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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찾아가는 게 어디 철새 뿐인가

금강하구둑 ‘김인전 공원’서 시작, 이상재전시관·종지교회 거쳐
최초 성경전래지 마량진서 잠시 멈추고 대천수양관서 안식하다


가을의 금강변, 갈대밭은 무성하고 철새들은 떠날 채비를 한다.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비치는 물결 위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⑤ 금강하구둑 김인전공원에 세워진 김인전 목사의 흉상과 공적비.
⑥ 김인전 목사가 민족지도자 양성을 위해 건립했던 옛 한영학교 터.
 
 

김인전공원과 한영학교

전라도 군산과 충청도 장항이 만나는 금강하구둑. 군산 쪽에서 기나긴 방조제를 따라 장항 쪽으로 건너가다 보면, 그 끝에서 깔끔하게 조성된 작은 공원 하나를 만난다. 공원 입구에는 근래 들어 새로운 이름을 단 간판이 붙었다. 김인전 공원. 귀에 익은 이름이다.

바로 전주 여행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전주서문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이자 전주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경재 김인전이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낸 동네가 바로 이곳 충남 서천이다.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제4대 의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한 시대를 뜨겁게 살다간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작업이 요즘 고향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는 것이다.

공원 안쪽에는 김인전 목사의 흉상과 함께, 김 목사의 삶을 소개하는 공적비와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그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세대들에게는 친절한 교육자료가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입구를 장식하는 조형물이 삿갓과 기다란 곰방대라는 점이다. 삿갓이야 그렇다 쳐도, 목사의 직함을 가진 이를 기념하는 공원에 곰방대 장식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실상 김인전이라는 이름에 ‘목사’라는 직함을 붙이는데 익숙한 전주의 분위기와, 단순히 그를 애국운동에 앞장선 ‘선생’으로 기억하는 이곳 서천의 정서는 조금 다른듯하다. 그것은 김인전 목사의 묘소가 있는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쪽으로 옮겨가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동네 뒷산에 차려진 그의 묘소에는 추모비와 함께, 그의 행적을 간단히 기술한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교육계몽가와 독립운동가로서의 자취만이 조명될 뿐, 어느 곳에서도 목사로서의 김인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무덤의 주인을 ‘김인전 선생’으로만 알고 있다. 기독교 순례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신실한 복음사역자로서 그의 모습이 감춰져있다는 것은 몹시 서운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묘소를 둘러 본 후에 놓치지 말고 살펴볼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묘소 앞에 세워진 아담한 기와집 한 채이다. 당초 이 자리는 한일합방 이듬해인 1911년, 김인전 목사가 가산까지 팔아가며 ‘한영학교’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조국의 광복을 도모할 인재들을 양성한 산실이었다. 훗날 서천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상당수가 한영학교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제법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영학교 자리는 그새 몇 차례 주인이 바뀌고, 건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어 안타깝게도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현재는 개인 별장으로 사용되는 중이어서 외부인은 출입에 통제를 받는다.


이상재기념관과 종지교회

한영학교터에서 자동차로 불과 몇 분 거리인 한산면 종지리가 우리 여행의 다음 행선지이다. 종지리는 식민지시대의 설움을 안고 살았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 광복의 희망과 한민족으로서의 당당함을 일깨워 준 월남 이상재의 생가가 있는 동네이다.

이상재의 생가는 두 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쳐 충청남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면서 많은 관광객을 맞았다. 여기에다 얼마 전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월남이상재선생전시관’이 건립되고, 산책로와 부속건물들까지 조성되면서 이곳은 제법 규모 있는 역사탐방지로 변모했다.

특히 전시관 안에는 YMCA와 독립협회, 신간회 등을 통해 민족계몽과 자주독립에 앞장섰던 이상재 선생의 일대기가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성경 및 교리해설서 등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품들이 눈에 띄고, 선생이 요한복음을 읽다가 영감을 얻어 써내려갔다는 “萬事無求眞理外 一心相照不言中(모든 일의 해결책은 진리 외에서는 찾을 수 없나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비춰보면 한마음이어라)”는 시귀가 관람객의 마음을 찌른다. 어쩌면 복음과 진리에 대한 확신, 십자가 아래에서 나누는 형제애를 잃어가는 우리 세대를 향한 경구가 아닐는지.

