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2016
2016.12.29 13:18

[2016.12.25] 나의 크리스마스

(*.90.156.150) 조회 수 21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설교자 김두현, 김옥순

[2016 나의 크리스마스 #1]

 

날마다 새롭게

(고린도후서 4:16-18)

 

20161225일 성탄주일

김두현 형제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후서 416~18-

 

 

고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생일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받는 생일축하인사는 금융회사, 통신사 등으로부터 오는 문자였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등 SNS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지인들에게 먼저 생일축하를 받습니다. 음력으로 생일을 세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죠. “. 사실 오늘 진짜 생일 아닌데...”

 

하지만, 실제 생일과 달라도 친구로부터, 지인으로부터 받는 축하는 기분이 좋습니다. 실제생일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축하해준 사람과 관계가 좋기 때문이고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죠. 매년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축하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가 있어 좋아. 네가 있어 재미있고 행복해. 네가 있어 감사해이런 뜻 아닐까요?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한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성탄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어떠한지요?

 

나의 삶에서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 뭐가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스테파노, 어머니는 마리아, 누나는 루시아, 저는 요한, 동생은.. 기억이 안 나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제를 도와 미사를 진행하는 복사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중학교 3학년 올라갈 때까지 약 5년간 복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성당의 새벽미사가 보통 5시 반에 시작했으니 집에서 4시 반에는 일어나야 늦지 않게 갈수 있었죠. 이때 시작한 새벽기상은 이후 신문배달, 수험생, 군 생활, 직장생활하며 지속된 이른 기상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진행되는 성탄미사는 평소보다 훨씬 길고 준비할 것도 많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성탄 미사를 드리고 나면 뿌듯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복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저희 성당에 외국인 신부님이 계셨었는데 후에 지난번에 저희교회에 와서 설교를 해 주신 함세웅 신부님이 저희 성당에 부임을 하셨어요. 당시 저희 복사단에서의 소문은 옳은 일을 하시다가 감옥에 가셨다가 나오신 건데 우리 성당으로 오시게 되었다. 무섭진 않을까..’ 제 기억엔 엄청 엄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함세웅 신부님은 성탄 미사 때 약자로 오신 아기 예수,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삶에 대한 말씀을 나눠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 함세웅 신부님이 저희 교회 오셨을 때 농담으로 저보고 개종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한 번도 천주교, 기독교가 다른 종교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개종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저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니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일들보다는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의 불화로 인해서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았나 봅니다. 저의 생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상대적인 빈곤감이 더 심해졌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힘들었던 것은 절대적 빈곤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상대적인 빈곤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광진구에 있는 광장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근처에 워커힐 아파트가 있었고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반에 함께 있어 어린 저는 비교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생일날 어디 간 적도, 휴가라고 여행을 간적도, 크리스마스라고 파티를 한 기억이 거의 없는 저에게 그 아이들의 이야기는 딴나라 이야기였죠. 제가 지금도 기념일 챙기는데 무심한 것에 조금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매년 예수의 생일을 축하하고 기억하기 시작했을까요?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의 탄생보다는 예수의 공생애를, 예수의 죽음을,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많은 어린이들과 선물유통업체, 백화점으로부터 빈축을 사겠지만요.. 크리스마스엔 캐롤, 선물, 트리 등으로 화려한데 부활절엔 고작 부활달걀만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기에는 크리스마스를 정하는 것은 이교도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결국 교황 율리우스 1세 때 지금의 날짜로 정하여 기념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고대 로마 시대의 동지제와 미트라스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구요.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이 12월이면 어떻고 6월이면 어떻겠습니까? 저의 생일은 214일인데 314일이면 또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요? 산다는 것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고, 죽음은 또 다른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일매일 죽는다는 바울사도의 이야기는 결국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얻는 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의 삶을 얻으려면 어제의 나는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매일 매일을 새롭게 성탄절을 맞이하듯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절기에만 예수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매일 매일을 예수 따르미로 다시 태어나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새길로고.jpg


                                                                                                                                                


[2016 나의 크리스마스 #2]

 

생일케이크

(고린도후서 5:17)

 

20161225일 성탄주일

김옥순 자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 고린도후서 517-

 

 

