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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영란 외 8명



내가 새길을 걷는 것은


 

201933

창립32주년 감사 열린예배



김영란 자매

 

저에게 예수님은 결혼과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시어머님의 결혼 조건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어머님은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나의 신앙생활을 체크하셨습니다. 대구에 있는 시댁을 갈 때 제일 먼저 성경책과 찬송가를 챙겨야 했습니다. 가족예배를 드릴 때 성경구절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기 일쑤였으며 알지 못하는 찬송가를 따라 부를 때는 등줄기에서 진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또한 주일날 교회를 다녀오면 이해 할 수 없는 설교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여전히 출석을 위한 교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1987년 동아일보에 조그맣게 난 새길교회 기사를 읽고 그 다음 주일부터 예배를 드린 지 32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올해 예순 네 살이니 제 삶의 반을 새길과 함께 보낸 셈이죠. 그때 저에게 새길교회는 예배드리는 기쁨과 다음 주일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득했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은혜롭게 드리는 예배의 감동과 깊은 신학에서 전달되는 솔직하고 힘 있는 김이곤 목사님, 김득중 목사님과 함께 했던 저녁 성경공부 시간. 그리고 각자 형편에 따라 교회 일을 맡아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교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교회 일에 열심히 동참했었습니다.

 

마가복음 11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심히 나무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제 모습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흡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새길공동체는 새길의 정체성을 찾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긴 세월을 보내면서 새길공동체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때론 실망감도 들고 변화에 동참하지 못해 두려움도 있지만 제가 새길을 걷는 이유는 아직도 열매 맺지 못한 제 자신을 바라보며 새길 공동체 안에서 열매 맺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남을 이롭게 한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새길교우와 함께 기쁘게 일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주신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선하신 뜻을 찾아 함께 걷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영신 자매

 

저는 서너 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새길교회에는 19874, 11살 때 부모님을 따라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 예배가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어른 예배를 드려야했는데요. 말씀증거는 내용이 어려운데다 길기까지 해서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예전 다니던 교회와 다른 점을 하나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니 회개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하나님을 매우 불공평한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죄인이라는 굴레를 씌워놓고 자기를 믿지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고 하는 것은 협박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학교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언니 오빠와 싸우지도 않았으며 엄마 심부름까지 했는데 교회만 가면 죄인이라고 하니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언제까지 그 말을 안 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계속 다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저는 기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종교 생활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치도 방향도 모른 채 방황만 하던 중 길희성 선생님께 종교의 본질에 대한 말씀증거를 듣게 되었고, 그 말씀은 막연한 방황을 끝내고 저의 종교생활의 방향을 잡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녀차별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거부감조차 드러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최만자 선생님을 통해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그럼 남성학도 있나?’였는데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성학은 무엇이고 왜 이 학문이 있어야했는지 알아보면서, 가지가 몇개 없던 저의 생각나무에 새로운 싹이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행복하지 않다며 자신과 세상을 원망했던 20대 초반, 추응식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행복은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미 내안에 있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경일 원장님을 보면서 행동하는 삶에 대한 힌트를 얻었고, 김용덕 선생님과 주선경 선생님은 저에게 좋은 부모의 표본이 되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저는 오랜 시간을 여기 계신 자매형제님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나누면서 보고 배우며 자라왔습니다. 저의 가족이고 친한 친구이며 함께 가는 동무이지요. 앞으로도 창조의 보전과 완성을 위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가는 길을 새길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김훈규 형제

 

내가 걷는 새길, 내가 걸을 새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근원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누구의 노래입니까.

 

만해 한용운님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새길을 걷는 까닭을 살피기 전에 먼저 나는 새길을 걷고 있는가를 살피니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저 고요히 떨어지고, 가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인 내 길이 새길이라 할 만한가 물어봅니다. 오히려 밝고 너른 길이고, 깊은 기도가 없어도 위험하지 않은 길에 서있는 저를 봅니다. 듣기에 새길은 위험하고 외로운 길이라던데, 그래서 걷기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던데, 제 길이 새길은 아닌 듯싶습니다. 새길을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길을 마주하기에 제가 영글지 않았던 것인지, 또는 보았으되 회피한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속절없이 떨어지고, 가늘게 흘러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소망합니다. 제게도 생에 한번은 용기를 가지고,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새길을 걸어가야 할 시간이 주어지기를 말입니다. 그리하여 내 소명이 무엇이며, 내 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허나 새길이 이렇게 생의 의미를 걸어야 하는 거창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순간순간, 어느 저녁에라도 찾아오는 일상속의 어떠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지는 것도 새길이라 할 것입니다. 가령 사랑, 인정, 예의, 사리, 자유..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어울리는 마음과 생활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저 또한 그런 것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다짐을 하거나 기도를 해도, 그대로 나였을 뿐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는 게 왜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나아지기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나는 나대로의 부족하고 이상한 내가 좋을 뿐, 태초에 내가 가졌던 정도의 사랑과 인정, 배려에서 한발도 나아가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일인데, 그 부끄러운 감정을 잊지 않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으려나요? 떨어지고, 흘러가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마음먹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위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습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의 새길은 어디에 있는지, 새길에는 어떤 기도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부끄러운 저 또한 소망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밤을 지키기 위한 약한 등불이 되는 것을 말입니다



