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마 난민촌에 왜 가는가- 권태훈

by 루시사랑 posted Apr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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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마 난민촌에 왜 가는가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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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솟은 태국과 버마가 서로 어깨를 밀어 올려 만든 고산지대이다. 산맥의 핏줄 사이로 난민의 고통이 흐른다. 버마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버마 족과 소수 민족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지금까지 이어진다. 버마군인들의 칼에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이 절룩거리며 이곳으로 흘러 들었다. 40만 명의 카렌족, 버마족 난민캠프가 국경선을 따라 디아스포라처럼 흩뿌려져 있다.

 

2013 324일 처음으로 나는 이곳에 갔다. 왜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에 난민이 내려 앉았다. 내가 갈 수 있는 난민 촌이 어디인지 인터넷을 검색했다. 삶은 우연이고 우연은 신의 섭리의 다른이름이다그렇게 메솟을 만났다. 돈도 없고 그곳에 친구도 없다. 있는 건 가고 싶은 마음 뿐. 그 마음은 신이 주셨고 마음이 있으면 문이 열린다. 우연의 문을 통해 다른 우연을 만났다.


‘철학을 행동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5년 넘게 버마에서 난민고아원을 운영하시는 수녀님을 알게 되었다. 이스북으로 연락 드렸다. 많이도 물어 보았다. 이런 저런 질문에 답하시던 수녀님은 한마디 하셨다. "제임스, 책상에 앉아서 뭐해!!! 여기 와서 봐야지". 순간 나의 혀끝이 부끄러움으로 스멀거렸다. 그렇지, 가서 봐야 알 수 있지, 들어서 알 수 있나. 혀와 귀로 간 보지 말고 눈과 발로 확인하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발끝을 움직이자.

 

거기서 보았다. 뿌리 뽑힌 사람들의 존재적 불안이 삶의 불안이 된 사람들을. 유엔이 관리하는 난민 캠프안에서 국제구호로 식량을 해결하기도 하고, 메솟 province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장사하기도 하고, 식당 종업원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메솟을 벗어나 불법체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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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국제 NGO들이 넘친다. 난민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과학을 가르친다. 서양의 실패한 교육을 반복한다. 난민의 비참한 생활 위로 서양의 실패한 교육이 덮친다. 이 실패를 바꾸기 위한 나의 씨앗을 뿌리고 싶었다. 음악만이 그들의 존재적 불안을 삶의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음악만이 난민 아이들을 높은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한 아이라도 바뀐다면 난민공동체가 바뀌게 된다.


이 생각의 씨앗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되었다. 매년 New Blood School을 비롯한 5개의 학교를 방문한다. New Blood, 버마의 새로운 피.  우리는 이 새로운 피들과 매년 음악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축제는 잠시다. 축제가 지나고 어둠이 내리면 기숙사 전체에 웅얼거리는 새로운 피들의 붉은 화음이 낮게 물든다. 동굴 같은 교실의 어둠 속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험과목을 버마僧의 독경처럼 외운다. 희망을 담은 그들의 독경이 절망의 바위 같은 현실을 뚫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기는 웃음이 언어다. 보면 웃고, 말하면 웃고, 들으면 웃는다. , 뭉쿤, 묘하이, 아이들의 이름이다. 이름을 물어도 웃음부터 터진다.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름을 묻는 것은 그의 삶을 묻는 것임을. 그리고 삶은 웃음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우리도 배우고 배우는 아이들도 가르친다. 삶은 검은 하늘인데 魂은 은하 별빛이다. 어쩌면 우리가 돈의 검은 하늘을 숭배하고 삶의 대지에서 뿌리 뽑힌 난민인지도 모른다. 여기는 돈 꽃은 없어도 사람 꽃이 활짝 피어있는 메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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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알고 있는 것은 10년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고 있는 것은 반복은 힘이 있다는 것이다. 깨달은 것은 혀끝 보다 발끝을 먼저 움직이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길벗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매년 1월 중순,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 간다. 올해로 5년 차. 갈 길이 멀다.

 

새길 교회는 새 길의 정신 위에 세워졌다. 왜 새 길인가? 앞선 교회의 길이 헌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헌 길이 되었는가? 길은 가라고 있는 것인데 가지 않고 머물렀기 때문이다. 비우지 않고 채우기만 했기 때문이다. 어울려 하나되지 않고 이웃과 나를 구별하여 차별했기 때문이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는 평생 착한 일 하다가 죽었다.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의 삶을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실천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못살고 있다. 혀끝에 생긴 신앙의 근육이 발끝으로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챙길게 너무 많아진 세상이다. 생활도 챙겨야 하고, 관계도 챙겨야 하고, 욕망도 챙겨야 하고, 이것도 챙겨야 하고, 저것도 챙겨야 한다. 십자가 지는 것만 빼고 다 챙긴다. 우리가 그렇다. 교회가 그렇다. 우리 삶을 예수 꽃으로 활짝 피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못한다. 아니 안 한다. 物神이 예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安樂이 신앙이 되었기 때문이다. 欲望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녀님의 말이 예수님의 음성처럼 들린다. “제임스 책상에 앉아서 뭐해? 와서 봐야지”

가는 것, 내발로 가는 것, 모든 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는 것.

십자가는 책상이 아니라 현장이다. 그리고, 예수는 발끝에서만 만날 수 있다.



** 권태훈 형제님은 좋은 세상을 위해 일을 기획, 발의, 운영하는 Social Producer입니다.

난민을 위한 버마난민 음악학교와 북한영아를 위한 ‘MOTHERS MILK”와 재소자를 위한 소망글짓기 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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