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기억과 공간- 김보식

by 루시사랑 posted Mar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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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 기억과 공간


                                                                                                      김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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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거대한 감옥 같아.” _햄릿_ 중에서

세월호 특위의 활동이 사실상 시작도 못해보고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서 한데 잠을 자고, 단식을 하고, 도보로 서울과 진도를 오가고, 오체투지를 하는 유가족들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했던 이가 사라져 버린 고통스러운 기억의 감옥에 더해서, 죽음의 이유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병든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는 셈이다. 

세월이 가도, 아니 세월이 갈수록 더더욱 선명한 그리움에 가슴 저미게 하는 것이 사랑했던 이에 대한 기억이다. 기억은 끊임없이 사랑했던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기억은 기억하는 주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살아 숨쉬는 동안 유가족들은 빚쟁이처럼 수시로 찾아오는 기억과 마주한다. 누구도 수시로 찾아와 상처난 부분에 소금을 뿌리듯 다시 죽음의 고통을 현실의 고통으로 바꾸어 놓는 기억이라는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유가족들은 기억만으로도 이미 세상과 세상을 분리할 없을 정도의 고통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억의 고통은 동시에 유가족들을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 위치 시킨다. 이미 떠난 버린 이들이지만 그들의 기억은 이승에 남아서 같이 있기 때문에, 기억이 망자가 떠난 공간을 여전히 망자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 내부의 기억이라는 감옥을 실제 현실 속의 공간으로 재현해 놓는 셈이다. 재현의 공간을 망자와의 즐거웠던 기억의 자락을 채우는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망자의 원혼이 깃들어 살아남은 자들을 얽어 매는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는 결국 애도의 행위에 따라서 결정되는 같다. 애도는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사랑했던 것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이미 사랑했던 기억만으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이 감옥에서 나올 있는 길이다. 아무런 이유를 모른 아이들을 떠난 보낸 유가족들은 죽음의 진실을 밝혀 냄으로써 사랑하던 이들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표하는 것이고 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복수를 하기 위한 진상 규명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며 동시에 수없이 찾아 오는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도로서 잠재우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정의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들이 살던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공간은 바로 지옥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 수도 없고, 오히려 실체를 밝혀야 대상이 그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막게 되면 그들은 햄릿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복수를 외치는 유령과 마주하게 된다. 유령을 마주한 햄릿은 우울함에 빠질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들을 모두 처단하고 자기도 죽는다. 애도를 막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파멸을 가져오는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그것이 바로 세월호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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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동체 없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중에 누구는 망자의 친구였고, 이웃이었다. 우리라는 공동체 자체가 망자의 기억과 얽혀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에게는 망자를 기억나게 하는 존재로서 힘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유가족의 문제로 돌리고 그것을 국가를 위해 양보하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공동체는 마치 망자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유가족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로 만듦으로써, 유가족들을 기억의 감옥에 옮아 맴과 동시에 한국이라는 거대한 불의와 부정의 감옥 속에 가두게 한다.  순간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세상은 지옥이 되고, 기억의 감옥과 거대한 한국이라는 감옥을 탈출하고자 복수나 스스로 목숨을 끝내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할 공간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죽게 것인지를 알게 해달라는 외침에도 아무런 요동이 없는 모습은 공동체가 사라졌음을 말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숨쉴 공간도 뺏고 유가족들을 사지로 몰아 넣는 잔인한 공동체의 모습인 것이다. 마치 거대한 감옥을 탈출하는 길이 햄릿의 절망적인 죽음뿐임을 예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를 향해 기억해 달라고 외치는 유가족들의 외침은 공동체가 같이 기억함으로써 유가족들에게 망자를 잊을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잊을 있게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달라는 것은 유가족들도 살고 싶다는 외침인 것이다.   외침에 답하고 싶다.



** 김보식 형제님은 미국 웨인주립대 영문학과 박사후보생으로서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밀튼과 당대 여성 예언가들의 시와 산문 장르의 혼용을 통한 언어 실험에 대한 박사논문을 작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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