전시관을 나와 생가터를 지나면 우뚝 선 종지교회의 모습과 마주친다. 종지교회 또한 이상재의 권유와 후원에 힘입어 세워진 유서 깊은 교회이다. 겨레를 그토록 사랑했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금도 교육을 통한 계몽과 농촌운동에 앞장서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마침 기자가 순례 차 방문한 날에는 종지교회의 어린이 이상재의 생애를 소재로 한 연극 준비에 한창이었다. 조상들이 입었던 도포와 버선 차림으로 월남 선생의 기개를 재현하고자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조국의 미래를 꿋꿋이 짊어질 동량들의 면모가 엿보인다. 기념관을 지키는 관광해설사는 해마다 11월 중순 무렵이면 이곳에서 월남선생 추모행사와 백일장대회가 열려, 후세들의 애국혼을 일깨운다고 설명한다.


최초 성경전래지 마량진

이제 우리의 발길을 서쪽으로 돌릴 때이다. 한산에서 서천읍내를 거쳐 바다 쪽으로 계속 전진하다보면 마량진 포구가 나온다.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서해안에 몇 안 되는 명승지인 이곳이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마량진이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 관심이 쏟아졌다.

1896년 9월 4일 영국 함선인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탐사차 한반도 주변을 항해하다가, 마량진에서 잠시 닻을 내린다. 처음 보는 서양 함정의 출현에 놀란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 낯선 방문객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알세스트호에 직접 올랐고 그 배의 함장 머레이 맥스웰이 조대복에게 선물로 건넨 두터운 책 한 권이 우리 민족에 최초로 전해진 성경이었다.

이러한 기록이 부각되면서 지역교계를 중심으로 10년 가까이 마량진을 성역화하려는 노력들이 계속 이어져왔다. 2007년에는 한국최초성경전래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마량진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경 전래사를 소개하는 기념관과 세계 최대의 십자가상을 세운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수년째 공전중이어서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초성경전래지기념비 곁에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념상도 함께 건립되어있다. 성경번역 회의를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항해 도중 불의의 사고로 어청도 앞 해상에서 목숨을 잃은 아펜젤러를 기리기 위해 바다 건너 군산에는 순교기념관이 세워졌고, 이곳 마량진에는 기념상이 마련된 것이다. 형태와 규모는 다를망정 한국교회의 은인을 기리는 마음은 한결같다.


선교사들의 휴식처 대천수양관

이제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를 찾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대천으로 향해보자. 대천에는 서해안 최고의 휴양지이자, 국내 최대의 머드축제가 열리는 대천해수욕장이라는 자랑거리가 있다. 그곳에 펼쳐진 넓디넓은 모래사장과 시원한 파도를 마주보는 푸른 숲 사이로 수십채의 작은 오두막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천수양관(TBA)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바로 옛 선교사들이 휴식차. 질병치료차, 혹은 성경번역과 성경교육차 이용했던 공간들이다.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원산과 화진포 등지에 세워졌던 선교사수양관은 전란 속에서 혹은 외국인들의 사치스러운 별장이라는 오해 속에서 오늘날 거의 다 파괴되거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대천수양관만큼은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0대 이상의 성도들 중에는 젊은 시절, 이곳에서 벽안의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며, 마음껏 해변을 누빈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100명 안팎의 인원들이 수련회를 열 수 있는 규모의 강당이 운영되며 그 기능을 유지하는 중이다.

