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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9.02.13 17:15

[2018. 12. 23]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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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김영희

 

 

“초대”

(요한복음서 21:14, 누가복음서 5:27-28)

 

2018년 12월 23일

성탄주일예배

김영희 자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 요한복음서 21:14 -

 
[그 뒤에 예수께서 나가셔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 누가복음서 5:27-28 -

 

 

어린 시절의 저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을 따라 가다보니 초대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기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제가 6~7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1960년대 후반 무렵이었을 것 같습니다. 눈 내리는 캄캄한 밤 어두운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뛰어 가듯이 따라갑니다. 


저만치 유난히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에 도착합니다. 부모님과 저와 동생은 화려한 장식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섭니다. 빨간 옷에 멋진 흰 수염을 가진 뚱뚱한 산타 할아버지가 커다란 선물 푸대에서 선물을 꺼내줍니다. 이곳에 오는 동안 부모님이 가게에 들러 준비한 선물과 빨간색의 종이 망으로 만들어진 버선모양의 선물꾸러미를 받습니다. 그 안에는 넛츠, 쵸콜렛, 사탕 등 평소에는 꿈꿔보지 못했던 달콤한 과자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경쾌한 캐롤을 들으며 여유롭게 놓여있는 원탁 테이블에 두세 가족씩 모여 앉아 크리스마스 만찬을 나누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외국영화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파티와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정경입니다. 고운 색동 한복과 머리에 헝겁 리본을 얹은 단발머리의 작은 여자아이였던 저는 마이크 앞에 나와 노래와 율동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1960년대 후반 작은 소도시 의정부의 허름한 변두리 마을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러한 파티의 기억은 그 후로도 몇 번 반복되었지만, 처음 파티처럼 화려 하진 않고 점점 형식적으로 변하더니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철들어 보니 제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크리스마스 풍경은 우리의 어두운 역사가 만들어 놓은 풍경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미군부대 식당에서 일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양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셨는데, 6.25사변 때 징용을 피해 잠시만 집을 떠났다 돌아올 생각으로, 홀홀 단신의 몸으로 피난민들 대열에 끼여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시게 되었습니다. 수용소에 갇히기도 하고 전쟁터에서는 노무자로, 농가에서는 일꾼으로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일을 하시다, 결혼 후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생각되는 미군부대에 들어가신 겁니다. 


퇴근하실 때면 식당에서 남은 식빵과 버터와 햄 등을 자전거 뒤에 싣고 나오시곤 하셨었습니다. 철없는 우리들은 부드러운 식빵 먹을 생각으로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곤 했죠. 훗날 이때를 기억하면서 셋째 동생은 미군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치욕스런 생각이 나서 싫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들은 덕분에 아버지의 작은 월급에도 먹거리만은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와 미군부대 다니시던 그 옛날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감시와 걸핏하면 해고시키는 분위기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분위기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처우가 많이 달라졌고 부당한 대우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전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들어본 기억은 있었지만 아버지로 부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기억 속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아마도 그 시기에 책임자가 온화한 사람으로 바뀌면서 크리스마스 파티에 한국인 노동자 가족을 초대했던 것이지 싶습니다. 화려했던 파티 뒤에는 멸시와 감시 속에서 일 하셔야 했었던 아버지의 고된 노동과 인내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두 번째의 기억은 아마 많은 기독교인들이 저와 같은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정경입니다. 친구들이나 동네 동생들과 노는 것이 전부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중학생 또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었을 언니 오빠들이 근사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와 과자 사탕 등을 주면서 예배당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작은 예배당에서 열렸던 연극과 이야기와 노래와 게임들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잔치를 경험해보는 것은 골목에서만 뛰어 놀던 아이들에게는 매우 신나는 시간이었지요. 그 날 이후 과자와 사탕을 얻어먹기만 하고 예배당에 안 나가면 내가 배신자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양심의 가책이 들어 예배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찬송가와 예수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출석 카드에 도장을 빼곡히 채우는 맛이 얼마나 좋던지요. 이렇게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을 뛰어 놀던 어린 우리들을 초대했던 그 크리스마스 이브의 따뜻했던 밤들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귀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초대로 교회에 다니게 된 저는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워지는 자신을 느끼고 행복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인가 제 마음엔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교회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힘없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의 쓸쓸하고 힘든 마음들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중 목사님의 말씀이 저를 교회 밖으로 떠미는 느낌이 저에게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교회가 아닌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했습니다.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까지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하나님은 저의 오만함과 무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지치고 남루해진 저를 붙들어 주시기를 갈구하며 하나님을 찾아 교회에 돌아왔지만 박제 되어버린 절대자 하나님, 우상을 섬기는 교인들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저의 우매함은 저를 더 큰 좌절감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당신의 나라로 저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만났습니다. 새길을 만나게 된 저는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모든 사람들의 지탄의 자리인 세리였던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변화된 사람으로 살았던 것처럼, 변화되기를 원하는 저에게 새길은 하나님은 저 먼 곳에 저밖에 계시는 절대자가 아니고 내안에 계신다는, 모든 지체 속에 살아계셔서 하나 되기를 기다리신다는 깨달음에 이르도록 인도 해주었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누추하고 추운 이 땅 외롭고 소외된 힘없는 사람의 몸으로 지금 이곳에 오신 예수님을 나의 눈을 밝혀 만나 함께 살아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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