초등 4학년 때의 성탄이 기억납니다. 그 해는 눈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세상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는데 눈이 흰색 평원을 만들었습니다. 성탄 전야제에 엄마와 동생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전야제는 매년 학생 발표회를 먼저하고 그 후 미사를 드리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성당은 논밭과 작은 언덕을 지나 40여분을 걸어가면 면소재지에 있었습니다. 펑펑 내리는 눈길을 엄마가 밀대로 밀면서 앞장서시고 동생과 나는 손을 꼭 잡고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가로등도 손전등도 없지만 눈이 만든 자연조명으로 밤길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다만 길과 도랑과 논밭을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평원에 길을 내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고 어린 저희들은 발표회에서 부를 노래를 하면서 졸졸 따라갔습니다. 도화지에 붓칠을 하면 만들어지는 그림처럼 온통 눈 천지인 마을에 밀대가 만들어내는 수묵화, 참 멋지지 않습니까? 엄마는 화가이며 설계사이고 건축가였습니다. 엄마는 한 눈 팔지 말고 잘 따라오라며 몇 번이고 뒤돌아보셨지만 저희들은 엄마라는 안전망이 있으니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장난치다 동생이 밀대길이 아닌 딴 길에 쏘옥 빠졌습니다. 도랑이었습니다. 동생 얼굴만 겨우 보였습니다. 엄마는 단숨에 도랑에 들어가 동생을 길 가로 안아 올렸습니다. 동생은 살아있는 눈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아고 어쩐다냐, 괜찮냐, 그렁께 잘 따라오라닝까하시며 동생 손과 얼굴을 호호 불고 당신의 품속에 손을 녹여 주셨습니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터시고는 그 전보다 더 넓은 길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말씀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울컥했습니다. 당신도 무서웠을 텐데, 당신 손발도 차갑고 시렸을 텐데, 눈에 가려진 돌이나 나무들이 있었을 텐데 자식 위해 도랑에 뛰어든 엄마.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전화기 너머 엄마에게 오늘은 뭐하셔?”라고 안부를 전하곤 했습니다.

 

발표회는 요즘처럼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예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학교급과 학년에 따라 율동과 중창, 합창, 연극 등 작은 규모의 발표회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녀들에게 가장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도 그랬습니다.

 

발표회와 미사가 끝난 후 본당 옆 강당에서 팥죽을 먹는 것이 3부 순서였습니다. 난방 시설이 되지 않은 마룻바닥이었지만 당연하듯이 앉거나 서서 팥죽을 먹었습니다.

 

그 때는 한국인 신부가 많지 않아 제 고향처럼 아주 작은 시골에는 외국인 신부가 부임했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아주 짧게, 천천히 말씀하시는 터라 매주 반복하는 미사용어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지만 본문은 성서를 봐야만 낯선 이방인의 발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한국 사람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한국말에 미사시간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새어나왔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 조용히 주먹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을 번역기를 돌려보겠습니다.

 

누구 생일입니까? 태어난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축복이에요. 축하할 일이에요. 예수 생일 축하합시다!”

 

시루모양 그대로 쌓아 있는 팥 시루떡 중앙에 초를 하나 꽂으셨습니다. 미사 때 사용하는 초, 우리 교회도 사용하는 단무지만한 큰 초 기억나시지요? 성당 처음 갔을 때, 제단 위에 있는 초를 보고 , 단무지 같다라고 해서 엄마에게 허벅지를 꼬집혔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부터 크고 퉁퉁한 누스름한 큰 초를 보면 그 말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곤 합니다. 신부님이 시루떡 가운데 초를 꽂고 생일노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한 소절 부르시고 성도들이 함께 따라하는, 자연스럽게 생일 축하노래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음정도 가사도 틀려도 괜찮다며, 잘하고 있다고 박수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이런 모습 자연스레 그려지시지요? 여러분들 머릿속에 우리 교회 지휘자가 떠오르실 겁니다. 딱 그런 분위기, 잘해서가 아니라 함께여서 좋고, 나도 모르고 옆 사람도 모르니 틀린 줄도 모르고,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진짜 즐거운 노래시간이었습니다.

