베르의 2년 동안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그의 삶 자체였으며 자연에 다가서는 자연의 언어였습니다. 이때 그의 그림에는 종교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정신적 상태는 악화되며 자주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는 삶의 진실, 삶의 기본적인 주제들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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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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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두 그루의 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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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두 그루의 사이프러스>에서도 볼 수 있고, <별이 빛나는 밤>에도 더욱 확실히 볼 수 있는 두 선, 한 선은 계속 되면서 굽이치는 곡선이고 다른 하나는 짧고 힘차게 끊어지는 선입니다.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정확히 선으로 묘사된 조그만 도시와 집들, 교회의 뾰족한 종탑은 사이프러스처럼 지평선을 뚫고 치솟아 있는데 이 대조적인 힘들은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항하는 인간의 노력과 고통, 즉 별에 다다르려는 노력의 표현이었다고 해석합니다.

보스톤의 한 정신 분석 학자는, 고흐는 여기서 묵시록의 관점을 가지고 초자연적인 감정과 무한에 대한 추구를 표현했고 어두움과 빛을 대조하며 하나님께로 다가섰던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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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걷는 사람, 수레, 사이프러스가 있는 길]

 

<걷는 사람, 수레, 사이프러스가 있는 길>은 하늘과 땅, 사람과 자연이 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당시에는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도 그렸는데, 어머니인 마리아의 팔에 안겨 있는 죽은 예수, 화가 반 고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부활한 나사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그 그림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미래의 구원에 대한 희망 때문에 고통 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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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가셰박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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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가 죽기 한 달 전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당시 그의 심리상태를 잘 반영하여 지독한 그의 슬픔과 고독이 표현된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부분과 전체, 가깝고 먼 것을 결정적으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원근법적 중심이 없는 공간에, 그림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 한 길들이 있고, 한 떼의 까마귀들이 불분명한 전경을 향해 다가오듯 날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장엄함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후 고흐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죽기 전 몇 차례 자해하는 행동으로 자살 시도를 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라부 부부의 여관에서 화가들의 친구였던 가셰박사의 돌봄을 받는 동안에는 특별한 경고나 징후는 없었다고 기록됩니다.

 

고흐의 일생을 금전적으로, 마음으로 뒷바라지 하던 동생 Theo가 결혼을 했고 곧 아이를 낳게 되는 소식을 접하는 고흐의 마음에는 큰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Theo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그는 이렇게 씁니다. “나는 내 작품에 삶 전체를 걸었고 그런 과정에서 내 정신은 무수히 괴로움을 겪었다. 너는 내게 그저 평범한 화상이 아니었고 항상 소중한 존재였다.”

 

1890년 7월 25일 그림을 그릴 때 까마귀를 쫓는 다고 총을 빌려 나간 고흐는 그 총으로 자신의 가슴과 복부를 쏘았으나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고흐는 가셰박사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틀 후 동생 Theo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상심하던 동생 Theo도 고흐가 죽은지 6개월 후에 병으로 사망했고 오베르에 있는 반 고흐의 무덤 옆에 묻히게 됩니다.

 

고흐의 삶은 완전한 실패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여인들에게, 친구, 이웃들에게 버림받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고, 동생 Theo가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화구를 준비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하나님께로 다가가려는 부단한 절규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후에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묘사한 화가로 평가되었습니다.

 

성서에도 예수님이 고통 외에도 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22절에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라고 했으며, 18절에서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라고 하며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디모데 후서 2장 3절에는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사답게 고난을 함께 달게 받으십시오.” 그리고 베드로 전서 4장 후반절에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맡기라” 고 합니다.

 

한국 정신과 의사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한국에 돌아와 많은 제자 양성과 훌륭한 연구로 학계에 큰 공헌을 한 이호영 선생님의 팔순 되신 얼마 전 회고록 출간에 참석하여 책을 접하며 그 분께 출산 시 뇌 손상으로 뇌성마비가 되어 거동을 하지 못했던 형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호영 선생님은,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형보다 더 불행하고 참혹한 고통으로 일생을 마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 분은 당신이 형의 유일한 반려자로 형의 미소를 보기 위해 광대 짓도 하며 형이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되며 그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형의 전신 경직으로 인한 고통스러웠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그에 대한 사랑이 곧 당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 그 자체였고 22살 젊은 나이로 처참한 삶을 마감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선한 사람이었던 형은 이호영 선생님 자신에게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얼마 전 이해인 수녀님도 암 투병을 하면서 “암 고통은 내게 축복이며, 아프면 아픈 대로 나눌게 많네요.” 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드랬습니다.

 

내 속에 있는 고통, 내 이웃에 있는 고통을 “보고”, “듣고”, “느끼고”, “어루만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변화되는 우리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새 땅을 여는데 모두가 아름답게 함께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감사합니다.

이웃의 고통 속에 또한 계시는 당신의 모습을 우리가 사랑하기 원합니다.

임마누엘 그리스도 안에서 늘 변화하고 새로워지게 도와주시기를 원하며,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
    정경일 2011.06.04 06:25 (*.96.157.217)

    고통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치유되는 것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동료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반응, 참여가 

    가장 인간적이고 그래서 가장 종교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깊은 말씀 고맙습니다.

  • ?
    서혜자 2011.06.19 00:40 (*.204.2.148)

    극한적인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켰던 고호의 삶은 그 자체가  종교였던 것 같아요. 

    "그의 그림 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하나님께로 다가가려는 부단한 절규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후에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묘사한 화가로 평가되었습니다" 라는 귀절이 그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네요.

    경희야! 감사히 잘 보고 가. 글 실어다 54마당에 올려도 되겠지?

  • ?
    권오대 2011.07.06 00:32 (*.138.116.146)

    오늘 비로소 자매님의 '고통'을 찾아내어 대합니다.

    특히 말미로 갈수록 글이 빛을 발하는군요.

    이호영 선생님도. .

    반 고흐에 관해 나눈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가 19세기에 그린 별의 모습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또는

    회절광들처럼 ] 그려져 있는데, 20세기 허블 시대에서야

    비로소 많은 은하들이 발견되고, 많은 은하들이 '소용돌이 즉

    나선 은하들임이 밝혀져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더욱 놀랍고 유명해졌습니다.

    [아직 미완성의 글이지만, "느낌'을 준 자매님의 글에 독후감처럼

    미완의 글 중 한 구절을 남깁니다. [아래]

     

    우린 반 고흐의 ‘별’ 그림들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별’에 주목하고 죽을힘까지 바치면서 미치도록 붓을 놓지 않은 화가는 반 고흐 외에 없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별’에서 ‘신’을 깨달아 그림으로서, 성경처럼 ‘신’을 쓰는 대신 자기의 꿈대로 ‘그림’으로 ‘신’을 기록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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