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일 주일예배 주보, 기도문, 말씀증거

by 새길 posted Feb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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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

새길교회 3.1운동 101주년 기념예배

주보와 기도문(안인숙 자매), 말씀증거(장규식 중앙대 교수) 원고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각자 계신 곳에서

가족과 함께 또는 홀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보 다운로드]

20200301_새길교회 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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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기도 ]

_안인숙 자매

 

시편 저자의 말씀입니다.

 

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

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

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에 덮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_시편 91:2~6

 

하나님,

오늘은 기미년 독립 만세를 부르던 날에서 꼭 100년 하고도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자유대한민국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그날의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과 고통을 기억해 봅니다. 이제는 서로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쳐서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도록 지혜와 용기와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십시오. 분노와 두려움과 이기심과 무관심과 책임전가와 혐오와 차별을 성찰하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의 탐욕과 황금숭배와 안목의 정욕과 육체적 쾌락과 소유욕을 회개합니다. 성찰케 하소서. 고난을 견디어 내게 하소서. 우리에게 평화를 허락하소서.

 

하나님,

신천지 신도들이 회개하고 나라와 사회에 협조하여 감염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 길이 곧 자신들도 살리는 일임을 깨닫게 하소서. 또한 그들도 우리 국민이며 당신의 자녀임을 알고, 혐오 대신 그들이 당신을 향한 올바른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하며 설득하게 하소서.

 

하나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남녀노소, 국적, 인종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는 이런 사태 속에서 더욱 처참한 고통을 당합니다. 가난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양호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쉽게 감염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서로에게 긍휼을 베풀게 하시고 서로 돕게 하소서.

 

하나님,

예수님의 고난을 앞두고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더욱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당면한 우리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깨닫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국전쟁 70, 5·18광주민주화운동 40년을 맞는 올해, 다시는 같은 민족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이념의 대립과 증오를 대물림하지 않게 하소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평화운동을 통해 다양성과 포용, 상생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도록 마음모아 묵상하며 기도하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

한 마리 코끼리와 나, 사자와 나, 한 그루의 나무와 나를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 생명들에 비해 당신께 얼마나 소중하며, 물질을 누릴 권리가 더 있을까요? 이 시대는 인류세라고 합니다. 당신께서 정말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나요? 선하게 다스리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주님이 만드신 세상과 자연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번 사순절에는 특별히 탄소금식을 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진정한 노력을 이번 사순절에 시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니, 자매형제가 모여 예배드리고 친교함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각자 어디에 있든지 공동체를 기억하고, 당신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이 뼈아픈 어려움을 견뎌내고 함께 모여 예배할 날이 어서 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몸이 아프거나 마음 아픈 교우들이 어려움 당하지 않게 서로 살피며 돌보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을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고난의 길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증거]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_장규식 교수(중앙대학교)

 

그리고 그들이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걸쳐 놓고서, 예수를 올라 타시게 하였다. 예수께서 나아가시는데,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다. 예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에 대하여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였다.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하셨다. (누가복음서 19:35-40)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주를 찬양합니다.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이에 바리새인들이 이게 무슨 경거망동이냐며 예수께 항의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고 대답하십니다.

 

오늘은 3·1운동 10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3·1운동은 그야말로 돌들이 소리를 지른 사건이었습니다. 31일부터 4월 말까지 두 달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1,200회가 넘는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라는 노랫말처럼 손만 대면 전국 각지에서 톡톡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치밀한 준비가 있었던 것도, 촘촘한 조직망이 갖춰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워왔다는 말씀처럼 때가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민중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염원했고, 그 한가운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3·1운동은 한국기독교 역사참여의 전형이었습니다.