 

생일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서 막걸리를 참 좋아하신 신부님은 막걸리를 잔에 따르시고 건배라고 외치셨습니다. 몇 잔 마시고 흥에 겨워 춤을 추셨습니다. 잔칫날은 즐거워야 한다고, 예수 생일은 모두에게 기쁜 날이니까 즐겁게 놀아야 한다며 분위기를 이끌었고, 남자 형제님들도 덩달아 춤사위에 끼셨습니다. 모인 성도들은 분위기에 취하고 평소 보지 못한 성도들의 모습에 웃고, 그렇게 밤늦도록 축제는 이어졌습니다.

 

예수 생일잔치는 학생들의 공연과 거룩한 미사 그리고 즐거움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이 차가운 밤공기와 눈 속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논밭 사잇길을 되돌아 가야하는 성도들에게는 따뜻한 온기요, 등불이며 진정한 선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저희보다 먼 데 사는 사람들은 2~3시간을 걸어야 소재지에 있는 터미널과 기차역, 교회와 성당, 장터가 있었습니다. 그 먼 길을 오롯이 예수 생일잔치에 찾아 준 성도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자신의 삶에 예수를 각인시키는 그 마음에 감동되어 뜨끈한 죽을 대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예수 생일의 기쁨과 우리를 찾아온 진정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기억을 헤집어 보니 그 때가 처음 불러본 생일 축하 노래였습니다. 생일에는 평소보다 많은 반찬과 떡이 있는 생일상을 받은 게 전부였는데 생일노래와 케이크, 축하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파란 눈의 신부는 제게 신천지를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큰 도시에는 뭐가 있을까? 어떤 세상이 있을까? 뭘까? 뭐지? 그 일은 궁금함과 호기심, 기대감, 도전을 품게 하였고 훗날 서울입성을 하게 되는 새싹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어디서 만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저는 신부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고 예수를 알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 어제와 다른 내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의 생일 노래를 불러보신 적 있나요? 성탄 케이크에 초를 밝히는 연례행사가 아닌 사람 예수, 생일 케이크에 초를 밝혀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마음의 보물 주머니 만지며 믿음을 키워나가는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보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요즘 당신이 그립습니다.

슬픈 사람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

당신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거룩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삶 가운데로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새길로고.jpg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설교자
» 2016 [2016.12.25] 나의 크리스마스 file 2016.12.29 김두현, 김옥순
37 2016 [2016.12.18] 되어주는 이웃 그리고... file 2016.12.23 최현섭
36 2016 [2016.12.04] 다시, 길을 떠나며 file 2016.12.09 정경일
35 2016 [2016.11.13] 구원이야기의 평신도 신학성 file 2016.11.17 평신도 신학팀
34 2016 [2016.10.30] 샬롬으로 만물을 새롭게 file 2016.11.11 한완상
33 2016 [2016.10.09] 사랑이 밥 먹여 주냐? file 2016.10.13 추응식
32 2016 [2016.10.02] 욥의 고난과 세 친구 file 2016.10.07 김이수
31 2016 [2016.09.25] 뒤 돌아보니 모든 것이 당신의 은총이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file 2016.09.29 최만자
30 2016 [2016.09.18] 교회, 따뜻한 세계의 작은 씨앗 file 2016.09.22 정경일
29 2016 [2016.09.11] 돌 쥔 주먹을 풀게 하는 힘: 예수의 發善의 힘 file 2016.09.22 한완상
28 2016 [2016.09.04] 고통의 하나님, 하나님의 고통 file 2016.09.07 문현석
27 2016 [2016.08.28] 아인슈타인 성령고백 file 2016.09.01 권오대
26 2016 [2016.08.21]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자유 file 2016.08.26 신익상 목사
25 2016 [2016.08.07] ‘性善’ 따르기 file 2016.08.09 김용덕
24 2016 [2016.07.24] 민중은 어떻게 메시아가 되는가? file 2016.07.26 정경일
23 2016 [2016.07.17] 율법의 완성, 인권의 복음 file 2016.07.20 한인섭
22 2016 [2016.06.26] 소리없는 아우성: 돌들이 울부짖기 전에 file 2016.07.01 김성수
21 2016 [2016.06.19] 우리의 불편한 사명: 원수사랑 file 2016.06.24 김동수 교수
20 2016 [2016.06.12] '산 돌(살아있는 돌)’의 비유와 산티아고 카미노(the way of Santiago) file 2016.06.16 이은선 교수
19 2016 [2016.06.05] 사랑, 소망, 믿음을 깨우는 소리 file 2016.06.08 문현미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