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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6.01.20 17:17

[2016.01.17] 희망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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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정경일


 

희망의 행진

(로마서 12:12)

 

 

2016117일 주일예배

정경일 형제(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 로마서 1212 -

 

 

 

산다는 것, 참 고단한 시대입니다. 지난 한 해도 ‘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같은 절망적 표현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는 게 힘겨웠습니다. 이런 환난의 시대에 어떻게 희망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절망하는 것이 더 정직한 태도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바울의 권면처럼 희망을 선택해야 합니다. 희망 없이는 환난의 시대를 견딜 이유도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희망이 끊어져 버린 절망(絶望)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간절히 희망이 필요한 절망(切望)의 때입니다. 2014년 여름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절망을 몸소 느끼셨는지 희망은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 밝게 빛나는 촛불처럼 희망은 절망이 클수록 그 존재 의미를 더 빛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희망을 미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어제와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과거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시간 속에서 희망의 구체적 경험이 없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의 희망은 추상적 환상이나 공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걸었던 과거의 역사가 있기에 현재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행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목적지는 미래지만, 그 출발지는 과거입니다. 미래로 희망의 행진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오십여 년 전 미국 남부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희망의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환난의 시대에 희망의 행진을 계속할 지혜와 용기를 배워 보고자 합니다.


지난 해 가을, 미국 앨라배마 주 애틀란타에서 있었던 종교학회에 참석한 후 가까운 셀마와 몽고메리를 방문했습니다. 두 도시는 1960년대 흑인 시민권 운동의 역사적 현장입니다. 몽고메리는 재작년 말씀 드린, 로자 파크스의 용기 있는 저항으로 촉발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있었던 도시이고, 셀마는 흑인 참정권 운동의 상징적 도시입니다. 80번 국도로 연결된 두 도시는 차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가까운 거리지만, 오십 년 전에는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역사적 노예해방선언이 있은 지 백여 년이 지나도록 흑인은 기본적 인권과 시민권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흑인 참정권의 제약이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참정권이 이미 주어져 있었지만, 남부의 백인 권력은 갖은 방법으로 흑인의 참정권을 방해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한 흑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투표세 부과, 문맹률이 높은 흑인들에게 불리한 읽기/쓰기 시험, 점심시간을 두 시간 동안 가져 유권자 등록 업무처리를 질질 끄는 태업 등이었습니다. 그 결과 1961년 현재 셀마가 속해 있는 달라스 군의 흑인 유권자 15,000여 명 중 오직 156명만이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흑인들의 반발이 일어나자 아예 1964년 여름에는 3인 이상이 모여 참정권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방해 때문에 흑인의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할 제도적 개선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억압이 심한 만큼 저항도 강했습니다. 달라스 군의 흑인들은 1950년대부터 달라스 유권자 연맹을 만들어 참정권 운동을 전개합니다. 19651월에는 그 몇 달 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참정권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셀마로 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킹 목사가 합류했어도 인종차별의 기세는 꺾이지 않습니다. 그해 1월에 있었던 여러 시위에서 흑인들이 폭행당하고 체포당합니다. 2월 초에는 킹 목사마저도 시위 중에 체포됩니다. 이 과정에서 셀마는 전국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셀마의 참정권 운동을 지지하는 발표와 함께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의회에 요구합니다.

 

이처럼 흑인 참정권을 전향적으로 지지하는 연방정부와 달리 앨라배마 주 정부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고수합니다. 오히려 주지사 조지 월리스는 셀마에서의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주 경찰을 파견합니다. 218, 셀마 인근의 작은 도시 매리언에서 흑인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주 경찰은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물여섯 살 흑인 청년 지미 리 잭슨이 경찰의 폭행으로부터 자기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보호하려다 경찰에 붙들린 채 총에 맞아 중상을 입고, 8일 뒤 사망합니다. 지미 리를 죽인 경찰 제임스 보나드 파울러는 사십여 년이 지난 2007년에야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이처럼 어느 나라에서나 역사적 정의 바로 세우기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하나 봅니다. 지미 리의 장례식 날 설교를 맡은 흑인 목사 제임스 베벌은 지미 리의 관을 메고 주지사 월리스가 있는 몽고메리까지 행진하자고 외칩니다. 그의 제안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 때 처음으로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는 발상이 생겨납니다.


3월 초, 지미 리 잭슨의 죽음에 분노한 앨라배마의 양심적 백인들이 흑인들과 연대하기 위해 셀마로 모여듭니다. 동시에 그들을 반대하는 인종차별집단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단원들도 집결합니다. 37, 6백여 명의 시민이 몽고메리로 행진하기 위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넙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 다리가 노예제를 지속하기 위해 싸웠던 남부연합군 장군이었으며 남북전쟁 후에는 KKK 앨라배마 지부의 의장이었던 에드먼드 윈스턴 페터스 장군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페터스가 죽어서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흑인들의 행진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이 첫 번째 행진이 있던 날 킹 목사는 뉴욕에 있었고 지역 운동가들이 행진을 이끕니다.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건너편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주 경찰은 “2안에 해산할 것을 명령하고, 시민이 이에 불응하자, “1만에 최루탄을 쏘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행진 대열을 공격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부상당합니다. 당시 진압을 지휘하던 셀마의 보안관 제임스 클라크는 저 망할 놈의 깜둥이들과 피부만 하얀 깜둥이들(white niggers)을 모두 체포해!” 라고 외칩니다. 이를 구경하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환호합니다. 이날은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전국적 공분을 불러일으킵니다.