서양식 오두막집과 돌집, 한옥, 일본식 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대천수양관에는 그저 둘러보기만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곳이 목숨을 걸고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한 선교사들의 피난처였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옛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선교사들의 휴식처였던 대천수양관에는 다양한 모습의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② 한국최초성경전래지를 기념하기 위해 마량진에 설치된 기념석.
③ 월남 이상재 선생의 뜨거운 조국사랑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
④ 문화재로 지정된 이상재 선생의 생가터. 뒤편으로 종지교회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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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2.04 19:01

    ◇ 서천 성경전래지 ◇



     * “서천 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회”는 이곳 서천을 최초의 성경 전래지이며, 한국 최초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순교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성경 전래지에 대한 주장은 교파와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르다. 일부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소서행장의 종군신부 서스페데스를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을 전래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성경전래지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1832년 고대도에 도착한 귀츨라프 선교사를 통해 성경이 최초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지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고군산열도 어청도 부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새롭게 서천에서는 어청도가 현재 군산에 속해있지만 1914년 전에는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에 속하였다고 하여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교지는 서천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전북 군산시 내초동에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와 기념관이 이미 건립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와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지에 대한 연구는 좀 더 학문적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 다음은 서천이 최초 성경전래지이며,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지라고 하는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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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순조 16년 1816년 9월 5일, 당시 중국을 거쳐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며 해도를 작성하던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맥스웰 함장)와 리라호(바실 홀 함장)가 마량진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곳이 바로 '마량진 갈곶'(현재 충남 서천군 서명 마량리)이다.  이들이 해안에 정박해 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이 중앙의 명령으로 찾아가 의사소통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두 배의 함장인 맥스웰과 바실 홀이 조대복에게 성경을 전달하였다.

     

    * 2002년 경 유승광 공주고 교사가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 우연히 마량진에서 책을 받았다는 부분을 발견하고 성경이 아니냐는 의견을 군청에 전달했다. 이후 서천군은 관련 기록(조선왕조실록, 멕레오드의 '극동항해기', 홀의 '조선 류큐 항해기')을 찾아내어 이같은 사실을 교계와 학계에 알리는 한편 연극으로 재현하는 등 주변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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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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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비 비문

     

     *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장소가 그동안 알려졌던 군산 앞바다가 아니라 서천 앞바다에 있는 오세이도라 불리던 어청도 부근이라는 최근 교회사가들의 주장에 근거해 2006.6 아펜젤러 순직 104주년을 추모하며 감리교 충청연회 주관하고 서천군기독교연합회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마량진에서 48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어청도는 1914년 이전에는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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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으로 지금까지는 한국최초 성경전래가 1832년 독일의 귀츠라프 선교사에 의해 보령 고대도에 상륙해 성경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서천에 1816년 성경이 전해졌다면 1832년보다 16년 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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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천군과 기독교계는 '마량진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6-3번지 7,200여 평의 대지에 494평 규모의 종교문화박물관과 722평 규모의 한영 문화교류 기념관, 부대시설로 조각공원, 상징탑, 문화광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최초 성경전래지를 통한 역사교육의 장 조성과 내외국인 즐겨 찾는 관광지,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한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등으로 개발되게 된다.

     

    * 한국 성경전래지에 감리교회 최초 선교사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 예정이다.

     

    * 위치: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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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2.04 19:03

    ◇ 고대도교회 ◇



    *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17일 조선에 도착하여 배질만 북쪽에 있는 장산곶에 닻을 내렸다. 귀츨라프는 전도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이틀 후에 그 곳을 떠나 1832년 7월 23일경 고대도에 도착하였다.


    *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17일 한 달간 조선 서해안을 방문하였고 특히 고대도에 머무르며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문화를 전달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고대도에 와서 조선 순조 왕에게 근대 문명과 기독교를 전하였다. 그리고 당시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벗어나 세계 각 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교역할 것을 요청했다. 이런 점에서 고대도는 한국 근대화를 촉구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에 의하여 복음이 전해졌던 기독교 순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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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교회를 대표하는 선교의 사자로 불리우는 귀츨라프(1803-1851)는 독일 북부 지방인 폼머의 평범한 경건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826년 귀츨라프는 루터교 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 정식 선교사로 말래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로 파송을 받았다. 1828년에는 태국 최초의 선교사로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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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2년 7월 26일 귀츨라프 일행은 홍주 목사 이민회와 수군우후 김형수를 만난다. 귀츨라프 일행은 그들이 조선을 방문한 목적이 국왕에게 통상을 정식으로 청원하는 서한과 함께 선물을 전하려는 것임을 밝혔다. 또한 귀츨라프는 갑판 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양이(Yang-yih)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번역하도록 하였으며 감자를 성공적으로 재배하는 법을 전했다. 그리고 야생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는 법과 포도 재배법도 가르쳐 주었다. 귀츨라프는 감기 환자를 비롯해 노인 60여명을 치료하였다. 8월 11일 귀츨라프는 25일 동안 체류했던 조선을 떠나면서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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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적으로 보아 토마스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대동강변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다 순교한 1866년보다 34년 앞선 일이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에 상륙한 1885년보다 53년 앞선 일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카톨릭 선교사인 불라서 신부 모방이 내한한 1836년보다 4년이나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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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비: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 원의중학교 부근 해변

