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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04.12 17:12

[2019. 04. 07]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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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임동숙, 이상길, 최서희, 김문음




 

201947

공동체 열린예배



봄으로 깨어나는 봄! _ 임동숙 자매

 

안녕하세요. 저는 교회에 출석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한달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새신자라고 착각했던 임동숙입니다. 지난 3월 초 정원장님께서 봄에 대한 말씀증거를 제안하셨지요. 느닷없는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새 신자 명찰을 떼라는 싸인처럼 느껴져서, 그 후 구역예배에도 참석하고 오늘 이 자리까지 서게 되었습니다. 2019년 저의 봄은 이렇게 교회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오면서 열렸고, 사진가 크리스 조던의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보면서 깨어났습니다.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난다는 전설 같은 새 알바트로스가 북태평양 작은 섬 미드웨이에 잠시 머물며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바다를 향해 날아갈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영상, 알바트로스는 아름답지만 처참했고 그래서 슬펐습니다. 영혼과 영혼이 교감을 이룬 듯, 땅바닥에 엎드린 채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가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새들의 눈빛은 처연했지요. 구슬프게 들려오는 구애의 노래 소리와 우아한 춤 동작에 스며드는 석양빛, 바다에 떠다니던 플라스틱을 어미로부터 받아먹은 어린 새들이 죽어가는 모습, 죽은 새의 가슴을 열고 플라스틱 조각들을 하나하나 제거한 후 무덤을 만들고 애도의식을 치루는 작가의 떨리는 손놀림, 그리고 뒤뚱거리며 몇 차례에 걸쳐 날기를 시도하던 어린 새가 태풍의 바람을 이용하여 마침내 비상하는 장면 등은 혼돈과 모순 속에서도 존재하는 생명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작가의 시선 따라 피어나는 풍경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감동을 자아냈던 영화 속 장면들은 며칠이 지나도 쉽게 스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자꾸 한 단어가 떠올랐어요.

 

<사랑>입니다. 영화에서는 새끼 새가 안간힘을 쓰며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을 롱 타임으로 보여줍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어차피 날개에 힘이 없어서 세상에 나와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어미 새들은 절대로 알을 쪼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세상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외부의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응원의 노래를 들려준다는 나레이션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지요. 그동안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새들의 부화과정을 보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장면도 아닌데, 유난히 이 장면에서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해졌는지는 글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기다림, 기다림이 품고 있는 사랑의 기운이 비로소 가슴에 스며든 것이지요.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바로 그 사랑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차린 겁니다. 3m나 되는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날며 바다를 품고 있는 새, 알바트로스가 저에게 기다림의 사랑을 깨우쳐 주었다면, 작가 크리스 조던은 애도가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바트로스와 함께했고 알바트로스를 사랑했던 작가 크리스 조던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비난하는 대신 우리에게 질문으로 호소합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지요.

 

“8년 동안 미드웨이섬을 오가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간인 우리가 아는 것을 알바트로스가 모른다는 사실이지요. 인간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을 먹이인 줄 알고 새끼의 입으로 건네주고, 궁극에는 그것이 자기 새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과연 그 슬픔과 절망에 우리는 어떻게 시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함께 열린 눈으로 인류의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낸다면, 현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이 오히려 인류를 하나로 이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인류의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내시겠습니까?”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기다림과 애도로 스며드는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부끄러운 무관심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크리스 조던의 애도에 관한 글을 기도로 대신하겠습니다.

 

애도는 슬픔이나 절망과는 다르다.

애도는 사랑과 같다.