 

3·1정신의 키워드는 민족통합, 주권재민, 정의·인도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3·1운동은 한국 사람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결집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 전에도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주인과 노비 사이에 한 동포 자매라는 공감대가 생길 수는 없었습니다.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해체되기는 했지만, 관습적인 신분 차별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3·1운동에 이르러 남녀노소 지역 계층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비로소 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주권재민입니다. 19108월 대한제국이 멸망한 직후 미국에서 발행되던 교포신문 신한민보형질상의 구한국은 이미 망하였으나 정신상의 신한국은 바야흐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융희황제(순종)가 주권을 포기한 그 날 대한제국의 주권은 일본이 아니라 인민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멸망은 민국 건설의 시발점이라는 주장입니다. 3·1독립선언서에도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해 독립을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독립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독립선언의 정당성을 반만년 역사의 권위와 이천만 민중의 굳건한 지지에서 찾은 것인데,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권재민의 원칙에 입각해 독립을 선포한다는 성명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민국 건설의 비전이 있었기에 애국지사들은 망국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독립운동의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인도(人道)와 정의(正義)는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민중들이 꿈꾸었던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보여주는 키워드입니다. 3·1독립선언서를 보면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지나가고 도의(인도·정의)의 시대가 도래하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위력의 시대란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를 인간사회의 당연한 법칙으로 받아들인 지난 시대를 말합니다. 독립선언서에서는 그렇게 약육강식의 원리에 기초한 위력의 시대가 제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종말을 고하고, 이제 인도와 정의에 기초한 도의의 시대가 온다고 선언합니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부추겨 세우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질서, 이것이야말로 당시 민중이 꿈꾸었던 새 하늘과 새 땅의 실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3·1운동 101주년을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민족통합과 국민통합의 상징이었던 3·1운동을 마중물 삼아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힘겨루기 속에서 국토는 두 동강났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인류 평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천만 민중의 뜻을 모아 독립을 선포하고 주권재민의 원칙에 입각해 세운 대한민국 또한 해방 후 오랜 독재와 불공정으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3·1운동 당시의 이천만 민중이 오늘날 남북한, 재외동포, 다문화 가정을 합쳐 팔천만으로 늘어났지만, 약자들의 생활상 자주와 독립을 의미하는 실질적인 민주화는 여전히 미래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정의와 인도의 정신 또한 많이 퇴색한 가운데, 과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불러온 힘의 시대가 무한 경쟁이란 이름으로 힘없는 자들을 약탈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로 탈바꿈해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힘없는 이들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위험을 외주화하는 이 사회에서 상생의 가치는 그 종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지난 백년간 한국기독교는 숱한 영욕의 세월을 거쳐 왔습니다. 그 속에서 3·1정신은 우리의 든든한 푯대가 되어주었습니다. 한국기독교는 1965년 굴욕적 한일협정 비준반대투쟁을 통해 자유당 독재 하에서 정교유착으로 얼룩진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예언자적인 사회참여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3·1정신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함석헌, 한경직, 김재준 등 교계 지도자들의 성명서 발표에서 시작해 전국 교회의 구국기도회로 번져나간 한일협정 비준반대투쟁은 유신체제하 기독교계 민주화 인권운동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후 1976년 명동성당에서 신·구교 지도자들이 연명해 발표한 3·1민주구국선언을 통해 한국기독교는 민주회복, 노동자인권, 민족통일이라는 3·1정신의 발전적 계승의 길을 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876월의 광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3·1운동 당시와 같이 남녀노소 지역 계층의 구별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을 벌였습니다. 2016~17년의 촛불항쟁 또한 실질적 민주주의와 공정 상생을 추구한, 3·1운동의 또 하나의 매듭이었습니다.

 

이렇게 민족통합, 주권재민, 정의 인도로 대표되는 3·1운동의 정신은 이제 평화와 통일, 생활상의 민주화, 공정 상생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기득권의 아성으로 변해버린 현재 한국교회의 얼룩진 자화상을 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반공주의, 개발독재형 성장지상주의에 이어 문화 소비주의 곧 종교 상품화라는 제3의 질곡에 얽매여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런 반공주의, 개발독재, 종교 상품화가 버무려진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세력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고, 그 정점에 이른바 강남형 대형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기독교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의 수호를 위해 앞장섰던 것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3.1정신에 비추어 한국교회를 갱신하는 일이야말로 현 시점에서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생각 있는 기독교인의 중차대한 과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생명 평화 정의의 가치에 입각한 한국교회의 갱신, 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구촌의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로의 갱신이야말로 백 년 전 우리 신앙 선조들의 뜻을 받드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가시밭길에 주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부활의 희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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