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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02.13 17:23

[2019. 1. 20] 관념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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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추응식

 

 

“관념의 감옥”

(요한복음서 10:37-38, 로마서 1:20)

 

2019년 1월 20일

주일예배

추응식 형제(신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 요한복음서 10:37-38 -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 로마서 1:20 -

 

 

 육각형의 벌집이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삼류 건축가의 집보다 나을 수 없다고 칼 마르크스는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집을 지을 때 어떤 집을 지을까 매 과정마다 고민하지만 벌은 본능에 의해서 똑같은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본능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동물에 비해 매순간 자유의지로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시간 누구는 버스를 운전하고, 누구는 그 버스를 타고 교회에 옵니다. 이 자유의지는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이 세상 지체들이 한몸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 질서의 기본 요소이기도 합니다. 만약 누가 힘을 가지고 이 자유의지에 개입하여 억지 믿음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자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강요한 예를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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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 모습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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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건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당시 정부는 국가 권력을 총동원하여 종북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했으면, 이게 허위다하는 것을 알만한 민주당 의원들조차 이석기 제명안 상정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지역구에서 종북낙인이 찍힐까 봐 제명안 상정에 찬성했습니다. 국가권력이 이렇게 믿도록 만들어냈습니다.  


33.png


 피로회복엔 박카스! 박카스를 마신다고 피로가 회복됩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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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의 얼굴이 달에 나타났다고 신도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의 이런 믿음은 성령의 힘입니까, 목사의 힘입니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이런 일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500년 전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에 따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은총을 받았습니까? 여전히 인간이 만든 제도나 교리에 따라 믿음을 생각합니까? 저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 말씀으로 믿음을 생각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37절-38절)


 다시 박카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것은 특정상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피로회복엔 박카스!’라는 말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품의 효능 때문이 아니라 지난 50년간 매체를 통해 우리 눈과 귀에다 끊임없이 주입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뇌이자 우리의 정신에 가하는 폭력입니다. 너무나 일상화되어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은 적어도 이런 세속에서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한경쟁을 하는 시장이나 정치권은 목소리를 증폭시켜주는 언론을 최대한 이용하려 합니다. 


 피로회복엔 박카스! 정보가 부족했던 7.80년대에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노동에 찌던 사람들은 피로회복이 너무나 절실했기에 그 말을 믿었습니다. 박카스의 내용물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한국사회에 널리 퍼졌던 기복신앙과 비슷합니다. 제가 청년이었던 그 때, 많은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났고, 신유의 은사가 곳곳에서 넘쳤습니다. 그 신비한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였기에 우리는 그냥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부정부폐와 부조리가 넘치고, 힘이 질서였던 독재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디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피로를 없애주겠다고 나타난 박카스처럼 내일이 불안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구세주의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회복됩니까. 피로는 과로와 수면부족, 스트레스 같은 원인을 제거해야지 카페인과 타우린이 조금 들어있는 음료로는 피로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아멘, 아멘 외치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까. 어려운 일이지만 예수님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에 들어오면서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회복된다는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박카스는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중독자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도 한국의 기독교와 닮아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과거 한국 기독교에 풍미하던 신유와 기적, 방언 같은 것들은 요즘 많이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말했던 교회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랜기간에 걸쳐 형성된 신념체계는 잘 바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자기에게 익숙해진 것을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독재국가가 민주화되더라도 여전히 이전의 독재자가 주입 시켜준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처럼 ‘믿음’. ‘믿으세요’라는 말은 시장과 기독교에서 많이 쓰입니다. 이 ‘믿는다’라는 말은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 데 명료히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다 알 수 없으니까 판매자는 믿으라고 하는 것이고, 신앙도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니까 믿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볼 수가 없고, 예수님은 오래전에 살아계셨다는데 지금은 돌아가셔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 오신다고 했는데 우리 생애에는 오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가까이 왔다고 이미 2000년 전에 말씀하셨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살기 힘들어 자살을 많이 하는 우리 사회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단군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들어서 친숙한데, 성서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면서도 성서에 나오는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 그리고 유월절, 초막절 같은 절기도 생소해서 믿기 어렵습니다. 예수도 이국사람이라 그 모습이 관념적이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지만 여호와, 야훼같은 이름들은, 우리 아버지 같지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경험하지 않는 것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는 예수님을 보내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죽는 것을 다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당시 사람 바울도 예수를 보고서야 믿게 되었고, 그렇게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제자들도 다시 사신 예수를 보고 믿지 않았습니까. 심지어는 눈앞에 보여주는데도 믿지 못하고 만져 보고 믿은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오염되지 않는 땅에서 오염되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 속에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영혼이 맑은 피다한 종족입니다. 70대 후반 미국의 언어학자인 다니엘 에버렛은 이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그곳에 살면서 그들의 언어를 익힌 다니엘은 드디어 어느 날 저녁, 그들의 말로 마가복음을 녹음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릴 때는 새엄마가 자살도 하고 참 불행했는데 예수를 믿고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 녹음테이프와 선교사 다니엘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들은 갑자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새엄마 바보네, 왜 자기가 자기를 죽여?”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늘 현실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불행이라는 개념도 그런 말도 없기 때문에 ‘불행한 과거가 예수를 통해서 극복되었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물었습니다. “다니엘 너 예수 봤어?, 어떻게 생겼어? 피부는 까매? 아니면 너처럼 하얘?” 이에 다니엘은 대답했습니다. “난 실제로 그를 보지 못했어, 그는 아주 오래전에 살았어,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알아.”, “그럼 다니엘, 네가 그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그가 한 말은 어떻게 알아?” 


