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길과의 첫 인연, 나에게 새길이란?- 인터넷 소통부

by 루시사랑 posted Jun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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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길교회 30주년 기념 인터넷 소통부 좌담회: “새길과의 첫 인연, 나에게 새길이란?

 

    

 

                  참석자: 이상길, 이승희, 정공자, 송준화, 배찬수, 이혜영

                  진행/정리: 이혜영

                  일시: 201764일 오후

                  장소: 송준화 형제님 집


    

 

    

                                                BandPhoto_2017_06_04 2.jpg

                                                      


이혜영: “안녕하세요? 새길교회 30주년을 맞이하여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까 생각해보다가 저희 온라인 소통부(부원들의 의견을 모아 소통부라 칭하기로 했습니다) 자매, 형제님들과 새길과 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진행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하구요, 경직되지 마시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어주시면 되어요. 우선 이야기할 주제를 세부분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첫째 우리 새길 교회가 한국 사회, 한국 기독교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송준화 형제님이 제안한 우리 새길 교회 자매님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그리고 새길 교회와의 첫 인연, 나에게 새길이란?” 등입니다. 하지만 이 세 주제들이 함께 맞물려 있으니 각각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면 좋을 듯해요. 우선 제일 먼저 새길과 인연을 맺으셨던 이상길 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상길: “나는 2003년 831일 새길 교회에 첫 출석을 했습니다. 마음속에 신앙은 늘 간직하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 아내와의 갈등, 직장 생활의 곤함 등으로 나를 위한 교회를 찾게 되었지요. 새길 교회를 알게 되어 첫 예배를 보았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곡인 ”Oh, What a wonderful, wonderful day!“를 성가대가 부르는 거예요. 새길과의 인상적인 첫 만남에 고무되어 그 당시 새신도로 첫 예배 참석 후 소감을 글로 남겼지요. 그 글이 아직 세상 사는 이야기에 남겨져 있어요. 그 당시 교회 게시판이 너무나 조용하기에 게시판의 활성화를 위해 새신자였지만 그 이후로도 적극적으로 글들을 올렸지요. 그런데 나의 행동이 좀 눈에 띄었는지, 이로 인해 상처를 입고 9개월간 교회를 안 나갔었죠.”

 

정공자: “9개월간 다른 교회를 다니셨나요?”

 

이혜영: “가나안 신도 이셨나요?” (웃음)

 

이상길: “다른 교회는 안 나갔지요. 하지만 교회를 안 나가는 동안 그사이 친분이 있던 교우들의 경조사나, 구역 예배 참석 등으로 인연은 이어갔고 그 이후에는 다시 새길 교회를 나가게 되었지요

 

이혜영: “그 다음으로 새길 교회 오래 다니신 분이 이승희 선생님 이신가요?”

 

이승희: “저는 이전 오랫동안 기존(보수) 교회를 다니다가 오신 다른 분들과는 달리, 원래 교회 생활을 쭉 해온 사람도 아니고 지적인 도전을 받더라구요. 그렇지만 저같이 새롭게 출발하는 경우는 이전 교회를 다니던 분들보다 이를 받아들이기가 더 쉬웠어요. 기존 신앙이 꽉 박힌 분들은 내적으로 저항이 있었겠지만 저한테는 그런 게 없어서 오히려 더 쉬웠고, 신앙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을 깨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 새길에 온 이후 일 년은 그냥 조용히 다녔어요. 식사도 혼자 하고. 일 년 동안 그랬어요. 문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 새길 교회란 문 일수도 있고 신앙의 문 일 수도 있고, 그 속으로 들어가 말아,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던 중 문화원 신학 강좌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혜영: “저 역시 문화원 강좌로 인해 새길과의 인연을 어어 갈 수 있었지요. 그때 선생님과도, 또 여러분들과도 가까워졌고요

 

이승희: “네에, 그러면서 점점 그 문안으로 들어갔어요. 새길의 앞으로의 모습은 신학 강좌들을 확장시켜 많은 분들에게, 지역 사회 분들을 포함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제 경우 강좌 후 나눔의 시간에 여러 교우들과 함께 많은 얘기를 공유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공자: “강좌 후 나눔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이혜영: “제가 다음 인가요? 전 좀 짧게 얘기를 할께요.”