애도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또는 이미 잃은 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음을 내어 준다면,

애도는 이미 우리를 진정한 생명의 근본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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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봄 _ 이상길 형제

 

오늘은 한국현대사의 신사참배반대에 앞장선 이기선 목사와 병영교회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며칠 전에 제가 태어난 울산 병영에 가서 삼일사와 최현배 선생 생가 기념관을 둘러봤습니다. 그 기념관에는 놀랍게도 제 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 영정도 놓여 있었습니다. 울산 병영에는 44일부터 6일까지 3.1만세운동 기념행사와 재현행사가 있는데 올해 100주년 기념이고 해서 한번 가 봤습니다. 그리고 기념관 바로 근처에 있는 병영교회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제가 병영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교사여서 어릴 적 여러 곳을 다니다가 초등학교시절은 울산 방어진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병영 할아버지 댁에 다시 오면서 이 병영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방어진에서도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손양원 목사가 전도사 시절에 개척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다닌 이 병영교회는 올해 124년 된 교회로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입니다. 병영이란 논산훈련소나 군사령부와 같은 곳인데 태종 때 병영성을 축성해서 고종 때까지 477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조선말기 단발령과 태양력 사용 등의 개혁조치와 함께 군사제도가 바뀌면서 이 경상좌도 병영이 1895년에 폐쇄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상도가 남북이 아니라 낙동강을 경계선으로 경상좌도와 우도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병영교회는 1895년 그 해 세워졌습니다. 병영이 폐쇄되면서 군수지원 사업으로 생활하던 주민들의 삶이 혼란에 빠졌을 때 병영 주민인 이희대란 분이 자기 집에 호주선교사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리고 그 집을 예배당으로 헌납하면서 병영교회의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호주선교사들과 왕길지(겔손엥걸 G. Engel)목사가 와서 목회를 하였다가 1917년 이르러 처음으로 조선인 목사가 부임하게 되는데 그 분이 이기선 목사입니다. 왕길지 목사는 독일태생으로 호주인과 결혼하여 호주에서 한국선교사로 파송되어 부산에서의 선교생활(1900-1919)과 평양(1919-1937)에서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는 1878년생 평안북도 박청 출신으로 포목상을 하다가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1915년에 졸업과 함께 평북 의주군 영신교회에서 시무하다가 남쪽에 복음전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남하하여 1917년에 병영교회에 와서 1920년까지 시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기선 목사가 이 교회를 맡고 있던 1919, 병영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 다수가 만세운동에 참가했습니다. 병영의 삼일운동을 이끈 지도자 22명 가운데 이문조, 이현우 두 사람이 병영교회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교인은 아니었지만 제 할아버지 형제분들도 같이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며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울산에서 부산까지 호송을 그 유명한 악질 노덕술 순사가 했다고 합니다. 노덕술은 1918년에 경남순사교습소에 지원했는데 정식 순사 발령 전이었습니다.

 

이기선 목사는 삼일운동 다음 해에 병영교회를 떠나 김해읍교회로 가게 됩니다. 여기서 주기철이란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이기선 목사는 42세였고 주기철 청년은 22세였습니다. 주기철은 1897년 생으로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 후 고향 진해 웅천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와서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눈병을 앓기 시작하고 마침 가정형편도 어려워서 다시 웅천으로 귀향해서 아버지가 장로인 웅천교회에 다녔는데 이 때 이기선 목사는 가끔씩 웅천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매하고 주례도 섰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는 1930년에 평북 무원면 백마교회로 시무지를 옮겼고 다음 해 북하동교회로 가서 시무하실 때 신사참배 문제를 당하게 됩니다. 신사참배 문제는 일제강점 초기부터 제기되어 왔는데 1925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하고 1930년대에 들어서서 전시체제를 강화하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신사참배 반대 사건이 일어난 후 일제는 1938년에 들어 각 노회별로 신사참배를 강제유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193899일 평양 서문밖예배당에서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개최되어 이기선 주기청 김선두 등 신사참배 반대지도자들을 사전 구금시켜놓고 불법적으로 가결시켜버리게 됩니다.