 그때까지도 선교사 다니엘은 이들이 직접 본 것만 믿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기는 했지만, 그것도 말하는 사람이 직접 본 경우에만 그랬습니다. 이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느 부족에나 있는 신화나 전설도 없었습니다. 다니엘 자신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이들에게 복음의 증거로 제시할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더욱 다니엘을 어렵게 한 것은 피다한족들의 고매한 인품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주체적이며, 당당했습니다. 다니엘이 가진 물건을 보고도 탐을 내기보다는 필요 없으면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살면서 선교사 다니엘은 죽은 뒤에 다른 삶이 있다거나 바다가 갈라진다거나 천사의 이야기들은 더 이상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피다한 사람들은 죄의식도 없고, 인류를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욕심은커녕, 자기 자신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들에게는 절대자, 정의로움, 성스러움, 죄악, 소유 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기 때문에 욕구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걱정과 좌절, 두려움의 근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초월적인 존재나 보편적인 진리를 열망하지도 않고 그런 것이 가치관 속에 들어올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피다한 사람에게 진리란, 근처 마이시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 노를 젓는 것,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말라리아로 죽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어떤 추상적인 설명도 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무척 사랑하지만 아이가 죽으면 마을 바깥에 버리고 곧바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오직 스스로 ‘곧은 머리 사람들’이라 부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들은 가르쳐야 할 미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창조, 신, 구원과 같은 교리의 독재, 관념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0여 년간 어린애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독실한 복음주의 선교사는 마침내 그의 믿음을 버렸습니다. 기독교를 버린 것입니다. 종교를 버린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선교사가 더욱 하나님 세계로 깊게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바울의 말씀처럼 그는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깃든,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가 없어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아마존에도 지금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치권력의 외침, 시장욕망의 유혹, 종교적 도그마의 강요, 그리고 지식과 기능을 신봉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과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본성을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인간이 만든 것들은 모두 진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것이 만드는 관념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우상의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생각이 고정되고, 아집에 빠지게 됩니다.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 관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안 믿더라도 내가 하는 하나님의 일은 믿으라’는 극단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관념적인 예수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그대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그냥 ‘예수믿음’보다는 행동하라는 ‘예수따르미’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살려고 노력하면서 그가 진리와 사랑의 스승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의 몸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듯이 저도 더 이상 아버지의 몸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종 집사람하고 밥 먹을 때  아버지가 어릴 때 밥상 앞에서 하신 말씀을 하며 웃습니다. 

 

“‘자,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백번 꼭꼭 씹어서 똥이 안되도록 하여라”  


 이 말도 관념의 감옥에 갇혀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하신 일을 믿고 따르고 싶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은 힘을 가진자가 주입하는 잘못된 믿음과 우리의 탐욕이 합쳐져 온전한 하나님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이미 몸처럼 붙어있는 우상의 각질을 벗겨내고 온전한 하나님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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