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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2010.02.20 05:55

예수의 천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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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천국론

 


아밀리에 노통브.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여류 작가입니다. 노통브 현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창적인 글을 쓰는 그녀는 교회를 몇번 다녀 간 후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는 강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강연 주제가 무엇이든간에 나한테는 똑같은 수다로 들렸다. 잡다해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식들, 물에 불은 국수에 물리듯이 나는 금새 질리고 말았다”.


누구든지 그녀를 만나거든 이 이야기를 전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아들되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 5: 9]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불이 나기 전에 화재예방을 위한 준비를 단단히 시킵니다. 평소에 화재예방을 위한 홍보를 게을리 하고 있다가 불이 난 다음에야 “불이야!” 외치는 사람은 자격이 없습니다.

성직자가 평화를 지키는 소방관이라면 평화로울 때 느긋하게 평화를 위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토록 많은 강단의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손놓고 있다가 전쟁이 터지고 난 다음에야  “평화!” 라며 나서는 사람들은 식상하지요.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세계평화에 기여했다고 기억해 줄만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사례는 많지요. 가령 히틀러의 장단에 맞추어 춤춘 로마 교황청. 유럽에서 교회가 궤멸된 결정적 이유는 아마 이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임진왜란때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를 따라 온 세스뻬데스는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군목인데, 낮에는 살육을 하고 밤에는 함께 모여 천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라크전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며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정신 나간 기도회를 올리는 기독교인의 모습과 그대로 오버랩됩니다. 요즘 교회 다닌다면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멀쩡해 뵈는 사람이 왜 그런델 다니느냐고.....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팔복 중의 가장 큰 복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온 세상의 교회가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습니다. 어딘가 근본적인 착오가 있다고 봐야 겠지요. 세계평화는 하느님께서 기독교에게 내려주신 첫 번째 특명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 대접받기

내가 율법을 부수러 온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완성시키러 왔다.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 17-20)


“계명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면,

 

-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이 말씀 때문에 문명충돌이 일어난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이것은 간단히 틀렸습니다.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고 사람의 실수입니다. 계명의 온전한 인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02 너희 하느님은 나 여호와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0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출애굽 20;2-3)

 

02절은 하느님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왜 다른 신을 섬기면 안되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이 그 속에 있습니다.  집짓는 사람에게는 모퉁이의 머릿돌, 밤바다를 운항하는 선원에게는 등대, 천국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비밀의 열쇠, 계란의 노른자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 한분만을 모신다는 사람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 그거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요?



천국 들어 가기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 간다.[마태 7:21]

 

실천하면 천국 들어 간답니다. 뭘 어떻게 실천하라는 말씀이신지요? 02절을 빠뜨린 상태에서는 모호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들면 윤곽이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는 집에서 이끌어 내었듯이 너희도 아버지의 뜻을 본받으라. 그리하면 천국에서도 큰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천국 우리꺼 만들기

하느님의 정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0]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고, 존 롤스는 저렇게 말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했으며, 루돌프 폰 예링은 저렇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사람들은 “아, 저 사람 공부 참 많이 했구나”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정의에 대하여 “강자의 이익”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란 무엇인가? 묶인 자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 정의가 그렇게 단순한 것입니까?


하느님의 계명에는 천차만별의 세계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원시적 단순성이 있습니다. 단순한 것은 위대한 것이며 시작은 반드시 그렇게 밀고 나가야합니다.




예언자가 받을 상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 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며, 옳은 사람을 옳은 사람으로 맞아 들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 41-42)


아무나 예언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를 받아 들임으로서 그 상을 함께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겠지요. 과연 예언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보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 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 12; 17-21)


세례요한이 예수께 세례를 하자 하늘에서 들려 온 말씀입니다. 짧은 문장 속에 정의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어 있군요. 예언자가 하는 일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그러면 정의란 무엇인가? 그렇게 묻지 말고 정의 아닌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으면 답은 간단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노예인데 그걸 안풀어 주면 불의가 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어느 교회에 가셔서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펼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울하게 묶인 사람을 풀어 주어라”.

예수뿐만 아니라 모든 예언자의 핵심적인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예는 뼈빠지게 모은 돈으로 만든 내 재산인데 저 자식은 무슨 헛소리를 하능겨?”

“글씨, 고명하신 랍비 샴마이, 랍비 힐렐도 하지 않으신 말씀을 지가 뭔데....... ” 

“목수 아들이잖아, 내가 지 조상의 내력을 알고 있는데 랍비 교육을 한번도 안받은 녀석이 무슨 건방을 떠는겨”

하며 예수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갔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 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요한 10; 24-38)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하고 물으면,

“보이지 않는 영”, “제1원인자”, “삼위일체”, “절대지존”, “빛이요 말씀”,  “전지전능자”, “우주의 정신”, “자연법칙”..... 많이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복잡합니다.

