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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태식 교수

"하나님과 상대하시오"

(마태복음 5:27~30)

 

 

2002.11.17

박태식 교수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마태복음 5:27~30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은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1.이혼장 규정

'십계명'에 보면 제 7 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조항이 나온다. 간음이란 물론 결혼한 부부 중 하나가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갖는 경우나, 혹은 창녀처럼 몸을 파는 경우(요한 8,1-11 참조)를 일컫는 말이다.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자명했다. 왜냐하면 십계명이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느님에게서 직접 받은 계명이었고, 하느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무게를 가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의 명령이니 간음을 하면 절대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원칙대로만 움직이던가? 하느님의 명령이기는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간음을 하는 경우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바로 이런 때 토라, 즉 '모세의 율법'이 필요하다.

신명기 24장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규정이 나온다. "누가 아내를 맞아 부부가 되었다가 그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 남편의 눈밖에 나면 이혼장을 써 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 아내의 간음(우리나라 식으로는 간통)은 이른바 '수치스러운 일'에 해당되며, 그런 때는 이혼장을 주고 아내와 헤어질 수 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이혼장이란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 시대의 이혼장 한가지를 예로 들어 그 의미를 설명해 보겠다.

6년 8월 1일 (서기 111년 10월 경) 마사다에서
마사다에 거주하는, 000 출신의 낙산의 아들 나 요셉은 내 맘대로 오늘, 하나 블라타 출신 요나탄의 딸이요 마사다에 거주하며 종전에 내 아내였던 미리암 당신을 소박하고 이혼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음대로 가서 당신이 원하는 유대인들 중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어도 무방하다. 이에 내 편에서 당신을 상대로 이혼 서류와 소박장을 작성하였다. 이에 지참금을 돌려준다. 파괴된 것들과 손상된 것들과 000들은 이로써 약속하거니와, 모두 (변상하고) 네 곱으로 갚겠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이 내게 말하면 이 서류를 다시 쓰겠다.
낙산의 아들 요셉 본인 (서명), 그 외의 증인 서명
(정양모/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생활성서사 1988, 80쪽)

앞의 이혼장은 쿰란 지역의 무라바앗 동굴에서 나온 것(19호:소박장)으로 당시의 이혼 풍습을 아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를테면 증인의 숫자라든가, 피해에 대한 보상 범위, 혹은 '내 맘대로'라는 안하무인격의 이유 역시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이혼장에서 가장 중요하며, 또한 절대로 빠져서 안될 부분은 "그러므로 당신은 마음대로 가서 당신이 원하는 유대인들 중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어도 무방하다"이다. 왜냐하면 유대 사회에서, 남편이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부인을 향해 구두로 이혼을 선언하면 그녀는 아직 전 남편에 소속되어 있다고 간주되어 재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 수단을 장악하고 있던 남성들 중심의 이스라엘 땅에서 이혼당한 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 방법이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선에 기대는 거지가 되거나, 돌에 맞아 죽기 십상인 창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재혼을 해야하고, 이는 전적으로 재혼을 허락하는 전남편의 이혼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소박당해 차가운 거리에 나앉은 여인네에게 실오라기 같은 안도감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혼장'이고 보면, 이혼장 규정(신명 24,1-4)은 눌린 자의 입장을 고려한 약자보호법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2.수치스러운 일

사실 그 정도에서만 그쳐도 우리는 유대인들의 율법 적용에 공감할 수 있으며, 수천년전에 벌써 그렇게 고도로 발달된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감탄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율사들의 종교적인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애매모호한 조항을 한가지라도 남겨두길 원하지 않았기에 구구절절 자세한 해석을 시도했다. 이런 해석을 두고 흔히 '장로들의 전승'이라 부르고(마르 7,5), 예수 시대에는 대부분 구두 전승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기원 2세기 경에 최초로 성문화 된다(미슈나). 이혼장 규정에서 애매모호한 조항은 바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혼장을 주고 아내를 내보낼 수 있는 일, 곧 "남편의 눈 밖에 나는" 수치스러운 일에는 과연 어떤 것이 포함될까? 율법 해석의 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했던 율사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우선 율법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정평이 나있던 샴마이 학파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 혼외정사, 즉 간음을 한 경우에만 아내를 내쫓을 수 있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율법 규정을 융통성있게 적용했던 힐렐 학파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음식을 태우기만 했어도 소박할 수 있다"고 하여 수치스러운 일의 범위를 대폭 넓혀 놓았다. 한 술 더 떠서 아키바 율사는 "자기 부인보다 아름다운 부인을 발견하기만 해도 소박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식의 원칙을 내세웠다. 유대교 회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샴마이 학파의 해석을 따랐으나, 실생활에서는 남성들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할 소지가 많은 힐렐 학파의 견해를 좇았다. 사실 당시에 이혼이란 남녀 쌍방간의 일이 아니라 오직 남성만이 휘두를 수 있는 권리였으니만치, 수치스러운 일을 가능한 한 남성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는 경향을 좇기 십상이었다는 점은 쉽게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마음이 여린 공처가인 경우는 어떻게 할까? 부인의 매서운 눈길에 주눅이 들어 감히 '이혼하자'는 말을 꺼낼 배짱이 없는 남편들 말이다. 율사들은 종교적인 사명감의 화신답게 이런 경우에도 나름대로 적절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부인이 잠을 자는 동안에 남편이 부인 손에 이혼장을 쥐어 줄 수 있다. 그러나 부인이 잠을 깨어 이혼장임을 알아본 경우는 무효이다. 그러나 남편쪽에서 먼저, 그거 이혼장이야, 하면 유효하다", "부인이 지붕 위에 있는데 남편이 이혼장을 던졌다면 이혼장이 지붕에 닿는 순간 부인은 소박데기가 된다." (미슈나 기틴편, 미슈나의 우리말 역문으로는 정양모, 유대교와 기독교, [종교신학연구 7집],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편, 분도출판사 1994, 155-169쪽 참조). 우리는 여기서 구태여 잠자는 아내의 손에 이혼장을 살짝 쥐어주고 언제 깨어나서 이혼장을 알아볼 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샜을 법한 간이 작은 남편들이나, 이혼장이 지붕에 오차없이 한번에 닿게 하려고 몰래 사전 연습을 하던 불쌍한 남편들에게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이런 해석들을 통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당시에 얼마나 무시되었는지 짐작하면 그뿐인 것이다.