    이 기념비는 원산도에 있지만, 귀츨라프 선교사의 실제적 첫 사역지는 고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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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도교회 내부

     * 귀츨라프가 한국에 짧은 기간 밖에 머무르지 못했고 또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로서 한국 선교의 길을 닦아 놓았다. 성과의 유무를 떠나서 귀츨라프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대도 역시 한국 최초의 선교지로 큰 의의가 있다.


    * 주소: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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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2012.02.04 19:05

    ◇ 부여 규암교회 ◇



      * 부여의 규암성결교회는 1912년 동양선교회(성결교회를 세운 선교부)가 한강 이남에 최초로 세운 교회였다. 1912년 서울에 거주했던 규암인 김성기씨가 복음을 받고 낙향하여 부여군 규암면 외리(선촉) 자택에서 1912년 7월 26일 교회를 시작하니 바로 이 날이 규암교회 역사의 시작이다.

     1912년 토마스 선교사 부부와 이장하, 최홍은 시찰 내방하다. 1913년 킬보른 선교사, 이장하, 김상준, 박제원 내방. 규암면 내리의 박기래 가정으로 예배처소 옮기다. 동양선교회는 규암교회에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의 전신) 학생 박제원을 파송해 새롭게 시작하였다.

      1915년 12월 28일 동양선교회 규암복음전도관을 설립, 군청을 경유하여 교회설립 포교계를 제출하니 교회 명칭이 되어 이것이 부여 규암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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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암교회 제 1성전 앞뜰에서

     제1성전은 “ㄱ”자 예배당이었다고 한다. 구한국 유교 사상으로 생활화 된 때에 남녀가 유별하여 예배당을 “ㄱ"자로 지어 남녀가 서로 같이 앉지 못하고 볼 수 없게 구조 되어 있었으나 성전 뜰 앞에서는 함께 사진을 찍는 여유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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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전을 완공치 못하고 떠나는 박종만 목사님과 여전도회 회원들 송별 기념사진

     

    * 신사참배 반대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전국 성결교회 교역자 및 신도 등이 검거 구속됨에 따라 규암교회 신도 수명이 연행되었다. 신사참배 반대로 예배 중지와 함께 예배당을 부락 공회당으로 강제 전용당하고 예배당을 잃은 신도들은 내리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대전성결교회의 유일섭 집사가 인도하는 비밀 가정 집회에 참석하여 신앙을 지속하였다.

     

    * 1915년 12.28일 교회 이름을 동양선교회 규암복음전도관으로 명칭하다.

    * 1921년 본회의 명칭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개칭하다. 

     

    * 1945년 11월 9일 교회 명칭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규암교회로 명칭하다.

    * 1962년 예성과 기성으로 교단 양분되어 교회 명칭도 1921년으로 환원하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규암교회로 명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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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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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성전(현재는 유치원으로 사용)

     

    * 제 2성전

     - 1954년 6.25의 쓰라린 전란 끝에도 하나님 성전만은 건축해야 하겠다는 믿음의 일념으로 온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였다.

     - 1986년 제 2성전 활용의 일환으로 성결유치원을 개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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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념관 벽면에 걸린 성경 구절


    * 주소: 충북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9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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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8 토론 길희성 - 내 종교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건 우상숭배[펌- 한겨레 신문] 1 노희권 2011.06.12 6630
3447 사는이야기 무슬림과 결혼후 개종강요당하는 피해 한국여성 TV방송 박미자 2011.06.09 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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