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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결여

새길교회 말씀증거













2004. 10. 24.





 



선의
결여(privatio boni)


[마태복음 5:43~48]


 


권진관 형제 



 


오늘날 우리 시대는 포스트 모던 시대라고 부릅니다. 포스트 시대는 그동안 진리라고 여겨져 왔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 허구였음이 드러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진리가 무너지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선이라고 믿었던 것이 무너지고, 과거에 악이라고 믿어졌던 부분들이 복권되기도 하는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역사에 저질러졌던 잘못들이 지금은 잘못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졌던 반공시대와 같이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흑백을 분명하게 하던 근대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모든 것이 흑백의 중간에 놓여 있고 따라서 모든 존재들과 사물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해야 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흑백의 중간에서 무엇이 더 나은 것인가 그리고 더 나쁜  것인가를 계속해서 판단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결코 근본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주의자가 될 수 있는 소지는 우리 모두에게 항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사태를 흑백,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누어 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흑백을 분명하게 가르고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고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서슴없이 선언하고, 성급하게 이라크를 침략한 조지 W, Bush 미국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이라크에서 이라크 민중을 위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던 국제 원조기구 Care의 실무자이면서 이라크여성인 마가렛 하산을 인질로 잡아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러시아의 한 초등학교를 습격하여 수많은 인질을 잡은 체첸 반군들이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 또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의 어린 생명들을 죽게 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수하의 군 지휘관들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생명을 무시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분위기가 이처럼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세력이 있고 그것도 개신교 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진보세력이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들을 악과 결탁한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광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류상태 목사가 자신의 목사와 교사의 직위를 걸고 절규하는 신앙선언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학교내 종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강의석 군의 노력이 있습니다. 즉, 교장을 비롯한 학교측이 종교자유 보장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보는 강의석 군의 학교 종교자유를 위한 두 번째 단식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류상태 목사나 강의석 군이 자신의 직위와 생명을 바쳐서 싸우고 있는데 그 상대자들은 결코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지원하는 바깥의 세력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가르는 근본주의자들의 도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근본주의자들보다는 나아야 합니다.


오늘 저는 근본주의, 이분법적 발상에 대항해서 내세울 수 있는 가르침을 어거스틴의 말씀에서 발견하고자 합니다.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이 선의 결여 혹은 선의 부족입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의 언어인 priatio boni라는 말입니다. 악은 악이라고 하는 실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결여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디즈니 동화 영화에서 자주 나오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 모두 악마의 무섭게 생기고 이지러지고 못생기고 귀신같이 산발하거나, 거대한 문어발을 한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사회의 악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텐데 악은 그런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 제3권 7장에서 악은 선의 결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다시 제 7권 12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존재하는 것은 선하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 기원을 찾고 있던 악은 전혀 실체를 갖지 않나이다. 만일 그것이 실체라면 선할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 그러므로 나는 주님이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셨으며 어떤 실체든지 주님이 만드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분명해졌나이다. 그리고 주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동일하지 않다면, 각각은 그 자체로 선하며 그것들 모두의 총합도 아주 선하니, 우리 하나님이 만물을 아주 선하게 지으셨음이니이다.”





70-80 년대 동안에는 선과 악이 매우 분명했습니다. 유신헌법은 비민주적이고 독재이므로 악이다. 신군부 정권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나서 성립된 군사독재의 연속이므로 악이라고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만 역사와 권력에서 물러가기만 하면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갈라졌던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들은 선과 악의 선명한 구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독재가 물러가고 탈현대 시대가 된 요즘에 와서는 그렇게 선과 악이 분명하게 갈라지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선과 악이 혼합된 상황 속에서 선과 악을 확연히 구분하는 근본주의적인 관점은 우리를 오히려 혼란하게 만들 수 있으며,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부시 대통령의 성급한 이라크 침공과 거기에서 비롯된 전지구적인 혼란된 상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인 윌리암스가 9.11 테러 이후 그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들도 인간성을 가진 존재라고 말했던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더 선하거나, 덜 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분명한 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며 따라서 우리는 우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자대비한 자세로 모든 존재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도 이러한 대자대비의 정신으로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 정신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면, 이것은 모든 존재가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세상에는 보다 적은 선(less good)과 보다 많은 선(more good)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는 보다 많은 선을 선택해야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악은 선의 결여에서 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그것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적극적인 선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며 또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악일 수 없습니다. 복지부동식으로 납작 엎드려 있으면 적어도 아무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복지부동은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어도 선이 결여된 상태이므로 악이 됩니다. 그리하여 복지부동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의 원천은 이러한 선의 결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필요한 요청을 외면한다든가, 강도나 강간을 당하는 자를 그냥 지나친다든가,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그냥 지나치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은 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지나치는 사람이 그 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는 것은 악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악과 죄가 분리되어 있는 잘못된 현실을 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악과 죄는 동일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히틀러의 유명한 하수인으로서 6백만 유대인들을 가스실 등에서 사형시켰던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졌을 때, 유대인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심장하게 보았습니다. 악이란 평범함 즉 단순한 선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독일의 한 시민이었고, 한 가정의 아버지, 남편이었고, 심지어 유대인 이웃에게 친근한 친구이기도 했다는 사실 등을 들면서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을 본 지구촌은 어안이 벙벙했던 것입니다.