 

예수님은 간단해요. 아버지의 이름은 여호와. 그 이름으로 행하는 일은 에집트(로마)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표피적인 것이라면 예수님의 종교개혁은 기독교 사상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제1계명)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형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를 쫓아내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이후로도 기독교는 오랜 세월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신분제도는 어느 세상이나 있는 것이지만 노예무역을 할 정도로 본격적인 판을 벌인 것은 기독교 문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할 때 교회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가톨릭은 마지막 순간까지 반대했어요. 교회가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 저마다 자기는 정통, 남은 이단이라 말하지만 실상 누구랄 것도 없이 통째로 이단이었습니다.


- 이단의 기준은 성서입니다. 성서대로 안하면 이단입니다.


기준이란 30cm 대나무자와 같은 것입니다. 볼펜이나 젓가락에 갖다대면 이보다 짧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냉장고나 침대에 갖다대면 이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기준이란 이처럼 간단명료한 것입니다.

성서는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은 혼돈스럽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 제각각 다른 주장을 합니다. 성서 그 자체가 혼돈스러운데 성서가 기준이라...... 말세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종귀자(從鬼者)가 된다고 했듯이 그렇게 혼란스러운 말을 퍼뜨려서는 안됩니다. 이단과 정교를 가려내는 첫째 기준은 제1계명입니다. 간단명료하지요. 그러나 이게 안보이면 스스로 이단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 어거스틴, 칼뱅, 루터. 신구교를 대표하는 교부들인데 이런 분들도 이단이었다는 말입니까?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거스틴과 함께 가톨릭의 교부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신학대전이라는 책을 써서 ‘신 존재 증명’이라는 것을 했어요. 일생의 대부분을 집필에만 몰두하던 그가 생애의 정점에 가서 집필을 포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자기의 집필은 지푸라기이며 신이 자기 집필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듯이 자기 인생도 빨리 끝내주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지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놀랬습니다. 뭐가 문제였겠습니까?

그는 연구실에서 문득 창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너무 비참해요. 예수님은 이 썪은 세상을 고발하시다가 십자가를 지셨는데 자기가 일생동안 해 온 일은 부질없는 사변철학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스콜라 철학. 신학과 철학의 만남. 신 존재 증명, 제1원인론. - 얼핏 심오한 비밀을 아는 것처럼 들립니다. 속사정 모르는 사람은 주눅들지요. 예수가 빨강색 잉크라면 자기가 일생동안 해 온 일은 결론적으로 물타기였습니다. 실수를 깨달았고 집필을 중단했습니다. 그는 양심적 지성인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 그의 조직신학은 한마디로 방대한 수다입니다. 그 많은 말 가운데 꼭 들어 있어야 할 말이 빠졌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여러분이 성서와 관련된 책을 구입하실 때 유의점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교회는 천국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인데 그것을 안다면 그것부터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책의 목차를 보시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천국론이 들어 있으면 사서 읽으십시오. 이 문제가 불분명하다면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이나 책에 붙들려 시간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그 시간에 뜨개질을 하거나 축구 시합을 구경하시면 됩니다.

  


평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 5: 9]


평화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전쟁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전쟁치는 자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요. 파라오처럼 남의 나라를 묶어 놓고 좌지우지하는 것이 그들의 속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 약소국인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에집트를 적대자로 규정한 이유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직자란 예수더러 “주여, 주여”하도록 훈련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가 천국가는 길을 도와주는 도우미입니다. 아퀴나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니까 글을 중단했고, 칼뱅은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방대한 수다를 늘어 놓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실제 역사를 봐도 교회는 신구교를 막론하고 평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입니다. 이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면 교회 다니는 그 자체가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오히려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만일 너희가 모세를 믿는다면 나를 믿을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것은 바로 나에게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세의 글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 (요한 5;43-47)


모세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해방의 지도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치민은 현대판 모세라고 보면 됩니다. 반대편에 있는 영국과 미국은 에집트였습니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 히로히토의 일본도 마찬가집니다.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에집트란 수천년전의 그 에집트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에집트들입니다. 이렇게 해석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수천년전 중동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읽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명 속에는 세계사의 큰 줄거리(전쟁, 식민통치, 해방)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죽은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위한 것인데 장차 언젠가 세상이 밝아 지면 전세계의 역사 교과서에 하느님의 첫째 계명이 기록될 것으로 믿습니다. 



만찬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이 과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려고 얼마나 별러왔는지 모른다.