 

이 사건 후 총회의 이런 결의에 불구하고 일부 목사들은 변함없이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나섰는데. 평안북도 이기선 목사, 평안남도 주기철 목사, 경상남도 한상동 목사, 전라남도 손양원 목사, 만주는 한부선 선교사 등이며 목회자들만 아니라 많은 교인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고 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곧 결국 해방을 앞두고 1944년 평양감옥에서 주기철 목사는  순교하게 됩니다. 1950년에 북에서는 이기선 목사가 남에서는 손양원 목사가 순교하게 됩니다.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했던 신학적 기초를 당시 이기선 목사로 본다고 합니다. 당시 이기선 목사로부터 성경을 배웠던 이들이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되는데 주기철, 주남선, 최상림, 방계성, 이약신, 손양원, 정양순 등이라고 합니다.

 

한국현대사에는 이 이외에도 많은 사건이 있습니다. 제주 4.3과 세월호의 아픔 그리고 5.186.25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5.16 구데타가 일어나서 제 부친이 4.19 교원노조사건으로 투옥되고 3년동안 해직 당해서 힘들게 살았던 저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또 보통 사람은 겪어보지도 못할 베트남 참전 16개월의 생활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국현대사의 봄은 무엇일까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새길로고.jpg

 

 

봄날의 피크닉 _ 최서희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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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는 말씀 증거 주제를 듣고, 그 계절을 떠 올렸을 때 요즘은 미세먼지나 이번 주에는 고성 산불까지 나서. 마냥 좋은 계절만이 아닌 게 되어 버렸는데요. 그래도 우리 마음속에 봄이 온다는 것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 좋은 계절이 돌아온다는 느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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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04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입사를 하고 남들보다 빨리 진로를 정했기 때문에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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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10년을 안도감 속에 평안하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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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를 봄날이라고 써봤는데요. 남들이 청춘의 고민을 할 시간에 사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보다는 성취감과 안도감 속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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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6년 사이 변화가 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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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제가 봄도 없는 북극의 곰을 준비했는데. . 엄마가 되면서 생각지 못한 혹한기가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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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매일 엄습하는 불안이었죠. 그 전에 이런 불안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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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과 일 중요한 두 가지를 동시에 하게 되니까 뭘 해도 불안하더라구요.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은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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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이 두 일의 균형을 맞춰서 다시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죠. 어느 정도 균형도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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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행복하냐? 아니었어요. 정상화 되고 안정이 돼 가는데 행복한 게 아니라 너무 힘든 일상이 되풀이 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더 이상 살 수가 없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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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서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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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진, 제가 봄날의 피크닉이라고 이름 붙여 봤는데요. 이 봄날 짧은 아이들과의 여행, 균형 잡기로 가득한 제 피곤한 일상이 아닌 <봄날의 피크닉>처럼 짧고 아름다운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워킹맘으로 완벽해 지려는 노력 말고, 아이와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 제가 지난 10년 혼자일 때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힘들다고 불평만 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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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 주신 성구 말씀에 애써 주님을 알면 봄비처럼 주님이 오신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제가 이런 영적인 연습이 돼 있었다면, 불안이 찾아온 것을 불행이라 생각치 않고 아이와의 행복한 매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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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으로 주어진 매일 안도감속에 살았던 제 젊의 날의 봄날이 허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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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처럼 사라진 지금에 와서 꿈에서 깬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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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흔들리는 꽃처럼 여전히 불안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새길 가족 분들과 어리석었던 제가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은 행복해 지는 방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새길로고.jpg

 

 

피어라, _ 김문음 자매

 

지난 해 3월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피해갈 줄 알았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까지 받게 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투병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A.C, 즉 에이디 마이신과 사이클로 포마이드라는 약을 투여하자 소문대로 머리카락, 속눈썹 등 온몸의 털이 싹 빠졌고, 탁셀을 맞자 심한 근육통과 손발의 감각 이상이 발생하며 손톱 발톱이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치료를 견디는 긴 과정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생활환경과 태도, 패턴을 재정립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난감하기도 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어리석고 나약한 내가, 내 힘으로 바꾸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구나싶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살 준비와 제대로 죽을 준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했던 구성안들을 버리고, 분수에 맞게 견적을 다시 짜는 일이,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랑은 분리됨에 있으며, 진정한 사랑은 느낌이 아니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행위라는 내용으로 20대의 제게 큰 힘을 주었던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의 저자, M. 스캇펙 선생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실책에 대해 표현하기를,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린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마취상태로 11시간 이상 진행되는 수술을 받고 나오면서 돌아가신 엄마를... 겪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저의 엄마처럼 양미간을 마구 찌푸리며 잠시 저의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나라는 인간을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한 것이죠. ‘분리가 아닌 연결이었습니다!

