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안의 우리들? ‘광장’ 밖의 우리들?- 이혜영

by 루시사랑 posted Jan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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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안의 우리들? ‘광장밖의 우리들?

 

 

                                                                                                                         이혜영

 

                                                                                

얼마 전 연 초 회동을 위해 만난 코디네이터 멤버들과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잠시 들러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곳을 우직하게 지키고 있던 몇몇 청년들의 모습이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들은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도 도로 위 맨 시멘트 바닥위에 이불 한 장 나누어 덮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밤에도 순번을 정해서 몇 명씩 그곳을 지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바람막이용 천막이나 텐트,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는 그 어느 것도 허용을 안 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칼 같은 추위에, 에휴...  

 

시위나 집회 참여자들의 안전권과 최소한의 인권까지 바라는 것이 지금의 현실에서 너무 야무진 꿈인가요? 시위의 보장과 허용 수준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들 하지요. 그만큼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는 상처입고 아픕니다. 주인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할 우리들의 광장이 위협받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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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일 년에 한번 씩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가게 됩니다. 어느 해인가 늘 그래왔듯이 업무상 미팅들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시내에서 여유 있게 간단한 쇼핑을 한 후, 오래 걸어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취할 기대에 부풀어 Strassen-Bahn(스트라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 20, 30... 그 이상이 지나도 전차는 오질 않는 겁니다. 정류장 주변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한 분에게 열차가 고장 났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한데 그 근처 시내에서 시위를 하기때문에 전차가 다니질 않는다고 하네요. 이때 정류장에서 함께 기다리던 분들은 이 상황에 개의치 않는 듯 뿔뿔이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 가버렸고, 나 혼자만 당장의 불편함과 내 시간과 계획이 다 어긋난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풀이로 그 자리에서 불평불만에 가득 차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독일인들에게 시위와 집회는 생활의 일부였고, 더욱이 독일 내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는 하루에도 크고 작은 시위들이 늘 일어나고 있었으며, 당장의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시위라도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들 내부에 뿌리깊이 내린 듯합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이런 상황들에 맞닥뜨렸지만 난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어 재빨리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방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경험은, 6-7년 전인가 역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방문 때입니다. 그 당시 바로 이 국제 박람회 날짜에 딱 맞추어 업무상 방문한 내, 외국인들을 볼모로 독일 철도 파업을 시작한 겁니다. 현지 독일인들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이 파업에 대한 정보를 들었겠지만, 나와 같은 외국인 방문자들이 이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리 만무하지요. 그리하여 아침 일찍 오지 않는 S-Bahn(에스-)을 기다리다 늦어 간신히 택시를 타고 박람회장에 부리나케 왔으나, 오전 미팅들은 늦게 도착한 바람에 계속 밀려 제대로 업무를 못 보았지요. 또 하루 미팅들을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전쟁이었습니다. 교통비가 포함된 북페어 입장표가 있지만 S-Bahn을 탈 수 없으니, 택시를 기다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줄에 서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거금 60 유로나 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악몽 같은 사태는 그 해 북페어 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아니 어떻게 외국인들을 볼모로 파업을? 배포도 크네? 그것도 공익적인 목적이 아닌 단지 철도 노동자 그들 자신의 임금 인상을 위해?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대담성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철도 노동자들이 아니라, 이 상황을 대하는 독일인들, 그리고 유럽, 미국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이었습니다. 이번 상황에서도 흥분했다가 화냈다가 저 혼자만 동동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이 상황을 너무도 인내심 있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그리고 시위, 집회, 파업을 대하는 그들의 인식이 이 상황 속에 그대로 녹아든 모습이었습니다. 집회,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이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불편함과 불이익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내가 사는 사회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매개체는 차고 넘쳐납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길거리에서 조차 국민들은 점점 소외되고 위축되어가고 있습니다. 공권력의 위협에 의해, 그리고 광장길거리밖의 또 다른 국민들에 의해 매도되고 상처입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민변에서 주최하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강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강연자였던 한 변호사님께서 각종 통계 자료들을 제시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를 하는 나라들과 반대로 가장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나라들을 나열해주었습니다(그 정확한 수치는 아쉽게도 지금 기억을 못하지만). 어느 나라 국민이 가장 평화롭게 시위를 할까요? , 바로 놀랍게도 한국 이었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수치로. 가장 격렬한 시위를 하는 국민들은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순하고 조용한 시위대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는 것인데, 연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대부분 매스컴들이 시위의 본래의 목적과 구호를 이슈화하기 보다는 그 시위 자체를 일단 불법 시위니, 폭력 시위니 폄하하기에 골몰합니다. 물론 일부의 작은 폭력이라도 이를 옹호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언론이나 권력은 시위집회에 대해 일반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생각만을 주입시키려 갖은 방도를 찾습니다. 일종의 낙인 효과랄까요? 많은 국민들에게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주입되어. ‘시위시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은 늘 따라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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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온전한 광장을 되찾을 수는 있을까요?

지금 이 시간, 유독 기승을 부리는 혹한에도 찬바람을 가릴 비닐 조각하나 없이 찬 도로 바닥위에 앉아 꿋꿋이 소녀상을 지키고 있을 불굴성의 청년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네요.

 

우리들의 광장의 확산성을 차단하는, ‘광장안의 사람들과 광장밖의 사람들을 분리하여 광장안의 사람들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 산성이란 냉소적 풍자어에 서글퍼집니다.

    



** 이혜영 자매님은 독일어권과 북유럽권 책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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