유신 시대에 유신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죄는 아닐 수 있어도 그것은 악이 됩니다. 죄와 악의 분리에 의해서 유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비록 실정법상의 죄는 아니었을지라도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악이란 바로 죄이며 따라서 죄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결국 악과 죄는 같은 것이고, 그 근본은 바로 적은 선 영어로 less good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선합니다. 악인 마저도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테러리스트들도 인간성을 가진 선한 존재입니다. 북한의 김정일도 일방적으로 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도 나름대로 좋은 근거를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다스리고 있고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독재를 했고 많은 악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래도 경제를 일으켰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재임 중에 경제성장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으로 억압했었다는 다른 측면이 있었음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조건 나빴었다고만 말해도 안 되고, 요즘 유행하듯 그를 영웅시만 해도 그를 올바르게 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에게는 선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였으므로 모두가 선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우리를 반대하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원수가 되는 존재들마저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이들을 악의 화신으로 몰아가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우리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대자대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성서 말씀에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했던 율법적 사고를 부정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적 대형 교회들은 이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들의 설교단으로부터 불길같은 심판의 말들이 넘쳐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멸공, 반공, 반 김정일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친미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흑백을 분명하게 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분명하게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잘못될 수 있고 팔레스타인이 더 선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도저히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일방적입니다. 미국과 북한에 비하여 옳은 것은 항상 미국입니다. 이러한 고정적인 사고방식에 대해서 오늘의 말씀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기존의 고정된 사고방식, 선과 악을 명확하게 끊어 구별하는 세태를 완전히 흔들어 놓는 그야말로 해체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아웅다웅하고 서로 죽이겠다고 싸우는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싸움이 그야말로 무색해져 버리는 새로운 대안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가 선한 것이니까 아무 선택도 하지 말란 말인가요? 모두가 회색이므로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더 선한 것인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간하고 영의 움직임을 분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엇이 더 선한 것인지를 분간하여야 하는 과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악을 범하는 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와 같이 독재 권력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민주화된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인권이 보장되고 어느 정도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선이 결여된 사회, 아직도 선이 부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에 대해서 저항했던 죄수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를 뉴스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교육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몇몇 유수 사립대학이 고교 등급제를 해서 강북이나 지방 학생들이 아무리 유능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들이 결국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대학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회의 양심과 등불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 이러한 일을 아무 가책없이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선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교수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강남에 살지 못하거나 외국에 유학을 보낼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기회가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과 선 사이에서 보다 좋은 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less good 과 more good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선과 악이 확연히 분리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세상은 백과 흑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색들, 특히 회색의 다양한 색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회색은 흰색에 가깝고 어떤 회색은 아주 새까만 흑색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는 좀더 흰색에 가까운 회색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선택을 할 때 그 근거는 최선이신 즉 summum bonum 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맘몬 대신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우리의 의지를 가질 때,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때 우리는 less good과 more good 사이에서 more good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좋은 선을 선택하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의 경계선이 모호하다고 해서 그냥 뒷짐을 지고 물러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세를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능동적으로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악이 되고야 마는 선의 결여의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혼돈된 사회 속에서 무엇이 더 좋은 선인지 혹은 무엇이 최선인지를 선택해야 하며 “예”할 것은 분명하게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비록 최선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최선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저 최선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는 말씀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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