서정경 자매

 

새길교회 나온 지는 올해로 삼년 째가 되었습니다. 등록한지는 약 이년쯤 돼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 새길을 다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제가 이런 자리에 선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떨렸지만, 하나님께 이 자리에 함께 있어달라고 기도했기에 믿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새길교회는 제가 그동안 다녔던 교회와는 좀 다른 의미로 제게 다가옵니다. 이 교회가 평신도 공동체이고, 예배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제가 다녔던 교회 중에서 저를 이렇게 이뻐해주신, 그래서 오늘 이런 귀한 자리에까지 제가 오르게 된 교회는 없었습니다. 늘 예배만 보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저였고 교회 활동은 별로 해본 적이 없거든요.

 

솔직히 말해 전 새길교회와 저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도 있지만 우려도 있었습니다. 처음 새길교회에서 예배 몇 번 드린 후, 전 이 교회에선 내 개인기도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계속 다녀야하나 고민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크리스천이 된 계기도, 이후 제가 늘상 붙들고 기도했던 주제도 늘 저나 제 가정과 관련된 개인문제였기에, 이렇게 사회문제에 관심 많고 공의를 위해 애쓰는 교회가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정의를 부르짖는 많은 사람이나 기관들이 상대를 비난하며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면, 온전하게 정의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건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건데, 저들은 하나님을 빌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몇 번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저는 하나님이 제가 새길교회를 계속 다니길 원하시는 것 같다는 마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미묘한 싸인 외에도, 교인 분들 중에서 제 마음에 들어온 분들이 몇 분 생겼습니다. ‘저 분의 삶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무얼까?’ 궁금해진 인연들이 생겼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새길교회를 통해 제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단련시키시려는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17년 동안 크리스천 행세를 했으면서도 성경을 한번 제대로 통독한적 없는 제가 올해부터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몇년동안 끌어오던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작년 말에 최종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날을 새벽기도로 간절히 바랬던 기도가, 그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좌절되었다는 충격에 온 몸에 힘이 빠졌을 때, 집 앞 놀이터에 멍하게 앉아있는 저에게 하나님은 평소 제가 별로 즐겨듣지도 않았던 찬송 한 구절을 마음에 전해주셨습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바로 검색을 해서 그 찬송만 실컷 들었는데 다음날에 제가 속한 1구역 단톡방에 이 노래가 또 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 사십대 중반의 제가 이제 남은 삶을 하나님과 진정으로 동행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저는 제 삶에 중요한 한 가지를 결단해 실행에 옮겼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 같지만 이것도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저의 길에 새길이 함께하며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줄 거라는 기대와 바람 그리고 긴장감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제 나눔을 이것으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이종린 형제

 

저는 새길을 걷게 된지 만15년이 되는 이종린입니다.

 

2월 첫째 주에 박현진형제가 저를 보더니 엄청 반가운 얼굴로 뛰어와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포옹을 찐하게 하면서 예배형식을 새롭게 바꾸려고 하는데 형이 새길을 걷는 이유를 짧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저는 새길교회에 매월 첫째주일과 마지막 주일에 오는데 그것도 마음이 바뀌면 샛길로 새기도 하는 사람이고 딱히 그냥 좋아서...”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어서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그동안 쌓아온 정에 실금이라도 가면 어쩌나하는 마음으로 허락을 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두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제가 새길에 첫 발을 내딛고 얼마쯤 지났을 때, 어느 말씀증거자께서 하나님은 산에도, 들에도, 집에도.... 그 어느 곳에나 다 계신데 오늘같이 화창한 봄날에 왜 이곳으로 오셨나요?”라고 하셨는데 저에게 산이나 들로 가서 꽃구경이나 하지 왜 왔느냐?”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십대부터 다니던 교회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하였고, “주일성수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간다등등의 말로 협박하는 말만 들어 갇혀 살던 저에게는 해방의 복음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마침, 새길에는 도반산악회라는 모임과 빛으로 나누는 대화라는 사진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급식 및 의료봉사모임이 있어서 바로 가입했지요. “도반산악회에서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수많은 산을 오르내리며 지금까지 산에 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고, “빛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는 매년 작품사진 전시회를 여는데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출사하여 촬영한 결과물로 전시장 벽에 사진이 걸릴 때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성취감으로 행복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급식 및 의료봉사모임에서는 비록 음식 만드는 보조와 설거지를 했지만 누구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참 행복했습니다. 그때의 즐거움과 행복이 제 삶에 스며들어 새길을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봉사는 무료급식을 빼고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성경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제가 성경을 읽고 느낀 감정이나 의심 등을 말하면, “틀렸다거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고 하면서 자기의 믿음이 더 좋다고 은근 자랑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믿음이 적다거나 마귀의 역사다”, “시험에 들었다라면서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라라 충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새길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면서 공감해 주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여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하나인 도반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이 있기에 오늘도 새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소망 자매