 

송준화: “길게 얘기하셔도 됩니다” (웃음)

 

이혜영: “저두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보수교회를 다니다가 대안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경우이지요.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다소 보수적이시긴 하셨지만 인격적으로는 존경할만한 분이었지요. 목사님 설교는 그냥 그럭저럭 인내하며 들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성경을 더 알고 싶어서 성경 공부반을 들어간 게 결정적으로 그 교회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그저 물질적, 욕망적, 소원 우선형 기도 내용도 그렇구요. 지인의 소개로 새길 교회와 인연을 맺고 혼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 좀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한 타입이라서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더욱이 그래서 이 교회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하다못해 새길 교회를 다닌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새신자냐고 묻는 분들에게 좀 신선하기까지 했거든요” (웃음)

 

이승희: “ㅎㅎㅎ 그걸 신선하다고 표현 하다니...” (웃음)

 

이혜영: “새길 교회가 내게 좋았던 것은 신앙적인 부분 외에 사회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안전한 도네이션, 그리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자기검열 없이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더라구요. 다음 분은 누구시죠?”

 

송준화: “저는 미국에서 신앙을 가졌는데 한번도 교회와 내 삶 자체가 정해진 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어요. 삶은 원래 주어진 대로 살면 안 된다고 평생을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미국에서 돌아와 연구 단지에 있는 어느 교수님이 하는 교회에서 10년간 나름의 실험을 하고자 했었습니다. 항상 제가 찾는 교회는 bottom-up, 새로운 시도, 동아리 느낌 이 세 가지 성격이어야 하지요. 그 이후 새길 교회를 알게 되었는데, 새길 교회의 개방성, 잠재적인 참여의식의 고양, 생각의 자유로운 표현 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저는 인간의 삶은 가족과 직장, 신앙이 일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공자: “어떻게 다 일치 하지요? 너무 이상적인거 아닌가요?”

 

송준화: “이상적이지요. 그러나 전 제 맘 대로해도 되는 환경이잖아요. 그걸 일치 시킬 수 있는 입장이지요. 저는 신앙생활과 일적인 것이 같아야 한다고 보고 당연히 그것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 왔죠.”

 

정공자: “어려운 얘긴 것 같아요, 이건 또

 

이상길: “그런데 학교에서는 되죠.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깐. 그런데 가정이라는 것은 와이프가 있어 봐요!”

 

정공자: “또 다른 객체가 있다는 거니깐요...”

 

송준화: “이는 신앙을 안 가진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신앙으로부터 의식이 발전되어 거기까지 가는 거죠. 학생들과 어떤 공부를 하는가도 신앙과 배반이 되면 안 되잖아요, 분리가 되면 힘이 빠지죠. 제 삶은 크게 권위주의에 대한 항거로 점철이 되어 있거든요. 특히 지적인 부분에서 권위적인 것에 굉장히 저항을 하는 편이고 제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인 방식은 거의 체험에 의한 것이지요, bottom-up으로 일구어져 나가는 것이거든요. 당연히 교회에서 목사가 자기 신앙을 가지고 옳다고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폭이 좁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새길과는 잘 맞죠. 하지만 하나 안 맞는 게 있어요. 여기는 너무 배울려고 해요.” (웃음)

 

이혜영: “배울려고 안 하면 어떤 방식이요? 대화, 토론이요?”

 

이상길: “체험...”

 

정공자: “저두 좀전에 말씀하셨던 강좌 후 나눔에 좋았던 느낌이 그런 거 같아요.“

 

송준화: “그게 맞아요. 그게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지적, 신앙적인 활동을 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이고...”

 

이혜영: ‘갑자기 고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적 대화 방식이 나오네요. 대화하면서 지식을 쌓아간다...“

 

송준화: “싸이즈를 줄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소그룹 모임. 대화와 토론, bottom-up으로 체계화시키기에 가능한 인원이거든요. 아주 다행이도 카이스트에서는 가능한 일이예요. 그것이 교회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봐요. 아주 일상적으로 선동을 해서 살살 자극해 bottom-up으로 그것을 끌어내야 되거든요. 거기에 한가지 문제가 너무 교회 리더들에게 지적으로 묶여 있어요.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어야 하지요. 지금 부족한 것은 체험이예요. 체화된 지식과 내가 아는 지식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체화된 지식의 양을 늘려가는 것 이예요. 그 지식의 양이 한사람에게는 작을지 몰라도 공유가 될 때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창의성이 개인화된 창의성이거든요. 예술가도, 과학자도. 그러면 창의성의 크기가 작아요. 창의성의 크기를 확대하기 위해 공동 창작이라는 체험이 우리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체험이 아닌가 생각해요.”