3. 눈을 빼어 던져라

이제까지 '간음하지 말라'는 제 7 계명이 '이혼장 규정'으로, 그리고 '수치스러운 일'로 번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은 '십계명-모세의 율법-장로들의 전승'이라는 법질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법질서에 따라서 율사들은 율법을 적용시켜 나갔는데, 오늘날 식으로 따지자면 '헌법-법률-조례(대통령령 등 기타 법조항도 포함됨)'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다른 점으로, 상 하위법 개념이 불투명해서 '장로들의 전승'에도 '모세의 율법'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직 두 대통령을 처벌할 때, 법적용에 문제가 생겨 위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결정한 적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과정이 이스라엘의 법질서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의 법해석은 율사들과 전혀 달랐다.

예수는 '간음하지 말라' 계명에 대하여 "누구라도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은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는 놀라운 말씀을 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가 아니라 '저 여자 몸매 잘 빠졌네!'라고 속으로 생각만 해도 이미 간음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일 오른눈으로 '저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면 그 눈을 빼 던지고, 혹시라도 오른손으로 '저 여자'를 건드렸다면 가차없이 그 손을 찍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한다(마태 5,27-30). 남성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정신 차리고 들어야 할 말씀인데, 이를 곧이곧대로 지킨다면 과연 몇명이나 애꾸눈 신세를 면할 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읽어냄에 있어 글로 씌어진 율법 규정이나, 그에 대한 율사들의 해석에 기대었던 분은 아니다. 그들은 종종 문자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이 준 율법의 참 뜻을 망각하기 일쑤였다. '간음하지 말라'는 규정을 요리조리 해석해 내느라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그 핵심은 미처 보지 못했고, 육체적인 간음만 피하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근시안적인 해석을 내렸다. 따라서 어떻게 간음을 피해 가느냐는 문제에 노심초사했고, 만일 간음의 죄가 성립된 경우에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결할 것인가가 율법 논의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기야 이혼 사유와 그 방법론으로 논의를 확대시켜 나갔다. 앞에서 다루었던 '이혼장 규정'과 '수치스러운 일'은 바로 율사들의 왜곡된 입장인 문자만능주의의 성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눈은 문자를 파악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는 율법이 가지는 문자성 뒤에 있는 하느님의 속 마음을 읽었고, 당시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해석하고 운영하는 풍토를 질타한다. 율법 규정에 따라 '간음만 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로 해석하여 죄가 가지는 한계를 설정해서는 결코 안된다.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음흉한 생각도 죄가 되니 반드시 마음도 다스려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차라리 눈을 빼어 던지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간음을 하지 않아 비록 실정법은 어기지 않을 수 있으나, 마음까지 환히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추악한 속셈마저 속여 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식으로는 "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못 속인다", 혹은 "그런 일을 하다니, 하늘(혹은 천벌)이 무섭지도 않느냐"라는 정서와 통하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4. 여자도 사람이다.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단히 남성중심적인 사회여서 율법의 적용도 남성에게는 무척 너그러웠다. 또한 율사들은 점잖은 남성이라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능한 한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여성들의 머리카락이나 숨소리에도 이미 남성을 자극하는 유혹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어떤 남성이 간음을 멀리했다면 대외적인 품위 유지를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며, 이런 풍토에서라면 결국 여성들이란 한낱 죄를 유발시키는 존재로 취급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여자들에게는 간음의 죄가 엄격히 적용되어 현장에서 잡히는 경우에는 성밖에 끌려가 돌에 맞아 죽었고(요한 8,1-11 참조), 후에라도 간음한 사실이 발견되면 즉시 소박을 맞게끔 되어 있었다(이혼장 규정). 그러므로 이런 사회상을 고려할 때 예수의 말씀은 절대로 침해되어서는 안될 여성의 인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눈길 한번으로도 간음한 것과 마찬가지다'는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요구이며, 그로 인해 여성이 성적인 노리개감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의 언행에서 여성을 남성과 마찬가지의 인격체로 동등하게 대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종종 남성을 제쳐두고 여성들의 믿음을 칭찬하곤 하였다(누가 7,11-16;누가 7,44-50;마가 5,24-34;12,41-44;요한 8,1-11).

예수는 '간음하지 말라' 계명이 가지는 허구성을 꿰뚫어 본 분이다. 그래서 이 계명이 남성 중심적으로 악용되어 일방적으로 여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약점을 지적하고, 아예 마음의 범죄마저 지어서는 안된다는 해석을 내린다. 남성들의 부주의한 눈길 한번으로도 여성의 영혼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예수가 놓쳤을 리 만무라는 뜻이다. 예수의 해석은 분명 여성을 존중받아야 할 인격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말씀이며, 율법의 문자성이 아니라 그 정신으로 돌아가 인권을 회복시키라는 절대절명의 요구인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통해 '십계명-모세의 율법-장로들의 전승'이라는 기존의 법질서 위에 존재하는 상위법으로서, 결코 성문화될 수 없는 '율법의 정신'이 밝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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