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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세 단계










남선교회 헌신예배 말씀증거, "나의
신앙, 나의 소망"(빌립보서
3:12∼14) 2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라."
 
김두현
형제
 
  안녕하세요.
이곳에 서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약하고 작은 이들을 통해서 더욱
드러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저의 신앙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작년 2월 말경에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랜 기간 하나님의
정 반대편에서 '자아'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사람의
부류 중 교회 다니는 이들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독선적이고, 자신의
복이나 바라고, 심지어는 살가운 척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싫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께 무릎꿇고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신 것 자체가 저에겐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복을 바라는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적인 것을 등져야 한다는
것은 잘 몰랐거든요. 자아를 부인하여 십자가에 못박는 것,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 받는 것이 아닌 끝없이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결국 역설적인 삶이 아닌가 합니다. 그 버림과 함께 하나님의
채우심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끝없이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아직도 머리만 커질 뿐 가슴은 차갑고
손은 게으르기 이를 데 없지만 주님은 저한테 의지의 강점을 주시어
오직 주께 순종하는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옹기장이와 토기'에의 비유입니다.
성공학에 깊이 물들어있던 저에게 그것은 참기 힘든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란 내가 주님께서 빚으신 토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소심해지고, 매력이 없어지고,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있게 되고, 예전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힘들면 무릎꿇고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헌 구두를 벗고 새 구두로 바꿔
신어도 며칠 간 발이 아픈데, 하물며 삶의 존재이유가 정반대로 바뀌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과정이겠지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을 강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책임지세요. 저는 주님께 모든 걸
바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니까 주님께서 책임지세요. 하나님이 제 주인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제가 가진 것 다 버릴 거니까(물론 힘들겠죠) 하나님이
하시라고, 저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드러내는 도구라고.
 
  극장
가면 영사기 있잖아요. 하나님이 영화 만드신 분이라면, 저는 그냥 그
영화를 비추는 영사기라고. 하나님이 "두현아 저쪽에 가난한 이들에게
비춰라" 하시면 그쪽으로 비출 것이고, "나는 만인의 하나님이다.
이쪽에 부자들, 혹은 악인들에게도 비춰라" 하시면 이쪽으로 비출
거라고. 그러다가 하나님이 "두현아, 이제 그만 됐다." 하시면
기쁘게 쉼을 갖겠노라고.
 
  사랑과
나눔에 대해서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저는 '하나'라는 것을 느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각의 지체는 한 몸을
이룬다는 것, 나와 너의 장벽이 있는 것이 아닌, 너와 내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랑과 나눔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나 해요. 내가 가진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것을 대신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제도와 환경이라는
상황에서 말이죠. 저 사람이 장애를 입은 것을 '불쌍하다, 안됐구나.
도와야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입어야 할 것을 저 사람이 입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부자고 가난하고, 건강하고 건강치
못하고, 살고 죽는 것에 굳이 이유를 물을 필요가 있을까요? 더구나
거기에 믿음 때문에 라는 단서가 붙는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공간을
초월하여, 시간을 초월하여 모두 하나였고, 지금 하나라는 것. 항상
불균형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평형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그 하나를
사랑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입으로만 외치는 하루가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저도 모르게
주님께 편지 쓰고 계약하게 합니다. 매일 주님한테서 편지 받고 사랑한다는
약속을 받기만 하거든요. 제게 오는 고난, 기쁨, 사람을 통해 주님이
항상 저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라." 제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계시고, 저를 사랑하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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