 

모두들: “체화된 지식, 아주 재미있는 토론이네요, 그리고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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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찬수: “저는 201411월 첫 주 정도쯤에 새길 교회를 처음 온 거 같아요. 그때는, 좀전에 가족과 직장, 신앙의 일치된 삶을 말씀하셨는데, 제 경우는 경상도 보수적인 모태 신앙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나의 신앙이 무엇이었나를 돌이켜보면 삼킬 수 없는 성경적 내용을 억지로 삼키려다가 다시 내뱉고, 또 다시 삼키려고 시도하려다가 내뱉고, 그렇게 반복적인 의심의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어떤 내 삶의 기준이 되고 절대적인 신적 존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겉으로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면서 지독히도 배타적인 모습에 저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없으면서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어갔던 것이죠. 결혼과 함께 가족과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말씀에서, 그것이 오히려 제게 채찍질을 했는데, 이전에는 삼킬 수 없는 신앙의 언어를 적당히 삼키려다 토해 버렸는데, 이번에는 아예, ‘이거 한번 삼켜봐!’ 하고 예쁜 접시에 놔두었는데 저는 그 접시를 그냥 내팽개친 그런 모습이었던 거 같아요. 더 이상 나는 강요받지 않겠다는...”

 

정공자: “오우! 그 표현 아주 멋있어요!”

 

배찬수: “그 이후 새길 교회를 알게 되었고, 처음 예배를 본 후 , 좋다라고 생각 했는데, 내가 과연 와이프는 물론이고 부모님께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여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 동의를 못 구했죠. 그리고 그 이후 6개월 동안은 지옥이었죠. 그런데 왜 내가 그때 포기를 못했는지 참 신기해요. 교회에서 제게 영향을 주셨던 분은 길희성 선생님이었어요. 몇 번 시도했다가 토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그런 과정이 되었기에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신앙은 궁극적인 관심이다. 누구든지 빛이 우선이고 진리를 추구하면 신앙인 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 역시 교회 밖의 선한 기운을 가진 신앙인들에게도 동질감을 느껴요. 그리고 새길에는 자유로운 것, 받아들이고 싶은 선한 기운이 있기에 이를 널리 퍼트리고 싶은 마음 이예요

 

이상길: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와이프하고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어요? 난 포기 했는데...” (웃음)

 

배찬수: “저는 선생님 보면서 견디고 있습니다. (웃음) 이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정공자: “그게 상생하는 이유인데요?” (웃음)

 

이상길: “나는 우리 교회 함께 나오는 부부가 제일 부러워요. 이전에 우리 집사람도 한번 교회에 왔었는데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각자의 생각대로 살고 있죠.”

 

배찬수: "같이 다니면 정말 좋지요. 어제 저희 5구역 구역 모임을 했는대, 음식도 같이 가져오고 정말 부러웠어요. 하지만 저는 안 되니 포기 해야죠. 그래도 지금은 가족들도 많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송준화: “오히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개방성이나 이런 것들을 가족들에게 인정해주는 것이 신앙의 일치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요?”

 

배찬수: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만큼 와이프의 신앙도 존중해주는 것은 맞거든요. 하지만 가끔 그러면 안 되는 데 지적하려는 모습이 저두 모르게 나와요..." (웃음)

 

정공자: “제 경우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다 걸쳐져 있어요. 결혼과 함께 20년을 한 교회를 다니면서 익숙해져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지만, 솔직히 가정에 일치해야 된다는 점에 제 생각을 접고 다닌 거죠. 하지만 어느 순간 독립적이어야 겠다는 생각에 혼자서 여기저기 찾다가 새길 교회에 오게 되었어요. 사실 오래 다닐 것이란 생각보단 한번 예배를 드려보자는 마음으로 왔지요. 그런데 중간에 딜레마가 생긴 것이, 제 작은 아이도 두 번 정도 교회에 왔었거든요, ‘엄마, 여기는 설교가 아니라 강의 같아' 라고 하는데 무언가 영성이 빠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인식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희망적 이었구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변화 가능성, 고정되면 안 된다... 대안이 통할 수 있는 곳이구나. 변화 가능성의 여지가 많다는 게 희망적 이었어요. 그리고 소모임 등, 특히 어르신들의 끊임없이 알고자하는 호기심, 그 변화 가능성이 제겐 너무도 좋았어요. 그리고 굉장히 귀여우셨어요. (웃음).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나의 미래를 본거 같기도 하고. 아직은 희망적인 거 같아요

 

이혜영: “그러면 우리 교회의 긍정적인, 선한 기운을 어떻게 널리 전달을 할까요?”

 

송준화: “전 그것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데요? (웃음) 신앙이 호구지책과 관계가 있대요. 우리 교회는 신앙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의 가능성을 나누는 거죠.”

 

이상길: "우리 교회는 알릴 필요가 없어요. 30년간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안 먹을 정도로 모범적이라고 평가 되고 있지요. 지금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데, 단지 하나는, 지금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요 몇 년 사이 더욱 더. 정체성이 확립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공동체에서 소통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교우들 적극적이고 이보다 더 이상 잘 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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