 

안녕하세요. 저는 새길에 온 지 3년차가 되었고요. 예술노동을 하며 살고 있는 청년 백소망입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설만큼 새길을 오래 걸은 사람은 아니라 다소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새길을 걷게 된 것이 제 삶에 의미 있는 일이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2014416일 이후, 제 신앙엔 많은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의 문제들이 파도처럼 일상으로 밀려들어왔고,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신은 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청년들은 생의 무거움에 짓눌려 신음하는데, 교회는 기도와 말씀묵상 횟수를 물으며 더 기도하고, 말씀에 의지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교회노동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절망은 더 깊어졌고, 그나마 조금 남은 애정으로 문제제기를 해보아도 예민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지요. 결국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참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신을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새길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교회탐방을 하던 후배가 집 근처에 제가 좋아할만한 교회가 있다며 소개시켜주었고, 엄마와 함께 방문하게 됐습니다. 처음 방문한 새길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평신도교회' 로 여러 신앙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책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고, 논쟁을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예배에 참석하여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의 질문에 침묵하는 것만 같았던 신은 그 곳에 있었고, 명확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는 더욱 자명해졌습니다.


재작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8주 동안 진행된 한국의 종교개혁자 시리즈도 참 좋았습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 어렴풋이 알았던 내용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정말 큰 감화를 받아 곡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새길에서의 시간은 음악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사유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기도 하는 유의미의 장이었습니다. 너무 좋은 얘기만 했나요? 제가 걸은 이 길이 짧은 덕일 수도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들쑥날쑥한 일정 때문에 예배에 못 나오는 날도 많지만, 그럼에도 제가 새길을 걷는 이유는 나의 생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여러 가치가 난무하고, 진리를 좇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며 예수를 따르는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저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유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새길은 제게 유의미한 사유의 길입니다. 지금 저의 시간을 먼저 살아간 어른들의 이야기와 신앙을 가지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성서의 이야기 속에서 범람하는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평생의 일이겠지요. 살아온 생만큼 지난한 여정이겠지만, 그래도 즐겁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윤영수 형제

 

새길교회 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한 것은 2004년을 기억됩니다. 2003년 홍근수 목사님이 향린교회를 은퇴하시고 새길교회에 다니셨는데 2년 동안 향린교회에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셔서 홍목사님을 만나 뵈려고 강남청소년수련관에서 예배할 때 방문자로 찾아갔었습니다. 벌써 1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평신도 활동 단체인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가 주관하는 평신도 강단교류 활동에 2016년부터 새길교회가 함께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작년 초에 등록을 하였고 이제 2년차 교우가 되었습니다. 32년의 교회 역사에서 보면 저는 아직 젊은 새교우인 것 같습니다.

 

새길교회는 제가 아는 한 평신도교회의 원조이고 한국기독교 평신도활동의 본거지가 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부터 기독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배움과 경험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현재의 제 신앙을 이끌어 준 말들로는 편드시는 하나님’, ‘역사적 예수’, ‘예수 따르미’, ‘민중신학’, ‘통일신학’, ‘분가’ ‘민주적 교회운영’, ‘목사. 장로 임기제그리고 평신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평신도라는 말은 한국의 역사 현실과 기독교사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신앙의 중요한 키워드로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평신도인 저는 2003년 처음으로 평신도설교를 해보았고 2005년 창립한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2018년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앙 여정이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 기독인으로 살아갈 제 신앙 여정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 모든 한국교회들이 새롭게 변화할 것처럼 요란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는 듯합니다. 특히 만민사제설에 기반한 프로테스탄트로서의 한국교회는 여전히 목회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실망한 많은 기독인들이 가나안성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의 의미와 역할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교회의 여러 모임에서 사회적 영성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의 의미를 소외 되고, 차별 받고, 억압 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느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을 최대한으로 공감하고 함께 하려는 모습이 사회적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단 중심의 제도교회와 목회자 중심의 기성교회는 사회적 영성을 기독인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가르치지 않을뿐더러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길교회 사회사역위원회의 한 팀으로 활동하는 은 사회적 영성을 위한 모임이고 이름도 적절하게 잘 정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길교회는 현재 한국기독교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대안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평신도교회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모습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며,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썼던 그런 활동 과정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새길교우가 되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만자 자매