 

공격에 대한 시민의 응답은 공포가 아니라 공감이었습니다. “피의 일요일직후 킹 목사는 전국의 양심 있는 종교인과 시민에게 셀마로 와 줄 것을 호소합니다. 이에 원근각지의 사람들이 셀마로 모입니다. 이틀 뒤, 39, 2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민들이 두 번째 행진을 시도합니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의 반 이상이 백인이었고, 약 삼분의 일이 성직자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넌 킹 목사는 경찰이 가로막고 서 있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시민을 이끌고 셀마로 돌아갑니다. 사실 평화로운 행진 보장을 위한 법적, 행정적 절차가 준비될 때까지 행진을 연기하라는 법원의 요청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걸고 모인 시민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행진을 멈추고 돌아선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습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돌아선 화요일(Turnaround Tuesday)”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19805월의 서울역 회군을 연상시킵니다.


양심적 시민들은 셀마로 돌아가 비폭력 저항의 순간을 기다렸지만 승리를 자축하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날 밤, 흑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멀리 보스턴에서 온 백인 목사 제임스 리브가 식사를 하러 나왔다가 거리에서 KKK 단원들에게 폭행당하고, 이틀 뒤 사망합니다. 리브 목사의 비극적 죽음은 더 많은 시민을 셀마로 불러들입니다.

 

사태가 더 악화되자, 313, 존슨 대통령은 주지사 월리스를 불러 폭력진압을 비판하고, 주 방위군을 동원해 시민을 보호할 것을 요구합니다. 월리스는 이를 거절합니다. 리브 목사의 장례식이 있던 315, 주 경찰은 애도 행진을 하고 있던 흑인, 백인 대학생들을 공격합니다. 그날 저녁, 존슨 대통령은 의회에서의 특별연설을 통해 투표권 법제화와 시민보호를 강력히 요청합니다. 그는 시민권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제목인 “We Shall Overcome(우리 승리하리라)!”을 인용하며 연설을 마칩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모습이, 오늘 이 땅의 우리에게는 낯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서러워집니다.

 

존슨 대통령의 요청에 호응해 주 법관 프랭크 존슨은 시민의 평화로운 행진을 허용하고 보호할 것을 명령합니다. 320, 존슨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 방위군을 연방정부가 직접 지휘하게 하는 명령을 발동하고, 2천 명의 군인을 파견해 행진을 보호하도록 합니다. 드디어 321, 3천여 명의 시민이 80번 국도를 따라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5일간의 역사적 도보 행진을 시작합니다. 마지막 날 행진 대열이 몽고메리에 들어갈 때는 군중이 수 만 명으로 불어납니다. 이와 같은 시민 저항과 연대에 힘입어 마침내 그해 86일 존슨 대통령은 흑인 투표권을 법제화하는 문서에 서명합니다. 이때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시민권 운동가들이 곁에 서서 서명식을 지켜봅니다.


오십 년 전 그들이 5일 동안 걸었던 80번 국도를 오십 년 후인 지난 가을 저는 자동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래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서 희망으로 행진하던 그들의 떨림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에는 피도 묻어 있었습니다. 그 행진이 있기까지 많은 이가 다치고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세 번의 피 흘린 시도 만에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성사시켰지만, 그것이 최종적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당장 325, 역사적 행진을 마치고 벅찬 가슴으로 셀마로 돌아가던 흑인 남성들을 차에 태워 준 백인 여성 비올라 류조가 성난 백인 남성들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디트로이트에서 온 젊은 주부로, 다섯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지난 해 37, 오십 년 전 피의 일요일이었던 그날,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앞에서 셀마-몽고메리 행진 5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연설에서 아직도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남아 있음을 비통하게 이야기합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왔어도 불의와 차별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 절망할 것인가 희망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서본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셀마에서 한 연설 중에 언급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1965년 셀마-몽고메리 행진의 진정한 의미는 환난을 극복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환난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은 데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셀마가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이유는 그들의 승리가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비폭력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사랑과 희망이 증오를 이긴다는 것을 그들이 입증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셀마에서 시작한 희망의 행진은 5일 만에 몽고메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행진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도 식민지배, 분단, 전쟁, 독재, 신자유주의의 고통스런 역사 속에서 희망의 행진을 계속해왔습니다. 여전히 불의가 위력을 떨치고 있지만, 그 사실이 절망의 이유일 수는 없습니다. 희망의 참된 의미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우리의 생각과 바람보다 훨씬 더 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합니다. 고통과 절망의 시대를 살았던 라인홀드 니버는 말합니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희망은 과거의 기억만이 아니라 미래의 기대도 현재화합니다. 희망은 눈은 멀리 바라보면서 발은 지금 여기를 걷는 것입니다. 희망은 내일의 승리를 오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새길 공동체도 지난 삼십 여 년 동안 희망의 행진을 계속해왔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길 위에 있습니다. 니버의 통찰처럼,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하는 일이 가치가 있을수록 그 일은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행진을 계속한다면, 삼십 년, 오십 년, 백 년 뒤에, 그때도 계속 새 길을 이어 걷고 있을 우리의 후배 예수따르미들이, 문득 멈춰서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그들 뒤의 길이 온통 정의, 평화, 생명의 향기로운 꽃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내일 그들의 기쁨이 오늘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희망입니다. 그 희망으로 우리는 기뻐하고, 환난을 참고, 꾸준히 기도하며 행진합니다. 그 희망의 행진을 공동체 자매형제님들과 함께 하고 있어 마음이 기쁩니다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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