 

엄마의 눈과 나의 눈 사이, 블라인드지점에, (이를테면) 살려야 할 아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실향민이자 여성 가장으로 세상과 싸우는 미션을 수행하느라 폭력적이 되어가며 포기했던 엄마 자신의 꽃봉오리, 그런 엄마의 조수 역할을 하며 매 맞는 딸로 사느라 감춰두었던 나의 꽃봉오리가 그 캄캄 어둠 속에 버려져 있더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요?

 

1차 항암 주사 후 극심한 구토증으로 고통 받을 때, 문득 우리 집에 많이도 있는 하얀 사기 그릇들이 싫어졌더랬습니다. 딸애는 독일 유학 중이고 혼자 전투태세를 불사르며 진수성찬을 차려 먹으려 애쓰던 중이었죠. 이 그릇은 아득히 오래 전 저 결혼할 때, 엄마가 어디 빚 받을 곳에서 돈 대신 집어온 그릇 세트였고, 엄마는 그걸 제 혼수로 떡하니 해줬던 것인데, 저는 기능적으로 아직 멀쩡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30년 동안 그 그릇을 사용해오고 있었습니다. . 필수적이지 않은, 가변적인 취향 따위에 돈 쓰기를 꺼려 해왔던 것인데, 이제 저는 외치고 있었습니다. ‘난 이 그릇을 좋아하지 않아.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있다고요!’라고 말이죠.

 

저는 첫 항암의 충격으로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동네 고급 그릇 상점에 갔습니다. , 다행히 2층에 제 마음에 드는 접시가 있더군요. 지중해풍의 푸른빛이 도는, 균질하지 않은 질감의 접시. 한 판매원이 매만지는 저를 보며 그 접시는 그 거뭇거뭇한 부분이 참 매력적이지요?” 하더군요. 세트를 살 엄두는 못 냈지만 저는 단품 한 개를 장만했고, 그 푸른 접시를 볼 때마다 사소한 행복감이 올라왔습니다, 고기와 야채를 열심히 담아 먹었죠.

 

제가 구상하고 걸어가는 앞으로의 새길에는 취향의 발견이나 실현, 연약한 부분을 살려가겠다는 코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1월로 지루한 표준 치료를 마치고 회복 중인데, 3월 첫째 주에는 드디어 독일 체류 중이던 딸아이가 일 년 반 만에 다니러 왔습니다. 남들이 보면 감격스러운 포옹, 뜨거운 눈물과 애정 어린 대화가 난무할 것 같지만, 진실을 밝히자면 종종 참 징하게 싸웁니다. 파괴적인 연인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상황이 초토화됩니다. 달라진 점이라면 영원한 쪼다 같이 굴던 제가 암 덕분에 좀 에지(edge) 있어진 정도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변화를 기대할 순 없어서, 그저 나나 잘하세요합니다. 거의 의절 분위기로 가다가 출국 며칠 전에, 다시 엄마 사랑해’, ‘나도 사랑해’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정신병자들이 따로 없습니다. ^^) 딸아이도 자신과 타인 사이, 어둠 속에 떨고 있는 꽃봉오리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발칸 반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그의 저서 <배제와 포용>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섣부른) 통합이나 단절이 아닌, 정체성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신학자의 이 어려운 이야기를 저는, 나의 정체성 안에, ‘내가 지키는 나를 확실히 함과 동시에 타인을 껴안을 여유 공간을 둔다는 그림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포용의 공간으로 햇살이 비치고, (주님 주시는)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이 봄에, 우리 사이의 가려진 꽃들이 시간의 향기를 누리며 가득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새길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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