 

1. 내가 새길을 걷는 것은 내 신앙 여정에서의 중요한 선택에 의한 것이다. 내 신앙 여정은 매우 폭이 넓었다. 열다섯 소녀시절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의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한 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새로운 삶의 힘을 주는 분이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구원한 구세주라는그 복음에 끌려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고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고 성서를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이렇게 시작된 내 신앙의 열정은 신학의 길로 나를 이끌었으나 신학 과정은 맹목적이고 문자주의적이던 내 처음 믿음에 갈등과 회의를 갖게 하였다. 성서가 역사적 산물이고 후대 편집 과정에서, 첨가, 수정, 삭제 등의 변화를 겪었고 다양한 사본들이 이루지게 되었다는 사실로 성서가 절대 무오한 기록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런 갈등은 오히려 성서와 신앙의 불분명한 내용들에 대한 선명한 답을 주었고 그래서 오히려 내 믿음과 은혜가 훨씬 탄탄해 지는 성숙을 갖게 하였다. 맹목적 신앙 안에 답답하게 갇혀있던 내 이성은 활짝 문을 열었고 그에 따른 기쁨은 훨씬 넓은 차원에서 예수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깨달음의 신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2. 이런 이성적 신앙의 은혜 안에서 1960년대에 접한 현장, 현존, 상황의 신학들은 다시 나에게 새로운 신학과 신앙의 지평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 영향은 첫째,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신학이 교리이해가 아니라, 지금 나와 우리 삶의 현실, 현장에 어떤 의미를 갖는 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곧 예를 들면 분단과 폭력의 위협 앞에 있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무엇인가? 라는 식의 물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당시 강대 서구 지배적이고 서구 이식적인 신학에서 제3세계 상황, 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개인 영혼 구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 역사 현실 안에서의 신앙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삶이 자신 혼자만의 활동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구조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역사현실 인식과 사회구조 악에 눈뜨게 하였다. 따라서 지금 이 부조리한 곳을 생명력 있게, 더 아름답고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임을 깨달았다. 신학교에서 교리중심적, 서구 신학을 표준으로 따라 배우기에 급급해왔던 나의 신학적 사고를 충격적으로 전환시킨 신학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지향을 따르는 것인데 예수는 세상의 가난한자, 병든 자, 절망에 빠진자를 우선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치유자, 위로자가 되며, 그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지배세력들과 대결하는 삶을 바친 분이었기에 내 삶의 자리에서 그분 삶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임을 분명히 확인케 되었다.

 

3. 이런 하나님 나라 운동의 확장은 뿌리 깊은 성 차별 현실과 생태계의 신음 앞에서 더욱 철저해져야 한다는 여성신학과 생명신학의 길을 열었다. 이 실천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의 중요한 과제 수행의 길임을 절감하게 하면서 1980년대 이후 나의 신앙의 여정을 이끌었다.

 

4. 이러한 나의 신앙과 신학의 여정은 새길교회 창립정신과 그 정체성에 일치 되어있었다.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1993년부터 새길을 걸어 왔다. 창립당시 한국교회의 왜곡과 모순은 1) 교리주의적이고 닫힌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에 매몰 된 것, 2) 군부독재, 인권탄압이란 고통의 상황에서도 사회, 역사적 의식이 탈락되고 그래서 정의를 위한 고난을 외면한 체, 오직 개인의 안녕과 성공에 집착하는 신앙에 몰두한 현실, 3) 부의 획득으로 물질만능, 성공, 성장주의에 빠진 왜곡 현실 등 이었다.

 

새길은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회개 정신에서 그 극복을 위한 대안가치를 지향했으며 이것이 새길 창립의 밑바탕 정신이 되었다. 새길은 이 모순들을 극복하고자 정통주의, 근본주의 신학을 넘어 열린 신학과 깊은 신앙을 지향하며, 사회구조악을 분석하고 역사의식에 확고히 서서 현실을 변화시키며 예수 따르미로 살기 위한 최소의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새길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예수의 사랑 안에 나 자신이 새로워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는 생동적이고 성찰적 신학 형성을 위해 노력하며 사회적 모든 변화를 수용하여 현대 기독교 사상과 신학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려 애쓰고 있기에 나는 새길을 사랑하며 걷는다.

 

인생이 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정말로 순간임을 절감하게 되는 요즈음, 이나마 남은 생이라도 오직 사랑과 진실의 삶의 길을 걷고 싶다. 이 길은 예수 따르미의 길인 새길이며 여기 모인 형제자매 여러분과 이 길을 동행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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