........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 22;17-19)


최후의 만찬은 먹고 즐기는 모임이 아니라 예수께서 유언을 남기시기 위한 자리입니다. 왜 하필 과월절을 택하여 저런 말씀을 남기셨을까요?

과월절이란 모세가 자기민족을 에집트로부터 구해낸 것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이스라엘 최대의 국경일로서 그 뜻은 해방기념일입니다. 해방의 반대가 뭐지요? 점령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를 들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조지부시입니다. 예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 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짓을 하면 예수의 원수가 됩니다.

최후의 만찬은 과월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연히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 날을 별르셨어요. 그리고 자기 목숨과 바꾸셨습니다. 이 뜻을 못알아 들으면 예수의 피가 헛된 것입니다. 알아 듣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때 세계평화는 도둑처럼 다가 옵니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


대항해 시대의 기독교 국가들은 로마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 받아 예수의 이름으로 아프리카, 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약소국들을 차례로 병탄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훨씬 이전부터 중남미 국가들에 대하여 로마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에서 발목 잡혔습니다. 예수 못박은 자들이 하던 짓인데 우리는 그들로부터 성서를 건네 받았습니다. 붕어 빵에 붕어 없듯, 예수교에 예수없는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세계적으로 매년 지출되는 군사비 총액은 2천조원입니다. 이에 반해 전세계의 교회 수입은 연간 1백조원 가량 됩니다. 그 중에 관리비를 빼면 실제로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 가는 몫은 미미합니다. 군사비용의 1%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칼에 들어 가는 이 막대한 비용을 보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헌금 잘하는 것보다 1백배 이상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크리스찬이 개인적인 일로 야심을 가지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 못되지만,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는 야심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마태 5: 17-20)


본 훼퍼라는 사람은 히틀러를 암살하려다가 발각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는 좋은 사제였어요.  그러나 계명은 본 훼퍼처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다른 히틀러가 나타날 수 없도록 사전에 평화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 계명입니다.  

전쟁은 제1계명을 파계한 이단의 뿌리에서 나온 열매입니다.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막연히 평화라고 말한다면 실제 평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오히려 교회를 다니는 그 자체가 죄악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집단의 과거를 보면 미래를 점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 대접받는 방법은 목숨을 내 놓으라는 말도 아니고 재산을 내놓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계명을 잘 알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의 문을 닫다.

제자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천국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축구선수가 승리하는 길은 슛 골인입니다. 미들필드 축구는 가급적 생략하고 상대방 문전에 있는 우리편에게 패스해서 한방에 슈팅을 날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최상의 전략입니다.

기독교인의 개인적인 목표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말씀증거는 무엇보다 예수께서 천국의 조건으로 내거신 것부터 조근조근 설명할 수 있다면 훌륭한 도우미가 됩니다.

예수님은 계명, 정의, 평화에 천국의 보상을 내거셨습니다. 알고 보면 이 셋은 제각각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에 교회를 단 한번 나오고 만다면 그에게 일러 줘야할 것은 이겁니다. 유럽의 교회가 아밀리에 노통브에게 이것을 일러 주었다면 지금처럼 궤멸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도 마음의 문을 닫으면 받지를 못합니다. 개인과 교회가 함께 망합니다. 그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 걸음마다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 따져야 한다면 오금이 저려 살 수가 없습니다. 회개하려고 해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하라는 것인지 막막해 집니다.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다니엘은 회개를 잘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과 국가와 교회와 시대가 하느님의 법을 어겼다고 고백합니다. 용서 받을 자격이 없지만 용서해 달라며 무릎 꿇고 처절하게 자비를 구합니다. 그러자 대천사 가브리엘이 찾아 오셔서 “내 사랑하는 아들 다니엘” 하시며 신의 사랑을 전합니다(다니엘 9;4-19).

교회의 죄에 대하여 말하면 기독교인으로서 불쾌하겠지요.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 자기 교회는 옳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더이상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서를 보면 로암미, 로루하마라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천덕꾸러기, 버린 자식이라는 뜻인데 신의 법을 어긴 교회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러다가 먼 훗날 하느님은 다시 불러 들일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암미, 루하마. 귀염둥이, 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 ?
    간달프 2010.02.22 23:4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교회에 가면 목마르게 듣고 싶었던 말씀들 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간다는 표현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 뜻을 받들어 우리 사는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켜야 하는것 아닐까요?

  • ?
    여경모 2010.02.24 00:08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 ?
    박선옥 2010.02.25 20:18

    천덕꾸러기에서  귀염둥이로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글로 길잡이가 되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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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mberwly 2014.01.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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