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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신순애 선생님(노동운동가, 탁틴내일청소년인권센터 소장)


“열세 살 시다의 꿈: 가치를 찾아 사는 삶”
(누가복음 21:1~4)



2016년 3월 13일 주일예배
신순애 선생님(노동운동가, 탁틴내일청소년인권센터 소장)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 누가복음 21장 1~4절 -





귀한 시간 저에게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말씀증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마도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고 한 것이 이 날의 시작이라서, 그래서 일하는 노동자였던 저에게 이 시간을 주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의 삶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이 자랑스러울 것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기에 용기 냈습니다.


저는 칠남매 막내로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병중에 계셨고 어머니가 농사를 하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1965년 서울로 상경을 했고 그곳은 중랑천 뚝방 무허가촌이었습니다. 방 하나에 여덟 식구가 살았고, 시골에서는 마음껏 먹던 물도 서울에서는 돈을 주고 사먹어야 했습니다. 저는 물 값이라도 보태야 했고 그래서 1966년 봄 주인집 언니를 따라 평화시장에 시다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열 세 살 이었고,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때였습니다. 청계천 평화시장에 있는 삼양사 공장에서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 20분까지를 일을 했고 그렇게 해서 받은 첫 월급은 700원 이었습니다. 당시 버스요금은 학생 5원, 일반 10원이었습니다. 군대갔다온 대학생도 5원을 내는데 쪼그만 어린 소녀인 저는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10원을 내야했습니다. 아마 제가 사회로부터 불평등을 처음 느끼는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5원은 우리가족이 하루 종일 먹을 수 있는 부식 값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었고 어쩔 때는 바빠서 도시락도 먹지 못하고 밤 11시 20분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퇴근길에 동대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제과점에서 나는 빵 냄새가 꿀맛처럼 코를 찌르고 있었고 훔쳐 먹고 싶은 유혹에 빠졌지만 참고 또 참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수 없는 게 가장 힘들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사춘기가 되면서 생리를 할 때면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곳을 빠져 나올 방법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저는 미싱 기술자가 되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1969년 저는 그렇게 원하던 미싱사가 되었습니다. 미싱사는 옷을 만드는 대로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점심시간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월급날 사장이 가계로 오라고 해서 500원을 보너스로 더 주기도 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동지가 우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투쟁을 했지만 그 근처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 하면 당시 신문은 한문으로 나왔기 때문에 더욱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공장장이 “구름다리 밑에 가지마라 그곳은 지금 깡패가 죽어서 가마니로 덮어놨다”고 했고 저는 그 곳에 갈일도 없었고 또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 볼 일도 없어서 전태일 동지의 죽음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과로와 영양실조로 일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의사는 과로 영양실조라고 좀 쉬라고 했지만 다음 날 다시 출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안으로 중등과정무료 라는 유인물이 들어왔습니다. 그걸 보고 이거 혹시 삐라(북한에서 내려온 유인물)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초등학교를 3학년 1학기에 포기해야 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유인물을 들고 그곳을 찾아 갔습니다. 간단한 입학원서를 쓰고 입학식 날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은 마치 군대에서 제대 앞둔 군인처럼 지루했습니다.


드디어 입학식 날이 되었습니다. 당시 지부장이 축사를 하는데 “이곳은 전태일동지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노동교실이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근로개선도 하자”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이소선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오셔서 “여러분들은 죽지 말고 공부도 하고 근로개선도 하자”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애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난 날 공장장이 깡패가 죽었다고 말한 그 사람이 바로 전태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나는 왜 우리를 위해 죽은 사람을 깡패라고 하였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훗날 노조활동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대의원, 운영위원, 부지부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입니다. 하지만 청계노조원들에게는 그림에 떡에 불과 했습니다. 그 날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데모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밤새 구호, 노래를 부르면 농성을 했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정복을 입고 들어와서 지금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구속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을 계속하다보니 1977년 9월 9일 구속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1978년 5월 재판을 받고 나오니 노조에 열심히 다니던 조합원들은 당국의 압력 혹은 부모님의 권유에 노조를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노동교실이 없어졌으니 조합원들이 모일 장소가 없었습니다. 저는 동대문 근처 쪽방을 5만원을 주고 하나 얻어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처음 입사한 삼양사 윤자가 생각나 나는 조합원들에게 ‘우리 한글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조합원은 7명이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교재를 준비하면서 7명의 조합원들이 일하는 공장의 상호를 적어갔습니다. 예를 들면 삼양사 다림사... 이런 식으로요. 숙제는 상호 10개 이상 적어오기. 두 번째는 7명의 이름 썼고 숙제는 부모님 형제 써오기. 그렇게 시작해서 약 3개월 후 부터는 국어책을 가지고 했습니다. 조합원들은 6개월을 이렇게 공부하니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한글 책은 가방, 나비 이런 것부터 쓰기 시작하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하루 종일 보고 있는 글자가 삼양사 다림사 같은 것들이니, 눈에 익어서 금세 배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한글을 빨리 깨칠 수 있었습니다.


노조에서는 1980년 봄 임금협상을 준비 했습니다. 당시 사장들도 조금씩 근로기준법을 알기 시작했고 그래서 법을 이용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근로기준법에는 상시근로 16명이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조가 탄생한지 10년 되었습니다. 즉 한 공장에 16~17명 정도 되는 사업장에서는 여름 비수기에 미싱사 시다 3~4명에게 여름철에 좀 쉬다 나오라고 하면 미싱사들은 사장의 속셈을 모르기 때문에 좋아 하기도 했습니다. 사장은 상시 근로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그런 것인데, 노동자들은 할 일도 없는데 매일 출근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사업장에서는 법적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조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체협상에서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퇴직금을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노사합의가 되지 않아 노조에서는 농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시장 옥상에서 농성을 13일 했고 노사합의로 청계노조 처음으로 근로기준법 이상의 것을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980년 11월 합동 수사본부에 연행되었습니다. 합동수사 본부 수사관은 나에게 130회의 시위 때마다 무엇을 했는지 적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1981년 1월 5일 청계피복노조는 강제로 해산되었고 이후 저는 약 2년간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피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사춘기가 된 딸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되는지 알고 싶어서 1997년 (현)탁틴내일 청소년 상담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상담소에서 저는 학교 밖 아이들에게 내 삶을 이야기 해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너무 쉽게 미래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 아이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그동안 너무 쉽게 살아온 것 갔다고 했습니다. 이후 전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려면 제가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고, 또 저도 하니까 학생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53살에 초등학교검정고시 시작해서 중․고 검정고시 이어서 성공회대를 입학해서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열세 살 여공의 삶>의 논문을 썼으며 이 모든 과정을 61살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탁틴 청소년 인권센타)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7번 시다, 1번 미싱사에서 신순애로, 공순이에서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고 있으며 나의 가치는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모진 수모와 절망으로 삶을 포기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진정한 가치를 찾아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값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들과 미혼모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할 일이 있어서 감사 합니다.


여기까지가 평생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이타적인 삶이라는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온 제 이야기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들게 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나 그 밖에 다른 나라 여성들도 저와 다르면서도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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